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9장

새벽기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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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자랑이었던 고린도교회

오늘 저희가 읽은 9장 말씀은 지난 주 금요일에 함께 보았던 8장에서 바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예루살렘 교회, 즉 유대인들의 지방에서 극심한 기근 때문에 굶어 죽는 사람들마저 생겨버리니까 마게도냐 지방, 즉 빌립보 교회나 데살로니가 교회에 있는 성도들이 자신들도 가난한 그 와중에 구제 헌금을 모아서 보냈던 것처럼 고린도교회에서도 그렇게 해주기를 권면하는 내용이었다 라고 이야기를 들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바울이 이렇게 편지를 써서 고린도교회를 권면하는 데에는 조금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저희가 고린도후서의 처음 부분을 읽을 때에 알아보았었는데, 고린도교회를 향해서 바울이 “저는 저 저명한 율법교사들의 추천장 받은 이들처럼 추천장 같은 것은 없지만, 사도 중에서도 지극히 작은 자이지만, 제가 여러분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여러분들이 믿은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야말로 제 추천장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고린도교회는 추천장이고 자랑스러운 교회였을 겁니다.
본문말씀 1-2절을 보시면
2 Corinthians 9:1–2 NKRV
성도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이는 내가 너희의 원함을 앎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마게도냐인들에게 아가야에서는 일 년 전부터 준비하였다는 것을 자랑하였는데 과연 너희의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하였느니라
이미 고린도교회 사람들은 1년 전부터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구제헌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이를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겼을까요? 오죽했으면 마게도냐에 있는 교회들에게 “아가야 지방에 있는 교회들에서는 작년부터 벌써 이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하고 막 자랑하고 다녔다는 거예요. 참고로 2절에 나오는 아가야는 고린도교회가 있는 지방입니다. 경기도 안양시처럼 마게도냐 지방 데살로니가시, 아가야 지방 고린도시 같은 개념인데, 제가 고린도전서에 대해서 말씀 전해드렸을 때처럼 고린도 지방은 굉장히 부유한 도시였고, 빈부격차도 있었고, 그 빈부격차가 교회 내부에도 생기면서 내부에 갈등이 있었다라고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근데 그랬던 교회가 이제 어려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구제헌금을 준비했다고 하니까 바울이 얼마나 뿌듯하고 자랑스러웠겠습니까?

바울의 걱정

그런데 문제가 생겼죠. 추천장과 관련해서 몇몇 사람들이 바울에 대해서 비난하기 시작하니까 고린도교회 사람들도 바울을 비난하게 되면서 눈물로 쓴 편지가 고린도전서와 후서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아실 텐데요. 고린도후서 7장에 보시면 디도가 고린도 교회가 다시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게 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면서 고린도후서를 쓰지만, 작년에 마게도냐 지방에 잔뜩 자랑을 해놨는데, 이제 좀 걱정이 되는 겁니다. 그 자랑을 다 들었던 마게도냐 사람들이랑 함께 가려고 하는데 혹시 그 잠깐 사이가 안좋았던 시기에 구제헌금 준비하던 것을 취소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 돼서 편지를 쓰고 있는 겁니다.
3-5절을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2 Corinthians 9:3–5 NKRV
그런데 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이 일에 너희를 위한 우리의 자랑이 헛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 같이 준비하게 하려 함이라 혹 마게도냐인들이 나와 함께 가서 너희가 준비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너희는 고사하고 우리가 이 믿던 것에 부끄러움을 당할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가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하게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
그러니까 전에 약속했던 구제 헌금을 혹시라도 준비안했다면 지금 디도의 손에 들려보낸 이 편지를 통해서 지금이라도 준비해놓자, 혹시라도 같이 찾아갔는데 아무것도 없고 그제서야 준비하기 시작하면 억지로시킨 것 같은 모양새가 되니까 그렇게 하자는 거죠.
바울이 걱정하는 것은 사실 이 “억지로 하는 것 같은 모양새”입니다. 구제헌금에 대해서 바울은 무엇보다도 즐겨서 내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2 Corinthians 9:7 NKRV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인색함, 마치 마지못해서 내는 것이나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정말 기쁨으로 해야하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기쁨으로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Jeremiah 9:24 NKRV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Luke 4:18 NKRV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하나님께서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기쁨으로 하시고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 즉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구제헌금을 보내는 일은 누가 시켜서 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 예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을 돕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신다 라고 바울은 전하고 있습니다.

뿌린대로 거둔다

6절 말씀을 보시면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바울이 전하고 있는데요.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권면하면서 기쁜 마음으로 구제하는 일이 손해보는 일이 아닌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8절 말씀에 고후 9:8
2 Corinthians 9:8 NKRV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10절도 보시면
2 Corinthians 9:10 NKRV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니까 구제헌금을 내는 자들은 씨앗을 뿌리는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 값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것처럼 값없이 기쁨으로 나누는 것, 즉 씨앗을 뿌리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심을 씨앗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흔히 기복신앙이라고 하지요, 하나님을 잘 믿으면 막 잘먹고 잘 살 것 같은 말씀으로 이 말씀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넉넉하게 채워주시고 심을 것을 풍성하게 하신다는 말씀은 착한 일을 하면 막 잘먹고 잘산다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베푼 만큼, 혹은 그보다더 채워넣어 주심으로서 심을 것, 즉 또 다른 은혜를 베푸는 일에 더욱 힘쓰게 하신다 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이름이 장사 상자에 어리석을 우자를 써서 저희 아버지가 “장사와 속셈에 어리석어서 남들에게 비록 바보같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이나 베풀면서 살아라”라고 지어주셨는데요. 그런데 저는 사실 어렸을 때, 제 이름의 뜻과는 완전 정반대로, 즉 돈 욕심이 아주 많았었습니다. 한 초등학생 즈음에 저희 어머니가 저한테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앞으로 너가 커서 돈을 벌게 되면, 하나님께 십일조, 엄마아빠한테 십일조, 너의 배우자 부모님께 십일조를 해야해” 제가 그 말을 듣고 뭐라고 말씀드렸냐면, 초등학교 1-2학년 때였는데, “그렇게 다 내주고 나면 난 뭐먹고 살아? 그럴려면 내가 백만장자가 돼야겠네?” 저희 부모님이 나중에 그 말씀을 하시면서 어렸을 때 제 모습이 “저놈의 자식은 장사에 어리석으라고 상우라고 지어줬더니 돈 밝히는게 나중에 진짜 사업하려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어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내꺼는 안 빼앗기고, 남이 주는 건 잘 받아먹어야지 라는 마음을 가지고 딱히 베푸는 것의 필요성이나 감사함을 잘 모르고 교회학교에서 십일조도 “아이고 아까워라”하면서 억지로 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감리교신학대학교를 다닐 때, 같은 학번의 한 친구가 매번 학교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근데 사실 학교 식당이 한 끼에 3000원 정도였는데 어마무시하게 맛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학교 식당에서 밥먹는 학생들은 기숙사 학생들이 한 학기에 먹을 분량을 내고서 한 끼당 2000 얼마정도로 먹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근데 이 학생은 기숙사 학생도 아닌데 계속 학식을 혼자 먹는게 이상해서 하루는 제가 “왜 그런 맛도 없는 학식을 자꾸 먹냐?” 라고 물어보니까 이 학생이 “그냥 싸게 먹을 수 있으니까”라고 하더라구요. 제가 나중에 알아보니까 이 학생의 집안이 기초생활수급자로 학비는 고사하고 교통비, 식비도 아끼지 않으면 생활이 안되는 친구였던 것입니다. 제가 그걸 알게되고 나서는 이 친구가 부담 안가지게 계속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밥을 많이 사줬던 기억이 납니다. “내가 밥사니까 너가 커피사” “다음에 사줘 다음에”이러면서 마음이 많이 갔던 친구인데요,
조금 시간이 흐른 어느 날에 제가 학교를 다니다가 통장에 돈이 뚝 떨어졌던 적이 있습니다. 아낀다고 아끼기는 했는데 밥 먹는 것 이상으로 학교를 다니면 책을 많이 사서 읽어야하다 보니까 한달 생활비를 딱 3일 정도 남기고는 넘겨버려서 감당이 안됐던 적이 있습니다. 한 3일은 굶어야하나 하고 고민하던 차에 저랑 그렇게 친하지도 않았던 선배들, 친구들이 갑자기 밥을 같이 먹자고 막 부르는 거예요. 제가 밥 사달라거나 돈 없는 티를 낸것도 아니고 그냥 어느날 갑자기 그런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가 깨달았던 바는 “아, 하나님께서 못해도 내가 기쁜 마음으로 베푼 만큼은 반드시 채워주시는 구나!”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흔히 인간관계에 있어서 기브앤테이크라는 말을 쓰면서 내가 “주는 만큼 받는다”라고 이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애덤 그랜트라고 하는 한 심리학 교수가 가난한 사람부터 세계 정상급 부자까지 각 경제 계층을 쭈욱 분석하면서 누가 주는 사람이고 누가 가져가는 사람인지를 분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가난한 사람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주 세상에서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부자들이 가장 많이 “주는” 사람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돈이 많아서 기부를 많이 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그 사람들은 자신들이 기부를 하든 투자를 하든지 간에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자신에게 좋은 영향으로 돌아올 것임을 확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라고 책을 저술한 바가 있습니다.
여러분, 저희가 믿는 신앙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저희는 구제헌금에 있어서 돈보다도 더 가치있는 것으로 돌려받습니다. 10절 말씀처럼 사람에게서 돌려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심을 것과 의의 열매가 저희가 테이크할 것,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쁜 마음으로 베푸는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더 큰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뿌린대로 거두게 하심을 믿고 저희가 기쁜 마음으로 이웃에게 봉사하고 섬기며 베푸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그보다 더한 기쁨을 우리에게 주심을 믿으며 세상 가운데 섬김으로 나아가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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