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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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창세기 27장 30절 - 45절
찬송 393
타이밍은 항상 그렇다.
야곱에 이삭을 속여 축복을 받고 나온다.
아마도 야곱은 형 에서의 눈에 띄지 않게 축복을 받은 이후에는 가장 빨리 나왔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야곱에 축복을 받고 나가자마자 에서가 들어왔다고 말한다.
이삭이 야곱이 에서인지 묻고, 또 준비해온 음식을 음미하며 천천히 먹고,
그리고 손을 만지고 입을 맞추고 축복을 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진행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서는 야곱이 나오고 나서 바로 등장한다.
성경의 타이밍이 이렇다.
사무엘서에서 사울왕이 불손종하고 자기가 제사를 드릴때 그렇게 제사를 마치자마자 기다리던 사무엘이 등장하는 것과 같다.
에서는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아버지에게 음식을 만들어 가져갔다.
그리고 신나게 말한다.
아버지, 저에게 이제 마음껏 축복해 주세요.
이삭은 그제서야 찾아온 에서로 인해 깜짝 놀라게 된다.
너는 누구냐? 처음 이삭이 변장한 야곱에게 물었던 질문을 그대로 에서에게 묻는다.
여기서 야곱의 대답도 그리고 에서의 대답도 동일했다.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둘 다 아버지의 맏아들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즉, 내가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중복되는 상황에서 이삭의 반응은 두려움이었다.
하나님이 주신 권한으로 아버지로써 축복을 베풀었는데 그 대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앞에 잘못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 반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베풀며 기도한 축복은 결코 번복되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33절 이삭이 심히 크게 떨며 이르되 그러면 사냥한 고기를 내게 가져온 자가 누구냐 네가 오기 전에 내가 다 먹고 그를 위하여 축복하였은즉 그가 반드시 복을 받을 것이니라>
하지만 그에게 다시 축복해 줄 수 없었다.
에서인줄 알고 야곱에게 했던 축복을 다시 거두어들을 수도 없었다.
하나님의 축복은 신적인 약속이기에, 그것을 함부로 취소하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을 빈다는 것이 이처럼 무거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에서는 야곱의 이름을 다시 한번 분노한다.
그의 발 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사람이었지만(야케브)
발음이 비슷한 것처럼 속이는(아카브) 그래서 에서의 모든 것을 다 빼앗은 자가 되고 만 것이다.
에서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울며 이삭에게 매달렸다.
하지만 이미 야곱에게 축복을 베풀었기에 다시 베풀수는 없었다.
다만 이삭은 야곱에게 베푼 복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선포했다.
그는 야곱에게는 기름진 땅에 살기를 축복했지만 에서에게는 기름진 땅, 이슬이 내리는 땅이 아닌 곳에서 살며
칼을 의지하며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한 아우를 섬기며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힘을 길러야 동생의 그늘아래서 벗어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축복이 아니라 냉정한 결과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권한이 결코 장난스러운 것이 아니라 번복이나 돌이키지 못할만큼 준엄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에서가 당장 눈앞의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죽 한그릇으로 장자의 권한을 팔때는 아마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에서는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 모든 것을 빼앗긴 것이 얼마나 허무한 상황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이렇게 형을 두번이나 속이고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은 야곱은 승리자인가?
세상적인 관점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성경에서 보면 이것은 그에게 또 다른 고난의 시작,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 되었다.
그러므로 야곱이 이렇게 두번이나 형을 속이고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해서 야곱이 통쾌한 승리를 얻었다고 볼 수 없다.
그는 형 에서의 분노를 피해 도망해야 했고, 그의 도망의 여정은 훗날에도 계속이어진다.
그는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있다가 다시 나올때에도 도망하듯 나와야만했다.
35장을 보면 세겜에서도 디나의 사건, 하몰의 사건으로 인해 그 땅을 도망하듯 나와야만 했다.
형을 속인 대가가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으로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 한가지 언어의 유희: 축복은 히브리어로 바라크이다. 축복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도망하다는 히브리어 동사는 바라흐(헤트)이다.
마지막 자음이 다르지만 발음은 거의 비슷하다.
그렇게 축복을 받기 위해서 기를 쓰고, 속이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그 결과는 결국 도망하는 것이었다.
야곱의 가정 - 누가 승자인가?
축복을 받기 위해 속이고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을 사용한 결과는 어떻게 나오는가?
이삭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잘못 축복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두려워 떨게 되었고
에서는 동생에 대한 미움이 깊어져서 죽이고 말겠다는 결심을 수십년간 하게 된다.
분노로 인해 동생을 죽였던 가인처럼 에서의 마음속에는 동생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분노가 타오르게 되었다.
두번 씩이나 자기의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일어난 것이다.
기를 써서 무리를 해서 야곱에게 축복을 받게 했던 리브가는 그녀대로 사랑하는 두 아들이 서로 화목하고 우애하기 보다는
축복으로 인해 서로 죽이려 하는 기막힌 현실을 보아야만 했다.
졸지에 두 아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가져야 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둘을 떼어 놓아야 했고, 그는 처음에는 에서의 분노가 가라앉기까지 당분간
일정 시간동안만 기다리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랑하는 아들을 20년동안 만나지 못하는 생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승자인가?
이 가운데 누가 웃을 수 있는가?
이 가족에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인가?
사람의 생각과 방법은 결국 이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는 결과를 보게 된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지 않게 될 때에 결과가 이렇게 된다는 것을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복을 구하며 찾아가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모두가 얻은 것이 없는, 모두가 힘든, 모두가 어려워하는, 모두가 상처뿐인 결과가 되는 것이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삶을 우리의 선택에 내버려 두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