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027 청년교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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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사랑하심

갈라디아서 4:21–31 (NKRV)
21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25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여종의 아들이 자유 있는 여자의 아들과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여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 있는 여자의 자녀니라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를 비유로 이야기를 한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셨다. 창세기 12:1-3 이다.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여러분은 율법에 매여 있습니까? 율법 아래서 자유하십니까?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지나도 자녀가 없었다. 나이는 들어가고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어지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아내 사라의 임신 소식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생각해 낸것이 당시 풍습대로 사라의 여종을 통해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비극은 시작되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들의 행동이 사람들에게 손가락지를 받을 정도로 잘못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당시 풍습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자녀가 생기는 것이 꼭! 사라를 통해서가 아닐 수 있겠구나. 당시 풍습이 여종을 통해서 얻어진 아들도 친아들이 될 수 있으니 하나님이 이렇게 생각하신 것일 수 있다.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사라를 통해 태어난 아들로인해 큰 민족을 이루실 계획이었다.
그래서 인간적인 생각으로 인해 도리어 어려움을 당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사라를 통해 이삭이 태어났고, 이 이전에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당연히 이스마엘이 나이가 많았다. 그래서 어린 이삭을 형인 이스마엘이 조롱하며 괴롭혔다.
오늘 본문에서 율법은 이스마엘로, 복음은 이삭으로 비유한 것이다.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율법을 지켜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자유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율법을 지켜서 받는 것이 아니다. 어떤 행위를 해야 구원을 받은 자로 인정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지난시간에도 말 했듯이 갈라디아 교회에는 율법을 지켜야 참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완전한 구원을 이룬다고 주장하는 거짓 교사들이 있었다.
구원은 은혜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는지 아는가? 우리가 땀흘리며 노력해서 얻을 수 있게 만들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 그것을 더 가치 있게 여기며 살아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게 하셨는지 아는가?
간단하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애써도 구원을 얻을 수 있을만한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또 애를써도 구원의 가치를 따라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해도, 아무리 높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 세상의 것들로 구원과 바꿀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구원은 말 그대로 선물이자 은혜이다. 그런데 거짓교사들이 갈라디아 교회에 들어와 우리를 향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 구원을 세상의 것과 바꿀 수있는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사람의 노력으로 살 수 있는 싸구려를 만든 것이다.
얼마전 바자회에 옷 코너에서 옷을 막 고르고 있었다. 거기서 어느 부부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옷은 사람에 옷을 마추는게 아니라, 옷에 사람을 마추는거야”
명품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 가치이다. 솔직히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상표만 보고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는거 아닌가?
구원의 가치는 우리가 매길수가 없다. 그런데 거짓교사들이 와 구원은 우리가 노력하고 애를써서 얻을 수 있다고 그 가치를 깍아먹는거다.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해서 얻은 성공을 귀하게 여긴다. 그래서 구원도 그렇게 얻어야 가치 있다고 착각을 한다.
그러나 다시한번 이야기 하는데 구원은 우리의 노력으로, 열심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값을 치른다 할지라도 얻을 수 없는것이 구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그 말씀을 듣고 믿느냐 믿지 않느냐, 그런데 사실 선택의 기회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선택 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해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지 아는가? 우리를 사랑해서 이다.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주고싶은 부모의 마음처럼 그저 세상의 좋은 것과 비교도 할 수 없는 구원을 주시기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왜? 사랑해서. 우리를 하나님이 너무나도 사랑해서 그런 것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을 얼마나 위대한지 대단한지 아는가?
그래서 구원을 얻은 이들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하는것이다. 나를 위해 대신 죽으신 그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알아갈 때, 예수님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나를 향한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지는 것이다.
그 사랑이 깨달아지면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삶이 완전히 바뀌는 것이다. 세상이 원하는대로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세상속에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속에 있을 지라도 하나님 안에 있는 나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술마셔도 되요 안되요 이런 질문 안하는것이다.
이 땅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살아갈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까?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까?
어떻게 하면 편하게 살까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이렇게 삶이 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율법은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으니 그냥 무시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Matthew 5:17 NKRV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그래서 바울도 갈라디아 교회에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Galatians 3:24 NKRV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율법이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길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율법이 예수님께로 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는가?
이것에 대해 바울은 로마교회에 이렇게 이야기 하였다.
Romans 3:20 NKRV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우리 중에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율법은 지키라고 만들어 놓으신 것이 아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이 없어보기도 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그들보다 낫다고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애굽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직접 보고 애굽을 나온 사람들이다. 애굽을 나와 갈라진 바다를 건넜던 사람들이다. 광야 40년동안 매일같이 하나님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아갔던 사람들이다. 매순간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으며 살아왔던 사람들이다. 요단강을 건너고 마침내 약속의 땅을 밟았던 사람들이고 성 주위를 도는것으로 인해 성을 무너트린 것을 본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을수가 있겠는가? 구약만 그런가? 절대 그렇지 않다.
신약의 수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직접 봤던 사람들이다. 오늘날 나같은 부족한 목회자의 메시지가 아닌, 예수님의 메시지를 직접 들었던 사람들이다. 병든자가 낫고, 죽은자가 살아난 것을 본 사람들이다. 수많은 기적과 이적을 직접 봤던 사람들이다. 그런 이들이 어떻게 믿음이 없을 수가 있겠는가?
우리가 정말 그들보다 믿음이 좋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그런데 그런 그들도 모세와 같이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과 함께 먹고자며 생활을 했던 그들도 흔들리고 넘어지고 죄가운데 빠졌다. 이 말은 우리의 힘으로 절대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바울이 이야기 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자신들을 보며 나는 예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예수님을 사랑 할 수도, 감사 할 수도 없는 존재이구나…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예수님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이구나를 느끼게 해주는것이 바로 율법이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구원을 얻은 이들은 우리가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거니깐 너무 편하고 좋다!! 이러고 끝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격 없지만 아무 공로 없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 그 값을 치르신 분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은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사랑하시어 불쌍히 여기셨기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셨기에. 그래서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의 생명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기에 우리는 매순간 주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매순간 기억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는 것 아니겠는가?
오늘은 다른것 고백하지 말고 나를 먼저 사랑하신 그 주님 나도 그 주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하는 이시간이 되길바란다. 다른것 구하지 말고 주님 사랑한다고만 고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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