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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 NKRV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누가 주인인가 (부제: 주인이 아닌 직원의 심정으로)

-성경 배경의 중요성-
모든 성경말씀은 저자가 있고, 기록 시기가 있으며 그 기록 시기에 저자와 독자가 처한 상황이 다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그때에, 그상황에 그 말씀을 기록하게 하셨을까?
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어느정도 얻어야지만
성경각권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전달 받을 수 있습니다.
ex)예를들어 어떤 친한사람이 내게 찾아와서 갑자기 눈물을 쏟는겁니다!!
이 눈물의 의미를 알수 있나요? 이사람이 슬퍼서 눈물을 흘린거지, 아니면 기뻐서 눈물을 흘린건지 모릅니다.
축하해줘야해? 위로해줘야해?
이 눈물의 의미를 알려면 울고 있는 이사람에게 대체 무슨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봐야겠죠?
너무기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대뜸 위로해보세요
슬픈일이있어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이야 너 좋겠다,축하해”
완전히 번짓수 잘못 찾은겁니다.
이렇듯 저자가 누구인지 저자와 독자가 어떤 상황에 처했있는지,
말씀이 쓰여진 당시의 시대적 상황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하나씩 알아가 보는 것은 성경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러는 의미에서 창세기 저자는 누구이며 기록시기와 배경은 어떠했는지를 먼저 살펴봅시다.
-창세기 저자,기록시기,시대적배경-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이므로 모세5경의 포함되죠.
모세5경이라고 하면 어떤 책들이 포함됩니까?
창세기, 출애굽기,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는 언제 기록 됐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약 40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생활을 하게 됩니다.
척박한 그 광야에서 말씀이 기록된것입니다.
다시말해, 그 거친 광야 한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이 창세기 말씀을 모세를 통해 적어내려가신 것입니다.
(배경: 히브리 민족의 애굽살이) *종살이 -> 온통 물질주의였던 애굽-> 세상적으로 물질이 최고인것을 알게됨->그렇다면 이것은 어디서 왔는가?->우상들로부터 왔다고 생각
이스라엘 백성들은 화려한 물질로 가득했던 애굽에서 살았으나, 종살이에 불과했습니다.
현실은 종살이 생활이었지만 그들의 눈에는 온통 물질의 화려함이 가득한 애굽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세상적으로 사람에게는 뭐가 좋고 뭐가 즐거움을 주는지를 알았겠죠
즐거움을 가져다주고 정말 좋게 보이는 그, 물질 그리고 그 물질을 가져다준것만 같은 화려한 우상들을 보면서 느꼈을
허탄함, 공허함, 박탈감, 부러움들이
있지 않았겠습니까?
발견된 애굽의 우상들만 200개 이상이 될정도 애굽에는 실제로 우상들이 많았고
이스라엘백성들은 애굽종살이를 하면서 수많은 우상들에게 노출이 됐습니다.
피조물에 불가한 사람따위가 만들어낸 우상들이 생명을 갖을 수 있겠습니까?
결코 우상들이 살아있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찝찝해 하지도 마십시오!
그것들은 전부 피조물인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라서 어떤 생명도 능력도 없습니다.
그저 돌멩이나 막대기에 불가 합니다!!
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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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예수님 처음 믿고선 돌담도 몇번 무너뜨려 봤고요
문지방 밟으면 재수없는일 생긴다고 하길래
그따위 어딨냐며 문지방 밟고 지나 다녔고요
이름 빨간색으로 쓰면 안된다길래 빨간색으로 써봤어요 아무일 없어요.
생사화복 모든 것은 창조주 하나님께만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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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우상들을 바라보는 이스라엘 백성들-
다시 말씀으로 돌아와서요,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던 애굽사람들이 지금 굉장히 부유하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아하~!! 저 신들이 화려함과 부유함, 안락함을 가져다 주는구나!
- 우상숭배가 스며들다-> 결국 광야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다-
이러한 영향들이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연스레 스며들었겠죠.
그래서 출애굽기32:1-4 말씀을 보게 되면 시내산에 올라간 모세의 하산이 더디어지자
‘금 송아지’를 만들었고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숭배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송아지’ 역시도 애굽 종살이 시절에 애굽사람들이 숭배하던 우상들 중에 하나였습니다.
종살이기는 했지만 너무도 좋아보였던 애굽의 생활양식이었고 그것들에 이미 물들게 된것이죠.
-비록 종살이 었지만 그들이 서있는 곳은 화려한 문화가 있는 애굽이었고 그 문화에 스며들다
->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서 불만을 토해내다-> 애굽vs광야 비교 -> 우상vs 하나님 비교-
또한 애굽종살이를 하면서 그들에게는 풍부하고 다양한 음식들을 맛 볼 수 있었습니다.
종살이기는 했지만 애굽에는 먹을것이 많았습니다.
출애굽기 16:2–3 NKSV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종살이었지만 애굽안에서 그들의 눈에 보이고 경험되어졌고, 화려하고 다양하며 즐거운 문화들이 그들의 피부에 점차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광야생활을 하면서
애굽종살이와 광야생활이 비교 되기 시작한 것이겠죠.
홍해바다를 건너 ‘출애굽 할때’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기대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만난건 광야생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과 광야를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더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우상들과 하나님을 비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무엇입니까?
‘간’다 봤다! 기대 많이 했는데 별거 없네 이거!
애굽종살이가 낫네… 그때가 그립다…
정체성이 이미 무너지고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그 광야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에게는 푸념과 탄식만 있었겠죠,
그리고 애굽에서의 습관을 쫓아 광야로 인도한 하나님이 아닌
화려한 우상들에 대한 기대만이 남아 있지 않았겠습니까?
-볼멘소리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태초’ 라는 말은 ‘처음’이라는 말입니다.
성경 가장 첫장, 첫절의 말씀은 바로 ‘태초’로 시작 됩니다.
그러니깐
근원,
첫째,
시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씀 하는 것이죠.
-창조주와 피조세계를 구분하시는 하나님-> “너희들의 진짜 주인은 나다”-
“이 모든 천지의 시작을 너희가 아느냐?”
“이 모든 것의 시작을 너희가 아느냐?”
이 말씀으로 창조주와 피조세계를 구분하고 계신것입니다.
수많은 우상, 거짓 신들에 물들어 있을 인간들에게
진짜 신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하나님의 말씀인것입니다.
또한 천지의 시작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려줌과 동시에
끝도 그분에게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것입니다.
창세기 1:1 을 간략하게 이렇게 정리해 두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마디로 너희들의 진짜 주인은 나다!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을 주인으로 여기는 우리의 모습-
우리의 모습을 볼까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주인으로 착각하며 살아갈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더이상 너의 직장상사나 회장이나 사장이나 너의 주인이 아니다!!
또한 돈이나 물질이 너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는 모드 피조물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만이 주인 되십니다.
그분만이!! 모든 만물의 주인이 되신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는 신자들의 모습 두가지-
그러면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는 백성들이
추구하고 드러내야 하는 모습들 2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나는 낮아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8:1–5 (NKRV)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3.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모든 만물의 주인되신 예수님과 함께 했던 제자들 조차도 자신의 욕망을 버리지 못해서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합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우리는 단지 피조물에 불가한데,
제자들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지를 묻고 있는겁니다.
죄인된 인간은 누구나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합니다. 권력, 명예욕 이러한 것들이 무엇입니까?
우두머리가 되서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사를 받으면서 사람들을 부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잖아요.
그렇지만 그 욕망에서 이제 내려와야 합니다.
-낮아지는 모습은 어떤 모습인가? ‘어린아이를 영접’-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통지자이신 천국의 삶을 이땅에서 살아가는 신자들은 한없이 낮아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체 낮아 지는게 어떤 모습일까요?
방금 읽었던 마태복음 말씀에 기록 됐습니다.
마태복음 18:1–5 (KRV)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여기서 어린아이는 나이가 어린사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소외받는 신분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어린아이와 같이 소외받는 신분을 말하는 것이죠.
신분적으로 소외 받는 사람들은 보통 세상에서 어떤 모습입니까?
그런 사람들이 자랑할게 있어요? 뭐 하나 주인행세 할 수 있는게 있어요?
없습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비춰진 삶을 살아가겠죠.
예수님께서 그러한 어린아이들과 같이 자기를 낮추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높아지려할때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내려오셔야 합니다.
높아지려할때 나를 십자가에서 구원해주신 예수님을 바라보시면서
“하나님만 높임 받으셔야지!!” 이고백을 하면서 높아지려는 자신을 붙잡고 내려오셔야 합니다.
- “영접하다”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또한가지를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내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여기서 “영접하다” 라는 뜻은 “자신의 집단에 들어오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ex)
---------------
제가 목사가 되기싫어서 방황하던 시절에 예배는 드려야 하니깐, 교회를 이곳저곳 다니며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 목회자가 되려했던 제 자신에 대해,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회의감이 많이 들었던 때라
대형교회, 개척교회 할 것 없이
눈에 보이는 집주위 교회는 다 가 본 것 같아요. 그냥 목사님들과 교회공동체가 궁금했어요
그러던 중에 수원에 있는 한 대형교회를 찾아가 보게 됐어요.
교회 입구에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많은 부목사님들이 두줄로 줄 서 있었고
입구로 들어오는 성도들을 반겨주더라고요.
그 교회를 처음 가본 제 입장에서는 그러한 모습들이 굉장히 반갑게 여겨진게 아니었습니다.
일단 많은 부목사님들이 정장에 멋있는 명찰 하나씩 달고 입구에 줄 서 있는 자체에 위축이되고 주눅이 들더라고요,
마치 위계질서가 잡혀 있어서
그 교회 안에 통제를 받지 않는다면 당장 내쫓김 당할 듯한 분위기가 딱 느껴졌습니다.
그런데요, 그러한 분위기속에 제가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 줄 서서 성도를 우아한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던 한 목사님에게 “화장실은 어디 일까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고개를 픽 돌리더니 “잘 모르겠습니다”. 이러는 거에요.
어쩌면 본인 교회 성도가 아닌거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들린 사람인가보다고 생각한 모양인지는 모르겠어요.
기분이 너무 안 좋아서 그 교회 홈페이지가서 그 부목사 찾아서 메일 하나 보내볼까? 이런 생각까지 가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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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공동체의 역할 : ‘영접’-
교회안에서요 세상속에서 외면당하고 소외받는 그 어린아이와 같은 분들을 품어주고 안아줘야 합니다.
자신의 교회 공동체 집단에 들어오는 것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것이에요.
저 사람 우리교회에서 좀 나가 줬으면 좋겠는데....이러면서 은근슬쩍 여론몰이해서 분위기 조성하고
그 사람이 못견뎌서 나가게 하는거에요.
그리고 교회 안에서 얼마나 끼리끼리인지 아십니까?
내 수준에 맞는 사람과 어울리는게 당연시 됐다고요. 그렇지 못한 성도들 깔보고 하대하고 무시하고!
교회 식당만 가도 보이지 않나요?
끼리끼리 밥 먹잖아요.
이게요.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개척을 시작한, 현재 이름은 없지만 이 무명의 교회가
어린아이와 같은 세상에서 소외받고 외면받는 그들이 좀 맘편히 올 수 있는 교회 공동체가 됐으면 좋겠어요.
평일에 밥먹을 시간이 잠깐이라도 난다면 어린아이와 같은 그 심정으로 있을 그 분과 밥이나 커피한잔 마시면서
삶의 얘기들 들어주면서 함께 어울리는 것!
그러한 공동체를 우리 주님께서 바라고 계실 줄 믿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어느누가 이 공동체안에 들어와도 거부감 느끼지 않고 환대 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바로 이 무명교회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기억해라-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는 백성들이
추구하고 드러내야 하는 모습중
두번째의 모습은,
내게 있는 것을 내것처럼 여기지 않으려는 애씀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내게 있는 것을 내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임을 날마다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32–37 (NKRV)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신자들이 자신에게 있는 물질들을 자기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가난하고 소외받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입니다.
어떻게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내것이라고 여기지 않고
옆 지체와 내게 있는 것을 나눌 수 있겠어요?
이장면이 나오기 전에 장면중 이러한 구절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24 KRV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 “대 주재여” 뜻-
‘대 주재여’
이뜻은요 ‘주인’,’소유주’를 뜻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이 모든것이 당신의 소유입니다.”, “당신은 모든 만물의 주인 되십니다”
라고 신자들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 없이 어떻게
내게 있는것들을 내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눌 수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 저희가 가진게요, 저희 자신의 것이 하나도 없는것입니다.
그건 전부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시잠깐 잘 쓰라고 맡겨 두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주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 신자들은
기꺼히 내것을 필요한 자들에게 나눌 수 있는것입니다.
그것은 재정이 될 수 있고요, 때로는 나의 시간이 될 수 있어요.
누군가는 재정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함께 만나서 자신의 하소연을 좀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것이죠,
또 누군가는 억울함을 어떤이는 외로움을 느끼며 살아갈텐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일들을 창조주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이 교회공동체가 해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의
그리고 방금전에 읽었던 사도행전 말씀가운데 자신의 것을 서로 나누는 그 모습은요!
“내가 누구를 도와 줬어, 그사람 나 아니었으면 힘들었어!” 성경은 이러한 교만히 깔린 모습으로의 베푸는 수준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자로서의 모습으로,
정말 이것이 내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기에
기꺼이 나누고 흘려 보내는 신자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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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가끔 어떤 교회들 보면 구제 헌금을 없애고 ‘나눔 헌금’을 비치해 두곤 하더라고요.
단어 하나하나 배려하려면서 나눠지고 흘려보내는 일들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보이게끔 하는
참 좋은 움직인 같았습니다.
제가 예전에 일하거나 알바할때 보면요, 직원이다보니깐 손님들한테 서비스 주는게 별로 안아까웠어요.
그런데요 제가 잠깐 가게를 운영했던 적이 있는데요. 운영하다보니깐 이게 직원때랑은 마음가짐이 다른겁니다.
서비스 줄때도 저게 얼마고 얼마고 ..아깝다! 이런생각이 들어요.
제가 그 물건들의 사장이고 주인이 되니깐 아깝더라니깐요?
직원이었을때는 그냥 퍼주는게 안아까웠는데 말이죠.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인되시면요,
직원의 모습으로 소외된자, 가난한자, 위로가 필요한 지체들을 향하여
짱구 굴리며 너무 계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꺼히 나눔과 흘려보냄이 일어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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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요. 누가 이 공동체 사장이고 주인되십니까?
각자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묻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주인은 오직 한분, 하나님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러니깐 주인이 하나님 되실때 내가 손해보는 일이 많아 지고 많아져야만 합니다.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물질, 재정, 시간 그거 나누고 흘려보내야 할때가 있다면 기꺼이 해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것이 신자와 교회 공동체에게 있어야 할 모습들입니다.
오늘 함께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는 백성들이
추구하고 드러내야 하는 모습들 두 가지에 대해서 말씀을 나눴습니다.
첫째는 나는 낮아져야 합니다.
둘째는 내게 있는 것을 내것처럼 여기지 않으려는 애씀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나의 창조주, 구원자로 믿는 신자들이 이 두가지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것은 사실 쉬운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끝까지 신자와 교회 공동체는 이 일들을 해내려고 애써야 하며
이러한 하나님의 통치가 있고 하나님 말씀의 성취가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습이 점차 확장되어지기를 바라고 원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것들을 가능케 하는 힘과 능력은 오직 성령의 충만함으로 가능케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힘이 아닌
성령의 충만함으로 공동체의 주인되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리고 드러낼때
이 말씀의 일들이 실제로 가능하게 될 줄 믿습니다.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께서 이 공동체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내게 있는것을 기꺼이 나눌수 있는 교회다운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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