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을 위한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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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views복음을 위한 투자가 있는 지혜로운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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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7일 주일 오전예배 설교문
설교제목: 복음을 위한 투자
설교본문: 전도서 11장 1절-6절
설 교 자: 박 동 길 목사
오늘 사임 인사를 드리는 주일에 귀한 오전예배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 서울에 올라가 새로운 목회지에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드리고, 저 또한 베풀어 주신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않고 제4영도교회를 위해서 늘 축복하며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함께 나눈 본문의 말씀으로 “복음을 위한 투자”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다 돈이 많았으면 좋겠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제일 간단한 방법은 저축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단순한 저축을 넘어서서 재테크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목표한 돈이 수중에 있으면 그것을 잘 지키려고 했는데, 요즘에는 그 돈으로 주식이나 펀드를 해서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합니다. 또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승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하면 사업을 더 확장 시킬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이런 것들은 내가 어떻게 투자를 해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을까에 대한 경제활동들입니다. 꼭 돈 뿐만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고, 외모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성형수술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선포하고자 하는 말씀은 물건이나 물질에 관련된 것은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투자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교회가 영혼에 대하여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효과적으로 투자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성경적으로 살펴보고 영혼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영혼에 대하여 투자해야 할 영역들은 참으로 넓습니다. 나이별로 살펴보면 유아와 영아, 유치부, 유초등부, 중고등부 주일학교, 청년부, 장년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교회는 나이에 상관없이 배워야 되는 곳이고, 가르쳐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어른들도 주일 학교에 포함됩니다. 이렇게 교육부서로 나누는 것뿐만. 사역과 활동 영역에 따라서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각 손 모임, 남전도회, 여전도회, 봉사부, 구제부, 선교부, 재정부, 새가족부 등으로 구분할 수도 있고, 화요 성경반, 목요전도, 토요 토스트 전도 또 11월 3일에 있을 VIP 초청 주일 등 교회의 사역에 따라서도 교회가 투자해야 할 영역을 수도 없이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전도서는 특별히 이러한 영적인 부분에 투자하는 지혜로운 삶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먼저 전도서 11장 1절의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라는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처음 읽는 분들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귀한 음식을 왜 물에 던지라는 것일까요? 이는 낭비가 아닐까요? 그러나 이 구절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면 그 깊은 의미가 드러납니다.
고대 근동 지방, 특히 이집트에서는 매년 나일강이 범람했습니다. 7월부터 11월까지 계속되는 이 범람은 언뜻 보기에 재앙 같았지만, 실상은 큰 축복이었습니다. 범람은 비옥한 토양을 육지에 퇴적시켰고, 이집트를 세계적인 곡창지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현명한 농부들은 이 범람기에 물에 잠긴 땅에 씨를 뿌렸습니다. 물 위에 씨를 뿌린다는 것은 얼핏 보면 엄청난 낭비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물이 빠진 후, 그 씨앗은 기름진 토양에서 놀라운 수확을 가져왔습니다.
또 다른 해석으로, 이 구절은 페니키아 상인들의 무역 활동을 빗댄 것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배에 실어 지중해를 건너 먼 항해를 떠났습니다. 당시에는 기상예보도 없었고, 해적의 위험도 있었으며, 항해술도 미숙했기에 이는 매우 위험한 투자였습니다. 그러나 무사히 돌아오면 원금의 수백 배에 달하는 이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의미 있는 투자에는 위험이 따릅니다. 안전한 투자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달란트 비유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다섯 달란트를 받은 종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모두 투자의 위험을 감수했습니다. 그들은 실패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인을 신뢰했기에 담대히 투자했고, 결국 100%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반면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어땠습니까? 그는 ‘안전한 투자’를 선택했습니다.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것이죠.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그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투자에는 ‘안전한 방관’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투자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험입니다.
일전에 제가 들었던 한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분은 북아프리카의 한 무슬림 국가에서 사역하고 계시는데, 처음 5년 동안은 단 한 명의 개종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현지 경찰의 감시와 위협도 있었고, 질병과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목숨의 위협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 한국의 후원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교사님, 이제 그만 철수하시는 게 어떨까요? 5년 동안 아무 열매도 없는데, 그곳에 더 계실 필요가 있을까요?” 인간적으로 보면 당연한 제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이곳에서 씨를 뿌리고 있다고 믿습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때가 되면 반드시 싹이 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6년째 되던 해, 첫 세례자가 나왔습니다. 그것은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 같았습니다. 그 후로 조금씩 믿는 자들의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작지만 건강한 현지인 교회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물 위에 떡을 던지는” 믿음의 투자가 아니겠습니까?
특별히 본문 전도서 11장 2절에서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지듯 투자를 하되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누어 줄지니 무슨 재앙이 이 땅에 임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숫자의 나열이 아니라,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이 투자하고 다양한 기회를 시도하라는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많이 시도하다 보면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다양한 투자와 노력을 통해 우리가 회복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여기서 투자라는 개념을 단순히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간, 에너지, 그리고 관계 속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한 농부의 이야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농부는 일 년에 한 번씩 수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여러 가지 작물을 동시에 심기로 결정했습니다. 물론, 그 중 몇 가지는 잘 자라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해충으로 인해 일부 작물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작물을 심어두었기 때문에 그 중 다른 작물은 대풍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농부는 한 가지 작물에만 의지하지 않고 여러 가지로 분산해서 심은 덕분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기보다는 여러 방면으로 시도하고, 다양한 기회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 중 몇 가지는 실패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을 보시고 결실을 허락하십니다. 이는 우리가 영적인 영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 전파에 있어서도 단 한 번의 시도나 단 한 명에게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많은 씨를 뿌리면, 그 중 일부는 좋은 땅에 떨어져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도 여기서 연결되는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이 비유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맡깁니다.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종들은 열심히 투자하여 그 달란트를 배로 늘렸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재산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각자 자신이 받은 달란트에 맞게 여러 가지로 시도하여 이익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1달란트를 받은 종은 달랐습니다. 그는 혹시나 실패할까 봐 두려워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주인에게 크게 혼나고, 자신의 달란트를 빼앗기기까지 했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각자 맡기신 달란트, 즉 우리의 재능과 시간, 자원 등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아무 결실도 맺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불의한 종으로 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서 본문 3절과 4절은 이와 반대로 걱정과 두려움만을 앞세우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처하게 될 결과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본문 3절입니다. “구름이 가득하여 비를 내리게 되면 땅에 쏟아질 것이요, 나무가 남쪽으로나 북쪽으로나 쓰러지면 그 쓰러진 곳에 그냥 있으리라.” 이 구절은 우리에게 불확실성에 대한 경고와 동시에 현실적인 교훈을 줍니다. 비가 오거나 나무가 쓰러지는 일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자연의 현상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만 살면, 우리는 아무런 열매도 맺을 수 없습니다.
본문 4절은 계속해서 이렇게 이어집니다. “풍세를 살피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풍세를 살피는 자’는 모든 상황을 너무 신중하게 살피느라 정작 행동을 미루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리는 때로는 상황이 완벽하게 준비되지 않았어도,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농부가 날씨만 바라보면서 파종을 미룬다면, 결국 아무 것도 거두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 동안, 복음을 전할 기회는 지나가고, 영혼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로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그는 매번 씨를 뿌릴 때마다 “이번에는 실패할지도 몰라"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날씨를 살피고, 바람이 불지 않는 완벽한 날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날씨는 언제나 변덕스러웠고, 완벽한 조건은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씨를 뿌릴 타이밍을 놓쳤고, 그 해 수확은 전혀 얻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는 깨달았습니다.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이후로 그는 상황이 조금 어렵더라도,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올지라도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예상치 못한 풍성한 수확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의 영적인 삶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완벽한 기회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상황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행동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 선한 일을 하는 일,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우리는 두려움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하나님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도전’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무엇이든 시도할 때, 실패나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결코 성공이나 축복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환경을 아시고, 우리가 씨를 뿌릴 때 그 결과를 맡기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자원을 가지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 가장 지혜로운 투자,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가장 가치 있는 투자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야 하는 투자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전도하는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 개신교 교인 숫자가 700만 명이라고 합니다(사실 이 숫자도 허수가 많고 이단들도 포함된 숫자입니다). 불과 10~20년 전 만 해도 한국교회 교인 수는 1000만 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한국교회는 쇠퇴기로 접어들었습니다. 정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심각하게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많은 종교학자들, 교회 지도자들은 10~20년 후에는 한국의 기독교인의 수가 300만이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합니다. 이제 우리나라 역시 유럽의 교회처럼, 교회건물에 사람이 없고 텅텅 비어서 거미줄이 쳐져 있거나, 교회 건물이 술집이나 유흥업소로 바뀌는 일들을 심심치 않게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막연히 교회 나오고, 예수님 믿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앞으로의 일, 미래의 교회를 위해 투자하지 않고 전도하지 않으면 10~20년 후의 교회의 모습은 지금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참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목사가 교회에서 ‘전도하자’고 하면 성도님들은 마음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저 역시 마음에 부담이 큽니다. 하지만 교회는 지금 현재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에 부담이 생겨도 내가 조금 힘이 들어도 영혼의 때를 위하여 복음을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전도해야 하는 구체적인 대상은 누구입니까?
먼저, 다음 세대입니다. 전도가 가장 굳건하게, 가장 바르고 또 빠르게 영향력을 미치며 전파되는 방법은 어린 아이들을 믿음으로 잘 양육하는 일입니다. 믿는 가정에서 부모가 신앙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일, 교회학교에서 교사가 말씀으로 아이들을 양육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일을 가장 느린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당장 눈앞에 결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부흥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신앙을 심어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 젊은 세대가 교회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 아이들은 우리 교회의 미래 이자, 희망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심어주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일은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투자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논리를 투영시켜서 당장 투자할 가치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라고 해도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애들이 뭘 아노? 애들은 돈이 안 돼.”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실제로 종종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영적인 밭과 같습니다. 오늘 심은 씨가 자라나서 나중에 큰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유치부, 초등부, 중고등부, 청년부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이 세대들에게 신앙을 심고 그들을 영적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마 19:14)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이 주님 안에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은 교회와 성도들이 반드시 감당해야 할 사명입니다. 지금 눈앞에 큰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영적 투자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린아이들에게 복음을 심어줄 때, 그들이 자라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주역이 될 것입니다.
교회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사실 교회의 다음 세대인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고 가르치는 일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당장 눈앞에 어떤 결과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쉬운 일은 아닙니다. 농부가 1년을 수고하고 고생하여 열매는 맺는 것보다 더 많은 수고와 고생과 인내가 필요한 것이 자녀들을 가르쳐 그 열매를 보는 일입니다. 시간 많이 걸리고 돈이 많이 듭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고 돈이 많이 들어도 투자 대비 가장 큰 효과를 거두는 것은 바로 다음 세대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생각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믿음으로 양육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나이가 들어 어느 교회에 설교하러 갔는데, 제가 우리 교회에서 사역할 때 어렸던 친구들이, 결혼을 하고 직분을 받고 교사로, 찬양대로, 식당이나 운전 봉사 등 여러 섬김의 현장에서 그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내가 가르친 어린 영혼들이 커서 한국교회의 유명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해 있다면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 상상해봅니다. 물론 그런 일이 쉽게 볼 수 있지는 않지만, 우리가 알 수는 없습니다.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가 어떻게 10년 뒤 20년 뒤 일을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수많은 교육 방법을 동원하여 말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우는 것입니다.
혹시 성도님들 가정에 아직 믿음 생활하지 않는 자녀들이 있다면, 이번 11월 3일 VIP 초정 주일 행사에 일회성이라도 좋으니 초대하셔서 복음의 메시지를 듣게 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자녀들과 다음 세대를 위해 울며 씨를 뿌릴 때 반드시 그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전도 대상은 바로 우리 가장 가까운 가족,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입니다. 사실 이들이야말로 가장 힘든 전도 대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의 실체를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서로의 약점과 강점을 모두 경험했기 때문에, 우리의 변화된 모습이나 신앙의 고백을 때때로 의심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 점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하고 사랑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청소년 시절 저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 두 명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들은 제가 예수님을 믿어 교회를 나가는 가운데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1년이 넘도록 교회에 한 번만 가보자고 권했습니다. 때로는 맛있는 음식을 사주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기도 했습니다. 그들과 교제를 나누며 기회가 될 때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다음에 가겠다"거나 “바쁘다”며 핑계를 대며 교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제 마음은 허탈해지고,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매번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새로운 힘을 주셨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주셨습니다. 친구들을 위한 기도는 절대 멈추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는 일은 씨를 뿌리는 것이다. 그 씨가 언제, 어떻게 자랄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 하지만 네가 씨를 뿌리지 않으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다.”
이러한 경험은 저에게 아주 중요한 교훈을 주었습니다. 전도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영역이지만, 씨를 뿌리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몫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의 씨앗이 어디에 떨어져도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그 씨를 뿌려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하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이 비유에서 씨는 복음의 말씀을 뜻하고, 땅은 사람의 마음을 뜻합니다. 씨를 뿌리는 자는 씨를 다양한 땅에 뿌립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져 새들에게 먹히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또 어떤 씨는 가시덤불 속에 떨어져 자라다 결국 막히고 맙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 비유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씨를 뿌리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언제 어떻게 결실을 맺을지 모른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좋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것입니다주변에 친구들보다 더 시급한 것은 가족 전도 일 것입니다. 불신 가정에서 나 홀로 예수님을 믿는 분들의 말 못할 가슴앓이가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라 할 수 있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실수나 부족함을 기억하고, 우리가 말하는 신앙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때가 많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서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실수나 부족함을 기억하고, 우리가 말하는 신앙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 때가 많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들과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서 복음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들에게 가장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가족들과 친인척, 그리고 친구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항상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아가는지 매일매일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을 직접 보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미국의 목회자가 가족에게 전도하는 어려움을 경험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부모님이 예수님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복음을 전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늘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불화로 이혼하고 따로 사는 가운데 할머니 손 에 자랐고 성인인 되어 그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의 문이 좀처럼 열리지 않았고 신앙을 권하는 것은 더욱 더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셨습니다. 그때 그는 어머니께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간절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 그동안 전하지 못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어머니께서 병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평안하게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이처럼 가족과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적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랑과 헌신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 친인척들에게 전하는 복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언제 열매를 맺을지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지속적인 노력과 기도를 통해 언젠가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복음이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일하십니다.
우리의 전도는 꾸준하고, 인내하며, 사랑으로 가득 차야 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될 수 있도록 계속해서 씨를 뿌리며,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십시오. 조금 더 희생하고, 조금 더 헌신하고, 조금 더 수고해서 그들이 주님께로 나아오게 하는 귀한 일에 여러분 모두가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세 번째 대상은 지역주민입니다. 우리 교회 이름이 무엇입니까? 제4영도교회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교회 이름은 반드시 지역성을 띄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 이름이 참 좋습니다. 영도구 중심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한진 중공업 맞은 편 언덕에 자리 잡아 예수님이 말씀하신 산 위에 동네로서 세상의 빛으로 세워진 교회가 되어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과 의무가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서 11월 3일 VIP 초청주일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아무쪼록 적극적으로 많이 동참하셔서 영도구 일대 지역 주민들에게 교회 이름을 알리시고, 홍보하셔서,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한 구원과 사랑의 빛으로 세워져 감을’ 삶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라.” 이 구절은 투자하는 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계속해서 돌봐야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고, 전도한 사람 전화도 해야 하고 찾아가서 챙겨야 하고, 차량운행도 해야 합니다. 누가 인정을 안 해줘도, 누가 월급을 안 줘도, 아무 것도 없어도, 오히려 내 돈 들여가면서 섬기고 봉사합니다. 그러면서도 전도한 한 사람, 내 순원, 우리 반 학생들이 신앙생활 열심히 하면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투자합시다. 다른 어떤 것보다 시급한 것은 한 영혼을 위한 투자, 복음을 위한 투자입니다. 씨를 뿌리고 돌보며 키웁시다. 내가 그 열매 못 먹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아까워서 투자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그 열매 못 먹어도 다른 사람은 먹습니다. 우리가 그 열매 따 먹으려고 그렇게 하는 것 아니잖습니까? 오늘 말씀처럼 이것이 잘 될지, 저것이 잘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이루어 가실 놀라운 구원 역사를 기대하면서 한 영혼이라도 더 잘 되도록 또 심고 또 가꾸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우리의 투자는 세상의 투자와 다릅니다. 교사가 아이들에게 투자하는 일, 온 교회가 전도하고 한 영혼을 하나님 앞에 세우는 일에 투자하는 일, 이것이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그 투자가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반드시 올 줄 믿습니다. 그 믿음 가지고 오늘도 눈물로 씨를 뿌리며, 투자하셔서 반드시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는 복된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