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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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하 22:1-20 (봉독 22:8-20)
제목: 개혁의 서막
남유다 왕국의 16번째 왕인 요시야 왕은 왕으로 등극한지 18년째 되던 해, 그의 나이 26세 때 예루살렘 성전을 대대적으로 수리합니다. 열왕기 말씀만 묵상하다보면, 요시야에 관한 말씀은 성전 수리부터 시작된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요시야는 갑자기 어떤 깨달음을 얻어서 성전수리에 대한 마음이 생겼다거나, 뜬금없이 남유다 종교 개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것이 아닙니다. 본문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요시야의 일생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역대하 34장 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요시야의 일대기를 신앙적으로 구분해 보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습니다. 요시야의 나이 8세, 오늘날로 표현하자면 초등학교 1학년이죠. 매우 이른 나이에 왕위에 오릅니다. 그리고 16세가 되던 해, 중학교 3학년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납니다. 이어서 4년 뒤, 20세가 되었을 때, 남유다의 종교개혁을 단행합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들을 과감히 척결해 버린 것이죠. 마지막으로 그의 나이 26세 때 대대적으로 성전을 수리합니다. 바로 이 내용이 오늘 본문 말씀인 열왕기하 2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이 시간 요시야 왕이 성전 수리하면서 발견한 율법책을 어떻게 대했으며, 요시야가 하나님께 응답받은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함께 살펴본 뒤에, 오늘날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상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22장 8절 말씀 보세요. “대제사장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니 사반이 읽으니라”
여기서 우리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율법책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시야의 아버지인 아몬과 아몬의 아버지인 므낫세, 이 두 사람은 모두 다 하나님께 악한 왕이라고 평가받은 왕들이었습니다. 므낫세의 경우에는 남유다 왕임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 왕인 아합의 행위를 따랐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몬의 경우에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므낫세와 아몬은 악한 왕들 중에서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인물들이었는데요. 여러 구약학자들에 따르면 두 왕이 통치하던 때, 특히 므낫세가 통치하던 때에 율법책이 사라졌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신명기 31장 2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신명기 말씀에 따르면, 율법책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언약궤 바로 옆자리입니다. 이는 솔로몬 시대에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 구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정형화된 구조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누구도 함부로 그 위치를 바꿀 수 없는 거룩한 구조인 것이죠. 따라서 성전에서 율법책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죠. 선왕으로 평가받는 히스기야 왕 때에 율법책이 사라졌을 리는 만무하니, 그 다음 왕인 므낫세 왕 시대에 율법책이 본래 위치에서 다른 자리로 옮겨졌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율법책의 존재는 서서히 잊혀졌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므낫세와 아몬의 시대에는 하나님 한 분만이 참된 신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바알과 아세라를 향한 잘못된 믿음과 우상숭배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 이렇게 율법책의 존재가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의 빈자리를 전혀 느끼지 못했던 악한 시대, 남유다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악했던 시대를 지나서 요시야 왕의 시대가 열렸고, 성전을 수리하던 중에 대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곧이어 힐기야는 율법책을 서기관 사반에게 주었고, 사반은 요시야 왕 앞에서 율법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요시야 왕은 그 말씀을 듣자마자 그의 옷을 찢습니다. 열왕기하 22장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우리는 보통 이 말씀을 읽을 때, 요시야 왕의 행위, 옷을 찢은 그의 과감한 행위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시야 왕이 스스로 옷을 찢게 만든 행위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집중해야 합니다. 요시야 왕이 어떤 이유로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까? 왕이 율법책의 말을 듣자 곧 그의 옷을 찢으니라. 요시야 왕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귀로 듣고 그 내용을 믿음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자신의 옷을 찢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남유다의 뿌리 깊은 불신앙과 죄악들에 대한 탄식과 절망에서 비롯된 행위였던 것이죠. 우리는 요시야 왕의 옷을 찢는 행위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성경에서 옷을 찢는 행위는 굉장히 빈번하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두 가지 용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경우는, 열왕기하 5장 7절 말씀의 내용인데요. 아람 왕이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했을 때, 이스라엘 왕이 옷을 찢으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이때 옷을 찢는다는 표현은 “카라”라는 단어로 요시야가 옷을 찢었다고 표현할 때 사용된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여호람 왕이 옷을 찢은 것은 죄에 대한 탄식이나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된 찢음이었습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겉으로 볼 때에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 괴로워하면서 자신의 옷을 찢고 엎드리는 행위는 다를 것이 하나도 없죠. 하지만 그 마음의 중심은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경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예레미야의 두루마리를 칼로 베어내서 불태워버린 여호야김의 경우입니다. 예레미야 36장 2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연하여 베어”라는 표현과 요시야가 “옷을 찢었다”라는 표현은 똑같은 단어입니다. 같은 단어이지만 전혀 다른 상황이죠.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으나,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기들의 옷을 찢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칼로 찢어버리는 행위를 자행한 것입니다.
자, 지금까지 우리는 요시야 왕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은 채로 옷을 찢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옷을 찢기만 하면 될까요? 마음 아파하고 두려워하고 절망 가운데 은혜만 구하면 되는 것일까요? 요시야 왕이 취한 다음 행동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열왕기하 22장 13절 말씀 보십시오. “너희는 가서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이 책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며 이 책에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모든 것을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진노가 크도다”
요시야 왕은 본인의 할아버지 시대와 아버지 시대에 일어난 불순종의 결과를 해석하기 위해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구합니다. 그는 율법의 내용 그 자체에 의문을 품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대한 뜻을 정확하게 알아내기 위해서 선지자에게 요청한 것이었죠.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요시야는 국가적인 죄를 인정하고 그 결과를 두려워하는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이 있는지, 그 진노가 혹시나 유예되거나 철회될 가능성이 있는지를 알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는 아직 늦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 것이죠. 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요시야 왕의 믿음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격이 없는 백성들에게 원하시기만 하면, 얼마든지 진노를 거두실 수 있고, 또 언제든지 한없는 자비를 베풀어주실 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씀 앞에 두려워 떠는 자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사야 66장 2절 하반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 그런 사람을 친히 돌봐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요시야 왕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시는 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2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보라 내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에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 눈이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시야 왕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진노의 심판을 목격하지 못한 채로 숨을 거둡니다. 므낫세의 죄악의 결과로 인해 남유다의 멸망이 철회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의 과정을 하나도 체험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은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말씀을 적용하면서 맺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요시야 왕이 하나님 앞에서 옷을 찢은 행위를 본받으려면, 가장 먼저 그의 마음가짐을 본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앞서 소개해드린대로, 구약성경에는 옷을 찢는다는 단어가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총 67회 등장하는데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옷을 찢는 외적인 행위에 있지 않습니다. 그 행위가 일어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요시야 왕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다는 것은, 요시야 왕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보여줍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율법책은 므낫세 시대부터 소실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아무도 율법책을 찾지도 않고, 아무도 기억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원주민들이 다이아몬드를 돌멩이 취급하듯이, 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말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런 때에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영적인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 화평교회가 표방하는 개혁주의 신학은 성도가 은혜 받는 방법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공적인 예배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다른 하나는 성례입니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었다면, 오늘날 우리는 공적인 예배와 기도회 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옷을 찢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됨을 돌아보며 탄식하고 절망해야 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들, 급한 문제들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본인의 신앙 양심에 대해서, 영적인 건강에 대해서, 말씀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이 고갈되어 버린 영적인 질병에 대해서, 단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외적인 문제 해결만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 기도는 성경적으로 건강한 기도가 아닐 수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그 건강하지 않은 기도 가운데 수많은 눈물과 몸부림이 있다고 한들, 요시야 왕이 보인 바람직한 옷 찢음이 아닐 수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두 번째로, 저주와 심판의 말씀을 들어도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더욱 낮은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요시야 왕이 들은 율법책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이 아닌 저주의 말씀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 이유는 19절 말씀에 있는데요. 열왕기하 22장 1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대하여 빈 터가 되고 저주가 되리라 한 말을 네가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여호와 앞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아멘.
결과적으로 요시야 왕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철회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인했습니다. 피할 길이 없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어떻게 받아들여야겠습니까. 요시야 왕은 진노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부드러워졌습니다. 하나님 그래도 저는 저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는 다르게 성전 수리도 하고, 율법책도 찾았고, 종교개혁도 하고, 다했습니다. 그런데도 왜 안해주십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따지지 않았습니다. 저주와 재앙을 피할 길이 선포되지 않았음에도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더욱 낮아진 자세로 통곡하는 요시야 왕의 신앙의 자세를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는 것은, 듣기 좋아서 혹은 축복 받기를 원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우리의 삶의 규범이 되며,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되기 때문입니다. 부디 요시야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근거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옷을 찢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주와 심판의 말씀이 선포되어도, 회개와 헌신과 절제와 연단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보며, 통회하는 심정으로 변화되기를 갈망하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드립니다. 오랜 시간 동안 신앙생활하다보면, 습관처럼 신앙적인 행위들을 반복하게 됨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요시야 왕이 유실된 하나님의 말씀을 되찾고, 그 말씀을 들었을 때 보인 옷을 찢은 행위처럼,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하여, 오직 믿음으로만 말씀을 받는 참된 신자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올바른 동기와 참된 믿음으로 옷을 찢으며, 어떤 말씀을 받아도 부드러운 마음과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화평의 지체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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