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언약(창 1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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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언약(창 17:1-14)
<서론>
오늘은 우리 성도가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 안에 있다」는 표징인 「세례; 할례」의 의미를 살피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한 것」인지 상고하려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례와 연관이 있습니다. 저는 고1 때인 1986년 부활절 3월 30일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38년이 지났지만, 내가 「성도라는 새 이름」을 얻은 역사적인 그날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세례교인들이 세례의 진정한 의미기억하지 못하고 혹은 잊어버리고 교회 밖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는 일찍이 학창시절에 부모에게 떠밀려 세례를 받기도 했고, 남자들 같은 경우에는 군대 신병 훈련소에서는 초코파이 하나에 팔려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세례가 남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례를 통하여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각인 시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께 용서 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실존을 기억한다면, 언젠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그런 분들이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는 「죄 씻음 받았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내가 구원 받을 유일한 방법예수 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한 성도입니다.
영원한 언약」의 표징인 「세례; 할례」의 의미를 살피며,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사는 것인지를 상고하겠습니다.
<본론>
순종이 영원한 언약을 누리는 삶입니다.
오늘 분문은 할례의 진정한 의미를 설명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누리는 방법은 순종」이라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그 말씀이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b)입니다.
완전」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도데체가 부담스런 단어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완전할 수 있겠습니까?
같은 본문을 새번역성경은“나에게 순종하며, 흠 없이 살아라” 쉬운성경은“내 말에 복종하며 올바르게 살아라”로 번역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라」는 말씀의 뜻은, 「하나님 앞에서 산다(코람데오)는 것을 잊지 않고, 순종의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삶의 시선을 언제나 하나님께로 두고, 하나님께 순종하여 사는 것이 완전하게 사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라」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7절 이하로 가면, 하나님은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7b, 8)언약의 내용을 확인시키시며, 이 언약이 “영원한 언약”(7a)이라는 표징으로 “할례를 받으라”(10a)고는 명령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0b)덧붙여 설명하시고,
여기에,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14)고 엄히 경고하십니다. 할례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17장의 언약식은 지난 15장의 언약식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지난 15장의 언약식은 일방적인 것이라면, 이번 17장의 언약식은 언약적 행위 「순종」을 요구하는 쌍방향입니다.
두 언약식은 각각 다른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 언약두 가지 특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언약은 「은혜」로 주어지고, 그리고 다만 성도의 「믿음」으로 시작되지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성도에게 「순종」이라는 언약적 삶의 방식이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해서 언약적 행위를 싹뚝 잘라서 「육체적 형식적 할례」로만 이해하면 안 됩니다. 할례만 받으면 하나님 자녀이고, 세례만 받으면 구원받는 것아니기 때문입니다.
언약적 행위로 대변되는 할례; 세례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해야, 진정한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이 기록되는 시기의 아브람그러지 못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화(?)가 나셨다는 느낌을 줍니다.
창세기 기자가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1a)라고 기록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하늘의 뭇별같이 자손을 주시겠다(15:5)」약속하셨습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것을 의(義)로 여기셨습니다(15:6).
그런데 아브람의 믿음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었습니다. 16장에서 보면, 아브람과 사래는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하여, 임의로 몸종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얻습니다. 그 때 아브람의 나이가 86세였습니다(16:16).
16장과 17장의 시간차는 무려 13년입니다. 아브람이 부름받은 처음 10년 동안,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자주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12:7, 17; 13:14, 15:1, 4, 9, 13).
그러나 이스마엘 사건 이후 13년 동안 긴 침묵기를 지냅니다. 사람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으면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듯이, 일종의 숙려? 조정기간을 지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무려 13년을 침묵하시는 동안, 아브람은 이스마엘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손으로 간주하며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람은 참 둔합니다. 저는 제 아내가 잠시만이라도 말 안하고 있으면 불한한데 말입니다.
창17:17-18 말씀입니다. 합독합니다.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그래서 13년의 침묵을 깨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 첫마디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1a)입니다.
전능한(엘 샤다이) 하나님이 「너를 기르시는 분」이시며, 「너를 충족」시키시고, 「너의 힘과 능력」이신데,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후계에 대하여 엘리에셀을 잊었던 것처럼, 이스마엘도 잊어라!, 아직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엉뚱한 짓을 많이 했는데 「이제 그만! 여기까지!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의 믿음과 삶의 지평을 넓혀 주십니다. 4절과 5절입니다. 합독합니다.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람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본래 이름인 ‘「아브람; 위대한 아버지」의 삶을 넘어서는, 「아브라함; 여러 민족의 아버지」로 살라!’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이 언약은, 단순히 아브람 한 사람과 그 가족에게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이어지는 열방; 모든 민족을 대상으로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더 나아가, 이 언약은 믿음으로 이어지는 전 세대와 모든 시대에 미치는 하나님의 언약이 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밝히십니다.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이렇게 아브라함 개인을 넘어서, 열방과 민족, 그리고 모든 세대와 시대영원한 언약을 삼으시겠다하나님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성취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성도는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누리는 언약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을 누리는 사람의 표징(표시)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할례; 신약 이후에는 세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는 히브리어로 ‘מול’인데, ‘끊어버리다’ ‘베어버리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보면, 하나님이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것은, 몸의 할례 이전이름의 할례, 마음의 할례를 의도하신 것입니다.
포피를 베는 할례를 행하며, 「언약백성은 육적자녀가 아니라, 영적자녀다!」라는 것을 기억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 세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구원은 혈통이 아니라 언약(믿음)에 의한 것이다」라는 것을, 몸에 상채기를 내어 마음에 기억시키는 세레머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한 할례그리스도의 할례요, 십자가 할례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엡 2:11)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예수를 주님과 구원자(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 우리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이름과 삶을 사는 성도다시 태어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로 살고 믿음으로 살아서 진정한 언약적 삶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자기생각; 육신의 생각에 붙들려 있는 아브람에게 나타나셔서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호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그리고 받아야하는 세례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 깊숙이 거룩한 상채기를 내어 ‘죄악 된 옛사람’을 죽이고, ‘성도라는 새사람’으로 살겠다결단교회 앞에서의 공표입니다.
우리는 이 표징을 행하는 이유는 「순종하는 바른 삶을 살아서, 영원한 하나님의 언약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바른 삶을 사는 결단과 행함으로, 영원한 언약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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