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 그리스도인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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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속 그리스도인의 자리
[서론]
코끼리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과학자들이 1960년부터 2004년까지 40여 년간 유럽 동물원의 코끼리 4,500마리, 케냐의 야생 코끼리 1,089마리, 그리고 버마의 야생 코끼리 2,905마리를 추적하며 이들의 생존율을 조사했습니다.
과연 어디서 자라는 코끼리가 더 오래 살았을까요?
아마 우리 대부분은 답을 쉽게 예상했을지 모릅니다.
보호받고, 충분히 먹이를 제공받으며, 수의사의 치료를 받는 동물원 코끼리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 예상과 달랐습니다.
동물원 코끼리는 평균 16.9년을 살았지만, 케냐의 야생 코끼리는 35.9년, 버마의 야생 코끼리는 무려 41.7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보호된 환경이 오히려 코끼리들의 생명력을 약화시킨 것입니다.
저는 이 연구결과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세상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에는 여러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세 가지 태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세상과 단절되어 교회 안에서만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마치 산 속 절에서 고립된 수행자가 되듯, 신앙 생활의 모든 시간을 교회에 쏟으며, 세상과 거리를 두고자 하는 모습입니다.
세상과 단절되다 보면 죄의 유혹을 덜 받는 것 같고, 마음의 평안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 본래의 사명과 거리가 멉니다.
둘째는 세상에 깊이 빠져 교회와 상관없이 세상의 가치에 동화된 삶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를 다니지만, 주일 예배가 일종의 "통과 의례"일 뿐, 삶의 중심에는 여전히 세속적인 가치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린, 세상 사람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두 가지 모습 중 어느 하나도 아닌,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는 제 3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과 단절하지도, 동화되지도 않으며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세상 속에서 어떤 태도로 살아갈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본론]
디모데전서는 사도바울이 자신의 제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바울이 세운 에베소 교회를 제자 디모데에게 맡겨놓고 쓴 목회편지입니다.
젊은 디모데 목사가 교회 문제를 잘 해결하고 이끌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편지입니다.
오늘 말씀을 이해하려면 에베소가 당시 어떤 도시였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제국에서 에베소는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때 거의 3년을 머물며 복음을 전한 곳입니다.
사도행전에 따르면 그곳에는 고대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거대한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복음을 전파하여 아데미 우상을 팔던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그만큼 에베소에는 수많은 종교와 사상이 혼재된 곳입니다.
뭔가 신비한 지식을 추구하던 도시입니다.
그런 곳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유대인들이 교회 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내세우며 사람들에게 금욕적인 생활을 강요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를 신화로 만들거나 성경에 나온 족보가 마치 엄청난 비밀을 감추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현혹시켰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영적 비밀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구원받을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유사한 모습이 교회 안팎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자신들만 성경의 깊은 비밀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심지어 일부 유명 인사들, 특히 박진영같은 사람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가르침을 전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진리와 거리가 멉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은밀히 숨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고, 하나님의 진리는 분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강조합니다.
소수의 사람들만을 위한 구원이나 특별한 엘리트만을 위한 구원의 개념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모든 이에게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기도 역시 모든 사람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세상과 관계를 맺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기도로 세상을 섬기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특별히 당부합니다.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과 국회의원, 장관 등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한 기도를 요청한 것입니다.
우리 개인과 가족, 교회를 위해 기도하기도 벅찬데, 왜 나라의 지도자들까지 포함하여 기도해야 하는 걸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2절에서 분명히 밝힙니다.
“이는 우리가 경건하고 품위 있는 삶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나라가 평화롭고 안정될 때,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지키며 평화롭게 살 수 있고, 복음도 더 자유롭게 전파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전쟁이나 극심한 경제 불안으로 혼란에 빠져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매일 목숨을 잃을 위험에 놓여 있고, 굶주림과 빈곤에 시달린다면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해지고, 복음 전파 또한 어려워집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사람들이 기본적인 평안을 누릴 수 있을 때 복음의 씨앗이 더 쉽게 퍼질 수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복음이 빠르게 확산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당시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로 불리는 평화로운 시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은 자유롭게 많은 도시를 다니며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이 편지를 쓸 당시 로마의 황제는 네로였습니다.
네로는 기독교인들을 심하게 박해하고, 악한 정치를 펼쳤던 폭군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네로를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도자의 변화가 곧 나라의 평화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비록 악한 왕이었지만, 그를 위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안정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뉴스에서 터져 나오는 사건과 문제들로 인해 나라의 안정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대통령과 나라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올바른 정책과 결단을 내리도록 간구해야 합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국민을 위해 올바른 길을 갈 때 우리 모두가 안정된 사회 속에서 경건하고 품위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비단 우리나라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현재 미국 대통령 선거는 우리나라 안보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북한과의 긴장 속에서 미국 대통령의 결정은 한반도의 안정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대통령도 복음의 전파와 평화를 위해 우리가 기도해야할 대상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이러한 우리의 이 기도를 기뻐하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평화로울 때, 더 많은 사람이 복음에 마음을 열고 구원의 길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의 말씀대로, 우리의 기도의 지경이 나 자신과 가족을 넘어 교회, 나라, 그리고 세계의 지도자들로 확장될 때, 하나님 나라의 일은 더욱 널리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세상을 떠나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는 은둔적인 태도가 아닙니다.
참된 경건은 세상 속에서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과 바른 관계를 맺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나라의 지도자와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권면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야 할 목적은 단순히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이 더 많은 이에게 전해지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세상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평화롭고 경건한 삶을 위해 우리 각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며 좋은 시민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법과 질서를 잘 따르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선을 다할 때,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상과 관계를 맺는 차원을 넘어서, 세상을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구체적인 실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섬김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섬김의 본을 직접 보여 주셨습니다.
5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지 않으시고 하늘에만 계셨다면, 우리는 구원을 얻을 길이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모든 사람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의 희생과 섬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하나님과 세상 사이에서 중보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과 단절하기보다, 그들을 섬기고 중보하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더 널리 퍼져 나갈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 서 있는 ‘다리’와 같습니다.
다리가 양쪽을 연결해 주듯,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은혜와 구원을 베푸실 수 있도록 세상과 하나님을 연결해 줍니다.
기도의 다리가 세워져야 하나님께서 그 길을 통해 은혜를 흘려보내실 수 있습니다.
만약 이 다리가 없다면, 그 은혜는 세상에 닿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건은 세상을 떠나 교회에만 은둔하는 신앙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 들어가 세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마음으로 중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호받고 돌봄을 받는 동물원 코끼리들이 오히려 생명력이 약해지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세상과 단절된 채 안전하고 편안한 곳에만 머물 때 영적 활기를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 때론 바람과 비를 맞으며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기를 원하십니다.
야생의 코끼리처럼, 세상 속에서 스스로를 세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할 때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혹시 우리는 세상과의 관계에서 두려움에 사로잡혀 세상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세상에 동화되어 교회 바깥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제3의 길을 제시하십니다.
세상을 피하지도, 세상에 휩쓸리지도 않으면서, 세상 속에서 기도와 섬김으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 속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삶입니다.
마치 물고기가 물속에서 살아가지만 물에 지배당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세상 속에 있으나 세상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그들과 함께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의 길이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할 길입니다.
우리가 세상과 사람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 땅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도구입니다.
우리의 섬김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통로입니다.
그러니 이제 세상 속에서 담대하게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합시다.
이웃과, 나라와, 지도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라 그들을 사랑으로 섬깁시다.
우리의 기도가 개인을 넘어서, 가정을 넘어서, 나라와 세계를 위한 중보의 기도가 될 때, 하나님께서 이를 기뻐하시며 이 땅을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오늘 이 질문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나는 세상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있는가?
내가 중보자로서 감당해야 할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 각자가 이 사명을 깊이 깨닫고,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드러내는 참된 경건의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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