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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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행 14:19-28 (봉독 행 14:19-22)
제목: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학자들에 따르면, 사도행전 14장 19절 말씀은 바로 앞 절인 18절 말씀 이후에 약간의 시간이 흐른 시점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루스드라에서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키고, 복음을 전파한 뒤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시점에 대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문맥을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어제 살펴본 말씀인 사도행전 14장 8절에서 18절 말씀에 따르면, 루스드라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헤르메스와 제우스로 추앙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인 14장 19절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해서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추앙하려고 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해서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사실상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유대인들이 루스드라 사람들을 선동해서 사도 바울을 돌로 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5절에서 어떤 박해를 당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데요.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했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한 번 돌로 맞았다는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인 사도행전 11장 19절 말씀의 상황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6장 17절 말씀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 몸에 지닌 예수의 흔적이라는 것은 루스드라에서 죽을 정도로 돌에 맞아 생긴 끔찍한 흉터를 포함해서 언급한 것이 분명합니다. 상처의 부위와 정도에 따라 간단하게 약만 발라도 아무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꿰매야만 흉이 덜 지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1세기의 의료 기술은 오늘날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수준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몸 이곳 저곳에는 미관상 좋지 않은 흉터가 여러군데 남았을 것이 확실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직접 수여하신 어떤 영광스러운 상패나 면류관을 집에 전시해 놓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박해자들에게 죽을 정도로 돌에 맞은 흉하디 흉한 그 상처의 흔적을 예수의 흔적이라고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상황을 조금 더 살펴본 뒤에 말씀을 적용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절 중반부부터 보시면, 그들이 사도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쳤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의식을 잃을 정도로 심하게 돌에 맞아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길가에 버려졌다는 것이죠. 그런데 20절 말씀을 보시면, 바울이 갑자기 일어나서 그 성에 들어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돌에 맞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이죠. 애초에 돌에 맞지 않는 것이, 처음부터 박해의 상황을 면하는 것이 은혜라고 생각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성경적으로 볼 때 박해의 상황을 피하지 않고 죽을 정도로 돌에 맞고도 호흡이 붙어있는 것이 은혜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주님의 은혜에 어떻게 응답합니까? 20절 말씀 뒷부분을 보시면,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21절 복음을 그 성에서 전하여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경미한 교통사고가 나면 목이나 허리가 뻐근해서 며칠은 고생하지 않습니까? 직접적으로 부딪친 것이 아니라, 차 안에 있을 때 받은 충격으로도 그렇게 고생고생하는데, 사도 바울은 바로 전날 돌에 맞아 죽을뻔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쉬지 않고 복음 전파의 길을 나섭니다. 참 다행스럽게도 더베에서는 누구에게도 박해당하지 않고 무사히 복음을 전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더베 이후의 사도 바울의 행보입니다. 21절 중간 부분 보세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으로 돌아가서. 소아시아의 여러 지역 이름이 어색한 분들의 경우에는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 이런 지명에 대해서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요. 사도 바울이 돌아갔다는 표현에 집중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부분에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은 사도 바울의 1차 선교 여행 일정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 받은 바울은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는 그리스도인의 교과서와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전역에 걸쳐 복음을 전파하는 일정을 계획한다고 했을 때, 루스드라 이고니온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복음 전하는 일정을 계획할 때, 서울에서 대전으로, 대전에서 대구로,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렇게 계획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계획한 대로 대구까지 복음을 전파했는데, 갑자기 대전으로 돌아간다면 일정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뭔가 꼬이겠죠. 아니 부산까지 가려면 대구를 다시 거쳐서 지나가야 하는데, 일정을 뭐 이런 식으로 계획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진심 어린 찬사를 보내며 그의 대담한 행동과 사명감을 보고 본받아야만 합니다. 루스드라가 어떤 곳이었습니까? 걷지 못하는 사람을 치유해 주고, 복음을 전파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루스드라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사도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제우스니 헤르메스니 하면서 신처럼 떠받들려고 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짐승처럼 돌변해서 은혜를 원수로 갚았던 사람들이 바로 루스드라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일을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루스드라 지역 근처만 가도 무슨 발작 증세를 보인다거나 아니면 루스드라 출신 사람을 만나면 극심한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로 돌아갑니다. 루스드라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더 중요한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돌아간 것인데요. 사도행전 14장 22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본문에는 다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사도 바울이 영적으로 판단할 때, 루스드라와 이고니온과 안디옥에 있는 교회들과 성도들에게는 영적인 교훈과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바울은 세 가지의 핵심적인 권면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권면의 말씀은 오늘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갖춰야 하는 핵심적인 마음가짐을 담고 있습니다.
권면의 말씀 첫째는,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아시아 지역의 제자들은 사도 바울이 세상에서 당했던 돌 세례와 강제 추방 사례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만 하면 언젠가 자신들도 사도 바울이 당했던 일들을 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제자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마음을 굳게 한다는 것은, 확고한 결심과 결의를 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이 마음을 굳세게 하는 것은 박해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갖춰야만 하는 영적인 자세입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라는 권면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32절 말씀 들어보십시오.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이어서 사도행전 15장 40절과 41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41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견고하게 한다는 표현은 원어로 마음을 굳게 한다는 단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14장과 15장에서 세 번씩이나 반복되는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그만큼 성도에게 마음을 굳게 다지는 것, 확고한 결심과 결의를 다지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이어서 권면의 말씀 둘째는, 믿음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때 되면 교회 가고, 살면서 뭐 필요한 것 생기면 기도 좀 하고. 절기 예배 드릴 때 평소보다 좀 더 신경써서 예배드리면 되고.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신앙생활하는 것은 믿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에 머물러 있다는 것은, 계속해서 믿음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말씀이 왜 필요합니까? 믿음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 특별하게 노력하지 않으면, 믿음의 길에서 떠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권면의 말씀 셋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원어로 반드시 무엇무엇 해야 한다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과 박해를 겪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환난과 박해는 선택사항이 아닌 필수사항이라는 것이죠. 아마도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환난을 꼭 겪어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박해와 같은 상황은 사도들이나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박해에 대해서 사도들이나 지도자들, 목사들, 장로들만 겪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반드시 환난과 박해와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아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계속해서 지역을 확장시켜 나아가야 하는 선교 일정 가운데, 돌에 맞아 죽을 뻔한 위기를 겪습니다. 그리고 그 위기를 겪었던 루스드라에 다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의 권면의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가운데 두 가지의 적용점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첫째로,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삶을 움직이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나 감정에 달려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선교의 현장에서 이성적으로만 판단했다면, 루스드라에 다시 방문했을까요?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이미 복음을 전했고 박해를 당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할만큼 했다고 단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루스드라에 돌아가면 동선도 꼬이고, 이래저래 지혜롭지 않은 처사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세 도시에 거주하는 교회들과 제자들을 위해서 권면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똑같은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돌아갔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성적인 사고나 감정만을 앞세워서 복음이 확장되는 하나님의 일들과,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일들을 가로막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박해와 환난의 시대 가운데 성경적인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올바르게 영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제자들에게 세 가지의 권면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믿음을 굳건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 계속해서 믿음에 머물러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환난들을 당해야만 한다는 것. 이 세 가지 권면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에 따라 우리는 이 시대를 분별하여 세상의 풍조와 여러 가지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기계적으로 관성적으로, 자기만의 어떤 루틴에 따라 규격화된 신앙생활하는 것에 안주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굳세게 하기 위함과 믿음에 머물러 있기 위함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환난을 감당하고자 하는 분명한 목적이 담겨있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온전히 우리 주님과 동행하며 신앙생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역사적으로 수도 없이 많은 외세의 침탈과 전쟁의 폐허 가운데에서도 이 나라와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어 물질의 축복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한량없는 은혜에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영적인 나태함과 안일함이 우리 일상생활에 잔존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의 몸된 교회에 영적인 유익을 끼칠 수 있을까 고민하기보다, 그저 하나님의 손만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패역함을 고백하오니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바라옵기는,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대로 마음을 굳게 하여 믿음에 머물러 있으며, 믿음으로 많은 환난을 온전히 감당해 내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하심으로 새벽기도회를 마친 뒤에 교회를 위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개인의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시다가 귀가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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