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Notes
Transcript
20대 초반에
제가 굉장히 싫어했던 것 중 하나가
학연, 지연이었습니다.
우리나라만 심한 것인지
다른 나라도 똑같은건지는 모르겠지만,
학연과 지연이라는 단어가 저에게는
무능력함을 포장지로 감싸서
상대방에게 쓰레기를 선물로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학연과 지연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오히려 재능이 출중하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소개와 추천으로 인해
그 재능이 더 밝게 드러나고
더욱 빛을 발하기도 하죠.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사도바울은 추천서에 대한
이야기로 편지를 시작합니다.
그 당시 추천서는 능력을 자랑하거나
어디 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관례가 아니라,
우정의 증표였습니다.
능력만 좋다고 추천서를 써주지 않았습니다.
추천서는 친밀함의 표시이자
우정의 증표였던 것이죠.
그런데,
예루살렘에서 고린도 교회로 온 율법교사들 중에서
분명 거창한 추천장을 받고 온 분들이
고린도 교회의 엄청난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그 사람들이 아무런 추천장이 없는
사도바울을 누가 사도라고 하는가?
라고 말하며 사도바울을, 고린도 교회를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그때 사도바울이 말합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우리를 천거하여 주는 추천장입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에 적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고, 읽습니다.
추천장처럼 사물로 된 증거는 없지만,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과
그로 인해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삶
그 자체가 사도바울의 추천장이라는 것이죠.
사도바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그냥 자신의 추천장에서 끝나는 존재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분명히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작성하는 데에 봉사하였습니다. 그것은 먹물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요,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 판에 쓴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복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된
모든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이웃들에게 동료들에게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편지로써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기성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곳이 총 7군데가 있다.
첫째는 자연, 온 우주만물을 바라보면 그 경외감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람의 양심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의 흔적입니다.
셋째는 십계명 돌판에 기록하셨습니다.
넷째는 우리가 읽는 성경책에 기록하셨습니다.
다섯째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시다.
여섯째는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이시고,
마지막 일곱째가 오늘 본문에 기록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 그리스도의 편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삶은 성경책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입니다.
그리고 우리들끼리도 서로가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의 모습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읽혀진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2. 어캐함?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리스도의 편지로써의 삶은
문자로써가 아니라 영으로써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습니다. 이 새 언약은 문자로 된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입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영은 사람을 살립니다.
율법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문자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야지!
하고 항상 의식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면
그 생각이 우리를 또 다시
율법적인 삶으로 이끌 것입니다.
(휴지)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는 새 언약의 일꾼이자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노력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각과 노력의 시작이
인간의 힘이냐,
하나님의 영이냐 인 것이죠.
출애굽기 말씀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께 돌판을 받아서 내려올때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서
쳐다보기가 힘들 정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얼굴을 너울로 가렸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직도 너울을 가린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너울이 이 세상의 온갖 유혹과 시험일 수도 있고요,
혹은 나의 노력과 나의 생각을 먼저 의지하는
나의 믿음없는 행동이 너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면, 그 너울은 벗겨집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 위해서는
주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주님은 영이시고,
주님의 영이 있는 그곳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영에 이끌림을 받아야
자유할 수 있습니다.
그냥 내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유와는
차원이 다른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꺼이 행하는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든지 드러낼 수 있는 자유입니다.
그 자유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편지가 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가식적으로 행할 필요 없고요,
그저 주님을 만나게 되면
그 자유함을 알게 되면
아주아주 자연스럽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의 모습을 통해
그리스도의 편지가 온 세상 곳곳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로 돌아서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을
다 활용해야합니다.
감리교의 모토가 되는 존 웨슬리가
그의 설교 ‘은혜의 수단’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양심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은혜를 갈구하라.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으로 은혜를 주실지 우리는 모르기 떄문이다.”
대표적인 수단으로 세례와 성만찬을 말하지만
그 이외에도 수많은 방법을 통해
끊임없이 은혜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은혜의 수단들을 통해
우리의 삶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영에
인도함을 받는 삶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은혜의 수단들을 찾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면,
은혜의 수단들을 찾는 노력조차도
하나님의 영으로, 기쁨으로, 자유함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삶은
어느샌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제가 노래를 부르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노래를 듣는 것도 참 좋아합니다.
그래서 한 때는 가수를 꿈꿨었습니다.
그때 음악에 대해 공부하면서
어떤 유명한 분께서 하신 말씀을 듣게 되었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네가 그리는 그림이 없다면,
네가 바라보는 그림이 없다면,
사람들도 그 노래 안에서 아무런 그림도 볼 수 없다.”
그렇습니다.
내가 무언가를 바라보지 않고 노래하면,
듣는 이들은 그 어떤 것도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다른 사람들도 우리를 통해 주님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주님의 영으로 살아가야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그리스도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이 참 쉽지 않지만,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충만히 거하면
그거 어렵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자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기꺼이 행하는 자유
하나님의 뜻을 기꺼이 실천하는 자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는 자유
그 자유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그리스도의 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