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라 2024 1103 신4: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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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
신명기 4:15–24 (NKRV)
15 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 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20 여호와께서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를 쇠 풀무불 곧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자기 기업의 백성을 삼으신 것이 오늘과 같아도
21 여호와께서 너희로 말미암아 내게 진노하사 내게 요단을 건너지 못하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그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라고 맹세하셨은즉 22 나는 이 땅에서 죽고 요단을 건너지 못하려니와 너희는 건너가서 그 아름다운 땅을 얻으리니
23 너희는 스스로 삼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을 잊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조각하지 말라 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불길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으나, 그 속에서 음성이 들렸을 뿐이지, 그 불의 형상이 하나님의 형상이 아니었다. 광야 떨기나무에 타지 않는 불이 있었고, 거기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람은 보는 것에 약하다. 보는 것 뿐인가.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은 우리를 속이려고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 창세기3 장의 선악과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 뱀이 하와를 속였을 때, 하와의 마음에 선악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게 했는가?
창세기 3:6 (NKRV)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보는 것에 마음을 뺏겨 정작 중요한 진리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성지 안내를 하다보면, 많은 기념교회들. 개신교 교회는 거의 없음. 대부분 로만 카톨릭 혹은 정교회. 그들의 전통은 예전을 중시. 아이콘. 성화. 향. 등등 역사와 전통은 인정하나. 실제로 보기엔 너무 머리 아픔. 마치 불당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 때가 있음. 그래서 그들이 성지순례 하면서 하는 중요한 행위 중 하나는, 성지에 있는 성스러운 장소, 혹은 물건에 자신이 가져온 묵주, 십자가 등등을 문지르고 기름을 바르고 함.
그러니까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만져지고 해야 더 마음을 쏟게 됨. 그리고 나아가 그것에 효험이 있는 것처럼 생각.
그래서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간 사이에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아론이 무엇이라고 소리친가. 그 금송아지가 자 너희가 찾는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한다. 하나님의 임재 원리를 따져보면, 그 금송아지가 하나님인 것이 아니라, 그 금송아지 위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다라고 외친 것이다. 여기에는 성막의 성물, 언약궤 위 속죄소에 임하신 하나님과 차이점이 있다.
성막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을 예배할 기물을 만들게 하신다. 중요한 성물들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성소에 꽁꽁 감추신다. 아무나 함부로 보지 못하게 하신다. 그저 하나님의 임재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된다는 듯이. 그래서 법궤 위 속죄소 위에 임하신 하나님은 지성소 안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임하시고, 아론의 금송아지는 사람들 눈에 훤히 보이게 화려하게 장식해서 그들의 눈과 마음을 빼앗은 것이다.
우리 보이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통치자를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 했다.(엡6:12)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영의 눈이 떠자길 늘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에 집중하라. 성령을 히브리어로 루아흐. 이 루아흐는 바람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요한복음 3:8 “8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은 보이지 않지만, 늘 우리 곁에 때로는 시원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힘있게 존재하는 것처럼, 바람이신 성령 역시 우리 곁에 그렇게 존재하신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 뺏기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랑하는 우리가 되길 축복.
15절. 특이한 표현. 우상을 새겨 만드는 그 마음을 스스로 부패한 것이라 말한다.
부패하다=샤하트. 하나님의 멸하신다라는 표현에서 쓰임. 즉 우상을 새겨만드는 그 마음은 스스로 멸망해지는 길로 간다는 뜻이다. 사람은 참 어리석게도 썩어져 없어질 것에 마음을 둔다. 진시황제는 불로불사를 꿈꾸며 그렇게 불로초를 얻기 원했으나, 결국 죽었다. 이 땅에서 재벌이라고 하는 그 부자들도 돈에 가치를 두어봤자다. 우리는 다 죽는다. 하나님이 명명백백하게 이 땅의 모든 것은 피조물이고 그 새긴 우상은 다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니, 참신이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하셨음에도 우리는 스스로 부패한 길로, 멸망의 길로 걸어가고 만다. 그래서 멸망의 길은 넓고,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셨다.
하나님 말고 세상 논리 가치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그 모든것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24절. 질투하시는 하나님. 질투=칸나.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5회 나온다. 이 단어는 간음과 우상숭배 간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남편이 자기 아내를 굳게 고수하며 만일 간음한 경우에는 그녀와 그 정부를 죽이는 것이 허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기 백성과 그러한 관계를 지니고 계신다.
하나님을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만들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