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을 갱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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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신 27:1-26
제목: 언약을 갱신하라
신명기 27장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이 세겜 땅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갱신해야 한다는 것과, 언약에서 비롯되는 저주의 말씀을 다시 한번 들으며 아멘으로 응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모세오경 전체 말씀 가운데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선별하자면,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 말씀을 고를 수 있습니다. 언약을 갱신하라고 명령하는 장인 신명기 27장 역시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만,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모두 담겨있는 신명기 28장 말씀에 비해 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인즉슨 신명기 27장에서 발견되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그렇습니다. 대표적인 문제 두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문제는, 모세가 나중에 이스라엘 민족이 요단 강을 건넜을 때,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기 위해서 여섯 지파씩 그리심 산과 에발 산에 세울 것이라고 명령한 뒤에, 신명기 27장 14절 이하의 말씀에 따르면, 레위 사람이 큰 소리로 저주의 말씀만을 선포합니다. 바로 이 부분에 문제가 있습니다. 신명기 27장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축복하기 위해 그리심 산에 서라고 말하는데, 그 이후에 레위 사람이 선포하는 내용은 저주의 말씀만 나타납니다.
우상을 만들고 세우는 자,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 사회적 약자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 가족 간의 성적으로 음란한 문제를 일으키는 자. 이런 자들에 대한 저주의 말씀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축복을 위해 그리심 산에 서라고 해 놓고 저주의 말씀만 등장하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두 번째 문제는 신명기 27장 15절 이하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말씀인 무엇 무엇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하는 말씀이 무려 13번씩이나 반복되는데요. 13번 등장하는 저주의 말씀 가운데, 저주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반대로 신명기 28장에는 축복이나 저주의 말씀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신명기 27장의 저주를 선포하는 말씀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저주를 말하는 것인가 하는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문제는 신명기 신학이 지닌 특성을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성경 NIV와 NASB의 번역 위원으로 참여한 케네스 리 바커 박사는 신명기 27장 말씀이 저주를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복이 아니라 저주 아래에 있을 것임을 명백하게 예상하는 신명기 특유의 표현 방식일 수 있다.”
바커 박사의 설명대로, 신명기의 저자인 모세가 이스라엘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전망했다는 사실은 신명기 32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신명기 32장 5절과 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
이 말씀에 따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언약을 갱신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언젠가 하나님께 불순종할 것을 예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부정적인 예상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마음이 추호도 없었는데, 모세의 부정적인 발언 때문에 부정 타서 잘못된 길로 가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출애굽 했을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모습을 일삼았습니다. 물론 신명기 27장 말씀을 받는 대상은 출애굽 2세대이기 때문에 출애굽기와 민수기에서 죄를 지은 주체는 아닙니다만,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출애굽 1세대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 물이 없다며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또 고기가 먹고 싶을 때에는, 애굽 땅에서 종살이 했을 때가 나았다고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또한 모세가 정탐꾼을 보내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했을 때, 이스라엘 자손은 아낙 자손의 칼에 죽는 것보다 애굽 땅이나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다며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원망했습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향한 불순종의 DNA가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앞다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거부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대표자를 세워서 다시 애굽 땅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 전적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모습은 출애굽 1세대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만 못난 모습을 보인 것일까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3장 9절에서 12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9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0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이 말씀에 따르면, 사람 중에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자신의 의지로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죄악된 본성을 지닌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모든 사람이 죄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출애굽 1세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만 특별히 악해서 하나님을 더욱 진노하시게 만든 것이 아니라, 천성이나 기질이 어떻든지 간에,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다 그렇고 그런 존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죠.
따라서 출애굽 2세대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패역한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론 오늘 본문 말씀인 신명기 27장 말씀에서 출애굽 2세대를 정죄하는 듯한 내용이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출애굽 2세대가 하나님 앞에서 완전무결하게 깨끗하다거나, 이들이 어지간해서는 죄를 짓지 않을 것이라고 모세가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상태에서 언약을 갱신하라고 명령하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소개해 드렸듯이 바커 박사가 설명한 대로, 이스라엘의 미래가 복이 아니라 저주 아래에 있을 것임을 명백하게 예상하는 신명기 특유의 표현 방식으로서 저주의 내용을 중심으로 신명기 27장이 기록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신명기 27장 말씀을 가지고 어떻게 우리 삶에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저주에 관한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저주받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주신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그들이 저주받는 일이 없도록 경계하라는 의미에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자녀를 양육하신 분들은 이 내용을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의 경우를 예시로 말씀드리자면, 저의 아들이 올해 7월이면 만으로 세 살이 됩니다. 이제 어느 정도 본인이 원하는 것이나 느끼는 바에 대해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땡깡부릴 때도 있고, 무턱대고 말도 잘 안 들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부모가 어떤 말을 합니까? 처음에는 타이르고 설득하다가, 그래도 안 되면, 매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그런데 이런 경고의 메시지를 전할 때, 안 그래도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싶었는데, 합리적으로 때릴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경고합니까? 그렇지 않죠. 가능하면 매를 들고 싶지 않은데,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안내하기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매를 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끊임없이 패역한 길로 이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저주에 관한 말씀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라도 죄악의 길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명기 27장에서 축복의 말씀은 하나도 주지 않으시고, 저주의 말씀을 무려 열 세번씩이나 선포하게 하고, 그걸 또 아멘으로 화답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사랑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또한 우리는 오늘날 마땅히 지켜 행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거룩한 의무를 감당할 때, 불편해 하거나, 억지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를 의롭고 거룩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뜻을 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길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따라가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신명기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패역함을 전제로 해서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이 담겨있는 절대적인 주권 아래의 역사하심을 제시합니다. 만약 이런 내용이 신명기에 없다면, 신명기 27장과 28장, 저주의 말씀으로 온통 뒤덮여 있는 말씀이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주어졌다면, 이로 인해 우리의 기준을 한없이 끌어올려서 어떻게든 그 기준에 부합하도록 우리 자신을 채찍질해야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채찍질하고 노력해도 영적으로 전적인 무능력 상태에 있는 우리로서는 하나님의 기준에 부합될 수가 없기에 절망 가운데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명기 30장 6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시는 손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살펴보기전에 먼저 신명기 10장 1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이 말씀에서 행위의 주체는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선택받은 민족으로서, 거룩한 나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것은 행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부족함을 아시고 도우시는 손길을 더해주십니다. 신명기 30장 6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에 친히 할례를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겨주시는 마음, 지극히 사랑하시는 마음에서 행하시는 자비로운 역사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영적인 의무를 우리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이를 신명기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 어떤 종류의 저주인지 모르지만,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는 우리 자신의 힘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준행할 수 없는 상태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겨주시기에, 우리의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체험하시며, 오늘도 주님의 자녀다운 인생을 살아가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생명의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죄로 규정하시는 것을 죄로 받아들이며, 죄악된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매일 매일 닮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풀어 주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는 주님, 오늘도 우리의 영적인 무능력함을 불쌍히 여겨주시고, 오직 주님 한분만 의지하며,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복된 하루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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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pp.390)
27:1-8 이 단락의 첫째 핵심은 율법의 영구성. 언약이 대대로 지속되어야 한다면, 언약 율법은 영구적으로 보존되어 백성이 약속한 의무를 정기적으로 상기시켜야 함.
모세는 곧 퇴장할 것이나,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율법을 보존하고 시행하는 일은 제사장과 장로들의 책임이 될 것. “큰 돌들”을 세우고 거기 기록을 남기는 것은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공문서를 보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었음. 이 돌들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기록하는 것은 이집트 방식.
둘째 핵심은 율법의 명료성. 모세는 온 율법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하라고 명함(8절). 이를 표현하는 특별한 동사 바에르는 1:5에서 모세가 어떻게 온 율법을 설명하고 분명히 했는지 묘사할 때 사용된 동사.
구약 율법의 중요한 특징은 모두가 접근할 수 있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으며 모두가 지킬 수 있다고 상정한다는 점. 율법은 소수 특권 계층을 위한 것이 아님. 율법은 제사장들에게 맡겨지나, 백성에게 가르치라고 그들에게 맡겨지는 것. 이 주제는 30장에서 더욱 강화됨.
셋째, 27장에서 규정된 의식들의 의미는 의식을 행하는 때와 장소로부터 도출됨. “너희가 요단을 건너”는 때일 것. 마침내 약속이 성취될 때, 신명기가 고대하고 예언한 전부가 마침내 현실이 될 때일 것.
넷째, 전체 사건은 예배에 잠겨야 함(5-7절). “제단을 쌓으라”라는 지시는 출 20:24의 제단법을 긴밀히 따름. 번제는 가장 수직적인 제사로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 반면 화목제는 희생제물의 고기 중 가장 큰 몫이 예배자에게 돌아가며, 가장 수평적인 제사임.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그 땅에서 언약 갱신을 기념하는 예배에까지 스며듦.
27:9-10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구속 은혜로 얻은 정체성을 말하고, 이스라엘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순종해야 함) 말함. 순종의 동기가 부여되는 것. 이 전체 율법을 지키라는 첫번째 명령과 새로운 요구(10절) 사이에 땅에 대한 선물,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 희생 제사를 기뻐하는 것,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갖는 신분이 나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