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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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71:1-6(구약 853쪽)
설교제목: 찬송에 관하여
1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2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3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4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5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6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6절에서 시인은 ‘항상 주를 찬송하리라’고 다짐하며 선언합니다. 찬양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인데요. 시편 71편을 읽어보면 시인이 처한 상황은 결코 기뻐하거나 감사할 상황은 아닌 듯합니다. 1절과 2절을 통해 시인이 어려움에 처하여 하나님께 피하였고 그 어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놀랍게도 괴롭고 어쩌면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다짐하고 결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이로부터 생각해 봅니다. 과연 찬송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또 왜 찬송을 해야하는 것일까? 이렇게 오늘은 찬송에 관해 짧게 나누고자 합니다.
< 1.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
제가 ‘찬송’이라는 한자어를 찾아보니까요.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를 찬(讚)’과 ‘칭송할 송(頌)’이 합쳐지 말인데요. 그래서 찬송이라는 것은 문자적으로는 ‘기리고 칭송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찬송이라는 말을 쓸 때는 대부분의 주어를 ‘하나님’으로 사용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안에서 우리가 찬송할 대상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찬송은 하나님을 기리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이렇게 복잡하게 하느냐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는데요.
저는 이 말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을 기리고 칭송할 만한 분으로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찬송은 하나님이 찬송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통해 찬양이라는 것이 그저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고백이 됨을 생각합니다. 또 이를 통해 반성해 봅니다. 우리가 여러 찬양의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높이고 칭송하고 있지만, 그것이 그저 노래로 머무는 경우가 많음을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찬양의 가사처럼 하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 있지 않거나 하나님을 인정하고 있지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제도 비슷한 얘기를 했지만 우리는 많은 경우에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행세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내것이라고 내 경험과 판단에 의지하며 선택하고 판한할 때가 참으로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기리고 칭송할 만한 분으로 또는 우리가 부르는 찬양 가사의 고백처럼 대하고 인정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대체로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앞세우며 살고 있을 겁니다.
< 2. 찬송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
오늘 시편 71편을 찬찬히 읽어보면 시인은 고난 가운데 도우시고 구원하실 하나님을 믿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의 바탕 속에서 시인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다짐과 고백을 할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곧 ‘항상 하나님을 찬송하겠다’는 것 말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찬송은 문자적으로 기쁨과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고 원하던 일이 이뤄졌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그것으로부터 찬송하는 일은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마치 행복하면 미소가 저절로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라면 어떨까요? 내게 어려움이나 고통이 찾아왔을 때, 그때도 기꺼이 하나님께 찬송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내게 닥친 곤란한 상황으로 모든 신경이 그것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고, 오히려 기쁨보다는 슬픔에 잠겨 있을 가능성이 높이 않겠습니까? 놀라운 것은 오늘 시인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시인으로 하여금 그와 같이 찬송하게 만들었을까요? 더 나아가서 시인은 ‘항상 찬송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시인은 사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것을 다짐하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에 관한 신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지금의 어려움과 고통도 언젠가 끝이나고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임을 믿고 기대하는 신뢰말입니다. 시인이 이와 같은 신뢰를 얻게 된 것은 하루 아침이 된 일은 아닐겁니다. 하나님의 대한 믿음이 종종 도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문제와 불행이 하나님에 관한 신뢰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런 상태를 ‘일희일비’하는 상태라 할 수 있는데요. 오늘은 기뻐하고 내일은 슬퍼하는 불안정한 상태 말이지요.
그런데 온전한 신뢰가 바탕이 되면 더 이상 일희일비하지 않습니다. 마치 그런 것에 비유해 볼 수 있는데요.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이른바 낯가림을 하곤 합니다. 이는 양육자인 부모와 떨어지는 것으로부터 생겨나는 불안 때문인데요. 그래서 이 낯가림이 심할 때는 부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순간에 바로 울음을 터트리기 일 수 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낯가림이 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당장 눈 앞에 부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부모가 다시 자기에게 돌아올 것을 믿고 신뢰할 수 있는 단계가 되면 더 이상 울지 않고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신뢰가 바탕이 되면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또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안정감을 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다르지 않는데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진다면, 하나님의 무응답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근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장에 어떤 어려움이나 문제 앞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을 믿고 기다림으로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에 관하여 기꺼이 찬송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찬송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항상,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3. 찬송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
구약성경 이사야 43장 21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이사야 43:21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송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창조된 이유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교리 가운데 인간의 첫번째 목적을 흔히 이렇게 설명하곤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 곧 찬송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찬송은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을 믿는 우리로써는 마땅히 해야할 일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이야기가 한편 이렇게 읽혀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최선은 찬송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최고의 것은 찬송이다라고 말입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어떤 것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요? 모든 것을 소유하신 분께 모든 것을 이룰 능력이 있는 분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어떤 것도 부족하게만 느껴집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마음에 관계된 것 곧 찬송일 겁니다.
이렇게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찬송행위는 우리가 가진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됩니다. 어쩌면 그래서 성경은 또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첫째 목적이 하나님께 찬양을 하는 것에 있다고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찬양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내어 놓는 것이 됩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한가위 연휴가 시작이 됩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바라건대 즐겁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서로 얼굴을 마주 하는 것이 우리 안에 참 기쁨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종종 너무 떨어져 있던 시간이 길어서인지 몰라도 오히려 명절에 가족들이 오랜만에 해후하는 과정에서 상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부디 그러지 않았으면 하지만 설령 그러한 일이 일어나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벌어진 이 갈등과 어려움은 언젠가 하나님을 통해 해소되어질 것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도 여전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데 오늘부터 이어질 추석 명절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시간으로 채워지길 바랍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에 마땅하신 분입니다. 그러함을 통해 은혜롭고 충만한 연휴를 보내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