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101 금요기도회: 요한복음 2: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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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2:13-22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2:13–22 NKRV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벌써 11월이 시작되었는데요. 날씨가 갈수록 추워지지만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심을 기억하며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복음 2장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사건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악으로 더럽혀진 성전을 정화하시는데요. 구체적으로 성전이 어떻게 더럽혀졌고,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목적에 대해서 살펴본 뒤에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살펴보고 이것을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오늘의 시간적 배경을 살펴본 것이 중요합니다. 시간적 배경을 요한이 알려주면서 이것을 성전 정화 사건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13절을 보시면 시간적 배경이 유월절이 가까운 시점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애굽으로부터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유대인의 명절입니다. 신명기 말씀에 따라 모든 유대인 남자는 이스라엘의 명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와야 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으로서 이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방문 목적은 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요한은 유월절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유월절과 예수님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이 유월절에 바치는 양이 곧 예수님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요한은 성전 정화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서의 예수님의 죽음과 관련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성전을 어떻게 정화하시는 것일까요? 14절부터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지키시려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시니 성전 안에서 각종 제물들,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환전상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십니다. 이 모습을 보신 예수님은 분노하시면서 15절에서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셔서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환전상들의 동전들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십니다.
이 당시에 유대인들을 로마 제국 전역으로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편의를 위해 현장에서 제사에 사용할 짐승들을 구입할 수 있게 만들어 멀리서 오는 사람들이 짐승들을 끌고 오는 수고를 하지 않게 하였습니다. 한때는 이렇게 짐승들을 파는 곳이 성전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감람산 비탈에 있는 기드론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는 성전, 더 구체적으로 성전 건물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이방인의 뜰에 있었습니다.
이렇게 짐승들을 판매하는 판매상들만이 성전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돈을 바꾸어주는 환전상들도 이 성전 안에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전세를 지불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냥 성전세를 지불하면 되지 왜 환전상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100원짜리 동전에 이순신 장군이 새겨져 있는 것처럼 당시 로마 제국의 동전에는 황제의 이미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로마의 동전은 성전세를 위해 사용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유대 지역에서 통용되던 두로의 동전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에는 성전세를 낼 수 있는 동전으로 바꿔주기 위해 환전상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성전 안에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은 분노하십니다. 특히 16절에서 이렇게 분노하십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
예수님은 왜 모든 짐승들을 다 내쫓으시고 환전상들의 동전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면서 이토록 분노하시는 것일까요? 이들은 분명히 유월절을 지키려고,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것일텐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이토록 분노하신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로, 이곳에서 장사하는 자들이 말도 안되는 폭리를 취하여 사람들에게 부정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마태복음 21:13 입니다.
마태복음 21:13 NKRV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바로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지만 요한이 집중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 이유는 두 번째 이유에 있으며 이것이 예수님께서 분노하신 일차적인 이유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성전, 특히 이방인의 예배를 위한 장소가 예배를 위한 장소로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판매하는 곳으로 변질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백성 간의 교제가 이루어지는 곳인 예배 장소에서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로 조용히 기도하는 소리만이 들려야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소가 음메 하면서 울고 양들이 울어 대고 있었고, 자신의 죄를 애통하게 여기며 회개의 외침이 들려야 하는 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는 것은 바로 예배의 개혁을 위해서입니다. 성전은 최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곳으로 지정된 곳이기에 순전한 예배가 드려지고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가 이루어져야 마땅한 곳이라는 것에 예수님의 초점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요란함이나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분위기에서 벗어나서 진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수님의 선지자적 초대였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항상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에 백성들을 초대하였습니다. 회개를 요청하였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외쳤습니다. 이 선지자의 직무를 예수님께서 지금 성전 안에서 행하고 계십니다.
또한 이것은 스가랴 말씀의 성취이기도 합니다. 스가랴 14:21 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스가랴 14:21 NKRV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ㅡ이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가나안 사람’은 히브리어로 ‘상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배가 회복되는 그날에 성전에 상인들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 스가랴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심으로 성취하십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채찍을 휘두르시는 것이 너무 과한 것은 아닌지, 잔혹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노끈”으로 만든 “채찍”이 없이는 소와 양들을 쉽게 쫓아낼 수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행동은 폭동을 발생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만일 그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이 성전 구역을 내려다보고 있는 곳에 위치한 로마 군대의 요새에서 로마 군대가 신속하게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신속하게 출동했을테지만,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행동은 과격한 폭도와 같은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이 예수님의 행동은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는 “희생 제사 제도를 위한 모든 금전적 거래 전체 대한 공격”이었기에 이것은 곧 성전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용한 유대 지도자들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 특별히 새벽기도회 때도 말한 산헤드린 공회는 이런 일을 행한 예수님에게 어떤 권세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은 18절에서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라고 질문합니다. 바로 예수님에게 감히 성전을 쥐락펴락하는 권세를 지닌 것처럼 행세한 것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어떤 “표적”, 다른 말로는 이적을 요구하였습니다. 바로 무슨 자격으로 행한 것인지 추궁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제기한 질문은 두 가지 결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이들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일과 그것과 관련해서 하신 예수님의 비판이 근본적으로 옳은 것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고 그 비판에 비추어서 자신들을 살펴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바로 이 유대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향한 순전한 예배나 하나님께 올바르게 나아가는 것에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들의 관심은 오직 ‘권세’, ‘권한’, ‘자격’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비판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못한다는 것에 있었지만, 유대 지도자들의 관심은 예수님의 권세에만 있었습니다. 이것이 이들의 질문이 문제가 있다는 이유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들이 예수님께서 단지 약간의 난동을 피운 난동꾼이거나 정서적으로 불안전한 사람이라고 확신하였다면, 얼마든지 거기에 맞는 조치를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예수님에게 “표적”을 요구하였다는 것은 적어도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일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더 나아가 표적을 구하는 이들의 질문에는 더 심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표적”을 요구했다는 겁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주문사항을 그대로 반영한 표적을 예수님께서 보여주시기를 요구한 것은 하나님을 길들이고 하는 행동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성전을 정화하신 것만으로도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인 선지자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눈에는 이 표적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의 입맛에 맞는 표적을 예수님께 요구합니다.
그렇지만 인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요구에 맞게 자신이 성전을 정화할 수 있는 권세가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바로 19절에서 말입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안에 일으키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성전을 정화할 권세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줄 강력한 “표적”을 실제로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이 유대 지도자들을 향해 이 성전 건물을 너희가 파괴한다면 내가 3일 안에 이 성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자 이 예수님의 말씀에 이들은 이렇게 반응합니다. 20절입니다.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든 네가 3일 안에 일으키겠느냐”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순전히 물질적이고 자연적인 것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예수님의 말의 진정한 의미를 놓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46년 동안에 지어진 이 성진이 3일 안에 일으켜진다는 것이 불가능해보이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유대 지도자들의 오해를 해소하기 위해 이 예수님의 말씀을 설명합니다. 21절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바로 자신의 육체를 가리키신 겁니다. 예수님은 이제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 새로운 성전은 이제 자신의 육체가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이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건물로 된 성전이 잘못되었으니 내 육체로 새 성전을 세우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성전의 근본적인 기능에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처소로서 이전에는 건물로서의 성전이 그 기능을 담당했고, 이제 그 처소의 완전한 성취로서 자신의 육체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겁니다. 다시 말해 구약의 성전은 완전한 성전이 되실 예수님의 육체의 모형이었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예수님의 육체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요한은 시작부터 무엇을 말하였습니까? 바로 하나님과 함께 계신 말씀이신 예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곧 예수님의 몸은 그 누구도 하지 못하는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는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몸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장소,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살아 있는 처소, 성전이 의미했던 모든 것의 성취, 모든 참된 예배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육체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완벽한 성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양으로서의 죽음으로 성취하셨습니다. 오늘 시간적 배경이 무엇이라고 제가 제일 처음에 밝혔습니까? 바로 유월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양의 희생 제사가 행해지는 명절입니다. 그리고 그 유월절 양의 죽음은 예수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 말씀은 시편 69:9 의 말씀입니다.
시편 69:9 NKRV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주를 비방하는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이 시편 말씀은 고통 받는 의인의 호소입니다.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시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인의 호소는 시온과 유다의 회복에 대한 열망과 함께 나타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전을 향한 열심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예배를 열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하시는 것을 보고 이 시편의 말씀을 떠올린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대한 열정과 예배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것입니다.
특별히 시편에서 성전을 향한 의인의 열심이 그로 하여금 대적들로부터 극심한 박해를 받고 곤욕을 치르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이 말씀의 성취를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성취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완전한 성전이 되기 위한 성취일뿐 아니라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것을 소망하는 의인을 향한 죄인들의 부당한 박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예수님의 열심이 삼켜질 방식은 “죽음”이었습니다. 그분은 죽음을 통해 완전한 성전을 성취하시는 동시에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려고 하지 않는 죄인들의 죄를 고발하십니다.
그리고 그 죄인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려고 하지 않는 본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를 강도의 소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전을 더럽히기만 하는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는 성전으로서 성취하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죽음을 통해 자신의 몸을 완벽한 성전으로 세우셨다는 것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믿음을 불어넣으셨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십시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이 말의 뜻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누구나 다 예수님께서 참된 성전이시라는 것을 받아들였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22절이 의미하는 것은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당시에는 성전이 예수님의 몸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지만 그분이 부활하시고 성령님께서 이 땅에 오신 후에 성령님께서는 제자들 안에 믿음을 불어넣으심으로 예수님의 육체가 완벽한 성전이 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들만이 예수님이 성전이신 것을 성령님을 통하여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께서 참된 성전이신 것을 알고 그분을 예배하기 위해 이렇게 함께 주일마다 모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의 공로이며 성령님의 사역 덕분입니다. 우리는 성전을 더럽히기만 하는 죄인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삼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죄인들이 더럽힌 이 성전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으로 깨끗하게 만드시고 완벽한 성전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성전된 교회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소홀히하고 더럽힌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중범죄에 해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엄중하게 여기고 우리의 예배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위해 일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며 우리가 예배를 소홀히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며 엄중하게 드리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정화하셨습니다. 그분은 더럽혀진 이 성전을 정화하시고 자신의 육체로 완벽한 성전을 세우시고, 예배를 개혁하셨습니다.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성전을 더럽히기만 할 뿐인 이 죄인들을 기꺼이 용납하시고 이 예배의 자리로 지금도 초대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이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고 절대로 성전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더럽히는 중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합시다. 이 시간 이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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