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경고 그리고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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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서론
서론
히브리서 기자는 유대인 교회 공동체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히브리 서 1-2장까지의 내용을 보면 계속해서 유대인 교회 공동체가 조심해야 할 특정 사상들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사 숭배 사상이나 율법주의같은 것들이 그런 것입니다.
제가 히브리서를 천천히 묵상하다보니까 왜 이렇게 히브리서 기자는 뭔가를 경고만 하고 있을까 생각이 드는 거에요.
성도 여러분. 누가 여러분에게 얘기를 하면 듣기 좋은 소리, 듣기 싫은 소리가 있잖아요.
듣기 좋은 소리는 주로 뭔가요? 좋은게 좋은 얘기죠. 칭찬하고, 잘 될거라고 해주고, 긍정적인 것 얘기하면 듣기 좋은 소리란 말이죠.
듣기 싫은 소리는 주로 뭔가요? 지적하고, 경고하거나 이런거잖아요?
근데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 그 듣기 싫은 소리 하고 있는 겁니다.
저희 4살 짜리 조카가 있거든요. 그런데 웃긴게 엄마가 TV 그만 보세요, 옷 입으세요 이런 말 하면 쪼로록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달려갑니다.
그러면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런 말 안 하거든요?
우리가 다 커서도 똑같습니다. 우리가 뭐 하지 말라 이런 얘기 싫잖아요.
근데 히브리서 기자는 그런 듣기 싫은 소리를 합니다.
제가 히브리서 공부를 하면서 이풍인 교수님이 쓰신 히브리서 책을 참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수님은 히브리서의 두 가지 큰 주제를 “은혜”와 “책임”이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얘기하냐면,
히브리서에서 믿음장이라고 하는 11장을 보면 믿음의 거목들이 나오지 않습니까? 아벨 - 에녹 - 노아 - 아브라함 - 사라 - 이삭 - 야곱 - 요셉 - 모세 - 라합 -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선지자들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주눅이 듭니다. 나는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을까? 내 믿음은 저 사람들의 믿음과 견주었을 때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그런데 히브리서는 그 사람들과 우리를 비교하면서 부족함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뭐라고 얘기하냐면 우리, 신약백성들이 아니면 그들이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다고 얘기합니다.
이건 뭐냐면, 우리가 잘나서 그 믿음의 선조들이 우리 없이 아무것도 아니라는게 아닙니다.
옛 언약의 믿음의 선조들도 받지 못한 새 언약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을 말하는거죠.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맺어진 새 언약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이 새 언약의 은혜는 구약의 성도들과 천사들도 흠모하는 아름다운 은혜이죠.
그러나 히브리서는 은혜만을 얘기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책임”을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새 언약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삶을 살아가며 져야 할 믿음의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은혜를 강조하는만큼 성도들의 책임도 강조하는 겁니다.
왜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경고하고 싫은 소리 할까요?
우리가 은혜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경고하는 싫은 소리 하는 겁니다.
은혜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역설적이게도 그 경고, 싫은 소리가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은혜받은 자들이 그 경고를 듣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거죠.
그래서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경고는 곧 은혜입니다. 싫은 소리가 아니죠.
은혜받은 자만이 들을 수 있는 경고, 그것도 은혜입니다.
본론
본론
그래서 오늘 본문은 어떤 은혜의 경고를 말하고 있을까요?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두 가지의 큰 경고를 먼저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고를 잘 지킨 자들의 결과를 결론적으로 얘기합니다.
1. 은혜의 경고 1 :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거역하지 말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1. 은혜의 경고 1 :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거역하지 말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브리서 저자는 시편의 내용을 인용하며 경고합니다.
히브리서 3:7–11 (NKRV)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이 시편은 95편의 내용입니다.
여기서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이 언제냐면, 가데스바네아에서 있었던 이스라엘의 반역 사건입니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12명 중 2명과 10명의 의견이 갈리죠.
2명은 가나안 정탐 결과 우리는 승리할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10명은 가나안의 군인들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고 죽게될 것이라고 보고하죠.
두명은 아시다시피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그들은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그들이 한 정탐 보고는 가나안 땅을 본 것을 그대로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의 말”을 한 것이죠.
그러면 나머지 10명의 말은 무엇이었습니까? “믿지 않음의 말”을 한 것입니다.
12명은 똑같은 것을 봤지만 두명은 믿음의 말을, 나머지는 믿지 않음의 말을 뱉어낸 것이죠.
그런데 문제는 백성들이 10명의 말에 동요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음의 말을 따라 모세와 하나님께 불평과 불만을 하다가 결국 반역을 일으킵니다.
그 결과 가나안 족속에게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고, 20살 이상인 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 가데스바네아 사건에 대한 어떻게 보면 후대의 평가가 저자가 인용한 시편의 내용인 것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딱 두 가지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성경이 명확하게 이분법적으로 말합니다.
히브리서 3:7–8 (NKRV)
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거역하거나, 순종하거나 둘 중 하난거죠.
그래서 정탐꾼 중 열 두명 중 열명은 거역했고, 두명은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는 “거역하는 것”은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이라는 거죠.
거역하는 것은 완고한 마음이 나타난 행동의 결과입니다.
완고하다 이 단어의 의미는 딱딱하다, 완악하다 이런 의미죠.
하나님의 말씀은 딱딱한 마음에는 거역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은 부드러워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그토록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말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에스겔 11:19 (NKRV)
19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에스겔 36:26 (NKRV)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에스겔 선지자가 아마도 과거 선조들의 가데스바네아 사건같은 불순종의 모습들을 보면서 시편 기자처럼 동일하게 평가한 것이지 않을까요?
은혜를 받은 자들의 마음은 돌 같은 딱딱한 마음이 아니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여러분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책임을 부여하시면서 은혜의 경고를 하신다고 했잖습니까?
오늘 하나님이 하시는 은혜의 경고는 “완고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거역하지 말라”입니다.
적용)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현상이 무엇이냐면 바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게 된 자들은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때문에 모든 말씀에 감사로 순종하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언제나 항상 매번 우리가 어떤 명령을 다 지키지는 못하죠.
그런데 중요한 사실 하나는 뭐냐면, 여러분 순종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절대 어떤 사건 하나에 대해서 했냐 안 했냐의 의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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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은 우리의 삶 전반에 걸 부드러운 마음을 지니고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말씀대로 지켜나가는 삶의 전반적 자세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기자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근거가 뭐냐면 8절의 말씀의 동사 시제입니다.
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라고 햇을 때 “완고하게 하지 말라”의 동사의 시제가 현재시제의 가정법입니다.
이 현재시제를 가정법으로 사용할 때는 진행이나 반복을 의미하는 거거든요?
즉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는 말은, 너희 마음을 삶의 전반에 걸쳐 완고하게 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하라라는 말이죠.
그래서요. 여러분 이런 함정에 빠지시면 안 됩니다.
어떤 함정이냐면, 내가 한번, 두번 불순종할 때 ‘아 나는 은혜받지 못한 자야, 나에게는 이제 은혜가 없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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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는 “지속성”이 있고, 그 지속성에 따라 완고한 마음을 짓지 않고 순종하려는 “지속적인 자세”를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은혜가 지속적이기 때문에, 순종의 자세도 지속적이다 라는 말이 가능하죠.
은혜는 여러분을 자유케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하는 삶의 전반적 자세를 허락합니다.
그것이 오늘 제가 말하는 부드러운 마음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한번, 두번 순종하지 못한 결과에 매여서 은혜를 축소시키는 일이 없길 소망합니다.
한번, 두번 순종치 못할지라도 내 삶의 전반을 계속해서 순종해가려는 자세를 통해 은혜받은 자의 책임을 다 하고, 은혜를 누리시기 소망합니다.
2. 은혜의 경고 2 : “너희 중에 조심하고, 너희 중에 피차 권면하라”
2. 은혜의 경고 2 : “너희 중에 조심하고, 너희 중에 피차 권면하라”
그래서 이제는 저자가 어떤 은혜의 경고를 하는지 두번째 은혜의 경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결국 히브리서 저자가 본문을 통해서 하는 첫번째 경고는 삶의 전반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번째 경고의 핵심은 뭐냐면 “너희 중에”입니다.
히브리서 3:12–13 (NKRV)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첫번째 경고만 보면 ‘내가 정말 순종하도록,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끝나겠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경고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번째 경고를 보면 우리는 ‘아 우리가 같이 순종하도록, 우리가 같이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될 것입니다.
즉 무엇입니까? 이 경고는 ‘나’가 아닌 ‘우리’를 향한 경고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에요? 신약의 새 언약 백성, 즉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절대로 성도 한명, 한명에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교회”를 향해 “우리”를 향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당시 초대교회가 경고를 듣고 해야할 것은 서로서로 악한 마음을 품지 않도록 노력하고, 서로서로 권면해서 완고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정죄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첫번째 경고가 나의 삶의 전반을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그러면 두번째 경고는 정죄나 판단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삶의 전반을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도록 하는 것이죠.
적용)
여러분 각자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노력을 해나가고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받은 자의 책임인 것을 제가 말했죠.
그런데 여러분 각자의 삶만을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절반의 노력만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가 은혜받은 자의 책임을 다하도록 서로 노력하고, 서로 권면하며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서 지체가 서로 사랑해야한다는 것은 너무 잘아시죠?
그런데 서로 말씀으로 잘 살아가도록 신경쓰고, 권면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생각 잘 안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것을 해나가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매주 주일 사랑에 대해서 담임목사님께서 강해를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중 어떤 사랑이 오늘의 말씀과 맥락을 같이 합니까?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우리는 교회 안에 한 지체가 불의의 길로 즉 불순종의 길로 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지요.
그리고 진리의 길, 순종의 길로 가는 것을 기뻐합니다.
그 마음에서 비롯된 우리의 서로 신경, 서로 권면은 바로 사랑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물론 지금 우리 세대는 정말 개인주의적인 사고방식이 팽배한 시대죠.
그래서 어떤 권면을 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분명한 것은 교회는 그것을 해야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고린도전서 13장 안에서 이 말씀을 하지 않습니까?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않고, 자기 유익이 아닌 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성내지 않고 권면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아가페 사랑을 닮은 사랑입니다.
교회가 온전해지는 것은 절대로 나 따로, 나 혼자 신앙으로 되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 시대에 일명 가나안 교인들이라고 하는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시는 분들은 결국에 반쪽짜리 은혜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마음을 이해는 합니다. 제도권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나 상처, 여러가지 모습으로 인해 교회를 나가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스빈다. 은혜받은 자가 걸어가는 신앙의 책임의 길은 “서로 순종하도록 신경쓰고, 서로 권면하는 공동체의 길”이라고요.
그래서 여러분 우리는 서로 정말 많이 신경써야합니다. 서로 권면도 해야합니다.
이 사람이 혹여나 불순종의 길을 걷고 있지는 않은가, 이 사람이 완고한 마음을 가지려고 하지는 않은가.
우리 교회가 참 감사한 것은 소그룹 시스템을 통해서 그러한 은혜의 길을 함께 걸어가기 좋은 밭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목장 모임 가운데 여러분 서로 관심 많이 가지시고, 순종의 길을 걷도록 기도해주시고, 목자를 비롯한 리더분들은 사랑으로 권면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이 바라시는 것이죠.
그런데 제가 오늘의 말씀이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딜까 고민을 많이 해봤어요.
3. 은혜의 경고의 결과 :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3. 은혜의 경고의 결과 :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은혜의 경고를 함께 받아들이고 순종의 길을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에는 복된 결과를 누리게 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 다른 성경의 권을 빌려서 표현하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한 자가 되는 것이죠.
온전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우리가 함께 온전한 교회가 되시길 소망하십니까?
우리가 길벗교회를 위한 기도를 제목으로 항상 기도회 때마다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우리가 삶에서 해야할 것은 우리 교회가 은혜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서로 함께 그 길을 걸어가도록 노력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먼저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전반에서 순종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가 서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순종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 결과는 우리 교회가 한 몸이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저는 길벗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길 간절히 바래요.
은혜의 길에서 벗어나는 자들이 없이 함께 순종의 길을 걸어가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끝까지 그 길을 다 걸어간다면 우리에게는 그리스도가 함께하고, 같이 걸어온 서로가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쇼호
가정가
교회
수험생수
환우호
최명식 장로님 - 복강경 수술 후 오늘 퇴원
박경숙 집사님 - 부정맥 시술 이후 회복
김숙현 권사님 - 자가에서 회복 중 6개월 후 수술을 위해서
이덕희 권사님 - 재활치료중, 3주 남음
이혜숙 권사님 - 항암 치료 마지막 마치심
강숙구 권사님 - 허리 통증 심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