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7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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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원통함을 풀어주옵소서
여러분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어 반갑습니다. 오늘의 시간을 통해 함께 주님이 주시는 큰 은혜를 누리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은 추석 이후로 오랜만에 12기들과만 함께하는 예배의 시간이네요. 다들 어떠신가요? 한주동안 학교가 조용하니 그래도 공부가 좀 잘 되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근데 또 조용하다고 하니까 지난주 말씀이 생각나기도 하죠? 그렇게 복작복작하던 하늘고가 어찌 이렇게 적막하게 되었는고.
물론 뭐 1,2학년들이 끌려간건 아니지만, 어쩌면 여러분들의 마음이야말로 예레미야애가의 화자와 비슷하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예레미야애가 말씀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말씀을 보면서 슬픔을 노래하는 화자와 그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하나님의 진리를 함께 발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지난주에 보았던 1장으로부터 조금은 지나와서 3장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방금 함께 읽어서 아시겠지만 3장의 내용이 조금 깁니다. 절수가 66절까지 있으니까 꽤나 길죠.
그럼 대체 무슨 이야기가 있길래 이렇게 길까요? 사실 뭐 간단하게만 보면 당연히 지난주에도 보았던 것처럼 예루살렘이 황폐화된 것을 슬퍼하는 내용이겠죠.
그런데 그 슬퍼하는 것도 자세히 보면 다양한 내용들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 지난주에 보았던 내용에 이어서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할게요.
지난주에 보았던 1장 내용은 뭐였죠? 불륜을 저지르고 막 한탄하면서 돌아와달라고 하는 여인과 같은 이야기였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시고 백성들을 없애셨고, 주변 나라들은 나를 조롱하고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주님꼐서 도와달라!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이어서 등장하는 2장은 그 아픔의 내용을 조금 상세하게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진노를 하셨는가.
야곱의 모든 거처를 삼키시고 사방으로 불과 같은 진노를 쏟으시고 초막과 성벽을 헐어 버리셨다. 이 때문에 모든 백성들이 슬퍼하고 기절하고 외치고 있다. 주님께서 진노하시면 피하거나 남을 자가 없다.
이렇게 하나님의 심판하심을 아주 처절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본 3장의 내용이 등장하는데요, 3장은 그 내용이 66절로 긴 것처럼 한 장 안에서 내용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비유함으로 표현합니다.
어둠안에 걸어가게 하시고, 사슬을 무겁게 하시고 나를 화살의 과녁으로 삼으사 내 허리를 맞추시고,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재로 나를 덮으신다.
이 내용들을 보면 어떻게 이런 비유를 쓸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정말 다양하게 그 슬픔과 아픔을 그리고 있죠.
그런데 21절부터 노래의 분위기가 변화합니다. 바로 화자의 시선이 절망에서 소망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이죠.
자신의 아픔이 쑥과 담즙을 먹는 것처럼 아주 쓴 기억으로 남았지만, 그 쓴맛이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당시, 어린양과 무교병과 함께 쓴 나물을 먹었던 유월절을 기억하게 했기 때문이죠.
우리도 그런 경우들 많죠? 요즘 흑백요리사도 인기인데, 우리는 맛을 통해서 이전의 기억을 찾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방송에서도 안성재씨가 급식대가의 음식을 먹고 이전 학창시절을 떠올리는 것처럼 말이죠.
오늘 애가의 화자도 그랬던 것입니다. 쑥과 담즙을 통해 이전의 유월절이 떠오르고, 그 유월절을 기억하면서, 힘든 애굽에서의 종 생활로부터 백성들을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되었던 것이죠.
그렇기에 화자의 노래는 그저 재난과 진노를 슬퍼하는 것에서 조금은 방향을 바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의 노래로 변화합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 힘든 삶 가운데 있지만, 분명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니, 우리는 잠잠히 기다리자.
결국 이 고난도 우리의 죄 때문이고, 주님께서 그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 죄를 통해 우리가 더욱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함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다시 주님께 돌아가야 한다. 우리가 지금 고난을 겪고 눈물이 흐르고 슬픈 상황이지만,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실 때까지이고, 그 날은 분명히 올 것이다.
그리고 바로 오늘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어떤 내용이었죠?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도우심을 구합니다.
심히 깊은 구덩이, 즉 극심한 고난 속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고, 주께서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으니 외면하지 마시옵소서.
주님이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 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하셨습니다.
애가의 화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소망의 마음을 주셨기에 자신의 모든 슬픔과 도움의 소리를 들으셨음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외로웠던 마음이 눈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끼죠.
하지만 화자에게 한가지 더 필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59절의 내용이었죠.
주님, 그러면 지금까지 제가 억울한 것들 다 보셨으니 나를 위해 그거 갚아주세요.
저들이 보복하고 비방하고 모해하는 것들 주님이 다 들으셨으니 주님의 뜻대로 그들에게 갚아주세요.
그들에게 저주를 내리시고 진노하여 주셔서 그들을 멸하여 주세요.
여기까지가 바로 우리가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결국 3장의 세 부분은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부분은 하나님의 진노로 인한 나의 아픔. 두번째는 그럼에도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소망. 마지막은 지금까지 나를 비방하던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어떤가요. 사실 요렇게만 보면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죄는 자기가 지어놓고 괜히 하나님한테 매달리고, 받아주니까 갑자기 뭐 또 해달라고 하고. 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오늘 말씀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냐. 바로 우리가 그러한 생각 가운데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면요, 하나님은 그렇게라도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이러한 마음들이 있을 수 있다는 거에요.
내가 이전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어. 그것도 너무 잘못된 모습으로 행했어.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조차 부끄러워서 이전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못할 것 같아.
죄인인 내가 이전처럼 행하면 안될거야. 나는 할 수 없어.
이러한 마음들로 인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피하는 모습들이 있을 수 있다는거에요.
그래서 오히려 하나님이 아닌 다른 자리에 있으려고 한다는 것이죠.
왜 이러한 마음이 생길까요? 방금 우리가 애가의 화자를 보았던 것처럼, ‘에이 저러면 안되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해?’ 라는 마음으로 나는 저렇게 살지 않을거야! 로 저렇게 행한다라는 겁니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과 행동은 나름의 겸손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나는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기에, 오물 투성이 인간이기에 주님께 갈 수가 없습니다.
논리만 보면 겸손해보일 수 있죠. 보통 우리가 삶에서 저런 이야기들을 잘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요, 여러분들이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요,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방금 그 논리는, 겸손이 아니라 오히려 교만의 결과입니다.
왜 그럴까요? 잘 생각해봅시다. 방금의 논리는 어떤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죠? 내가 하나님 앞에 죄인이야. 너무 죄가 많아. 그래서 나는 더러우니까 하나님께 나아가면 안돼. 라는 거잖아요.
자 그러면 한번 봅시다. 여기서의 판단의 주체는 누구일까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내가 더럽고, 내가 생각했을 때 죄가 많고, 내가 생각했을 때 나는 나아가면 안돼. 온통 나 자신의 판단입니다.
나 자신의 판단이라면 그 기준은 뭘까요. 나의 생각, 나만의 기준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보면 뭐에요? 내가 죄가 많고 부족하다는 나의 생각은 무조건 옳다! 라는 논리인거에요. 이게 어떻게 겸손이겠어요. 오히려 교만입니다.
여러분, 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나요? 왜 우리에게 원죄라는 것이 생겼죠?
아담과 하와가 뭘 먹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기 때문이었죠.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이 열매를 먹으라고 뱀이 유혹할 때, 어떻게 유혹했는지 기억하시나요?
이 열매를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사단이 거짓말로 속이는 것 같지만, 사실 뱀의 이 발언은 완전히 거짓말인 것은 아닙니다. 진실이 섞여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여기서 사단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고 했던 것은, 이 열매를 먹게 되면 선과 악에 대해서 알게 되고, 선과 악을 판단할 수가 있다! 라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매를 먹고 난 후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말대로 눈이 밝아져 선과 악을 알게 되었죠. 그런데 문제는 원래 선만 알았는데, 악도 알게되었다는 것에 있었죠.
그래서 타락을 하고만 것이죠.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무슨 의미였냐면, 결론적으로는 악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 선과 악에 대한 판단의 권리는 오직 하나님의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것을 자신들이 판단하려 했으니,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것이고, 그것은 하나님 권위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었죠.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죄로 남아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판단이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엄청난 교만이자 죄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길로 가도록 사단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했던 뱀처럼 여러분들에게 동일한 유혹을 합니다.
‘너가 그렇게 사는데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어?’
‘너 바로 얼마 전에 그렇게 안산다고 기도했잖아? 하나님이 이제 널 싫어하실거야.’
우리 스스로 자신을 판단하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 자신을 심판하도록 하는 것이죠.
하지만 심판은 오로지 누구의 것이죠?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회에서 재판을 할 때 아무리 피고가 스스로 사형해달라 해도 재판장이 사형을 선고해야 사형이 확정되는 것처럼,
아무리 내가 스스로 나를 어떻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정말 나를 규정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나를 규정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진정한 재판장이신 하나님 뿐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판단하실까요?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것처럼, 아무리 못나고 철면피처럼 있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불러주시고 사랑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그의 자녀라고 인정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셨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실 비유들 중에 탕자의 비유가 있죠. 여러분들 잘 아실테니까 자세하게는 이야기 하지 않을게요.
사실 탕자로 칭해지는 부자의 둘째 아들이 한 짓은 어땠나요? 정말 인면몰수라고 할 정도로 죄에 죄가 더해졌습니다.
아빠 죽지도 않았는데 유산달라고 하고, 유산 줬더니 다른나라에서 흥청망청 쓰다가 쫄딱 망해버리고, 그러다가 결국 다시 돌아온거잖아요.
사실 여기서는 돌아오는 것 자체가 욕먹을 일이 될 수 있을거에요. 저 꼴을 하고 어떻게 다시 돌아와! 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아버지가 어떻게 해요? 거지꼴이 된 아들을 버선발로 뛰어나가 붙잡고 새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워주고 잔치를 벌인다는 것입니다.
무슨 이야기냐? 아무리 막돼먹고 잘못만 했어도 다시 돌아오면 아들로 인정해준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인정해주면 그냥 끝난겁니다. 첫째 아들이 반발을 해도 바뀌지가 않는 것이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어떤 모습으로 있든 주님은 우리를 다시 품어주십니다. 그리고 이전과 같이 아들로 불러주십니다.
그러니 내가 어땠든 하나님 앞에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시 돌아와 주님께 나아왔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그렇기에 오늘 애가의 화자 처럼 하나님 앞에 다시 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금껏 나를 괴롭혔던 저들, 저 죄 많은 자들을 벌해달라고.
이것은 정당한 요구입니다. 왜요? 감히 하나님의 자녀를 괴롭힌 것이잖아요.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죄를 분명 심판하십니다. 우리의 억울함을 다 아시고 하나님의 정의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겪는 수많은 어려움들, 억울함들, 있다면 주님께 말씀드리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구하세요. 분명 주님께서 그의 정의에 맞게 갚으실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어쩌면 여러분들의 마음이 화자와 같이 아프고 괴로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도 없는 것 같고, 도움조차 구할 수 없을 것 같은 마음들.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자녀로 인정하시고 여러분들의 모든 기도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의로우심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든 친구들, 다른 것을 구하지 마세요. 또 나 스스로 판단하지도 마세요. 오직 주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께 맡기시고, 그의 뜻에 맞게 갚으시기를 잠잠히 기대하며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모든 것들이 끝났을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그의 선하심을 보일 것이고, 우리는 그때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보며 ‘아 주님께서 우리에게 함께하셨구나, 주님이 없었다면 우리는 서 있을 수 없었구나’라는 것을, 함께하신 주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하실 것입니다.
돌아오는 한주간 가운데에도 그 사실을 기억하고 믿고 의지하며 오직 주님께 모든 것을 내어놓고 나아가는 우리 모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여호와께 돌아가자
말씀을 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 (찬양: 하나님의 열심)
시험 이후의 삶을 놓고
우리 공동체를 위해 (찬양: 소원)
각자에게 있는 기도제목을 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