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그대를 미워할 지라도
Notes
Transcript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서론
여러분 유재석 모두 아실 것입니다. 유재석하면 뭐가 떠오르죠? 국민 mc, 인성이 좋다, 자기관리를 잘한다. 등이 떠오를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재석을 좋아할 것이고 좋아하지 않아도 딱히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런 유재석에게도 안티가 있다는 것입니다. 유재석이 자신에 딱히 피해를 주지 않았는데도 너무나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이런 사람을 소위 ‘빠’와 반대되는 말로 ‘까’라고 부릅니다. 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로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피해를 주거나 불쾌감을 줘서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미워할까요? 그것은그 사람이 너무 잘, 바르게 살기 때문입니다. 너무 바르고 잘 살고 있어서 자신과 비교가 되서 미워하는 것이죠. 유재석 외에도 이러한 ‘까’들은 많습니다. 손흥민, 페이커 등등 인성이 좋은 걸로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모두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까’가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누구를 왜 미워할까요?
본론
예수님의 제자들이 떠난 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가족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에 머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집을 좋아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느냐? 기억이 나지 않으실테니 다시 말씀해 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5장의 내용이 기억 나시나요? 예수님이 38년된 걷지 못하는 자를 치유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치유의 때가 안식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따지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자신이 동등하다한 신성모독을 저질렀다고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유대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유 때문에 유대 땅으로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냐? 궁금하시죠? 그것은 설교의 뒷부분에 나옵니다. 더 집중하시면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예수님은 유대로 가지 않으시고 갈릴리에만 머물고 계셨습니다. 그러던 중 유대인의 절기, 즉 명절과 같은 초막절이 다가옵니다.
초막절은 유대인들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이것을 기념하면서 광야에서 살았던 것처럼 풀과 나무로 집을 지어서 일주일 정도 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 때는 한 해의 농사가 끝날 때여서 일년 농사로 거둔 것으로 맛있게 먹고 즐기는 때였습니다. 또 우리가 얼마 전 추석에 귀경한 것처럼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모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초막절은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아주 많이 모이는 규모가 큰 명절이었습니다.
이러한 초막절이 되자. 예수님의 형제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이 말은 쉽게 정리하자면 “예수님. 시골에 그만 있고 서울로 가서 능력을 한 번 보이십쇼.”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능력을 보이고 인정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막 혼자 교회에서 드럼을 연습하는 단이에게 “혼자 드럼쳐서 뭐하냐 사람 많은 교회나 방송국에게 가서 유명해져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아라”와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우리는 그 사실을 5절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지 않았습니다. 그저 능력이 뛰어난 선지자나 선생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기준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능력을 뽐내고 명예와 인기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은 그렇지 않지만 나이가 있으신 옛날 우리나라 분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죠. 소위 말해 뛰어난 사람이 유명하지 않게 은거하고 있다. 그래서 삼고초려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능력이 뛰어나지만 숨어사는 제갈공명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있죠. 그렇지만 당시 이스라엘과 로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능력이 뛰어나면 당연히 사람들에게 드러나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은 뭔가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과 비슷하죠? 내가 얼굴이 예쁘고 잘 생겼거나, 악기를 진짜 잘 연주하거나, 말을 진짜 잘하거나, 게임을 잘하거나, 춤을 잘추거나 하면 인스타나 유튜브, 틱톡에 올리지 않는 게 바보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형제들도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지금 말투로 바꾸면 “아니 왜 유튜브, 인스타, 틱톡 안해요?”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형제들이 예수님의 능력은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가나 혼인 잔치, 오천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사건들을 형제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형제들은 그 능력을 예루살렘에 가서 널리 펼치기를 요구한 것입니다. 근데! 성경은 형제들의 이러한 태도를 믿지 않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의 중요한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능력을 통해 믿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많이 합니다. 저도 엄청 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에 나오는 놀라운 기적들. 사람을 막 살리고, 병이 치유되고, 기적이 일어나서 돈이 턱턱 들어오고, 심판이 떨어지고! 이러면 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텐데...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의 형제들도 그러했고, 저번 본문의 오병이어를 겪은 사람들도 그러했고, 지금 우리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앞서 살핀 요한복음 6:37, 44-45 등에서 성경은 오직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놀라운 기적과 체험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를 구하며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 없는 형제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먼저 6절입니다.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나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여기서 주목할 것은 ‘때’입니다. 형제들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지만 예수님의 ‘때’는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어떤 뜻일까요? 이것은 단순히 아직 예수님이 나설 타이밍이 아니다. 더 좋은 타이밍이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형제들이 요구하는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나야 할 때가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세상에 드러나는 때는 형제들이 생각한 사람들에게 명성과 인기를 얻는 때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때는 바로 언제냐? 십자가 입니다.
이것이 제가 설교 처음에 말씀한 예수님이 죽음을 두려워 하시지 않았다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죽는 것을 무서워하신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시기 때문에 유대로 가지 않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행동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은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널리 드러나고 영광을 받으실 때는 십자가에 달리실 때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너희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너희는 형제들이지만 세상을 말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너희의 때는 늘 준비되어 있다”는 무슨 의미이냐? “세상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 마음대로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간에 해야할 것을 철저히 따른 예수님과 반대로 자기 마음대로 지금은 쉴 때, 일할 때, 내가 성공해야 할 때, 이제는 응답받을 때, 누려야 할 때를 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시죠. 7절입니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이것은 예수님이 형제들이 원하는 것처럼 영광을 얻을 수 없는 이유를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악하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인 사건으로는 요한복음 5장에서 안식일에 38년된 병자를 치유하신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예수님은 세상의 죄와 잘못을 드러내시기 때문에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우리가 이미 알겠지만 예수님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십니다. 세상의 기준, 방법을 따르지 않으십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예수님이 잘못했고 피해를 줘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기준과 방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과 인생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끊임없이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리스도인들도 미워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오늘 본문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처럼 우리를 미워한다는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 때 너무 불편해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세상의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9-20을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 세상의 죄를 드러내기 때문에 세상은 예수님과 우리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을 예수님은 아셔서 요한복음 15:18-19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8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그렇기에 여러분.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직장 동료나 친구, 가족들에게 믿음 없는 소리, 성경적이지 않은 소리를 들었을 때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미래를 위해서 주일에 공부나 스펙업을 해야하지 않겠냐”, “돈이 미래를 책임진다. 교회 같은 데에 돈 쓰지말고 돈 모아야 한다.”, “교회는 적당히 다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투자해야 한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왜 기적이 안나고 그렇고 사냐”와 같은 소리들에 흔들려선 안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기도하고 예배에 힘쓰고 봉사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를 다닌다고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는 상황 속에서도 흔들려선 안됩니다. 그냥 교회 다닌다고 괜히 욕먹고, 회식에서 술 안마신다고 욕먹고, 남들 다 욕하는데 욕 안한다고 욕먹는 등의 상황에서 흔들려선 안됩니다. 세상이 미워하는 상황에서 타협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이 성경 말씀으로 명령하신 대로 신앙생활을 지키고, 유흥에서 거룩하게 자신을 구별하고, 남들처럼 욕하지 않아야 합니다. 고통 속에서도 예수님이 마침내 승리하신 것처럼 우리도 승리해야 합니다.
결론
여러분 예수님은 세상에서 미움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하였고, 예수님의 제자들은 떠났습니다. 거기에 예수님의 가장 가까운 사이인 가족들마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께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세상이 자신을 미워해도 그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으로 빛이 되셔서 세상의 죄악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친구가, 가족이 이해하지 못해도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어떠한 말과 상황 속에서도 말씀대로 사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살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지만 그 길을 먼저 가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 길은 분명히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만물 가운데 영광을 받으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승리하고 영광을 얻을 것을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