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이방인에게 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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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 10:34-48
제목: 성령이 이방인에게 임하다
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베드로가 고넬료를 포함해서 고넬료와 관련이 있는 다수의 청중에게 복음을 전파한 내용과 그 이후에 성령이 임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 사건에는 두 가지의 특징이 있는데요. 첫 번째 특징은 다수의 청중이 복음을 듣고자 하는 열렬한 반응을 보인 사도행전의 첫 번째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8장 26절 이하에서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한 사건이 등장합니다만, 이 사건의 경우에는 내시가 직접 요청한 것은 사실이나, 개인 대 개인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경우에는 고넬료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이 함께 모여 베드로를 기다렸습니다. 복음을 듣기 위해서 갈망하는 마음으로,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수의 청중이 사도 베드로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어서 두 번째 특징은 이 사건이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한 매우 독특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본문을 살펴볼텐데요. 본문의 내용은 두 가지의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34절에서 43절까의 말씀은 베드로의 설교 내용이고요. 44절부터 48절까지의 말씀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한 사건과 이방인들이 세례받은 사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의 설교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과 35절 말씀 보십시오. “베드로가 입을 열어 말하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면서 그의 인생 가운데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국적과 인종을 초월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나기 전에 환상 가운데 등장한 부정한 짐승을 먹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율법에 능통하며,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환상이라고 하더라도 부정한 짐승을 먹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0장 14절에서 베드로는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율법에서 부정한 짐승으로 명시한 것을 먹지 않겠다고 한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것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이를 조금 더 심화시켜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을 의롭다고 칭하실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베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렇습니다. 베드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언약백성이자 제사장 나라로서 거룩한 백성이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이말인 즉슨,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대해서 제한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 근거는 사도행전 10장으로 말씀드리자면, 환상에서 큰 보자기 안에 들어있던 부정한 짐승들을 먹으라는 말씀 이후에 베드로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합니다. 이 환상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부정한 것을 정결하다고 말씀하시면, 거룩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이 환상의 의미를 무시하거나 부정한 것은 아니지만 확실하게 깨달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고넬료를 처음으로 만났을 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었군요. 반갑습니다. 복음을 들으십시오. 이렇게 말하지 않고, 고넬료에게 무슨 일인지를 묻습니다. 고넬료의 말을 듣고 나서야 확실하게 알게 되죠. 여기에서 두 번째 근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0장 34절과 35절,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깨달았도다. 이전에는 확실하게 알지 못했던 사실을 이제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 가운데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 일행에게 한 편의 설교 말씀을 전합니다. 그 내용은 지금까지 꾸준하게 신앙생활해 오신 우리 성도님들께는 너무나도 당연한 내용으로 여겨지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역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복음의 정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말씀을 전한 것이죠. 이런 설교 말씀을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들으신다면, 성도님들께서는 어떤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겠습니까? 아마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이 많이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어주셨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멈춰서는 안 됩니다. 사도행전 10장 42절과 4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베드로가 고넬료 일행에게 전한 설교의 결론은 사도행전 10장 42절과 43절입니다. 베드로의 설교의 결론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아닙니다. 어떤 내용이 결론입니까? 두 가지의 내용이 결론이죠. 첫째,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증언하게 하셨다는 것과 두 번째 결론은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결론에서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두 가지의 요약적인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재판장이시며, 죄사함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내용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습니까? 피 흘리는 예수님, 죽어가는 예수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이런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는 분들이 생각보다 굉장히 많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예수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반드시 예수님의 부활과 승귀로 연결되어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단순하게 부활하신 것으로 그쳐서도 안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살아계시며, 재판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분이십니다. 디모데후서 4장 1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또 베드로전서 4장 5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또 요한복음 5장 22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 말씀들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친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굳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죄사함을 주시는 분인데, 여기서의 핵심은 죄사함의 대상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3절 말씀을 다시 보십시오. “그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언하되 그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의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 죄사함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선택받은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허락된 죄사함입니까? 그렇지 않죠. 누구든지 예수님을 전인격적으로 믿기만 하면, 그분의 이름을 힘입어 죄사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지불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우리에게 무언가를 받으신다고 하더라도 드릴 것 하나 없는 우리이지만, 이런 우리를 아무런 대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이러한 은혜의 말씀을 고넬료와 그 일행이 믿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 44절 말씀을 보시면, 이때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옵니다. 이 사건은 이방인들이 체험한 성령 강림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등장하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체험한 사건이었다면,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사건은, 이방인들만 성령의 임재를 체험한 굉장히 독특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사건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이방인들도 은사를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46절에서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이렇게 기록되어 있으니 은사주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겠습니다만, 이 사건은 사도행전 2장의 사건과 거의 동일한 사건으로서 천상의 언어로 말하는 방언이 아닌 외국어로 말하는 방언이었기 때문에, 이방인들이 방언을 하느냐 못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이방인들이 유대인 출신인 그리스도인들과 동일하게 성령을 받을 수 있다는 중요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베드로를 포함한 유대인들은 새로운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아, 할례받지 못한 이방인들, 하나님께 버림 받았다고 생각했던 그 이방인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고, 그 믿음을 통해 죄사함 받을 수 있으며, 성령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구나”하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 오늘 함께 나눈 말씀을 적용하면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분명하게 기억하시고, 신앙생활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미가서 6장 8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사람을 차별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그 어떤 것도 보지 않으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큰 착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또다른 하나는, 실천적인 부분인데요.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나 정도면 괜찮겠지. 내가 그래도 수십년 신앙생활해왔는데, 하나님도 의리라는게 있지 않으실까? 그러니 조금은 느슨해져도 괜찮겠지? 지금까지 적금붓듯이 공로 쌓은게 얼만데. 좀 적당히 신앙생활 해도 옛날에 많이 섬겼으니까 거기서 좀 쳐주시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러한 안일한 생각은 하나님의 징계를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진리에 근거한 올바른 변화를 받아들일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인생에서 고넬료 일행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 성령 강림 사건을 간접 체험하고, 이방인들에게 세례를 베푼 것은, 베드로의 사역에 전환점을 가져다 준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일들이 가능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베드로의 사고 전환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제까지 율법이 부정하다고 하는 것은 부정한 것이라 믿어 왔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애초에 부정한 존재인 이방인들, 할례 받지 못한 민족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의 백성의 수효에 들어올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부정한 존재는 부정한 채로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베드로 자신이 보았을 때 더럽다고 생각했던 것을 깨끗한 것으로 여기는 변화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요구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화평의 성도님들, 우리 교회가 숫적으로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분들이 우리 교회에 오기를 원하십니까?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들, 젠틀한 분들, 그런 분들만 오기를 원하십니까? 베드로 역시 하나님의 백성은 그런 정결해 보이는 사람들만 구원받는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31절에서는 의사가 병든 자에게 쓸 데가 있다고 말씀하시며, 죄인을 부르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누가 구원받을만한가, 누가 우리 교회 성도가 될만한가. 이런 부분을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의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더럽고 부정하다고 여겨졌던 이방인들이 성령 강림 사건을 체험한 오늘 본문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차별 없는 신앙생활, 전적인 은혜에만 의존하는 신앙생활, 나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선시하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차별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대속적인 죽음을 통해 아무런 소망없는 우리 모두에게 죄사함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바라옵기는 오늘 말씀을 우리 삶에 적용할 때, 차별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기억하며, 안일한 신앙생활에서 탈피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또한 차별 없이 이방인들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시고, 성령의 임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바라보며, 교회 지체들에 대한 그릇된 편견을 거두고, 사랑으로 섬기기로 결단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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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릭슨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것은 민족적인 차별이 아닌 은혜
이스라엘에게 요구되는 것은 무분별한 자만심이 아닌 거룩한 나라로서의 거룩함과 겸손함을 갖추는 것.
미가가 말한대로 하나님께서 제일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공의를 행하고 자비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미 6:8). 이는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들도 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
사 61:6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나사렛 회당 설교 눅 4:19에서 사 61:6 말씀이 오늘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셨음.
예수님의 죽음은 실제 사건이었으며, 예수님의 부활 역시 실제 사건이었음. 사도들과 같이 택함 받은 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 그래서 더욱 분명하게 증거할 수 있었던 것.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셨음.
제자들이 명령받은 것 –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셨음. + 예수님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음. (막 2:10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
10:44 이방 세계의 오순절 사건
이런 외적 표지는 반드시 필요했음.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을 사람의 육안으로 확인하려면, 얼마나 노골적인 표지가 필요했겠는가? 그렇지 않고서는 이방인들을 구원받은 주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
베드로는 이 모든 일들을 체험했으며 분별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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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NT
인종적 편견, 종교적 편견은 아무런 쓸 데가 없음.
어떤 민족이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롭게 행동하면, 그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으시고 기쁘시게 받아들이신다는 것. 이는 이 당시 베드로에게 혁명적인 계시였음.
이스라엘은 태만하고 안일한 자기만족이 아닌, 순종의 섬김으로 하나님께 반응해야 했음.
베드로의 설교는 마가복음의 범위와 거의 일치함. 세례요한의 사역부터 예수님의 갈릴리, 유대, 예루살렘의 사역, 십자가 죽음과 부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통해 지금 용서받을 수 있다는 복음 제시와 더불어 개인적인 증언과 다가올 심판까지 포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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