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5:22-27 피하지 '마라'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4 views
Notes
Transcript
(도입)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요 꼭 이 문제만큼은 좀 해결됐으면 좋겠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다 그런 고민즈음 하나씩 있으시죠?
요즘 더 부쩍 느끼는 것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잴 날 없다는 말이 무슨말인지 알겠다는거에요. 일단 자식이 하나든 둘이든 있으면 계속 걱정거리가 생성되는 신비를 경험하게 됩니다.
부모로 조금 살아보니까요 몇몇 번째 단계가 있는 것 같아요
애가 태어나가지고 걸음마 할 때, 한국 사람들은 돌 즈음에 걷는 거 엄청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걸어야 된다는 압박감이 있구요
두 번째는 또 초등학교 들어갈 때, 걸음마 하던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학교 가가지고 네 네 선생님 이러고 있는 거 보면 언제 애가 벌써 이렇게 됐나싶다가도 또 뭔가 학습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것 같으면 그거 걱정하고 있고
그러고 있다가 이제 중학교 갈 때 폭풍전야 같은 일이 시작됐죠
이게 또 좀 있으면 중2병 도져가지고 또 얼마나 괴롭힐까 이러고 있다가
마지막 과업의 완성이 대학교 딱 들어가는 순간이죠.
애들이 대학만 들어가면 뭐 이제 애들 문제는 좀 해결 되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또 끝이 아니잖아요
취업도 걱정. 또 결혼에다가 또 출산하면 또 걱정거리 여러 가지 우리가 좀 해결되었으면 좋을 것 같은 문제들이 인생에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환문)
그런데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여정이 마치 우리 인생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문의 반응과 문제)
홍해를 드라마틱하게 건너서 몇일 지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드디어 자유와 해방이다! 싶었는데 눈 앞에 또 현실적인 문제가 들이닥칩니다.
우리 늘 들었던 설교는 이렇습니다.
홍해를 지난 지 며칠도 되지 않았다 3일밖에 안지났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배은 망덕할 수 있는가?
여러분 청년 교구 수련회 다녀오지 않았습니까? 어제 돌아왔습니다. 그럼 못해도 유통기한 1주일은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어떻게 3일 만에 왜 이런 일이 발생됐을까??
(이스라엘의 반응의 이유)
그런데 먼저 이스라엘의 상황을 좀더 깊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스라엘은 배은망덕한 인간들이라고 색안경을 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을 했느냐? 여기에는 이들이 처한 배경을 좀 이해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만 건너면 문제가 끝날 줄 알았습니다
이야 이 홍해만 건너면 가난 땅으로 바로 직행을 해가지고 KTX 타고 딱 들어가가지고
편안한 삶 정말 ‘젖과 꿀’이라는 패러다이스가 쫙 펼쳐질 줄 알았는데요
그러니까 홍해를 건넜을 때 안도하고 기뻐했죠
우리 이제 끝났다 민족 해방을 이루었다 드디어 우린 자유자가 됐다
우릴 두렵게 만들었던 이집트 기마병들은 다 사라졌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정말 찬양을 드리고 바다의 노래를 부르고 경배를 하고 찬양을 하면서 기뻐했습니다
근데 여러분 그때부터 시작해가지고 이 삼일길이라고 하는 길을 걷기 시작하는데 이게 만만치 않은 겁니다
이 삼일길을 걸으면서 내리쬐는 태양볕을 경험하고 현타가 딱 온 거죠
여기가 어디라는 사실을요?
‘광야’라고 하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을 경험하게 됐던 겁니다
(이스라엘의 객관적 상황)
게다가요 그 출애굽할때요 남자들이 얼마나 급하게 나왔는지 음식을 가지고 올 수가 없어가지고 밀가루를 반죽한 것을 대충 가죽부대에 싸가지고 어깨에 짊어지고 나왔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걸 두고두고 먹을 수는 없죠. 왜요? 먹을 수 있는 유통기한이 길지 않았을테니까요.
게다가 이집트에서 나온 후 약 한 달이란 시간이 지났습니다. 아무리 저장성이 좋은 곡식이라도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을 거에요. 그러니까 조만간 곧 들어갈 줄 예상했을 겁니다. 그런데 음식은 떨어지고 아마 아이들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요? 애들이 많았을테니까요
“엄마 목말라 배고파.”
그럼 어때요? 쫄려요.
나 배고프고 목마른 건 참아도 애들 그러는건 참기 힘들거든요.
그래도 하루, 이틀 그렇게 견디며 가고 있는데 마침 물을 발견한겁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미친 듯이 달려 들어갔겠죠
그런데 여러분 거기에 있었던 물은 안타깝게도 먹을 수 있는 물이 아니라 썩어서 먹을 수 없는 쓴물이었던 겁니다.
여러분은 원망안 할 자신 있으신가요?
(반전)
그런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마라의 고통이 그들의 자의로 오는 고통이었습니까?
22절 말씀을 한번 읽어 보실까요?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여기 보면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간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원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게 하셨다고 얘기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의도적으로 계획적계획적으로 모세로 하여금 이런 곳으로 가도록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전환질문)
제가 너무 이스라엘 백성들 편을 들어주었나요? 그런데 제가 그런게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반응하시는 지를 보면 제 이야기를 공감하실거에요
(하나님의 반응)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죠? 이 놈들 3일밖에 안되었는데 한심하게 원망과 불평을 해! 다 나가죽어라! 이렇게 하지 않으시고
모세를 통해서 그 쓴물에 나무를 집어던지게 합니다. 그랬더니 쓴물이 단물이 되고, 물을 먹을 수 있게 바뀌게 됩니다.
(반응의 이유)
하나님은 왜 이런 사건을 보여주실까요? 하나님은 결코 그들의 불평과 원망을 정죄하실 생각이 없어요. 오히려 하나님은 그들이 이럴 수 밖에 없음을 알고 계셨죠. 이 시간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속의 마음을 공감하시고 체휼하시죠. 그뿐 아니라, 그들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가르쳐 주시는 겁니다.
우리 인생에는 반드시 마라를 만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중간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정말 우리 인생에는 꼭 마라가 있습니다
갚아야 할 공과금은 많은데 돈이 바닥이나 속이 바삭바삭 타는 경험. 마라지요
직장을 실직하고 난 뒤에 아내한테 실직당했다는 말을 육개월동안 못하고 그리고 평소같이 출근하는 고통. 마라입니다.
직장이 있긴 있어도 안정적이지 못해서 불안한 고통. 마라입니다.
가게나 사업장이 있어도 언제 문을 닫아야 할지 몰라 나날이 불안해 하는 고통. 마라입니다.
말을 안해서 그렇지 자녀 때문에 속 앓이를 하는 부모의 고통 가운데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마라입니다.
우린 생각합니다.
인생의 마라 아.. 이거 좀 해결되면 좋을 텐데
그러나 모두 다 완벽하게 갖춘 인생이 하나도 없어요. 아무도 그렇게 완벽한 조건 속에서 인생을 살지를 못합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환경이 고쳐지고 개선이 되어도 근본적인 우리의 마음과 영혼이 고쳐지지 않는 이상 쓴물은 계속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쓴물같은 우리의 인생을 사는 우리. 우리의 쓰디슨 영혼, 병든 영혼에 나무를 던져 넣으심으로 회복을 이뤄가십니다.
이 나무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상징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예수 십자가의 복음 마음으로 믿고, 그리스도를 나의 삶의 주인 영접하며, 따를 때 우리의 심령에 올라오는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는 놀라운 회복의 원리를 알려주시는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디 우리 삶의 여러 마라를 만날 때 원망과 불평으로 마음을 쓴물로 채우지 마시고, 십자가를 내 마음에 던져넣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염려를 주께 던져버리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 아니오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 믿음으로 선포하시며 소망의 단물을 인생속에 자주자주 누리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합니다.
(본문의 반응2)
그런데 여러분 이 마라사건이 또 전부가 아닙니다.
16장에 가면 먹을 물 채워주었더니, 이제는 배고파서 굶어죽인다고 또 원망을 합니다.
근데 여기서 하나 궁금한 게 하나 있습니다 진짜 이스라엘 백성들은 먹을 게 없었을까요?
여러분 놀랍게도 출애굽기 12장 3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그냥 나온 게 아니라 여러 민족과 함께 왔거든요 그때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함께 떠났다 이렇게 돼 있습니다. 다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이지요.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거리로 사용할만한 짐승들이 많았을 겁니다. 게다가 얼마전에 물까지 채워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속 마음)
그러면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렇게 짜증을 냈을까요?
서두에도 말씀드렸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지나자마자 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서 정착할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든 재물과 가축들은 사실 하나님이 주신 것 아닙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기르거나 얻은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거기 가서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예로 살면서 가끔 씩 고개 숙이고 지나가는 주인 마님의 모습 주인 나리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겠습니까
본 게 있으니까 하고 싶었겠죠 누리고 싶었겠죠
하나님이 주신 건데 그건 뒤로 딱 감춰놓고 하나님 보고 밥 안 준다고 하나님께서 양식 안 준다고 떼쓰고 있는 장면이 출애굽기 16장입니다
그들은 먹을 것이 아직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먹을 걸 안 줬으면 직무유기고 하나님 그렇게 하시면 안 되는 거죠 하나님이 끄집어 댕겨가지고 지금 홍해 지나가지고 이까지 왔으면 먹여주셔야죠 채워주셔야죠 책임지셔야죠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숨겨놓고는 하나님이 안 준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이스라엘이 만약에 하나님이 아무것도 안 주시고 이렇게 했다면 충분히 원망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미 한 몫을 챙겨주셨는데 그건 뒤로 딱 챙겨주셨는데 챙겨 놓고는 하나님이 안 준다고 원망을 하고 있는 겁니다
(청중의 예상반응2)
정말 이해를 해주려고 노력을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한심한 족속들 같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모세가 이렇게 반응합니다.
**핵심(모세 - 하나님의 반응)
6절 ~8절입니다.
모세와 아론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땅에서 인도해내셨음을 알 것이오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너희가 우리에 대하여 원망하느냐?
8절입니다 모세가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워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음이라
아니! 하나님께서 그 원망하는 그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오 여호를 향하여 함이로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이런 한심한 인간들, 욕심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 백성을 절대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너희가 그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반응의 이유)
여러분 이스라엘은 평생 이집트의 품속에서 노예짓을 하더라도 그저 보장된 삶, 안심의 밤, 그런 밤만을 보냈었스비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 난생 처음으로 영혼의 어두운 밤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불안의 밤, 걱정의 밤, 영혼의 밤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왜 원망하는지를 알고 있으세요.
그들의 욕심과 원망마저 그 이면에 있는 막막함과 막연함과 두려움에서 비롯되었음을 아시는거에요. 한 번도 살아보진 못한 인생에 대한 두려움. 당장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걱정, 거기서 손에 쥐어야만, 안전을 확보해야만 살 수 있다는 몸부림...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셔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영혼의 밤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을 이 때
진짜 빛을 보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거에요
여러분 우리도 종종 이런 시간이 올 때가 있거든요
갑자기 소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가지고 사방이 깜깜하고 죽을 것 같고
공포스러운 이 영혼의 어두운 밤
그런데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죠?
반드시 그 어둠의 밤이 찬란한 아침을 맞게 하게 될 것을 얘기해 주시는 거예요
너희가 그 아침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와! 이런 놀라운 역설이 어디있습니ᄁᆞ?
이스라엘의 원망의 그 자리에 하나님은 뭘 더하셨다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겠다는 거예요
(적용)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불평하거나 원망할때도 우리를 정죄하거나 비난하시지 않아요
오히려 우리 인생의 그 연약함. 우리 인생의 그 원망의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을 주기를 기뻐하신는 거에요 (할렐루야)
우리의 영혼의 밤에, 막막한 두려움에 밤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고 인내하는 자에게
아침을 주시고, 우리의 좌절과 상실감의 그 시간에 하나님의 능력을 선물로 주시는 능하신 하나님!
이 하나님을 오늘 본문이 그대로 소개하고 있는 겁니다.
너무 놀랍지 않습니까?
(예화)
어떤 목사님이
말씀을 잘 전하시고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시면서 기독교 tv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일단 미디어에 노출되면 감수해야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뭐에요? 댓글이죠. 잘 안보려고 했다가 문득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댓글을 보기 시작했답니다.
그런데 너무 충격을 먹은거에요.
되도 않는 비난과 근거없는 모함을 막 하고
익명성 뒤에 숨어서 언어라는 폭력을 남발하고 있는 몇몇 사람의 댓글을 본겁니다.
마음에 너무 상심이 들고 하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 들더랍니다.
아니 하나님!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간거지요.
복음 전파위해 나가서 당당히 예수님을 전하고 부끄러워하지 않았는데
왜 이런 아픔을 겪게 하십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그에게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더랍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밥 먹자”
엥? 갑자기 무슨 밥 타령입니까?
아들아. ..
네 인생의 결핍과 부족함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댓글로 채워지는게 아니다. 그것은 가짜 빛이란다. 네 인생의 결핍과 배고픔은 내가 채우고 내가 고칠 것이다.
너의 염려와 불안을 나의 영광으로 채워줄 것이다. 그런 밥상을 내가 차려주마. 너는 내가 차려주는 밥상으로 맛있게 먹으렴!
갑자기 이 목사님에게 어떻게 이런 음성이 들렸을까요?
그 좌절의 자리에서 시편 말씀을 묵상한거에요.
시편 23:1~5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특히 이 5절!
“원수의 목전에서 원수의 눈앞에서 밥상을 차려주시는 도다 ”
그렇습니다. 그는 참 영광이 되어주시는 하나님. 참 빛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어둠 가운데서 발견하게 된 겁니다.
나를 먹이시는 하나님
내 공포와 불안과 염려와 근심과 원망을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시고
주의 말씀으로 채우시고
하나님의 긍휼로 채우시고 놀라운 역사!
이 기적을, 이 선물을 주시는 것입니다.
(적용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정답만 외치고
로봇처럼 반응하는 그런 무미건조한 반응을 신앙으로 요구하신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는 원망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는 불평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조차 하나님의 자녀로 하는 겁니다.
사람에게 하지 마시고 정직하고 솔직하게 하나님게 쏟아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정직한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 다음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는지 듣기 위해 조용히 침묵하시며,
또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펴서 읽으세요.
이 영적 습관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은 광야입니다 때로는 마라를 만날때도 있습니다. 마음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답답함과 원망으로 마라를 만날때도 너무 많습니다. 그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광야 같은 우리들의 인생에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거고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가 있기에 오늘을 버틸 수 있는 거고
하나님의 주시는 그 말씀이 있기에 찬양하고 기뻐하면서
이 광야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떤 견고하고 안전한 산성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친히 우리의 산성이 되시고 우리의 방패가 되시고 우리가 요새에 되어주시는 겁니다. 그래서 오늘을 견딜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여러분 기대하십시오 광야 같은 우리 인생길에, 마라같은 우리 여정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이미’ 둘러치고 있다는 이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십니다.
때로는 앞길이 막막하고 재정이 바닥이 나고 관계가 무너지고 건강에 치명적인 고통을 당할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들의 허기진 배만 채우시고 주린 목만 축이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먹어도 몇 시간이 지나면 금방 찾아오는 그 허기짐과 목마름이 아니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먹여주실 것이고 영원히 갈하지 않는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이 이후로 우리들의 삶이 그렇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하고 진배가 없는 자들임을 고백합니다. 현실의 문제 앞에서 여지없이 무너지는 연약한 자임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하나님 나이가 들고 뭘 좀 가진 것 같은데 여전히 불안하고 여전히 근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만나게 됩니다 좀 능력이라도 좀 탁월하고 가진 것이라고 하면 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것으로 채우지 않는 우리 인생이라는 걸 알게 되니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합니다
아니 정직하게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우리는 원망이었고 한탄이었고 아픔이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니 너무너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아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길 광야 같지만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셨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하여 주옵소서.
이 사실을 부여잡고 믿음으로 걸어가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를 될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들이 삶의 현장에서 믿음으로 살도록 믿음의 눈을 열어주셔서 여호와의 영광을 보게 하여 주시고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하여 주시고 주의 놀라운 위로를 경험할 수 있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