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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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 11:17-27
제목: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역삼동에 있는 화평교회를 섬기고 있는 장태호 목사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처음으로 뵙자마자 어색한 분위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만, 말씀을 전하는 저도 그렇고, 또 처음 본 목사의 이야기를 들으시는 여러분도 쉽지 않으시겠습니다만, 부디 주님의 은혜 가운데 유익한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과거에 동대문이나 명동 같은 곳에 가보면, 예수천당 불신지옥. 이런 문구를 써놓고 길거리에서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전도하는 분들을 한번쯤 본적이 있으실 겁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말이지요.
이 말에 대해 동의하십니까? 사실 천국이 어떤 곳이고 또 지옥이 어떤 곳인지. 직접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말하기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이 세상에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천국에 간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분들은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죽음을 맞이하는 것보는 이생을 살아가는 것이 낫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한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입니다. 가난하게 살든, 부유하게 살든,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든지 언젠가는 죽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불로초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래서 천국이나 지옥에 대한 지식이 없는 분들은 죽음을 맞이할 때, 극도의 공포심을 느낍니다. 본인이 어디로 가게 될지 모르니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하지만 예수라는 사람을 구원자이자 하나님으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지금 당장 어떤 일로, 설사 불의한 사고로 목숨을 잃게 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 성경 말씀을 통해 간단하게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방금 전에 함께 읽은 요한복음 11장 17절에서 27절 말씀에는, 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우선 먼저 알려드릴 것은, “마르다”라는 인물과 “마리아”라는 인물과 “나사로”라는 인물이 한 가족인데요. 마르다와 마리아는 여성이고 나사로는 남성입니다. 나사로는 병에 걸려서 이미 무덤에 매장되어 있는 상태고요.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가 병에 걸려 있을 때,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서 잠깐 설명드리자면, 예수라는 이름은 원래 그리스어로 예수스인데요. 이를 우리말로 번역할 때 예수라고 번역한 것이고, 예수라는 남자를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름을 그대로 부르지 않고 님자를 붙여서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복음 11장 17절로 돌아와서요. 예수님은 나사로가 질병으로 사망한지 나흘이 되고 나서야 마르다와 마리아를 찾아 오십니다. 21절 말씀을 다시 보시면, 마르다가 예수님을 만나서 이런 말을 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절,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 나사로. 세 남매와 친밀한 관계를 맺은 상태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에 걸려있을 때 찾아오셔서 병을 고쳐주지 않으시고, 나사로가 사망한 이후에 나사로의 장례식장에 찾아오신 겁니다. 그런데 이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고, 아쉬움을 토로합니다. 예수님께서 계셨으면 동생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아쉬워하는 것이죠.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23절 말씀 보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너의 남동생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마르다가 말하죠. 24절,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 당시 구약성경을 믿는 유대인들은 마지막 날에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구약성경에 있는 말씀 그대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한 것이죠. 통상적으로 장례식장에서 위로하는 말처럼 듣고 이해한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의도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장례식장에 방문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바로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고 나서, 자 봐봐. 내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야. 내가 바로 너희가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리던 구원자야. 이제 믿어지니? 이런 식으로 먼저 증명한 다음에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먼저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의 배경을 다시 한번 설명해 드립니다. 나사로라는 남자는 병에 걸려서 사망했습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것 같으니 와서 고쳐주세요. 이렇게 기별까지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지 않으셨죠. 그렇게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장례식이 진행된지 4일째 되는 날 찾아오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의 남동생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아니 사망한 지 4일째 정도 되면, 시체가 부패해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죠. 25절과 26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존재 자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떻게 된다고 합니까? 죽어도 살 것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 핵심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 그 믿음이 우리 마음 안에 있느냐 없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나중에 죽고나서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믿는 것은 믿음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에 믿어야 믿음으로 여겨지는 것입니다. 나중에 믿어질만할 때 믿는 것은 믿음으로 취급받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갖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저는 목사이지만, 여러분들 앞에서 그 어떤 신기한 능력도 보여드릴 것이 없습니다. 마술같은 눈속임이 아닌, 어떤 신비한 능력 같은 것을 보여드린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성경 말씀에 따르면, 기적을 보고 믿는 것은 참된 믿음, 진실한 믿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지기 전에, 그 나라 국민들은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국민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모세라는 인물을 보내셔서 이집트에서 탈출하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정착할 때까지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안내해주시고, 메추라기로 배를 채워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국민들은,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들을 매일 매일 체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만질 수도 없으니 본인들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것이죠.
오늘날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고 하더라도 믿음이 생긴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며 사람의 편에서는 그 믿음을 갖고자 하는 간절함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주면 받고 안 주면 말고. 이런 식의 나태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사실 믿음이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쉬워보입니다. 말로만 믿는다고 하면 믿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구원 받는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다시 요한복음 17장으로 돌아와서, 27절 말씀 보세요.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합니까?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였습니다. 쉽게 말해서 마르다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 이런 말할 필요도 없이, 네 예수님 믿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하면 끝날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 순간 예수님께서 부활이요 생명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받는 믿음을 한번에 갖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말로만 주여주여 한다고 모두가 천국에 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 예수님에 대해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이런 것부터 차근차근 시작하면서 예수님을 알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2024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2024년 전에 오신 예수님의 존재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고, 지금은 성부 하나님과 함께 온 우주만물을 통치하고 계십니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하나님의 존재를 밝히 깨닫도록 누군가 우리에게 증명해 주는 것도 없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통해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하고 물어보신 예수님, 주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2천년전에 오신 예수님의 존재를 믿을 수 있도록 우리의 심령에 깨달음을 주시고, 부활 생명을 누리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바라옵기는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분들의 마음에 주님께서 믿음을 더해주시고, 모든 순간마다 주님과 동행함으로 형통의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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