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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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7:24-30(신약 65쪽)
설교제목: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간략하게 소개드리면 이러합니다.
예수님은 본래 사역하시던 유대지역이 아닌 이방지역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조용히 머물러 계셨는데, 한 여인이 찾아옵니다. 그는 수로보니게 지역 출신이었고 귀신들린 딸을 위해 예수님께 찾아왔습니다. 아마도 그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이 귀신들린 사람들을 고치셨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에게 줄 떡을 개들에게 던지는 것이 좋지 않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개들도 자녀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받아 먹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그의 딸을 고쳐주십니다.
저는 오늘 성경의 이야기를 읽고서 당황하고 고민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거칠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여인 또는 그의 딸을 ‘개’로 비유했습니다. 우리말에도 개에 빗대는 표현은 부정적이다 못해 욕설에 가까운 말입니다. 성경에서도 개에 빗대어 나오는 구절은 대부분 부정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계시던 당시에도 개는 부정적인 동물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거친 말임에 틀림없습니다. 대체 예수님은 왜 이렇게 거친 말씀을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하셨을까요? 적어도 우리가 믿고 있는 예수님은 인격적인 분이시고 좋으신 분인데 오늘 성경 이야기에 등장하는 예수님은 모습은 왜 그와는 다른 것일까요? 저는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변호하기 위해서 계속 본문을 읽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말씀을 내가 오해한 것인지도 모른다고요.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라고 비유한 것이 아니라 다른 뜻을 가지고 말씀하신 것이라고요. 실제로 이렇게 해설하시는 목사님의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에 관해 자료를 찾고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이러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로 비유한 것이 맞다고 말입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유대인을 자녀로 이방인을 개로 비유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문법적으로도 그렇고 문맥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과 딸을 개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당황스러웠지만 계속해서 예수님을 변호하기 위해 자료를 살피며 공부해 나갔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거친 말을 하신 까닭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은 그 말씀을 통해 그분의 사역에 우선순위가 있음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게 해야 한다(27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유대지역에서 복음을 먼저 전하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유대지역에 있는 환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먼저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녀들만 배불리 먹게하시는 사역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일전에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이방지역에 있는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시기도 했습니다. 또 결과적으로 오늘 성경 이야기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도 고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음 번에 나누게 될 이야기인데, ‘7병2어라고 해서 이방인에게도 떡과 물고기를 배불리 먹이신 기적’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역하셨지만 유대인들만을 위해 사역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거친 말을 하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사역에는 우선순위가 있었고 예수님의 말씀 속에는 그러한 의미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사역에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왜 그렇게 거친 말로 이야기하신 것인가에 관해 좀 답답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에 관한 생각을 계속하다보니깐, 또 다르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에 우선순위가 있는 것과도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이 유대인을 위해 먼저 사역하셨을까요? 다시 말해 세상에 많은 족속과 민족과 나라가 있었는데 왜 하필 유대인을 택하셨을까요? 여러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사실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 또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떻게 재단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우리는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이 사역이 비록 우선순위가 있어서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이뤄졌지만, 이방인이 제외된 것이 아님을 보게 됩니다. 사실 우리도 유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점은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만을 위해 일하시는 분이 아니라, 오늘 우리를 위해서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과 문제를 분명히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임을 보아야 합니다.
저는 이로부터 우리의 신앙생활에 관해 생각해 봅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뜻은 나의 뜻과는 달라서, 내가 기도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때에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오늘 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는 그분의 뜻에 따른 우선순위기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로써는 그 우선순위를 헤아릴 수 없고 왜 내 기도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한 영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더 나아가서 오늘 우리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해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은 마치 수로보니게 여인이 개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것에 상처받거나 억울해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을 붙들었던 모습과 같습니다. 만약에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왜 이런 모욕을 하시느냐고 항의하고 분노에 못이겨서 그 자리를 떠나 버렸다면 어땠을까요?’ 어쩌면 그의 딸은 고침을 받지 못하였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의 말 곧 스스로를 개로 받아들이며 부스러기만한 은혜라도 베풀어 달라는 반응에 그의 요구를 들어주시니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수로보니게 여인의 속마음이 어떠했는지 정확히 몰라도 분명하게 알수 있는 것은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읽은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동일한 이야기가 기록된 마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을 말씀하십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저는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이와 같은 모습으로 신앙생활해야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하나님에 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하는 것 말입니다.
때로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기대는 우리의 바람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하나님은 내게는 관심이 없으신가?’라고 말하며 하나님에 관한 믿음을 의심하거나 저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되고 우리가 감히 하나님을 헤아릴 수 있다는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한 분이시고 우리를 도우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고 기다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과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야기는 그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바라건데,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쉽게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굳게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때에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그 믿음으로 살아가시는 우리 성도분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