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 심판의 선지자 엘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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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왕하 2:15-25 (봉독 왕하 2:19:25)
제목: 생명과 심판의 선지자 엘리사
오늘 본문 말씀에는 엘리야 선지자에게 임했던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임한 이후에 벌어진 두 가지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엘리야 선지자는 세례 요한과 비견되고 엘리사 선지자는 예수님과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특별히 엘리사 선지자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세 가지의 기적들과 평행을 이루는데요. 세 가지의 평행 기적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자면, 엘리사 선지자는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쳤고,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나병 환자를 고치셨습니다. 또한 엘리사는 처음 익은 식물, 보리떡 이십과 자루에 담은 채소를 가지고 많은 사람을 먹였으며,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또 엘리사 선지자는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렸고 예수님은 수넴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엘리사 선지자와 예수님의 유사성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만, 한편으로 엘리사 선지자와 예수님 사이에 차이점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인 예시가 오늘 본문 말씀인데요.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두 가지의 사건, 소금을 던져서 물의 근원을 고친 사건과 엘리사 선지자의 저주의 결과로 두 마리의 암곰이 나와서 조롱한 자들을 찢어 죽인 사건. 이러한 사건은 예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 말씀을 묵상할 때, 가장 먼저 예수님을 떠올리기보다, 열왕기 저자가 본문에서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 말씀을 통해 오늘 우리가 무엇을 깨닫고 어떤 점을 적용해야 할지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볼 때, 두 가지의 사건을 나눠서 살펴본 뒤에 적용하면서 말씀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사건은 열왕기하 2장 19절에서 22절 말씀, 소금을 물에 던져서 쓴물을 단물로 바꾼 사건입니다. 19절 말씀 보십시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여기에서 그 성읍이란 어떤 성읍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18절 상반절 말씀을 보시면,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무리가 그에게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 성읍 사람들이란 여리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시 19절 말씀 보세요.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여리고 성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기 때문에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합니다. 여리고 성읍 사람들의 평가대로 여리고는 요단강에서 가까웠으므로 지리적인 이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이 가까울수록 농업에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19절 말씀에 따르면 여리고 지역에 있는 샘물에서 나오는 물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학자들이 추정하기를, 여리고 샘물에 소금기가 있어서 관개 농업에 적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리고 샘물에 관한 사실 여부가 어떠하든지 관계없이, 가장 우선적으로 열왕기상하의 전체적인 문맥에 따라서, 바알 숭배로 인한 영적인 타락의 결과물로서 수질의 문제가 생긴 것으로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자 그래서, 여리고 사람들의 말에 따라 엘리사 선지자는 이 문제를 해결해 주는데요. 방법이 참 희한합니다. 20절 말씀 보시면,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21절,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이르되. 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아마도 여리고 샘물에 소금기가 있어서 문제였을 것인데, 엘리사 선지자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어떤 방식입니까? 짠물에 소금을 던져서 소금기를 없앱니다.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한 것이죠. 하지만 우리는 엘리사 선지자가 어떤 방식을 사용했느냐에 집중하기보다, 엘리사 선지자가 전한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21절 말씀 중간 부분부터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여기서 핵심은 엘리사 선지자가 소금을 물에 던져서 수질을 개선 시켰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말해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물을 고치셨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풍요의 신으로 칭송받는 헛된 우상인 바알이 물을 고쳐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물을 고쳐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사용하지 못했던 샘물을 다시금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다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금을 물에 뿌리는 엘리사의 손끝을 바라봄과 동시에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을 끊어버리시고 다시 생명의 온기를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사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3절 말씀 보세요. “엘리사가 거기서 벧엘로 올라가더니 그가 길에서 올라갈 때에 작은 아이들이 성읍에서 나와 그를 조롱하여 이르되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하는지라”
23절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읽고 넘어가면, 뭔가 이 상황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실 겁니다. 안 그래도 머리 빠져서 스트레스 받는 엘리사 선지자가 불쌍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머리 빠진 사람을 대머리라고 놀리는 것이 웃긴 것 같기도 하고, 정도가 지나친 아이들이 너무한 것 같기도 하고.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싶으실 텐데요. 사실 이 말씀은 북이스라엘의 굉장히 심각한 영적인 상태, 분별력이 전혀 없는 타락한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로 세 가지를 들 수 있는데요. 첫번째 이유는 벧엘이라는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23절에서 벧엘이라는 지명을 보자마자, 우리는 열왕기상 12장 28절과 29절 말씀을 떠올려야 합니다.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이 금송아지 우상을 두 개 만들어서 벧엘과 단에 세웁니다. 열왕기 저자는 이 사건을 굉장히 심각한 사건으로 기록합니다. 열왕기하 10장 28절과 29절에 예후 왕에 대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따라서 우리는 본문 23절에 벧엘이라는 지명을 보자마자, 벧엘에 세워진 금송아지를 떠올리며, 벧엘이라는 지역이 북이스라엘의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이어서 두 번째 이유는 작은 아이들이 조롱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우리 화평교회 성도님들 가운데 NIV 성경 보시는 분들이 많은 줄 압니다만, NIV 성경에 보면 “작은 아이들”이 아닌 젊은이들로 나옵니다. 이는 NIV 성경을 번역한 분들의 오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히브리어로 이 두 단어는 나이가 적은 어린 아이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NIV 번역가들이 왜 이런 오류를 범했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암곰에 의해 찢겨 죽임당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녀를 양육해 보신 분들은 다 아실 겁니다. 자녀가 어리다고 해서 아이의 잘못된 행동들을 무분별하게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아실 겁니다. 또한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하지만, 최소한 분위기를 읽을 줄은 압니다. 제 아들이 만으로 세 살이 넘었는데요. 요즘 왜요 병에 걸려서 뭐만 얘기하면 말끝마다 왜요를 붙이고 있습니다만, 최소한 본인이 무언가를 잘못해서 아빠가 화가 났을 때, 아빠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아차립니다. 화가 났다고 말 한마디 안 해도 압니다. 이처럼 아이들은 분위기를 읽을 줄 압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길게 하는가 하면, 23절에 엘리사 선지자를 조롱한 아이들이 아무리 어린 아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이 당시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도 안 좋았기 때문에, 선지자를 함부로 대해도 되고, 본인들마음대로 조롱해도 주위에서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좋을 대로 비난하고 조롱했던 것입니다. 바알 숭배를 비롯한 각종 우상숭배에 빠져있던 벧엘 지역의 어린 아이들이 이 당시의 시대상에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함부로 폄하하고 비난하고 조롱하는 모습. 이 모습만 봐도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얼마나 부패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이유는 “대머리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라는 비난의 소리에 있습니다. 여기서 대머리라는 말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엘리사 선지자가 대머리였느냐. 아니면 수도승처럼 머리를 삭발하고 다녔느냐. 하는 여러 가지 썰들에 기웃거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에 대한 합당한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또한 여기서 “올라가라”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데요. 엘리야 선지자처럼 하늘로 올라가버리라는 비아냥거림 혹은 어딘가로 가버려라. 꺼져버려라. 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이 되었든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보내신 선지자를 이렇게 대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태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처벌로써 암곰 두 마리를 사용하셔서 마흔 두명이나 되는 아이를 죽게 하십니다. 애가 좀 그럴 수 있지. 이런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성령을 모독하고 훼방하는 죄에 대해서는 아이나 어른할 것 없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공의로운 보응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두 가지의 적용점을 나누면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죽음도 생명으로 바꾸시고, 열매 없는 척박한 땅도 풍성하게 열매 맺는 땅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 선지자 시대와 엘리사 선지자 시대의 북이스라엘은 영적으로 가장 타락했던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여리고 땅에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열광하며 섬기는 풍요의 신 바알이 참된 신이 아닌, 하나님이야말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씀을 통해 알려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자신있게 주위에 선포해야겠습니다. 삶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 것 때문에 고민하는 불신자들이 주위에 계십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의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여리고 샘물의 근원을 고쳐주신 생명의 하나님을 전파해 주십시오.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열매 없는 땅을 열매 가득한 땅으로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담대하게 전파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둘째로, 영적으로 타락하고 악한 시대는 주님의 몸된 교회와 주님께서 보내신 종들을 맹목적으로 비난하고 조롱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분위기에 무분별하게 편승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북이스라엘 우상숭배의 중심지인 벧엘 지역의 어린 아이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인 엘리사 선지자를 함부로 조롱했습니다. 이는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개인적인 모욕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딜러드’라는 구약학자는 개인에게 해당되는 일은 국가에도 해당된다고 주장합니다. 역대하 36장 16절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영적인 현실은 어떻습니까? 역대하 36장 말씀과 유사합니다. 물론 오늘날 대한민국의 목사들이 엘리사 선지자와 같냐고 반문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렇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이렇게 권면해드리겠습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목사의 자격을 얻고, 교회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대로, 그리스도의 양무리된 교인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훈하고 설교하며,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궁핍한 자와 병자와 환난당한 자를 위로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경 말씀대로 교회 치리에 수종드는 자에 대해서는 목회자를 세우시고 책임을 물으시는 하나님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기를 권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교회에 대해서는 어떻습니까? 교회가 세속적이다. 부패했고 타락했다. 별의별 소리가 난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 공적인 예배 시간에 선포되는 설교 말씀이 신실한 선포되고, 성례가 바른 시행되고, 성경적인 권징이 시행된다면, 교회의 가치를 함부로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영적인 시대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성령을 모욕하고 훼방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를 손가락질 하는 시대.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회자들을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고 조롱하는 시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기준과 어떤 시각으로 판단해야겠습니까.
이러한 악한 시대의 영향권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참 쉽지 않겠습니다만, 부디 분별력을 가지고 암곰에게 찢긴 아이들처럼, 언젠가 하나님께 우리의 말과 행위에 따라 책망받는 것으로 절망 가운데 빠질 것이 아니라,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위하시는 복된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북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엘리야 선지자와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시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보여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주님, 그럼에도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며, 주님의 종들을 함부로 조롱하는 이 악한 시대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손에 모든 것을 맡겨드립니다. 세월을 아끼며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는 화평의 지체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시고 세우시는 목회자들을 존귀하게 여길 줄 아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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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개 아래 pp.859-860
** 엘리사의 두 번째 기적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물고 있었는데, 성읍 사람들이 여리고의 물이 나빠서 열매가 제대로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고 이야기 함. 이에 엘리사가 새 그릇에 소금을 가져오라고 해서 물 근원으로 나아가 소금을 던지며 선언함.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2:21)
여리고는 죽음과 불임의 땅이었음. 학자들은 소금이 여호와의 언약적인 신실성을 보여준다고도 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가리키는 상징이라고도 함. 어찌 되었든 간에 중요한 것은 소금이 물을 고친 것이 아님. 여호와께서 물을 고치신 것. 여호와께서 죽음과 불임을 고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바알 숭배에 깊이 빠진 아합 왕조에게 희망의 메시지로 다가올 것.
** 엘리사의 세 번째 기적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벧엘로 올라가고 있을 때, 성읍에서 작은 아이들이 나와 조롱했음. “대머리(케레아흐)여 올라가라 대머리여 올라가라”(2:23)
대머리가 엘리사의 외모상 특징인지, 아니면 선지자를 조롱하는 별명인지는 분명하지 않음. 올라가라는 것도 엘리야처럼 너도 하늘로 올라가라. 꺼져버려라.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음. 어찌되었든지간에 전체적인 의미는 엘리사에 대한 조롱이었던 것이 분명함. 이에 엘리사가 뒤를 돌아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자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42명을 찢어 죽였음.
결국 엘리사의 두 번째 기적과 세 번째 기적은 모두 여리고에서 일어난 기적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놓인 두 가지 삶의 가능성을 보여줌. 죽음과 불임으로부터 치료받고 복 받으며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람을 조롱하고 저주받고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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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주해 - 김진수 pp.283
엘리야에게 있던 성령의 능력이 엘리사에게 임했다는 것은 2:19-25에서 소개되는 두 일화에서 다시 확인됨. 첫번째 일화는(19-22절) 엘리사가 여리고 성의 물 근원을 치유하는 사건. 주석가들은 대체로 이 물 근원을 오늘 날 엘리사의 샘으로 알려진 eines-sultan 으로 간주함. 엘리사는 소금을 물 근원에 던져 넣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함. 그러나 물의 정화를 가져온 것은 사실상 소금이 아닌 엘리사가 대언한 여호와의 말씀임. 그러므로 엘리사의 행위는 마술로 오해해선 안 될 것.
엘리사는 소금을 던져 넣음으로써 어떤 제의적 행위를 한 것이 아니라 물을 정화시키는 말씀의 능력을 보이는 선지자적인 상징행위를 한 것.
두 번째 일화는(23-25절) 엘리사가 벧엘로 올라가던 도중 자신을 조롱하던 아이들을 저주한 사건. 아이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느아림은 “젊은이”로 사용됨. 24절에서 이들을 지칭하는 말 “열라딤” 또한 젊은이들을 의미하기도 함. 그러므로 엘리사를 조롱한 이들이 젊은이었을 가능성이 없지 않음. 그러나 이들을 수식하는 형용사 “작은”은 그들이 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한 아이들이었음을 시사함.
아이들이 엘리사를 조롱한 것은 단순히 천진난만한 장난기에서 비롯된 놀림이 아니었음. 그들의 조롱은 선지자를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함. 벧엘은 여로보암이 만든 송아지 우상이 있는 곳이었음. 이렇게 벧엘이 우상숭배의 중심지였으므로 그곳 사람들은 바알숭배를 비롯하여 각종 우상숭배에 빠져있었을 것. 따라서 그들이 여호와 신앙을 설파하는 선지자들에 대해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음.
아이들이 엘리사를 향해 “대머리여 올라가라”라고 한 것을 두고 “대머리”가 선지자 집단의 두드러진 표식들 가운데 하나라고 간주하는 주석가들이 있음. 그러나 이에 대한 뚜렷한 증거는 없음. “대머리”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선지자를 향해 그의 신분에 합당한 칭호를 사용하지 않고 신체적인 특이사항을 꼬집어 조롱조로 말한 것은 무례하기 이를 데 없는 모욕적인 행위임. 그들의 이런 태도는 엘리사 개인뿐 아니라 그가 섬기는 하나님을 모욕하는 일.
엘리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저주했음. 그러자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아이들 중 42명을 찢어버림.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저주를 현실화시키신 것. 이 불행한 사건은 하나님과 그의 선지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은 저주를 불러올 수밖에 없는 신성모독적인 행위임을 가르쳐 줌. 또한 그것은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이은 참된 선지자임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가 앞으로 하나님께 적대적인 세력들을 향해 심판을 선포하게 될 일을 예고함. ‘딜러드’는 이 사건을 이렇게 설명함. “개인에게 해당되는 일은 국가에도 해당된다.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모욕하였기에(대하 36:16),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멸망시킴으로써 자기 백성을 심판하셨음. 큰 곰이 느부갓네살의 모양으로 바벨론에서 와 나라를 삼켰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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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BC pp.315
2:19-25
엘리사는 엘리야의 후계자로 사역을 시작함. 엘리사는 진정한 선지자임. 그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할 수도 있고 저주도 할 수 있음(신 28의 모세 참조). 첫번째 이야기는 여리고에 있는 나쁜 물과 그것이 토산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것. 우리는 왜 여리고가 그런 어려움을 겪게되었는지 알 수 없음. 하지만 여호수아의 저주의 그림자 아래에서 여리고가 재건되었음(수 6:26, 왕상 16:34).
두 번째 이야기는 엘리사를 조롱하는 벧엘 출신의 어린이들에 관한 것. 열왕기 저자에게 벧엘은 이스라엘 배교의 중심점이 되는 장소(왕상 12:25-13:34). 벧엘의 아이들이 선지자에게 무례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님. 그러나 선지자를 무례하게 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며 즉각적인 심판을 자초하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 엘리사는 그 어린이들을 저주하고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 그들 중 42명을 찢는 것을 보며 자신이 참 선지자라는 것을 드러냈음.
엘리사는 이 두 가지의 사건을 통해 선지자로서의 지위를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이제 엘리사는 엘리야가 바알과의 전쟁에서 멈추었던 것을 이어갈 준비가 되었음.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간 것은 그 전쟁을 계속하기 위함임.
** 나아르 카탄. 어린이들.
NIV는 젊은이로 번역함. 그러나 카탄은 작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음. 따라서 이 단어는 어린이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함. 아무래도 NIV 번역가들은 어린 사람들이 자신의 죄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으로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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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C pp.371
2:19-22
여리고는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아이가 없거나 아이를 잃은 부부처럼 땅이 생산력을 잃음. 엘리사는 소금이 관련된 의식을 행하면서 물을 정화시킴. 그러나 엘리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을 고친 것이라고 선언했다는 점에서 마법이 사용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음.
레 26:21-22
21 너희가 나를 거슬러 내게 청종하지 아니할진대 내가 너희의 죄대로 너희에게 일곱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22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의 자녀를 움키고 너희 가축을 멸하며 너희의 수효를 줄이리니 너희의 길들이 황폐하리라
대하 36: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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