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보고 우시며

누가복음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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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설교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흘리신 눈물을 통해, 우리의 심판적인 태도와 영적 무감각을 돌아보게 합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오셨으나 사람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와 완고함을 보시며 깊은 슬픔을 느끼셨고, 이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경고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의 방문 앞에서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단순한 형식이 아닌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이어야 하며,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이 시대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Notes
Transcript
눅 19:41~4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우리.

우리는 다른 사람을 참으로 쉽게 판단합니다. 뉴스나 SNS에서 누군가 실패하거나 잘못한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빨리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당연한 결과야"라거나 "자업자득이야"라고 하면서 남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형제자매의 실수나 약함을 보고 뒤에서 수군거리며, 마치 우리가 심판자인 것처럼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심판이 우리에게도 해당된다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어려움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쉽게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판단은 우리의 무지와 교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지만,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그 잘못된 태도를 꾸짖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본인이 다른 이들을 판단하려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요한복음 12:47 nkrv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그런데도 우리는 예수님도 하시지 않는 심판을 앞장서서 하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점검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기 전에 그들을 긍휼히 여기고 이해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 기억할 때,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도와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께서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절). 이 장면은 정말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며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 성을 내려다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이라는 뜻을 가진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약 40년 후 예루살렘에 닥칠 무서운 심판을 미리 보셨기 때문입니다. AD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돌 하나도 남기지 않고 성을 무너뜨릴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눈물은 예언자의 눈물이었고, 사람들의 영적인 무지와 고집 때문에 흘린 깊은 슬픔의 눈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와 완고함을 보시고 마음 깊이 슬퍼하셨습니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그들이 겪을 고통과 파멸을 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도 큰 경고가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때를 놓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단순히 그 시대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를 위한 눈물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죄와 무지, 그리고 완고함을 보시며 예수님은 여전히 슬퍼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분의 눈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삶 속에서 변화되어야만 예수님의 눈물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방문

여기서 우리는 성경에 담긴 중요한 진리를 알 수 있습니다. "평화를 주는 것을 알았더라면... 너의 보살핌을 받는 때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라"(44절). 여기서 '보살핌'은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를 들여다 보심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파카드'와 신약의 헬라어 '에피스코페'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두 단어는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방문을 뜻하는데, 그 방문은 두 가지 성격을 가집니다. 때로는 은혜로운 방문으로, 때로는 심판의 방문으로 나타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사라를 '돌보셨다'는 것은 생명을 주는 은혜의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기에서 "죄를 갚으시되"라고 할 때는 심판의 의미였습니다.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전서는 '에피스코페'를 구원의 기회로 이야기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심판의 때를 뜻합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으로 불리지만, 그들은 평화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의 방문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은혜의 기회가 무서운 심판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방문은 언제나 우리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그것이 은혜의 방문이든, 심판의 방문이든 우리는 하나님의 방문 앞에서 겸손히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시지만, 우리가 그 기회를 무시하고 거부한다면 그것은 결국 심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시는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분의 손길을 거부하고, 세상의 것들에 더 마음을 쏟는다면,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분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문은 축복이 될 수도 있고, 경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예배의 순수함을 되찾기

그런 면에서 성전을 깨끗하게사하신 사건을 더 주목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바로 성전으로 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셨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방문을 알아보지 못하는 영적인 무감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성전은 원래 하나님과 진정으로 만나는 장소였지만, 이제는 종교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장소로 변해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단지 형식적인 의무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않습니까?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지 축복을 얻기 위한 거래처럼 되어버렸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타협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모습이 예전 이스라엘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을 경험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는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며, 진정한 마음 없이 그저 시간만 채우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를 통해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세상의 잘못된 것들로부터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예배는 단순히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보고, 그의 뜻을 아는 시간입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교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고 계십니다. 그분의 방문이 심판이 아닌 은혜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이 먼저 변화되어야 합니다. 더 이상 무감각한 심판자의 자리에 앉지 말고, 예수님처럼 이 시대를 향해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의 회복은 반드시 세상을 향한 긍휼로 이어져야 합니다. 본문 끝에 보면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사람들은 그 말씀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진정한 만남은 세상을 품는 사랑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교회의 진실된 눈물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웃의 아픔을 함께하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위해 애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예배는 다시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고, 교회는 진정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눈물은 우리의 영혼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시대를 향해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주변에는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위해 우리는 기도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사랑이 그들에게 다가갈 때, 그들도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통해 이 땅에 회복과 치유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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