성화와 연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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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딤전 4:6-10
제목: 성화와 연단
허물과 죄로 죽어있던 죄인이 아무런 대가 없이 오직 은혜로 거듭나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면, 그 즉시 죄인의 신분에서 의인의 신분으로 격상됩니다. 그렇게 의인의 신분을 얻게 된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이때 인생의 새로운 목표가 생기는데요. 그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간다는 원론적인 목표가 생기고요. 또 존재론적인 변화로는 삶의 가치관이 자기 중심적인 가치관, 인본주의적인 가치관에서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관으로의 변화가 생깁니다. 이러한 변화는 성도의 삶을 성화의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을 성화라고 말하죠. 이 성화라는 것에 대해 신약성경은 다양한 표현으로 설명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디모데전서 4장에서는 성화의 삶을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이 시간 짧게 이 말씀에 대해 나눌텐데요.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삶,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마땅히 감당하며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삶인지 함께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라는 표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일꾼이라는 단어는 원어적으로 표현하자면 “종, 노예, 하인”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단어는 집사 직분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항존직인 집사를 의미하는 것이죠. 하지만 용례에 따라서 의미가 구분된다는 점은 주의해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라는 표현에서의 일꾼은 집사가 아닌 하인을 의미합니다.
자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일꾼이라는 표현에서의 일꾼은 하인을 의미하는데 어떤 하인입니까? 좋은 하인입니다. 우리말로 좋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정확하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헬라어에서도 마찬가지로 이 좋다는 의미는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의미로는, “선한, 아름다운, 좋은, 유용한”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현대 신약신학자들은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의 “좋은”이라는 표현을 “유용한”이라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디모데전서 1장 8절 말씀 보시면,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여기서는 선하다고 번역되어있습니다만, 이 말씀에서 선하다는 표현은 “유용한” 이라는 단어로 번역해야 의미가 통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 예수의 유용한 일꾼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자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유용한 일꾼이라는 표현은 누구의 관점에서 볼 때, 유용해야 할까요? 자가 진단할 때 유용하다는 생각만 들면 괜찮은 것일까요? 아니면 예수님의 입장에서 유용한 하인이 되어야 괜찮은 것일까요? 당연히 예수님의 입장에서 평가했을 때 유용해야겠지요.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부분에서 신앙적인 오류를 범합니다. 본인이 교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신앙생활하면서 여러 모양으로 섬겼다는, 그 섬긴 행위 자체만으로 만족하는 것이죠. 그 섬김이 과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어떠한가, 주님의 몸된 교회에 영적인 유익을 끼쳤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공동체 가운데 해악을 끼치지는 않았는가. 형제를 영적으로 걸려 넘어지게 만들지는 않았는가. 이런 다양한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부분들은 배제하고 본인이 섬긴 행위에만 집중하며 스스로 만족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섬긴 행위 자체는 타인이 볼 때 일꾼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전서 4장 6절에서의 명령은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유용한 노예가 되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과연 얼마나 그러한가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판단하실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유용한 노예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스스로 돌아봐야만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유용한 노예가 된다는 것은, 한 순간의 열정으로 충당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다보면, 번아웃이 왔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십니다. 네. 그럴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도 해야 하고, 가정도 돌봐야 하고, 여러 일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지칠 수 있죠. 또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분량 이상으로 섬기다 보면, 과한 열정으로 섬기다 보면 사람이기에 지칠 수 있고 이로 인해 쉼이 필요하다고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쉼이라는 것은 재충전을 위한 것이지, 기약이 없는 쉼은 섬기지 않기 위한 보기 좋은 하나의 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용한 노예된 삶을 감당해야한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 지속성이라는 측면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가장의 삶을 감당하실 때, “고됨” 혹은 고단함을 느끼지 않고 그저 행복하기만 할 수 있습니까? 그런 분 계신가요? 그렇지 않죠. 목사인 저도 고단함을 느낍니다.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죠. 이러한 고단함은 성경적인 인생의 원리이자 원죄의 결과이기 때문에 누구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창세기 3장 17절 말씀 들어보십시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하나님께서는 남자에게 힘겨운 노동이라는 죄책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질서 중 하나가 된 것이죠. 누구나 다 힘겨운 노동을 감당하면서 가정을 먹여 살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일이 기쁘든 기쁘지 않든, 적성에 맞든 맞지 않든지 관계 없이, 가장이라면 누구든지 어떻게든 감내하고 가족들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생업에 있어서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악으로 깡으로 견뎌낸다고 하지만, 신앙생활에 있어서는 어떻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유용한 노예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본인이 얼마나 자원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직장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 중의 하나는, 많은 수입보다 적절한 워라벨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그 워라벨이 교회에도 적용됩니다. 워라벨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에서의 섬김과 헌신의 분량도 조절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사회적은 흐름이나 시대적인 사상에 영향받는 것은 명백하게 비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9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하도다. 주후 63년 경에 기록된 이 디모데전서가, 디모데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받을만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 구역 모임에 참석하신 우리 장로님 그리고 집사님들은 화평교회의 중직자들이십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론 누구보다 그리스도 예수의 유용한 노예로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분들이신줄 압니다.
그러나 제가 앞서 말씀드렸듯, 그리스도 예수의 유용한 노예라는 것은, 과거의 단편적인 경험이나 기억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땐 그랬지. 라떼는 그랬어. 이런 식으로 과거를 추억하거나 회상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지속성을 가지고, 예수님의 유용한 노예로서의 삶을 지켜 나아가야 하는 것이죠. 가족도 중요하고, 직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은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며,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예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유용한 노예로서의 신앙생활을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화평교회에 젊은 연령대 숫자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 또 한국교회 전체적인 흐름을 보아도, 앞으로 그렇게 긍정적인 미래가 보이지는 않지만, 신앙의 선배로서,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유용한 노예의 모범을 보이시며,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합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잠시 잠깐 맡겨주신 것들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는 때때로 행복에 겨워 하나님 앞에 진실하지 못한 믿음으로, 또 때로는 신실하지 못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사랑이 많으신 주님, 이러한 우리의 부족함을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이 시간 함께 나눈 디모데전서 4장 6절 말씀을 기억하며, 다시금 그리스도 예수의 유용한 노예된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오니, 선하고 의로운 길로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