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짖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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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막 16:1-14
제목: 예수님의 부활과 부활의 증인들
예수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에게 굉장히 친숙한 내용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말씀은 성경이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의 말씀이자 우리가 믿는 바의 핵심입니다. 만약 사람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그가 행하는 어떤 선한 행위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으며, 그 어떠한 공로를 쌓는다고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결단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핵심이자 믿음의 정수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이 쉬운 일일까요? 예수님을 육안으로 본 적도 없고, 예수님의 육성을 들어본 적도 없는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요? 마가복음 16장 말씀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못한 여인들과 제자들에 관한 말씀이 등장합니다. 해당 내용을 간략하게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첫 번째 경우는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입니다. 이 여성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예수님의 죽음을 직접 목격한 여성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40절 말씀 보세요. (in)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out)
이 여성들은 마가복음 16장 1절에서 안식일이 지난 뒤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 무덤을 찾아가고자 한 것이죠. 우리는 마가복음 16장 1절에서부터 이 여성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이 여성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향품을 준비하지 않았을 것이며, 향품을 무덤에 가져갈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 향품은 고인에 대한 존경과 사랑과 헌신의 표현으로 발랐던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죽은 사람이 부활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믿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일반적인 이스라엘 여성이 아닌 예수님을 특별히 섬겼던 여인들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장 41절 상반절 말씀 보세요. (in)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이 여인들이 어떤 여인들입니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여인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9장에 따르면 갈릴리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 예고 말씀이 주어진 장소였습니다. 마가복음 9장 30절 31절 3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in) “30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out)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갈릴리에서 예수님을 섬겼기 때문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은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 여성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으며, 빈 무덤에 있던 천사를 만났음에도 믿지 못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천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먼저 가셨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으나 이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무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전하지 못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현상을 목격했으나,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한 것이죠.
이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두 번째 경우는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막달라인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마리아의 증언에 믿음으로 반응하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16장 11절 말씀 보세요. (in)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out)
이어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세 번째 경우는 남은 제자들입니다. 누가복음 24장 말씀을 보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등장하는데요. 두 제자는 처음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지만, 남은 제자들은 부활에 관한 증언을 믿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마가복음 16장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활하신 영광의 주님과 너무나도 거리가 먼 제자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와 부활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믿지 못한 제자들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이는 제자들이 목이 곧고 교만해서 믿지 못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성으로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이 어떤 이유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는지는 예수님께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시작. (in)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out)
인간의 이성으로 죽은 사람의 부활을 믿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믿음이 없는 것이며,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불신앙은 그 어떠한 핑계로도 합리화시킬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에 따르면, 믿음이라는 것은 ‘상대방이 믿을 수 있도록 충분히 설득했느냐, 상대방이 믿을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증명했느냐’ 하는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전도 방식에 대해서 훈련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폭발을 통해서 복음을 제시하는 훈련을 받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일목요연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죠. 그러나 예수님 시대에,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 어떤 방식으로 부활 소식을 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소식을 전하는 것은 굉장히 단순 명료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전하면 끝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말씀을 세 번씩이나 들었던 제자들로서는 믿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저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죠. 하지만 제자들은 무려 3년 동안 예수님께 지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도 못했으니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겠죠. 또한 제자들은 타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도 못했습니다. 이러한 불신앙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꾸짖음, 예수님의 책망에 대해서 묵상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랑이 많은 분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를 편의에 따라 편향적으로 그려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는 오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을 취하신다면, 그 행동은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시기적절하게 취하신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책망을 애써 외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자들을 책망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몇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믿음은 특정 조건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했습니다. 제자들은 누구보다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들었습니다. 이뿐 아니라 제자들은 손 마른 사람, 귀신 들린 사람, 야이로의 딸, 혈루증에 걸린 여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치유 받은 순간을 목격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보고 들은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고, 병자들을 고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믿음이 어떤 조건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과 얼마나 가깝게 지냈느냐, 예수님께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받았느냐.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부분은 믿음의 본질과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확장해서 오늘날로 적용하자면, 교회 얼마나 오래 다녔느냐. 성경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 목사님과 얼마나 깊은 친분 관계를 맺고 지내느냐. 이런 부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는 필수조건이 아니라는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에 있어서 만큼은 다른 조건들 신경 쓸 것 없이 본질적인 진리만을 붙잡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택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대속적인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첫열매로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어서 둘째로, 예수님은 불신앙에 대해 단호하게 책망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랑이 많으신 분, 자비로우신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는,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성품 전체를 담아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엄격한 모습이나 단호한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의 상을 엎어버리셨고 바리새인들을 향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예수님의 행위는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던 사람들을 향한 책망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제자들을 향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그들의 완악함을 책망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의 배경이 무엇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첫 만남을 담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만남은 굉장히 감격스럽고 가슴이 벅차오르는 만남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열한 제자가 밥 먹을 때 찾아오셔서 다짜고짜 이들의 믿음 없음과 마음의 완악함을 책망하십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책망에 대해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없는 주님의 자녀들을 엄하게 꾸짖으실 수 있으며, 밥을 먹는 상황이든,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든 간에 상관없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믿음을 위해, 부활 신앙을 갖게 만들기 위해, 택자들의 완악함을 책망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내용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다윗 언약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말씀으로 책망하셨다면,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거룩한 삶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십니까?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신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에 대한 조치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 징계를 내리시지만,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우리 화평의 성도님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없이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입니다. 부지중에 죄를 지을 수 있고, 죄악된 마음으로 무분별하게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인생의 때에 따라 믿음이 상실된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우리의 완악함과 믿음 없음을 책망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자비로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시고, 채찍과 책망으로 바로잡아주실 수 있음을 기억하시고, 가능하면, 채찍과 책망을 경험하지 않고도 온전한 믿음 생활을 영위하시는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바른 믿음을 가지고 우리 주님과 동행하시는 화평의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 주님, 종의 형체를 입으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 부활의 첫열매로 다시 살아나신 주님, 부활의 주님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에게 믿음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송을 올려드립니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부활의 주님을 믿지 못하는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제자로서, 복음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바라옵기는, 우리의 완악함으로 인해 주님께 책망받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매일 매일 영적으로 깨어있게 하시고, 말씀 가운데 악한 세대를 분별하며 오직 주님 한분만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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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
막달라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곁에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으로 가져간 요셉을 따라갔기 때문에, 예수님의 무덤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음(15:47). 살로메 역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있었음. 살로메는 아마도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였을 것. 여인들은 집으로 돌아가 율법이 요구한 대로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해질 때까지 안식일을 지켰음. 그들은 주일 이른 아침 무덤으로 돌아가기 전에 향품과 향료를 준비해 두었음. 안식일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기 때문. 시신에 향료를 바르는 것은 사랑과 헌신과 존경의 표시였음. 무덤에 향품을 가지고 가는 것은 오늘날 꽃을 들고 무덤에 가는 것과 같음. 이스라엘에서는 시신에 방부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료를 사용한 것은 일반적인 관습에 따른 것이었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으나 믿지 못했고, 그들의 완고함은 조금도 누그러들지 않았음. 그들은 심지어 눈으로 직접 본 것 마저 믿지 않았음.
(막 16:13-14; 눅 24:22-27, 7-39)
사람들이 진리를 거부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님. 제자들마저 듣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음. 오늘날 청중들이 귀머거리가 될 때 우리가 보여야 할 합당한 반응은 사랑과 돌봄과 지속적인 인내임. 화내거나 발끈하는 것은 잘못.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마저 부활하신 주님의 실재를 받아들이기에 힘겨운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함.
완악한 사람들을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함. 연민의 마음으로 계속해서 복음을 증거해야 함. 그리고 마리아처럼 주님의 임재 가운데로 돌아가야 함.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함.
막 16:12-3
예수님은 두 제자와 말씀을 나누시고 이미 일어난 모든 것이 기록된 성경을 알지 못함을 책망하시고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음. 그러자 그들의 눈이 밝아졌고(눅 24:31), 제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깨닫자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자신들도 예수님을 보았다고 전했음. 여전히 다른 제자들은 믿기를 거부했음. 예수님의 부활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건이었음.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분으로 읽거나 그분의 가르침을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함.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것과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신 것을 굳게 믿으며, 그분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야만 한다. 이것이 예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임.
막 16:14
예수님께서는 이미 열 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지만, 나머지 모든 사도 그룹에게도 나타나셔야만 했음.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현현에 나타난 공통 주제는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 믿기를 주저했다는 것. 예수님은 신뢰의 부족이 신중함이 아니라 의지적인 불신에서 비롯되었을 때 제자들을 책망하심. 예수님의 이러한 책망은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믿고 그분에 대해 가장 잘 알고 그분과 가까웠으면서도 연약한 믿음을 보인 제자들처럼 되지 말라는 경고의 역할을 함.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 없음과 그들의 완악한 마음을 꾸짖으셨음.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음.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으며, 예수님께서 죽으실 것이라 말씀하실 때마다 살아나실 것을 같이 말씀하셨음.
제자들이 믿기를 거부한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음. 그들은 부활의 소식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갈릴리로 갔어야만 했음(14:28).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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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16:9-11
네 복음서는 부활의 첫 목격자로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을 기록한다. 부활을 알리고 증언한 첫 번째 사람은 여자들인데, 부활의 증언에서 구원하는 믿음이 비롯됨(고전 15:14). 이 마리아에게서 일곱 귀신이 쫓겨났다는 9절의 언급은 눅 8:2에서 온 것이며, 10절에서 마리아가 통곡하는 제자들에게 전한다고 한 것은 요 20:14,18을 반영함. 또한 제자들이 믿지 않는 것은 눅 24:11을 반영함.
제자들은 앞으로 자신들이 복음을 전할 때 불신의 반응과 마주할 것임. 이때 마리아의 똑같은 메시지를 자신들도 믿지 않은 것이 분명히 기억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더 이해심 있고 더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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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들이 실제로 기초하고 있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바랐던 것처럼 끝없는 승리의 권세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적인 섬김이라는 겸손한 길이었음. 제자도의 중요성은 예수님을 따르려는 자들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예수님의 명령에 의해 강조됨(8:34-38). 제자도는 밝고 빛나는 길이 아니라 섬김 혹은 거부, 박해와 비천한 길을 의미함. 그 길은 날마다 반드시 행복한 상황에서가 아니라 신실한 섬김과 날마다 예수님과 함께 다시 사는 것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것.
그러나 마지막 한 가지 요점이 있음.
천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셨음을 알려 주었음.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확실한 증거가 아닌 믿음에서 비롯되는 행동이었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신다고 믿고 갈릴리로 가야 함.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곳에 계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야 함.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보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직 보지 못했음. 나사로의 부활은 보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예수님께서 살리신 기적으로 이해했을 것. 그렇다면 예수님의 죽음은 누가 되돌릴 수 있겠는가?
제자들은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의 소식을 믿지 못했음.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함. 믿음이라는 것은, 본인의 눈으로 보고 믿는 것에 달려있는 것이 아님. 부활이 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계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갈릴리를 향해 걸어 가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것. 이것이 믿음임.
마가복음은 “믿음”과 “믿지 않음”이 반복해서 나옴.
제자들은 마리아의 증언을 믿지 않았음(11절). 예수님은 11명의 제자가 믿음이 없는 것에 대해, 마음이 완악한 것에 대해 호되게 책망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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