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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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9:38-42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을 따르는 공동체 안에서도 정치적 견해, 생활 여건, 또는 출신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의견이나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입니다. 우리가 각각 하나님의 지체로 부름받았기에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차이들이 우리의 일치를 해치거나 서로를 분열시키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속한 교회는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다양성 속에서 불편함과 갈등이 생길 때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우리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막 9:38).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어느 한 편으로 이해가 갑니다. 같이 생활하지 않는데 어찌 예수의 이름을 운운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가르침 전체를 생각해보면, 가짜로 꾸미는 것에서는 귀신이 쫓겨나가는 역사가 일어날 수 없고, 이 짧은 대화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편견이 제자들의 모습 가운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첫째,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역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들에게만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자신들만의 것으로 여기려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의 이름”을 함께 나누는 것인데, 다른 것으로 기준을 삼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독점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태도는 교회의 연합을 해치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귀신을 쫓는 것은 단순히 흉내를 낸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함께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둘째, "우리를 따르지 않는다"는 말 속에는 자신들만이 정통이라는 우월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고 자신의 그룹만을 인정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뜻을 모두 알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길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차별 없이 모든 이에게 향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셋째, 제자들은 하나님의 일을 자신의 방식대로 통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우리의 이해와 통제를 넘어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대와는 다른 방식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계획이 우리의 생각보다 더 크고 완전하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께서 이루시는 일을 신뢰해야 합니다.
이 제자들의 태도는 단지 2,000년 전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 안에서 다름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과 다른 생각이나 방식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고 배제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각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름받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주님의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평가절하하거나 그 사역을 가로막으려는 태도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다양성과 은혜를 제한하는 것이며, 우리 공동체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만든 경계를 초월합니다
첫째,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만든 경계를 초월합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의 응답은 단호했습니다. “막지 말아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쉽게 나를 비방할 사람은 없다” (막 9:39).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경계를 누가 정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교회도 이 문제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갔을 때(행 10장), 그는 자신의 편견이 하나님의 뜻을 막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행 10:34-35).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더욱 명확히 합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갈 3:28).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본질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교파와 교단의 차이, 예배 형식의 차이, 신학적 강조점의 차이를 복음의 본질적 차이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정말 살아있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논지는, 예수의 이름이 아니고서는 하나되기 어려울 이들과 하나되도록 하시는 역사가 있는지 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말씀을 통해 늘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좁은 시각이나 선입견에 의해 제한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묵상하며, 하나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넘어설 수 없는 그 벽을 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둘째, 진정한 능력의 근원을 분별해야 합니다.
둘째, 진정한 능력의 근원을 분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막 9:40). 이는 단순한 관용의 메시지가 아닙니다. 여기에 깊은 영적 분별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누가복음 11:20에서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손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표징은 그 사역자가 어느 교단 소속인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에 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서는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예수의 이름을 빌어 귀신을 쫓으려다가 오히려 귀신들린 사람에게 제압당하는 사건이 나옵니다. 이는 단순히 예수의 이름을 외친다고 해서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믿음과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때로 외적인 형식이나 소속을 기준으로 판단하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사역의 진정성과 영적 열매를 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아볼 것이다"(마 7:16)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약하거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낮춰보는 습관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은 우리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초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서로를 존중하며, 그분의 능력이 각 사람을 통해 어떻게 나타나는지 주목해야 합니다.
셋째, '작은 자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
셋째, '작은 자들'을 향한 우리의 책임
본문에서 제자들은 누가 크냐를 두고 다투고, 예수님을 독점하려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가까운 자가 더 큰 권위를 가지며, 더 큰 축복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와 같은 제자들의 태도는 당시 유대 사회의 계층적 사고방식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러한 '작은 자들'과 같은 이들에게 속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가 겸손하고 순수한 자들에게 속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와 같이 낮아지는 자가 큰 자라고 하셨으며, 이는 제자들의 권력 다툼과 그들의 마음에 있는 교만을 책망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충격적인 경고를 하십니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차라리 큰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막 9:42). 여기서 '작은 자들'은 단순히 어린아이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 사회적 약자, 그리고 우리가 흔히 무시하거나 배제하기 쉬운 모든 이를 포함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4장에서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룹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의 견해를 트집 잡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롬 14:1,3). 더 나아가 “믿음이 약한 사람이 그대의 지식 때문에 망하게 되면,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하여 죽으신 그대의 형제자매를 그대가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롬 14:15)라고 경고합니다. 우리의 교만과 배타성이 어떻게 다른 이들의 신앙생활에 걸림돌이 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합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길
결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베소서는 우리에게 분명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에베소서 4:2–3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이는 단순한 관용이나 타협이 아닌, 더 높은 차원의 영적 성숙을 요구합니다. 빌립보서 2장의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취하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 닮아가는 것이 예수 안에서 하나되는 길입니다.
진정한 교회의 하나됨은 획일성이 아닌 다양성 속의 일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이 말하듯, 몸의 각 지체가 다르되 하나의 몸을 이루듯 우리도 서로 다른 은사와 표현방식을 가지고 있으나 한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교향악단의 각기 다른 악기들이 저마다의 소리를 내면서도 하나의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듯, 우리의 다름은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원천이 됩니다. 어떤 이는 열정적인 찬양으로, 어떤 이는 조용한 기도로, 또 어떤 이는 섬김의 손길로 하나님을 예배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한 성령의 인도하심 아래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참된 교회의 모습이 드러나게 됩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모든 것을 한 가지 방식으로 획일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신 고유한 은사와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는 하나의 정체성 안에서 연합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길 원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의 편견과 교만을 내려놓고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때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는 “우리”라는 대명사가 빠지지 않고 붙어있습니다. 다 똑같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 안에서 하나되었기에 우리를 통해 이루실 그 나라가 참 아름답고 위대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