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의 어두워진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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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7장 1-5절
찬송 397 401
1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 맏아들 에서를 불러 이르되 내 아들아 하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2 이삭이 이르되 내가 이제 늙어 어느 날 죽을는지 알지 못하니
3 그런즉 네 기구 곧 화살통과 활을 가지고 들에 가서 나를 위하여 사냥하여
4 내가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와서 먹게 하여 내가 죽기 전에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게 하라
5 이삭이 그의 아들 에서에게 말할 때에 리브가가 들었더니 에서가 사냥하여 오려고 들로 나가매
하나님의 약속으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허락하셨다.
처음에는 그것이 더디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75세에 약속을 주시고 100세까지 20년이 훨씬 넘는 시간동안 기다리게 하셨으니 얼마나 기다림의 세월이 힘들었을까?
그러나 결국 그 기다림으로 인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셨고
그 기다림을 통해 믿음은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 내려놓게 하시고
하나님만이 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과정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26장에서는 그 약속의 자녀인 이삭의 삶을 온전히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씨앗으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이삭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온유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꾸준한 사람이었다.
다툼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다 알지 못하기도 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함이며
우리가 평생 하나님앞에 흔들리지 않아야할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가 거주한 곳은 네게브땅의 중심도시인 브엘세바였다.
그리고 27장은 세월이 흘러 이삭이 나이가 많은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가 그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는 삶을 살았고 이제 그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 그 뒤를 이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앞에서 야곱은 에서의 장자권을 죽 한그릇으로 사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축복의 권리를 다시 한번 가로채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서로 각기 다른 대립과 갈등이 나온다.
먼저는 이삭과 리브가의 갈등이다.
이삭은 보편적인 과정대로 큰 아들인 에서를 축복하기를 원했고,
아내인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동생인 야곱이 축복을 받기를 원했다.
에서는 자기가 당연히 축복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를 따라 자기가 형인척 해서 축복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둘의 갈등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가신다.
27장의 첫 시작은 이삭이 나이가 많아졌다는 것과
그리고 그의 눈이 어두워졌다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것은 마치 사무엘상에 나오는 엘리 제사장처럼 그가 육신의 눈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도 같이 어두워지고 있음을 담고 있다.
그는 먼저 그의 큰 아들을 불러 사냥해서 짐승을 잡아 그것으로 음식을 만들어 자기에게 갖다주라고 했다.
그러면 그것을 자기가 먹고 기쁘게 아들을 축복해 주겠다고 했다.
이를 통해 이미 이삭은 처음부터 큰 아들 에서를 축복해주려고 하는 마음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의아한 것은 이삭이 에서에게 계속 짐승을 잡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오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3-4절을 주목하여 보라.
축복을 베푸시는 그리고 이루어가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여기서 주체는 계속 이삭으로 나온다.
계속적으로 나를 위해, 내가 즐기는 별미,- 자꾸만 자신을 위해 해주면 내가 축복해주겠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상하지 않은가?
앞서 에서도 야곱이 만든 음식으로 인해 자기의 어리석음으로 그것을 먹기 위해 장자의 권리를 팔았는데
여기서 이삭이 또 다시 음식을 먹고 축복해 주겠노라고 한다.
결국 음식으로 인해 이삭은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축복을 하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여기서 두가지 내용을 살펴보려 한다.
먼저는 앞서 26장 34-35절에 나온다.
<창 26:34-35절>
34 에서가 사십 세에 헷 족속 브에리의 딸 유딧과 헷 족속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니
35 그들이 이삭과 리브가의 마음에 근심이 되었더라
여기서 에서는 마치 아버지 이삭과 같이 40세에 결혼을 했다고 나온다.
(20 이삭은 사십 세에 리브가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았으니 리브가는 밧단 아람의 아람 족속 중 브두엘의 딸이요 아람 족속 중 라반의 누이였더라)
그러나 이삭과는 많이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먼저 34절에 보면 두 사람의 아내가 나온다. 바로 유딧과 바스맛이다.
성경은 일부일처제를 말한다.
그러나 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라 자기 욕심과 자기 의지대로 두 사람의 아내를 거느렸다.
또한 이삭은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기도했다.
리브가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이삭을 만나러 나왔다.
그리고 이들의 부모와 심지어 아브라함의 종조차도 순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기도하며 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진행했다.
그러나 에서는 그런 면이 없었다.
그저 자기 눈에 보기 좋은대로 자기가 주도적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에서는 가나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멸망당할 가나안 족속의 딸과 결혼했다.
이 모든 일로 인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는가?
35절에 보면 에서가 아내를 맞이한 것이 부모의 근심이 되었다는 것이다.
결국 에서는 부모의 근심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또 한가지는 로마서 9장에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하여 로마서는 무어라고 말하고 있는가?
<로마서 9장 10-14절>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하나님이 선택안에 들어있다.
누구를 선택하는가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주권이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아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 이렇게 선택했느냐 하는 것은 마치
토기장이에게 진흙이 왜 나는 질그릇으로 만들고 다른 것은 다른 그릇으로 만들었느냐고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보자.
에서가 자기의 생각으로 가나안 여인인 두 아내를 선택하여 부모에게 근심이 되었는데,
이삭은 자기가 먼저 생각하고 선택한 에서에게 축복을 한다고 하여 하나님의 또 다른 근심이 되지 않을까?
앞서 본 것처럼 선택의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삭의 선택도 아니요 리브가의 선택도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계획하심에 따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심을 보게 된다.
사람은 연약하다.
그래서 실수하기도 하고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내가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무언가를 시도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하심에 맡겨 드려야 한다.
결국 하나님의 계획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구원의 여정이기 때문이다.
기도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의 계획속에 우리가 들어가 그분의 은혜아래 순종하게 하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