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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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서론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출연하셔서 문제를 맞추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천생연분”이라는 단어를 할머니에게 설명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할머니에게 할멈, 당신과 나 사이를 뭐라고 하지? 네 글자야.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설명을 잘못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뭐라고? 다시 말해봐요.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당신과 나 사이를 네 글자로 뭐라고 하냐구!
할머니는 그제야 알아들었다는 듯이 “평생원수”지.
우리는 관계와 교제 속에서 천생연분처럼 살기도 하고 평생원수처럼 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3가지 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본론
1. 하나님의 입을 닮은 사람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친밀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과 신뢰입니다.
거짓말을 하면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깨집니다. 상대방이 불성실하면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과 성실입니다 .
사람들은 거짓말을 아주 잘 하는 존재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참말과 거짓말을 가려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가려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내 말이 참말이라는 것을 증명할 보증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참말보증서로 사용하는 것이 맹세입니다.
맹세는 구속력이 있습니다. 맹세를 지키지 않았을 때는 자기가 맹세한 대상에 대한 처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맹세는 요즘 말로 하자면 증인, 보증인, 영수증, 증명서와 같은 것입니다.
구약 성경은 맹세를 허용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그러나 거짓 맹세해서는 안 됩니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맹세하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구약에서 맹세를 사용한 목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악용하고 남용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하늘, 땅, 예루살렘, 자신의 머리 등으로 맹세했습니다. 그러고는 이 맹세를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거짓 증명서를 만들고 거짓말을 한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마음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려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하기 위한 합법적인 장치를 만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맹세에 대한 오용과 남용을 질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맹세하지 말라고 한 것은 문자적으로 아무런 맹세도 하지 말라는 차원이 아닙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말 한 마디가 곧 보증 수표가 되고, 영수증이 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는 예, 아니요는 아니요로 말해야 합니다.
예를 아니오라고 하면 사실을 축소 지향적 거짓말이 됩니다.
아니오를 예라고 하면 사실을 과장 지향적 거짓말이 됩니다.
사실을 축소하거나 과장하는 것은 정직과 진실에 위배됩니다.
2. 하나님의 행동을 닮은 사람들
인간에게는 복수심이 있습니다. 원수를 갚으려고 하는 앙갚음의 마음이 있습니다.
복수심이란 자기가 상대방에게 받은 피해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갚으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복수심의 바탕에는 인간의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이 있습니다.
와신상담이라는 말은 복수심을 잘 보여주는 사자성어입니다.
와신은 땔나무 위에 누워서 잠을 자며 복수심을 불태웠다가 결국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상담은 항상 곁에 쓸개를 두고 쓸개의 쓴맛을 보며 복수심을 불태우다가 결국 복수를 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이러한 복수극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에는 통태보복법이 있습니다.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라 생명에는 생명으로,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손에는 손으로, 발에는 발로이니라
이는 복수의 지나침과 과도함을 억제하기 위한 법입니다.
또한 복수는 개인이 아니라 재판관에게 주어진 법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을 오용해서 복수를 장려하는 근거로 사용했습니다.
동태보복법을 공적 심판이 아니라 개인적인 복수의 법으로 사용했습니다.
“악에게 대적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악을 허용하고 내버려 두라는 뜻일까요?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악에 대한 대항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에게 맡기셨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십니다.
악은 대적되어야 합니다. 악에 대해 국가가 범인을 체포하지 않고 형벌을 주지 않는다면 세상은 범죄 천국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세상이 범죄 천국이 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국가는 악을 제어하고, 악을 심판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의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공의의 원리에 따라 복수하기를 넘어서는 은혜의 원리에 입각해서 용서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개인적인 은혜 원리를 세 가지로 예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첫째, 뺨을 때리는 일입니다. 뺨을 때린다는 것은 모욕을 주는 행위입니다.
둘째, 겉옷을 주는 일입니다. 겉옷은 당시 가난한 자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재산입니다. 겉옷은 법적 권리를 말합니다.
셋째, 십리를 걷는 일입니다. 오 리(천 걸음)를 가자는 것은 식민지 백성에게 부여된 강제 노동의 한계선입니다. 로마 군인들은 아무 때나 유대인들에게 오 리까지 짐을 운반하도록 명할 수 있었습니다. 오 리는 국민이 국가에 행하는 최소한의 의무 사항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최소한의 의무만 수행하지 말고, 최대한 의무를 수행하라는 뜻입니다.
죄의 본질은 이기심과 자기 중심성입니다.
하나님보다, 이웃보다 자기 영광, 자기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것이 죄의 원리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바로 예수님의 자기 희생, 자아 포기의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며 살아가는 나의 삶을 보고 세상은 그리스도인인 나를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나 절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3.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사람들
식욕, 성욕, 수면, 배설 욕구 등의 본능적인 욕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사람과 짐승은 비슷합니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혼이 있습니다. 영혼에는 양심과 이성과 도덕성이 있습니다. 이를 가리켜 인격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려면 인격의 존엄성을 알아야 합니다.
신자이든지 불신자이든지 모두 인격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동일합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습니다.
신자들은 하나님을 닮은 자들입니다.
신자들은 예수님과 연합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이 신자 안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이것은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수준입니다.
깡패들도 자기들끼리는 서로 아껴 주고 돌보아 줍니다. 그러나 불신자의 수준은 철저하게 복수의 원리에 따라 살아갑니다.
상대방이 은혜를 베풀면 자기도 남에게 은혜를 베풀려고 합니다. 상대방이 자기에게 피해를 입히면, 자기도 피해를 입히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은 달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원수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으면 악마적인 사람입니다.
선을 선으로 갚으면 인격적인 사람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면 하나님을 닮은 사람입니다.
사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까? 바로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 되어 예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요?
2가지, 일반은총과 특별은총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은총을 악인과 선인에게 골고루 주십니다.
예를 들어, 햇빛이나 비를 악인과 선인에게 모두 주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하나님을 증거하는 성도의 가장 중요한 삶입니다.
원수 사랑은 특별한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은 하나님의 원수 된 죄인들에게도 아들까지 희생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으로 바로 원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불신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신자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한 신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자는 성령으로 마음이 새롭게 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신자가 되었다고 해서 바로 원수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명령은 순종을 필요로 합니다.
작은 사랑이 원수 사랑에까지 자랄 수 있습니다.
결론
결론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