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냐의 거짓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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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렘 28:1-17
제목: 하나냐의 거짓 예언
예레미야 27장과 28장은 거짓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가 대립하는 내용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28장에서는 하나냐라는 인물이 등장해서 예레미야 선지자와 논쟁하는 내용이 등장하는데요. 해당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예레미야 28장 1절 말씀 보십시오.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 년 다섯째 달 기브온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가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열왕기하 24장 18절 말씀에 따르면, 남유다의 19번째 왕이자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남유다를 11년 동안 통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28장 1절 말씀 다시 보시면, 그 해 곧 유다 왕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4년 다섯째 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 본문 말씀의 시기를 생각해 보면, 유다가 멸망하기 몇 년 전입니까? 6년 7개월 전이죠. 이렇게 연대만 놓고 보면, 아직 유다가 멀쩡하던 때였나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사실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는 과정 가운데 총 세 차례의 침략을 당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침공 때 멸망 당한 것이고요. 앞서 두 차례 침공 당했을 때에는, 남유다 17대 왕인 여호야김 과 남유다 18대 왕인 여호야긴이 각각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 예레미야 28장 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시드기야가 다스리기 시작한 지 사년 다섯째 달”이라고 하는데요. 본문의 배경을 염두에 두고 생각해 보면, 시드기야가 통치하는 4년 다섯째 달의 예루살렘의 분위기는 어떠했겠습니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포로로 잡혀갔고, 바벨론이 언제 다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불안한 상태로 살았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는 남유다 백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말씀일까요? 예레미야 28장에는 두 가지의 상반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나아온 선지자 두 사람, 하나냐와 예레미야가 등장합니다. 이들이 어떤 각각 어떤 말씀을 전파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나냐” 선지자에 대해서 살펴볼텐데요. 하나냐는 기브온 지역에서 출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브온은 요시야 왕이 제사장들에게 할당해 준 성읍인데요. 학자들의 추측에 따르면 하나냐 역시 예레미야와 마찬가지로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냐가 예레미야 28장 1절에서 여호와의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예레미야와 논쟁할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냐가 전파한 거짓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냐는 하나님께서 남유다를 바벨론의 억압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예레미야 28장 2절과 3절 말씀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이 내용에 따르면, 남유다가 얼마만에 회복된다고 합니까? 무려 2년 안에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예언은 명백하게 거짓된 예언이었습니다. 예레미야 28장 11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이 모든 땅이 폐허가 되어 놀랄 일이 될 것이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이 말씀은 남유다 17대 왕인 여호야김 왕이 통치하던 넷째 해에 이미 선포되었던 말씀입니다. 만약 남유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지각이 있는 사람들이며 깨어있는 사람들이었다면,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회개했다면, 하나냐와 같은 거짓된 선지자가 하는 말에 현혹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28장 1절에서 하나냐와 같은 인물이 제사장들과 백성들 앞에서 예언하는 것을 보면, 하나냐가 백성들 사이에서 어느 정도 인정받으며 지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으로 불편한 내용이죠.
계속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냐의 예언에 대해 예레미야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예레미야 28장 6절 말씀 보세요. “선지자 예레미야가 말하니라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을 해석할 때, 예레미야가 비아냥 거리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문맥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말대로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바벨론으로부터 모든 것이 원상 복구 되기를 원한다고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원헀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남유다 왕국이 이방인 손에 무너지고, 하나님 성전 기물들이 우상을 섬기는 성전에 가득 채워지는 것이 만족스러운 선지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과 관계없이 자신의 개인적인 소망이나 바램을 공적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선지자이기에 때와 장소에 따라 해야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 것인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이러한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선지자였습니다.
따라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냐의 거짓된 예언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공감 정도는 표하지만 즉시 그 예언이 거짓된 예언임을 증거하기 시작합니다. 8절 말씀 보십시오.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남유다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강대국들을 향해서 예레미야 이전 시대의 선지자들이 멸망을 예언했다는 것이죠. 이는 열왕기상하를 조금만 읽어봐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9절 말씀에 있는데요. 9절 말씀 보세요.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선지자가 참된 선지자로 인정받으려면, 선지자가 예언한 그 말씀이 성취되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신명기 18장 22절 말씀을 인용한 것인데요. 신명기 18장 22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이와 같이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된 선지자이냐 아니냐를 분별하는 전제 조건에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말씀과 성취가 있어야만 합니다. 물론 이러한 기본 원칙이 항상 적용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열왕기상 13장에 등장하는 무명의 예언자가 여로보암 제단의 궁극적인 파괴를 선언할 때, 수백년 내에 일어나지 않을 일임에도 불구하고 여로보암의 팔 마비가 동반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항상 똑같이 적용할 수 없는 어려운 내용이긴 합니다만, 하나냐의 경우에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냐의 예언 활동의 목적이 불분명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냐는 막무가내로 남유다의 회복만을 외쳤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유다의 모든 포로들이 2년 안에 돌아올 것이다. 이런 듣기 좋은 소리만 외쳤습니다. 이런 거짓된 예언 활동을 분별해서 제지하지 않으면, 백성들은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2년 뒤에 남유다의 모든 것이 회복된다고 하면, 지금 당장 남유다가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겠죠. 바벨론보다 국력이 약하니 따질 수도 없고, 좋은 말로 설득해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올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그 상태 그대로 2년 동안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상황에서 어느 누가 하나냐에게 헛소리하지 말라고 돌을 집어 던지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거짓된 예언을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냐가 하는 말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레미야는 이러한 하나냐의 거짓된 예언 활동에 백성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두 가지의 말씀을 전합니다. 첫째는, 하나냐의 예언 내용과는 정반대로 남유다가 바벨론을 섬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 말씀 보십시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 나무로 된 멍에를 매도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쇠 멍에로 메운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만큼 남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 당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둘째로, 백성들에게 거짓된 내용을 믿게 한 하나냐가 처벌의 결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5절과 16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15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16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이 말씀대로 하나냐는 그해 일곱째 달에 죽습니다. 28장 1절에서 다섯째 달에 이 일이 있었다고 기록되었으니, 두 달만에 죽음을 맞이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두 가지의 내용을 반드시 기억하시고 삶에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하나냐와 같은 거짓된 선지자, 거짓된 목회자는 오늘날에도 존재하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분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8장 전체를 잘 보시면, 하나냐의 이름 앞에 매번 등장하는 단어가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선지자입니다. 과연 하나냐가 하나님 앞에서 참 선지자였기 때문에 선지자로 기록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냐가 이 당시에 남유다에서 선지자로 인정 받으면서 예언 사역을 감당했기 때문에, 또 백성들이 하나냐의 거짓된 예언을 따랐기 때문에 선지자로 기록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전세계에 수많은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목회자로 부르심 받았다고 확신하는 목회자들,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셔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목회한다고 믿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확신과 믿음은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습니다. 이를 확증하는 방식은 단 한 가지뿐입니다.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시간에 선포할 때에, 한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매 설교 시간마다 그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 말씀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이어야만 참된 말씀 사역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인 설교에 관해서 너무나도 잘못된 생각들이 편만해있습니다. 전달력 좋고 감동을 주고 이해를 돕는 적절하고 재미난 예화를 사용하는 것이 훌륭한 설교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서도 전달력과 감동에 대해 언급하지 않습니다. 본질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하여 전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 부분을 놓치는 순간, 다름 아닌 성도들이 교회에서 거짓된 목회자를 양성할 수 있다는 두려운 사실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봐도 그 길로 가면 낭떠러지고 죽을 것이 분명한데,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축복해달라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신앙생활하지 않고 있는데, 축복에 관한 설교 말씀 듣고자 하지 마십시오. 예레미야 28장이 어떤 배경이었습니까? 1차 포로기에 이어 2차 포로기까지 진행되고 4년 5개월이 지난 시점이 오늘 본문 말씀의 배경이었습니다. 이미 심판이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 포로기가 끝날 것이라는 말씀을 바라는 것이 정상입니까? 그 누구도 예루살렘 성전에서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사람 하나 없는데, 하나님께서 아무일 없다는 듯이 회복시켜주시는 것이 정상이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 똑바로하지 않으면, 믿음이 없으면, 지옥가는 것이 정상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을 천국 보내는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믿음 없는 사람이 축복받는 것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 없는 사람이 지상에서 형통의 복을 누리는 것은 저주입니다. 그러니 부디, 말씀 사역자들의 신앙 양심을 무너뜨리는 요구를 하지 않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둘째로, 하나님의 정의는 언제나 살아 숨쉬고 있으며, 항상 실현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대망신을 당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런 상황에서 더이상 반응하지 않고 잠잠히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저는 다른 건 몰라도 이 상황에서만큼은 하나님께서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게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망신당한 채로 내버려두시는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하나냐 선지자가 예레미야 선지자의 멍에를 꺾어버릴 때, 하나님께서 그 손모가지를 왜 가만 놔두셨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알 수 없습니다. 마음같아서는 그 손모가지에 불이 떨어지거나, 갑작스럽게 골절이 일어나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 억울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십니다. 그리고 두 달 뒤에 선지자 하나냐는 죽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이며, 하나님의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곳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때에, 계속해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우심과 거룩하심에 대해서 의문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경을 아득히 뛰어넘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일하심을 굳게 믿으시고 의지하시며 오늘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가시는 모든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심은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 불신앙에서 비롯되는 잘못된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그릇되게 판단하지 않도록 말씀으로 깨달음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를 부르시는 그날까지, 바르고 건강한 믿음 가지고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께 바라옵기는, 땅끝까지 복음이 온전히 전파되게 하시고, 말씀으로 무장된 목회자들이 바르게 세워져서, 가시적 교회들 가운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선포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역사들이 날마다 일어나도록 주여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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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C pp.121
28:1-4
28장은 27장의 연속으로 예레미야가 그의 메시지를 발표한 특정한 시기는 기록되어있지 않지만, 그의 반대자가 말했던 정확한 연월은 기록되어 있음. 시드기야 왕이 즉위한 지 4년 5월이라는 것. 연대는 BC 593년 8-9월.
하나냐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6마일 정도 떨어진 기브온 출생. 기브온은 요시야 왕이 제사장들에게 할당해준 성읍으로(수 21:17-18) 아마 예레미야와 같이 하나냐도 제사장 가문 출신일 것.
하나냐의 메시지는 예레미야의 예언과 정반대였음. 그는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억압의 멍에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것을 약속했다고 주장함. 그래서 하나냐는 유다와 열국들을 설득해서 바벨론에 굴복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항거하도록 했음. 그리고 그 반란은 성공할 것이라고 약속했음. 그는 2년 내에 하나님께서 주의 전의 모든 물건들을 유다로 다시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고 예언함. 거기다가 여호야긴과 다른 포로들까지도 같이 되돌아 올 것이라고 했음.
28:5-11
이 두 예언자는 서로 상반된 예언을 했으며 각자 서로 그 메시지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주장했음. 비록 예레미야가 주님께서 하나냐의 예언들을 성취되게 해 주시기를 원했다고 할지라도, 그의 예언은 거짓이었음. 예언자들의 진실성은 그들의 예언이 성취되느냐 되지 않느냐에 달려 있었음. 예언자의 예언이 성취될때만이 비로소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언자로 인정 받게 되었음(신 18:20-22). 하나냐와 예레미야 둘 중 누가 거짓 예언자인가는 시간이 증명해 줄 것.
백성들에게 자기 말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 채워져 있는 멍에를 풀어서(렘 27:2) 그것을 꺾어버렸음. 이것은 하나님께서 두 해 안에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꺾어 버리실 것을 극적이며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예언임.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공개적인 모욕에 대항하지 않고 그의 길을 갔음.
28:12-14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멍에를 꺾은 후 곧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음. 하나님의 메시지는 하나냐의 행동을 다가오는 심판의 가혹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사용하셨음. 하나냐는 나무로 만든 멍에를 꺾었지만, 하나님은 더이상 깰 수 없는 쇠멍에로 대치하셨음. 상징적인 언어인 이 쇠멍에는 느부갓네살을 억지로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모인 모든 열국들의 목을 조이게 될 것.
28:15-17
하나냐의 예언에 대답한 후에 예레미야는 예언자로서 하나냐의 자격에 대해 공격했음. 하나님께서 하나냐를 그분의 대변인으로 보내지 않으셨으나, 그는 그의 달변으로 유다 백성들에게 자기의 거짓말을 믿도록 설복했던 것.
그래서 하나냐에 대한 심판으로서, 예레미야가 진정한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증거로서 하나님께서 하나냐를 땅의 표면에서 제하여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셨음. 그의 죽음은 그가 거짓 예언자라는 것을 폭로하게 될 것. 그리고 예레미야는 이 심판이 하나님께서 내리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냐의 죽음이 금년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음. 그때가 5월이었는데(28:5), 7월 이내에 하나냐가 죽을 것이라는 것.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고 예레미야의 예언이 있은 지 두달 도 못된 7월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실한 예언자 예레미야를 옹호해주셨고, 거짓 예언자 하나냐를 심판하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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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선 주석
거짓선지자의 예언 방법과 진정한 선지자의 차이
1) 거짓 선지자는 사람들의 회개를 목적으로 삼지 않음. 백성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골라 함. 그러나 참된 선지자는 사람들의 회개를 위해 장차 임할 심판을 서슴치 않고 말함.
2) 거짓 선지자들은 늘 혈육에 속하여 움직임. 그들은 하나님의 일에전속하여 생각하거나 말할 줄 모름.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의 의지에 반하는 말을 하지 못함. 그러나 참된 선지자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혈육을 거스림. 혈육은 하늘 나라를 받지 못함. 자기 혈육을 미워하지 못하는 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음.
고전 15: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마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신 18:20-22
20 만일 어떤 선지자가 내가 전하라고 명령하지 아니한 말을 제 마음대로 내 이름으로 전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21 네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 말이 여호와께서 이르신 말씀인지 우리가 어떻게 알리요 하리라
22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냐의 말의 거짓됨이 2년 안으로 탄로날 것을 확실히 내다 보았으며, 앞으로 70년이 지나면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오게 될 것을 확신하는 처지에서 이 말씀을 전했음.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침묵하고 그 상황을 피하여 자기 길을 갔음. 이는 하나님의 사람의 지혜임. 악독한 박해 앞에서는 침묵함.
1. 거짓 선지자는 참 선지자의 말하는 것을 모방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말을 믿게 함.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임.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2. 참 선지자는 원수를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자기 길을 감.
3. 참된 선지자는 진리의 말씀에서 단절된 개인주의적인 사상가가 아니며 자유주의적인 사상가도 아님. 참된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는 자임.
4. 사람이 마땅히 받아야 할 고난을 피하면 보다 더 무서운 고난이 닥침.
암 5:19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5.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 반대되는 것을 전파하다가, 부끄러움을 당하고 자신도 멸망 받음. 거짓된 말로 하나님을 끝까지 적대하는 자는 천벌을 받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