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러기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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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 7:24-37 (막 7:24-30)
제목: 부스러기 은혜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머니와 대화하신 뒤에 그 딸을 치유해 주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육적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혈통이 아닌 우리로서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가 되는지 모릅니다.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대화 가운데, 이 시간 우리가 어떤 말씀을 깊이 있게 묵상하고 적용해야 하는지 함께 상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가복음 7장 24절 말씀 보세요.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예수님께서는 대중의 관심을 피하기 위해서 두로 지방에 있는 어떤 한 집에 들어가십니다. 이는 마가복음에서 여러 차례 등장하는 내용 중에 하나인데요. 먼저 두로라는 나라에 대해서 설명해 드리자면, 오늘날 레바논이라는 국가가 성경에 등장하는 두로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두로는 갈릴리 지역의 북서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굉장히 근접해 있는 나라라고 볼 수 있죠. 그렇다면 이스라엘과 관계는 어땠을까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두로의 주민들은 유대인들의 철천지원수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가신 것은 쉽게 납득할 수 없는 행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국민의 정서에 합당하지 않으며, 메시야에 대한 기대감과는 거리가 먼 행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뛰어넘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기대를 초월하는 분이시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두로라는 국가와의 악감정이 있든지 없든지 간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역의 지평을 확장시키십니다.
자 그래서,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가셨다고 하는데, 여기서 두로 지방이라는 것은, 상업 도시로서 명성을 떨친 두로의 핵심 지역 또는 수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두로 관할에 있던 지역 어딘가를 의미합니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많은 곳에 의도적으로 방문하는 분이 아니라, 외곽 지역을 더욱 자주 방문하는 분으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두로 지방이라는 것은 두로에서 나름 한적한 어떤 동네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어서 25절 말씀 보세요.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우리는 이 본문을 읽을 때, 예수님과 대화한 이 어머니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우선 이 어머니와 귀신 들린 딸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름인데,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죠. 하지만 그 대신 이름보다 더욱 중요한 두 가지의 정보가 등장합니다. 첫 번째 정보는 이 여인의 상태입니다. 25절 말씀 다시 보세요.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라고 기록되어 있죠. 이 여인은 어떤 상태에 있습니까?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생하고 있는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정보는 이 여인의 출신성분입니다. 26절 말씀 보세요.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헬라인이라는 표현은 인종적인 기원보다는 언어와 문화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 표현은 성경에서 등장하는 일반적인 이방인을 가리킨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런 이방인이 두로 지역에서도 유명하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많지 않은 한적한 동네까지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예수님을 찾아오기 전에 이 여인의 마음을 이미 다 알고 계셨을텐데, 과연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7절 말씀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수로보니게 여인이 요구한 것은,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뭔가 이상합니다. 자녀가 먼저 배부르게 먹게 할 것이다. 자녀가 먹을 떡을 가져다가 개들에게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
여기서 자녀는 누가 되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 또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되겠죠. 그렇다면 개들은 누가 되겠습니까? 이방인이 되겠죠. 본문으로 표현하자면, 개들은 수로보니게 여인과 귀신 들린 딸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주어를 가리고, 내용만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일단 표현이 거칩니다. 오늘날에도 개라는 단어를 욕으로 사용할 경우에, 인격 모독당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습니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향해 개라고 표현하면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죠. 이는 오늘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그러했고, 구약시대에도 그러했습니다. 사람을 가리켜 개라고 부르는 것은 의도적으로 무례를 범하거나 경멸하는 것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이방인들을 개라고 무시하며 부르기도 했습니다. 물론 예수님 역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시며, 유대인이시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표현 방식을 따랐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수로보니게 여인과 귀신들린 딸을 가리켜 개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소 지나친 표현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도대체 왜 이런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신 것일까요. 안 그래도 예수님 찾아다니면서 끊임없이 귀찮게 구는 사람들 때문에 예민해 져서 그러신 것일까요? 아니면 어떤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당연히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겠죠. 마가복음 7장 27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상반절 말씀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우선순위가 자녀에게 음식을 먹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비유적인 표현인데요. 이 표현을 풀어서 말하면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 오신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시간을 보내기 위함이지, 이방인 여인에게 기적을 베풀고 그 여인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오신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이 말씀은 개들이라는 표현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것이지, 개들이라는 표현을 빼고 생각해 보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개들에게 음식을 하나도 주지 않겠다고 단언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27절 말씀 다시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개들에게 먹이를 준다는 것입니까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개들에게 먹이를 준다, 안 준다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 자녀들이 먹을 것은 자녀들에게만 주겠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를 조금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일단 자녀들이 먹을 것은 자녀들이 먹고, 자녀들이 먹은 그 다음에, 개들이 먹을 음식에 대해서 논해보자. 이렇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무례한 말로 일방적인 상처를 주고 계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까지 일단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계신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7장 28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한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였으며 심지어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예수님으로 하여금 더 이상 지체하지 않도록 놀라운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유대인을 가리켜 자녀라고 표현하고, 자기와 자기 딸을 개들이라고 표현한 사람에게 수로보니게 여인은 이런 식으로 답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번 수로보니게 여인의 입장에서 들어보십시오. “네. 예수님, 당신의 말씀이 모두 맞습니다. 우리는 개와 같은 존재가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자녀들이 먹던 부스러기가 떨어지면 그거 주워 먹고 삽니다. 개들의 허기를 채우기에는 부스러기의 양이 한참 모자른다고 하더라도 개들은 침착하게 자녀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녀들을 먹이시는 그 식사 계획을 중단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개들에게는 상에서 먹다 떨어지는 조각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본문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이 한 말은 굉장히 짧지만,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을 들으시고, 그 여인의 간청을 들어주십니다. 이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의 치유를 목적으로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정작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의 시선에서 딸의 치유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딸이 어떻게 나았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단순한 과거 사실을 기록하는 정도로 간추립니다. 그만큼 마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딸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귀신을 내쫓는 예수님의 권능이 아닌, 수로보니게 여인의 끈질긴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면서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며 적용해야겠습니다. 적용점을 나누면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적용점,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끈질긴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브니엘에서 하나님과 겨루었던 야곱처럼 예수님과 언쟁을 벌였습니다. 자녀와 개들의 비유를 들었음에도 이 여인은 비유를 재해석함으로써 예수님의 마음을 돌이키는 데 성공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여인은 여자 야곱이라고 부를 만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끈질긴 믿음과 주님을 향한 집념을 배워야만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부정하고 우리의 고집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근거하되, 상식적이면서도 자신이 받을만한 것 그 이상을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수로보니게 여인의 자세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똑같은 이방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대단히 자랑스럽고 감사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성경에 비추어보면, 개들로 비유되는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음을 본받아, 오늘도 주님의 은혜를 간구해야할 것입니다. 부스러기라도 받아먹겠다는 마음, 부스러기라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는 그 겸손한 마음, 그것이라도 받아 먹겠다는 거룩한 집념. 이러한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두번째 적용점, 이러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마음과 행동은, 딸의 치유로 연결되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끈질긴 마음과 집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몸부림치는 행위는,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을 촉발시키며, 그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 삶의 응답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이러한 기적은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다가간 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은 어디서 뭐하는지도 모릅니다. 귀신들려있어서 예수님을 믿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본인의 마음과는 관계없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런 일이 수로보니게 여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타인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또한 그러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한 마음과 믿음이 귀신 들린 딸의 기적으로 연결된 것은 사실이나, 귀신이 나간 이후에 그 딸에게 믿음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남편을 위해, 아내를 위해, 자녀를 위해, 부모님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분명히 응답해 주실 수 있습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더라도, 위급한 일이 생기거나, 주님의 역사하심이 꼭 필요할 때,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믿음이 없는 가족 구성원이라고 하더라도,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절함을 가지고, 가족을 위해 부단히 기도하시며, 주님의 응답하심을 생생하게 체험하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개 취급을 당하더라도, 상 아래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부스러기라도 감사함으로 받아먹겠다는 겸손한 마음과 끈질긴 마음과 간절한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언제나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모습만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수로보니게 여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서 이방인이었으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음을 다시금 기억합니다. 하나님께 은총을 구할 때, 응당 받아야 할 것을 받는다는 식으로, 교만한 마음으로 구하는 것이 아닌, 부스러기를 받더라도,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마음으로 받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믿음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전능하심에 의지하며, 염치 불구하고 우리가 가진 기도제목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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