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Notes
Transcript
만나서 반갑습니다. 새로 부임한 이성재 목사입니다.
어쩌다보니 부임하고 첫 설교를 중고등부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친구들 너무나 반갑습니다.
그런데 오늘 설교를 준비하려고 하다 보니까, 제가 우리 친구들에 대해서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에 대해서 모르는건 아닙니다. 원래 있던 교회에서도 청소년부를 맡았었기도 하고 청소년이라는 연령에 대해서 무지한 건 아닙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도 어떤 분과 식사를 하면서 얘기했지만, 요즘 청소년들의 문화와 그들이 겪는 것들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모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저 때는 대학은 수능으로 가면 그만이었습니다. 수시가 생기긴 했지만, 수시로 학교를 가는 친구들은 반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 친구들은 내가 알기로 대학을 가는 방법이 너무나 다양한 것으로 압니다. 진학을 위해 누가 좋은 정보를 얻어내는가가 관건이 될 정도로 대학을 가는 방법도 다양해졌고 준비하는 방법도 다양해 진 것으로 압니다.
그 말인즉슨, 준비하는 여러분은 나 때보다 훨씬 복잡해지고 어려워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리에 앉아서 주구장창 문제집만 풀고 공부만 하면 되던 나와는 달리 여러분은 봉사시간도 챙겨야 되고, 이것저것 체험도 해야되고, 무슨 보고서 같은 것을 쓰기도 해야되고 얼마나 복잡하고 어렵겠습니까.
또 직업은 얼마나 다양해졌습니까. 내가 대학 갈때만 해도 직업은 나중 문제였고 그냥 무조건 좋은 대학을 가는게 우선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진로에 따라 공부를 준비할 수도 있고, 아예 다른 방향으로 진로를 준비할수도 있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바꿔말하면 너무나 복잡하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요즘 청소년들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복잡해진 것만 문제겠습니까? 복잡해진만큼 정보도 다양해졌고 많아졌습니다. 유튜브만 열면 정보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그런데 어떤 정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 정보도 가려서 받아들여야하는 어려운 세상이 된 것입니다.
요즘 유튜브에서는 쯔양 사건으로 난리입니다. 구독자 천만이 되는 쯔양의 과거 폭로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쯔양 본인도 해명을 하기도 하고, 소문에 대해서 갑론을박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 속에서 누구 말이 진짜인지 헷갈리고, 뭐가 맞는 것인지 믿기가 어려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수많은 정보 속, 그리고 그 속에서 자꾸만 누군가는 이게 맞다, 저게 맞다 하는 시대적 상황. 그런 상황을 겪는 여러분과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이 오늘 성경에 등장합니다. 바로 욥입니다.
이 욥이라는 사람은 아마 아브라함의 시대에 살았던 어떤 사람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욥이 얼마나 하나님을 잘 믿었는지 하나님이 욥을 자랑스러워하시면서 칭찬함으로 욥기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문제는 욥이 이렇게 하나님을 잘 믿고 칭찬 받자, 그 진심을 의심하는 이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욥이 얻는 것 없이 하나님을 믿을리 없다면서, 그가 복을 받았기에, 혹은 복을 기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냐며 하나님과 내기를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라는 아주 자극적은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바로 욥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우리 친구들이 다들 한번씩 들어봤다시피 욥은 재산도 잃고 가족도 잃고 건강도 잃고 절망중에 놓이게 됩니다. 그런데도 놀랍게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욥기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신기하죠? 원래는 이쯤에서 그럼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니 욥은 복을 받았더라 하고 끝나면 딱 좋겠는데, 욥기는 오히려 여기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절망중에 놓인 욥. 그 욥에게 이 사람 저 사람 와서 이런 저런 말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욥이 절망중에 있던 그 때, 욥의 상황을 들은 사람들 중에서 욥을 위로하겠다고 세 명 정도가 욥을 찾아온 것입니다. 스스로를 욥의 친구라고 칭하면서 말입니다. 이게 중요해요. 욥의 친구들이라고 하지만 그건 자칭이었습니다. 욥도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어요. 자칭 욥의 친구라고 하는 세 명의 사람이 어느날 욥을 찾아와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이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엘리바스, 소발, 빌닷이라는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은 욥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욥이 고난을 당하고, 재앙을 당한 이유는 욥의 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자신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답변하게 되고, 이 세 사람은 또 다양한 이야기와 예를 들면서 욥이 잘못한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욥은 또 아니라고 대답하구요.
마치 아까 말했던 쯔양 사태와 비슷합니다. 한 쪽은 계속 아니라고 하고, 한 쪽은 자꾸만 자기 이야기가 맞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이 쯔양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맞는지 틀리는지 모르는 정보와 이야기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져 내려오죠. 욥기도 그렇습니다. 이 책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도대체 누구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럴듯하고 맞는 것 같은 이야기들이 각양각색 쏟아져 내립니다.
가만히 보면 욥의 친구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말도 일리가 있고, 정말 욥이 잘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욥기를 읽어봐도 알 수 있다시피 욥은 하나님 앞에 별다른 죄를 범하지 않는 것도 한편 맞고 말입니다. 이렇게 도무지 뭐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욥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창조할 때에 네가 있었느냐. 내가 해와 별과 달을 만들 때에 너 거기 있었느냐. 내가 세상의 많은 동물들을 창조할 때에 너 거기 있었느냐. 너는 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욥이 자기 잘못이 아니다, 아니다, 얘기하려다 보니까 하나님의 방식이 틀린 것일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결론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욥이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항변하다 하다 못해서 결국 하나님이 틀렸다까지 이야기하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네가 그렇게 나를 잘 아느냐, 내가 틀렸다고 말할 정도로 네가 세상에 대해서 많이 아느냐고 폭풍과 구름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 때 욥이 한 회개의 말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이런 고백입니다. 그동안 내가 알았던 것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한 것이군요. 그런데 이제는 눈으로 진짜 주를 뵈옵나이다. 내가 아는 것들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이제 깨닫게 됩니다. 주님을 직접 보았어야 한다는 사실을 내가 이제야 깨닫습니다. 하는 고백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귀로 듣기만 했던 모든 일들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나요? 아까 말했다시피 정보가 홍수인 시대에요. 학교를 가는 방법도 다양하고, 유튜브에는 온갖 정보들이 흘러다녀요. 그 중에선 유용한 정보도 있지만 가짜 뉴스나 거짓말들도 넘쳐나고 말이죠. 어때요? 뭐가 진짜인지 구분 지으며 살아갈 수 있나요? 설령 할 수 있다고 해도 너무 귀찮고 피곤하지 않나요?
나는 언젠가부터 그게 너무 힘들고 귀찮고 복잡하더라고. 뭐가 진짜인지 구분짓는 것도 피곤하고. 자꾸 거짓말과 가짜들이 넘쳐나는 것도 피곤하고.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 눈 아프고 머리 아프고 그만 보고 그만 듣고 싶더라고. 여러분은 어떤가요?
그런데 문제는 욥의 경우처럼 신앙도 점차 이렇게 되어가고 있다는거에요. 신앙의 정보도 흘러 넘치고 있어요. 이게 맞다, 저게 맞다. 주변에 이야기가 너무 많아. 근데 그걸 또 흘려듣지도 못하는게, 어떤 것들은 진짜거든. 어떤 것들은 정말 맞거든. 그러니까 이걸 듣고 구분하고 신앙을 배우는게 너무 복잡해지고 힘들어지고 있어.
그럼 우리 친구들 입장에선 어떨까 생각을 해봤어요. 학교도 피곤해, 대학 가는 것도 피곤해, 진로 설정도 피곤해, 교회 와도 피곤해. 그저 맨날 피곤한거야. 맨날 수수께끼고 맨날 스무고개인거야. 맨날 생각해야 되고, 맨날 의심해야돼. 얼마나 피곤할까 생각해봤어요.
그러니 오늘 본문을 우리가 유심히 봤으면 좋겠어요. 욥의 고백을 우리 친구들이 주의깊게 들었으면 좋겠어요. 안그래도 피곤한데, 여러분은 귀 기울이고, 주의깊게 봐야할 건 뭘까요? 바로 하나님이에요.
주변의 이야기들이 다 가짜라는게 아니에요. 그 중에선 진짜도 있고, 중요한 정보도 있어요. 그런데 아무리 그렇다해도 귀로 듣는건 한계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 친구들은 눈으로 주를 뵙기 위해 애쓰기 시작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볼 순 없죠. 누군가 하나님을 직접 보았다? 거짓말이죠. 환상중에 보았다? 그건 환상일 뿐이죠. 욥도 아마 하나님을 직접 보고 내가 눈으로 뵈옵나이다 한 말은 아닐거에요. 그럼 이 말은 무슨 뜻이냐?
눈으로 본 것과 다름 없을만큼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했다라는게 가장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그동안 자기가 알고 있던 것들과, 누군가에게 전해들었던 것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진짜 인격적으로 겪고 체험하고, 경험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꿔 말하면 이런 거죠. 예배시간에 조용히 해야지가 아니라, 조용히 예배에 집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거에요. 예배 시간에 떠들면 안되지가 아니라, 예배에 온 몸과 마음을 집중하여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감사와 은혜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주일날 예배 빠지면 안되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삶의 중요한 다른 선택지들이 있음에도 오직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예배에 나아왔을 때,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는 거에요.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 기쁨으로 한 주를 또 살아갈 생각에 즐거움이 앞서는 경험. 그런 것이 필요하다는 거죠.
말씀을 정리합니다.
여러분, 여러분 뿐만 아니라 저도. 그리고 우리 선생님들도. 우리 모두는 눈으로 주를 뵐 필요가 있어요. 귀로 듣는 것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들리는 이야기들도 너무 많아서 오히려 우리를 피곤하게 할 때가 많아요. 그러니 우리는 오히려 하나님을 더 뵙기 위해서 애써야 해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애써야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돼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시도해봐야 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훈련도 해봐야 해요.
오늘 저는 대타로 설교하러 왔는데, 이 한 번의 기회 가운데 우리 친구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가 고민하다가 이 메시지를 선택한 이유가 그거에요. 우리 친구들 신앙 생활 하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을 거고, 이미 알테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으로 주를 뵙는 것이라는 사실이에요. 언제나 하나님을 보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우리 친구들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이 땅 가운데 오셨고, 결국 우리 대신에 죽음까지 맞이하셨어요. 그리고 우리를 위해 부활의 길도 여셨죠.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고 보기 위해서 그렇게까지 하셨는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주를 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좋겠어요. 주를 뵙기 위해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