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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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7장 1-10절
찬송 약속 믿음(주님 약속하신 말씀위에서)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언약을 주시는 하나님
16장과 17장 사이에는 시간적인 흐름이 있다.
16장의 하갈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약 13년의 세월이 지나 아브라함이 더 나이가 많아질때 나타나셨다(이스마엘을 낳을 때 이전은 86세이다)
창 16:16절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였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99세때에 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알려주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분이다.
그것은 하나님앞에서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이런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히브리어로는 엘샤다이-샤다이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능력의 하나님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 하셨다.
완전하다 - 이미 창세기 6장 9절에서 노아에게 사용된 말이다.
이 단어가 신약에서는 흠이 없는 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람이 하나님앞에서 흠이없는 모습으로 서기를 원하신 것이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불안함이 있었다
육신의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현실은 여전히 약속을 이어갈 아이가 없었고
그래서 그는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다.
그의 방법대로 되지 않을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먼저 다가와주시고, 약속을 맺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어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셔서 그에게 언약을 맺겠다고 하셨다.
이것을 은혜의 언약이라고도 한다.
왜냐하면 은혜는 곧 값없이 주는 선물과도 같은 것이다.
조건이 걸려 있다면 은혜가 아니다. 선물이 아니다.
대가를 바라면 선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애도 조건을 건게 아니라 하나님편에서 주시는 선물과도 같은 언약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후손을 통해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또한 약속된 땅을 주시겠다고 했다.
민족과 땅을 약속으로 주신 것이다.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어떻게?
이전까지는 계속 아브람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브라함이 된다.
아브람은 큰 집의 아버지, 고귀한 아버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는 충분한 이름이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약속을 주시며 더 넓은 의미를 담게 하신 것이다.
비록 한글자이지만 그 의미는 훨씬 더 커지게 된다.
열방의 아버지,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히브리어)로 불러 주신 것이다.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정체성이 바뀐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아브람의 정체성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신 것이다.
온 나라와 민족을 품는 아버지로 그의 정체성을 바꾸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나의 모습을 바라고 기대하신다.
아내 사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래도 마찬가지로 고귀한 어머니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라로 이름을 바꾸어 열방을 품는 어머니로 넓혀 주셨다.
사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꾸어 정체성을 변화시켜주신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 남자들이었다.
아브람이 변하여 아브라함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
시몬이 베드로가 되었고,
바울이 사울이 되었다.
하지만 이름을 바꾸어주신 여인은 사실 사라가 처음이다.
그만큼 하나님께서 이들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약속을 크게 보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약속을 이어가는 중요한 출발점으로 삼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앞으로도 후손을 통해서도 계속 이어가실 것을 알려 주셨다.
(왜? 하나님의 선택의 은혜이다)
할례를 행하라(10절-)
할례는 난지 8일만에 사내아이의 표피를 베는 것이다.
8일은 한주일을 지낸 이후의 시간이다.
레 12:2절에 보면 아이는 7일간 부정하기에 그 기간을 지나서 시행하는 의미도 있다.
<레12:2>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인이 임신하여 남자를 낳으면 그는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곧 월경할 때와 같이 부정할 것이며
당시에 출산하는 아이들이 직후에 사망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기에 일주일을 지켜보아
그때까지 살아있는 아이가 이후에 건강하게 성장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한주를 경험하는 의미도 있다.
그래서 할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하셨다.
앞에 이름을 바꾸어주신 것과 연결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단 하나 그들이 하나님앞에서 거룩한 백성으로 서는 것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었다.
아브라함의 웃음 - 하나님이 주신 이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이름을 이렇게 바꾸시면서 이스마엘이 아닌 이 둘을 통해 약속의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지극히 인간적인 상식으로 생각하며 이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쓴웃음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웃음은 불신과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의심이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것을 잊지 말라고 그 웃음을 그대로 이름으로 미리 알려 주셨다.
<창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창 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은 사람의 생각과 상식을 뛰어넘는 분이시다.
그분의 약속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 약속으로 인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소망과 은혜를 입었다.
아브라함에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이후에 그대로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것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이루어질 것을 바라보고 기대하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하나님은 이 믿음을 우리가 이어가길 원하신다.
아브라함이 믿고 약속을 맺은 하나님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하나님이 되시며
나에게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다가오기를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