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모든 것을 이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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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의 시작
종교개혁의 시작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합니다. 면죄부를 비롯한 교회의 부정부패를 고하며 교회가 새롭게 거듭나야 함을 95개조 반박문을 통해 고한 것입니다.
이 반박문의 핵심은 3가지 정도로 요약이 됩니다.
면죄부에 대한 비판 : 당시 가톨릭 교회는 성도 혹은 가족의 죄를 면죄받기 위한 용도로 면죄부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세교회는 십자군 원정과 성베드로 성당의 건축에 필요한 재정을 조달하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로써 돈을 주면 죄가 용서받는 다는 잘못된 인식이 생겨나고 심각한 교회의 부패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다 못한 루터를 위시한 많은 종교개혁가들이 면죄부를 비판하며 교회의 개혁을 주장한 것입니다.
신앙과 회개 : 성도의 진정한 회개는 면죄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믿음과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 아래 이루어짐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역할 : 루터는 교회가 성도의 믿음을 돕고 지원해야 하며, 금전적인 이익을 위해 죄의 사면을 보장하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불길처럼 번진 종교개혁은 종교적인 변화를 넘어 사회, 정치, 경제 전반에 걸친 유럽을 뒤흔든 대대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일반 대중은 면죄부를 구입하는 데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했고, 이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기에 루터의 종교개혁을 지지하고 큰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 일로 인하여 루터는 가톨릭에서 출교 당했지만, 그로 인해 개신교(현재 형태의 교회)는 새롭게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부정과 부패 속에서 수많은 사람의 피와 땀으로 태동되어진 “저항하는 자들” 프로테스탄트들입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다섯 가지의 핵심가치를 가집니다.
솔라 스크립투라(오직 성경)
솔라 피데(오직 믿음)
솔라 그라티아(오직 은혜)
솔라 크리스투스(오직 그리스도)
솔리 데오 글로리아(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통해 부패해져버린 교회를 개혁하고 다시 영광스럽게 재건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그 기치를 걸고 이 땅에 세워져 온 열방을 복음화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회는 부패에 저항해야 합니다.
교회는 부패에 저항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새롭게 일어나게 된 개신교는 그 태동 자체가 [교회와 세상의 부정부패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부정과 부패에 저항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교회는 결코 부정과 친구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우리는 진리를 수호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인 프로테스탄트인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제 총과 칼을 들고 불의한 세력들과 싸워야 할까요? 물론 그럴 경우도 생기겠지요.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불의와 죄악에 대해서 어떻게 싸우라고, 어떠헥 저항하라고 하십니까? 선을 가지고 싸우라 하십니다.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불의에 맞서는 도구는 선입니다. 죄악에 맞서는 방패는 사랑입니다.
사랑을 무기 삼으십시오
사랑을 무기 삼으십시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우리에게 다가오는 불의, 불합리, 그리하여 생기는 핍박과 박해들. 그런 자들에게 맞서 싸우는 방법은 축복입니다. 그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축복하고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로마서 12: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심지어 모든 사람 앞에서, 나를 저주하고 비방하는 자들이 있더라도, 우리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부류가 있을 때 우리는 저항해야 합니다. 어떻게요? 선한 일을 도모함으로 부정과 부패에 맞서야 합니다.
계속해서 성경은 이야기하죠. 로마서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요. 모든 사람과 어떻게 더불어 화목할 수 있나요.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 혹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화목하거나 평안하게 인사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크고 작은 미움이 있기 때문이죠.
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주를 치러 일어나는 자들을 미워하지 아니하나이까
내가 그들을 심히 미워하니 그들은 나의 원수들이니이다
다윗은 주를 미워하는 자들을 내가 미워한다고 하며 아주 드물게 미워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하물며 그 위대한 다윗도 미움의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우리 모두가 미움을 이겨내기가 쉽지 않고 감정을 제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명령은 불가능에 가까워보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께 맡기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이라는 무기를 주셨습니다. 원수 마귀에게 대적할 수 있는 전신갑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이라는 무기가 마음에 들지 않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더군다나 상종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자존심 없어 보이고 벨도 없어 보이기에 더더욱 사랑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그들을 직접 저주하는 것으로 상대합니다. 우리 스스로 죄인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때에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까?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원수 갚아주신다고 하시잖아요? 이건 “하나님께서 반드시 악인들을 벌하시고 원수 갚아주실거야” 이렇게 받아들이시기 보다 “나의 마음이 원수 갚는 것에 집중해서 하나님을 향하던 시선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천차만별로 달라집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한동안 기타에 빠져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더 좋은 악기로 찬양하고 싶다는 것이 원래 목적이었죠. 그러다 나의 마음이 어느덧 하나님보다 기타를 더 사랑하고, 나의 시선이 성경보다 기타에 더 가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배 드릴 때도 기타 바꿀 생각에 예배 집중하지 못했던 것도 부지기수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으면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기 힘듭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우리의 원수를 갚겠다고 원수에게 집중할 때에 우리의 시선은 어느새 하나님을 떠나 원수만을 바라보고만 있을 것입니다. 이 얼마나 끔직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결국 우리의 모든 억울함을 해결해주실 것이고 결국 하나님 손에서 모든 일들이 해결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더는 우리의 마음을 미워하는 곳에 쓰지 마시고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시기 바랍니다.
저도 누군가를 대단히 신경쓰고 미워한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떠들고 다니는 말에 지나치게 신경쓰고 왜곡되는 사실에 마음 아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음이 너무 아프고 괴로워서 운동을 하다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그렇기에 당사자를 만나서 이야기라도 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을 다 쏟아놓고 싶습니다.”
그렇게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로 성경 말씀을 들으며 기도하고 있는데, 마침 그 때에 모세에게 반역해서 스올에 빠지는 고라와 그 반역자들의 모습이 기록된 성경말씀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제게 이런 마음을 주시는 겁니다.
“너무 염려하지 말아라. 너를 괴롭게 하는 자들은 내가 고라 자손과 같이 하리라. 내가 나서서 이룰 것이니까 너는 여기에 너의 마음을 쏟지 말아라”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죄송했는지 모릅니다. 나를 대신해 해결하시겠다는 말씀에 감사했고, 그런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 내 문제에 집중했다는 사실에 죄송해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인생을 위해 일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께 모든 원수 갚는 일들을 맡기십시다. 성도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저주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 주변의 모든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 인간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마음으로만 할 수 있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
가장 아름다운 저항이자, 복수인 것입니다.
혐오를 멈추십시오. 사랑으로 저항하십시오.
혐오를 멈추십시오. 사랑으로 저항하십시오.
교회는 혐오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사랑할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을 모욕하지 않습니다. 싸우더라도 사랑으로 싸울 것입니다.
혐오로 얼룩진 오늘날.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불편과 혐오로 얼룩져있습니다. 페이스북, 인스타, 스레드와 같은 SNS를 보면서 저는 요즘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데 익숙할까요?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인격을 모독하는 일이 쉬워졌을까요? 지금의 대한민국은 남여가, 노소가, 좌우가, 그 외에도 너나 할 것 없이 갈라져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고 갈라져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으면 불편해서 인격을 모독하고 악한 말을 아주 쉽게 내뱉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네, 지금의 세상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부패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거룩합니까? 교회는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의 신부된 우리는 정결합니까? 아니요,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합니다.
SNS에 보면 교회조차도 서로의 생각이 다를 때 마치 서로를 죽일 듯이 논쟁을 벌이고 서로를 모욕하는 일이 비일비재 합니다.
어떤 사람은 교회를 향해
그 목사 관상을 봤을 때 알아봤다
추악한 정권의 하수인일뿐이다
또 어떤 사람은
교회의 빨갱이 집단을 없애야 한다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나라를 복음화해야 한다고
강한 말들을 앞세워서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기 기준에 맞는 선동이 아니라 사랑으로 싸워야 합니다. 용납하고 포용하고 인정하고 사랑함으로 싸워야합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우리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영안이 필요합니다.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할지라도 16절의 말씀처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하지 말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해야합니다.
아 그런 사람도 있구나 생각하고 미워하기 보다 이해하기를 먼저 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세상과 싸우는 방식입니다.
혐오를 멈추십시오, 폭력을 멈추십시오.
원수 갚기는 우리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가 우리를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억울하다고 해서 악을 악으로 갚지 맙시다. 악한 길에 들어서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문의 21절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됩시다.
교회여, 우리는 이제 영광스러운 종교개혁 주일에 다시 한번 개혁의 횃불을 높이 드십시다.
하나님 우리는 사랑으로 싸우겠습니다. 원수 갚기는 하나님께 맡기고, 그저 우리는 세상을 포용하고 사랑함으로 부패해져 가는 세상에, 잘못된 길에 들어선 교회의 부정에 대해서 저항하겠습니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우리 주님이 죄인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것으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죄와 권세와 싸우셨고 그 사랑으로 이기신 것과 같이 우리도 사랑으로 세상에 저항할 때입니다. 어둠을 빛으로 비출 때입니다.
다시 한번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 받아 어두움 가득한 이땅을 밝히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이 되겠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