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의 사함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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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편은 다윗의 마스길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스길은 쉽게 말해서 교훈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이 시편은 다윗의 교훈이라고 바꿔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오늘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전해주고자 한 것일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다윗은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죄가 가려졌다라는 표현이 언뜻 보기에는 마치 불법적인 요소로 보이거나, 죄에 대한 댓가를 회피하는 등의 모습으로 보여질 수 있고 우리에게 어떠한 불편함을 느끼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이전에 허물의 사함을 받고라는 전제를 함으로써 이 문장이 오해될 여지가 없게끔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꿔 말하면, 죄가 가려진 자들이 복이 있기에 우리의 죄를 가리자라는 교훈이 아니라 죄가 가려진 자들 그 중에서도 허물의 사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2절에서 다윗은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은 사람들 중에서도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이라는 특정한 부류를 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은 사람들은 당연히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허물의 사함을 받으려면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겠습니까? 용서가 있으려면 고백이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허물의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는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고백하며 죄의 용서를 구하는 이들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에서 죄가 가려진 자들이 복이 있다는 말은 그 사람들 중에 죄가 가려지는 은혜를 입은 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로마서 6장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본래 모든 죄의 댓가는 죽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사함을 받고 영생의 약속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우리의 죄의 댓가를 예수님께서 대신 치르셨기에 가능합니다. 죄의 댓가를 대신 치르셨다라는 의미, 우리의 죄가 이미 다른 곳에서 댓가를 치루었기에 우리의 죄가 마치 없는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는 의미, 그것이 바로 죄가 가려진 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지금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살 수 밖에 없지만,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깨닫고, 입으로 시인하고 인정하여 허물이 있음을 고백하여 용서 받은 이들, 죄가 가려진 이들, 마음에 간사함이 없이 그 사실을 분명하게 믿는 이들, 그래서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않게 된 이들은 복이 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복이 있도다 라는 다윗의 교훈인 것입니다.
그런데 3절부터는 어조가 반전됩니다.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였고 주의 손이 주야로 누르시며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의 반전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허물의 사함을 받은 이들이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허물을 고백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의 상황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입을 열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 죄를 고백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용서를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마치 뼈가 쇠하는 것처럼, 그리고 주의 손이 주야로 누르는 것처럼 진액이 빠지고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고통받게 되리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다윗은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고 죄를 아뢰고 죄악을 숨기지 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죄악을 사하시고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며 주께 기도할 수 있고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환난에서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두르시리라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가르치고 전하기 위해 다윗은 오늘의 시편을 기록하였다고 8절에서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시편은 복음의 기쁨과 가장 기본적인 구원의 원리, 그리고 그것을 전파하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 등을 다윗이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몇 가지를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며 겸손하게 용서를 구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허물의 사함을 받고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허물의 사함을 받는 이들은 허물을 먼저 인정하고 자백한 이들입니다. 고백하지 않는 허물, 인정하지 않는 허물이 용서받을 수는 없습니다. 용서를 위해서는 먼저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죄된 모습을 별로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해야 하는데, 이미 그것부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된 모습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 다음에야 용서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우리가 과연 그 사실을 진정으로 기뻐하며 찬양하며, 우리만의 기쁨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가르치고 있는가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용서받는 것의 기쁨을, 그리고 그 심판을 피할 수 있음에 대한 감사를 노래로 지어 전하고 가르치고 훈계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구원의 기쁨을 과연 얼마나 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는 대목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은 혼자 즐거워할 것이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자고 이 노래를 전하며 권면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기쁨과 용서에 대한 감사와 찬양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여러분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본래 죄인입니다. 우리에게 예비된 결말은 본래 죽음말고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의 대가를 대신 치르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 대신에 영생의 복음을 선물로 받게 되었습니다. 죄의 대가가 이미 치루어졌기에 우리는 그 죄의 심판과 결과를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하며 놀라운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원을 약속받은 주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감사하며 오늘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허락받은 하루의 삶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용서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 기쁜 소식을 나만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에게도 전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