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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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13: 44--46]
44.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인사말-도입]
할렐루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오늘도 예배로 나오신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을 붙잡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예배 가운데 충만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자격 없는 자를 부르시고 말씀 전하는 자로 세워 가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 올려 드립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용기와 사랑으로 전도사를 주일 강단에 세우신 담임목사님과 교회에 감사 드립니다. 강단에 올라 오기 전에 3가지 기도를 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 설교 를 짧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세요.설교가 길어져 성도님들이 시계보는 일로 은혜 까먹지 않게 해주세요, 두번째 기도 제목은 하나님 설교할 때 소리만 지르지 않게 해주세요! 큰소리로 성령님의 역사 방해하지 않고 성도님 마음 밭에 말씀이 심기는 것을 보게 해 주세요. 세번째는 하나님 걸어서 내려오게 해주세요! 늘 떨립니다.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지요? 오직 주의 은혜입니다. 아멘!
[서론]
오늘은 교회가 청년을 생각하고 돌아보는 청년주일 입니다. 여기서 청년은 나이로 보면 다음세대와 장년으로 불리는 기성세대의 중간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청년의 시기는 세대 갈등의 시대 한복판에 있습니다. 요즘 세대간 차이를 느끼는 기간을 6년이라고 합니다. 저는 청년부 전도사로 22개월 섬기면서 청년들을 볼때마다 “우와~참 많이 정말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요즘 청년들을 MZ 세대라고 합니다. 사실 M세대와 Z세대는 엄연히 다른 세대입니다. MZ 라는 단어 하나로 묶이긴 하지만 밀레니엄 M세대는 1980년대부터1994년 태생을 말합니다. 반면 Z세대는 1995년부터 2005년 사이 태어난 청년입니다. 나이로 치면 무려 20살 이상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청년부 안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와 관심사를 가진 여러 세대가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서로가 지향하는 가치와 판단 역시 다릅니다. M세대는 ‘안정’, ‘실속’ 등을 중요한 판단 가치로 여기지만 Z세대는 ‘재미’, ‘편의’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매우 유감스럽지만 저는 586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무엇에 반응할까 생각해 보니 (아무 것에도 반응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난 추억과 사회적 가치에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청년이라고 부르지만 그 안에는 다양한 각자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다양한 가치와 기준을 가진 모두가 공통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이 선포되는 것은 지금도 세대를 넘어 인종을 넘어 공통적으로 모두가 기쁨으로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되는 곳에서는 모든 세대가 같이 반응합니다. 오늘도 이 자리에 많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과 가치관을 가지신 성도님들이 모였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복음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그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의 기쁨이라는 주제는 복음에 반응하는 그리스도인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표징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의 기쁨에 대하여 질문하고 생각하고 대답하는 귀한 시간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복음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의 기쁨 첫번째는, 우리가 ‘복음을 붙잡고 있는지? 붙잡혀 있는지! 질문하기 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믿음을 붙잡은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사람입니까? 오늘 본문 44절에 보화를 발견하다 와 46절의 진주를 발견하다 의 동사는 헬라어 ‘헤우리스코’ 로서 ‘우연히 발견하고 찾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연은 나의 의도성이 전혀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대학을 졸업하던 해 24살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그날도 제 기억으로는 전날 먹은 술의 숙취로 괴로워 하다가 뭔 바람인지 모르게 집 옆에 있는 교회를 가게 됩니다. 그 당시의 저는 대학원 입시에 3번이나 떨어지고 사귀던 여자친구에게도 차여 자존감이 쓰레기통에 처박혔을 때입니다. 술 담배에 찌들고, 삶의 의욕도 없던 시기 예수님은 제 삶에 빛과 같이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니 너무 좋더라고요~~, 예배를 드리면 늘 울었던 기억이 남습니다. 애통한 울음이 아니라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좋아서 매일 예배 드리고 말씀을 읽고 교회에서 살았습니다.교회 권사님들과 집사님들이 전도사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그때부터 전도사였네요~~1년에 신약을 12번 읽고 구약을 3번 읽었습니다. 어찌나 그렇게 말씀이 단지요~~ 꿀송이 같더라고요! 이 당시 저는 그리스도에게 붙잡혀 있는 건가요? 아니면 제가 복음을 붙잡고 있는 걸까요? 정답을 말씀드리자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붙잡힌 자들입니다. 보세요~ 제가 붙잡은 것은 변질됩니다. 그렇게 열심이던 저의 신앙생활은 거기서 지속되지 않습니다. 곧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하고 생활의 분주함 가운데 달콤했던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에는 자신이 선택하여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후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열심도 냅니다. 그러나 정말로 내가 붙잡고 있는 모든 것은 물거품같이 사라져 버립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예수에게 사로 잡힌 자라고 표현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이 완전히 붙잡혀 꼼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완전히 붙잡힌 자들입니다. 아멘? 이 사실이 신자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만일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우리에게 달렸다면 그 누구도 신앙을 지키지 못했을 것입니다. 롬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첫번째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그리스도안에서 나의 위치가 무엇인지 알 때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이것이 믿어지면 게임 끝난 것입니다”. 밭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이유입니다. 요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것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위치입니다. 롬 8: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잡힌 사람이십니까? 아니면 여전히 내가 믿음을 붙잡고 있습니까? 믿음의 주체가 나입니까? 예수님 입니까? 우리가 예수에게 사로잡힌 자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진정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복음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의 기쁨 두번째는, 나의 것 전부인가? 일부인가?를 생각하기 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은 비유의 바다입니다. 오늘 우리 본문 말씀의 비유를 포함하여 총 8개의 비유가 연속해서 나옵니다. 44절과 45-46절은 다른 이야기 같은 하나의 이야기 입니다. 반복적으로 강조하기 위해서 붙여서 예수님이 설명하기도 했지만 44절은 보화를 발견한 사람을 이야기한다면 45-46절은 값비싼 진주를 사고자 찾아 헤매다가 발견하는 진주장사를 말합니다. 두가지 내러티브의 공통점은 그 발견을 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차이점은 진리를 찾지도 않았는데 발견한 사람과 진리를 찾다가 발견한 사람입니다. 두 사람 모두 보화와 진주를 발견하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산다는 점에서는 또한 공통점을 가집니다. 이 이야기는 인생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이전의 삶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에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다내다 팔고 가장 가치 있는 것을 소유하는 가치전환의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빌립보서 3:7-9에서 잘 표현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여기서 가진 소유를 다 판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다’로 번역된 헬라어 “파스”는 모든 이란 뜻입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닙니다.우리는 이 땅에 우리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청년의 때에 예수님을 만나 너무나 기쁘게 교회를 다니며 말씀을 읽다가 오늘 이 본문 말씀 앞에 심각하게 고민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에 저는 아무것도 없었고 심령이 가난한 청년이었는데 불구하고 이 말씀이 주는 무게를 가볍게 여길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믿는 믿음이 나의 전 삶을 바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질문 앞에 진지한 고민을 해보셨을 것이고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꿈, 성공, 결혼, 부, 가정, 자녀, 좋은 직장 모든 것입니다. 마19:22의 부자 청년은 이 일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저는 아직도 교회에 나오는 많은 청년들이 이런 고민과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대해 답을 내릴 시기가 올때까지 치열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히포의 성자 어거스틴은 죄란 순서가 뒤바뀐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합니다. 세상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없습니다. 그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또한, 자녀도 사랑하고 직업도 사랑하고 친구도 사랑하고 교회도 사랑하고 부모님도 사랑하고 취미도 사랑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순서가 바뀌면 그것이 우상이 되고 죄가 됩니다. 우리는 항상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에 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웨스터민스트 신앙고백의 시작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일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내게 유익하던 것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고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다면 그것을 해로 여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들이라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요?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보화와 진주인 복음,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고 기뻐하여 우리의 소유를 다 팔아 그것을 사고 있습니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다른 좋은 것들을 미워하고 해로운 일로 여기고 싫어합니까?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하나님을 언제나 앞에 내세우고 세상적인 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의 기쁨 마지막은 ‘주님의 물음에 대답하기’ 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복음을 발견한 구원의 기쁨을 이야기하며 회심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첫번째 질문으로 그리스도인은 예수에게 사로잡힌 자들임을 깨닫고 그것이 기쁨임을 알았습니다. 두번째 생각으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가치전환이 일어난 사람들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마지막 우리는 주님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합니다. 주님이 요21:16에서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복음안에 발견된 여러분! 주님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베드로에게 물은 것과 똑같이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면서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 하시겠습니까?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대답은 회심의 문제입니다. 성경은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말로는 믿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 교회의 현실입니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리스도인을 구분하는 시금석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다른 무엇보다 귀하게 여기십니까?” ”회심은 회개와 믿음이 포함됩니다. 구원하는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깊은 마음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뜻입니다. 믿음은 단순히 교리에 동의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회심은 죄를 거부하고 그리스도의 권세에 자신을 굴복시키고 소망과 신뢰를 하나님 안에 두는 등 인간의 의지적인 활동을 포함합니다. 구원이 거듭남을 말한다면 회심은 구원의 조건이 아닙니다. 먼저 거듭나고 나서 그것이 회개와 믿음이라는 회심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는 구원받은 자의 표징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본 본문에서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사람과 값진 진주를 발견한 상인은 매우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쁨에서 멈추고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밭과 진주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회심하지 않은 것입니다. 복음을 발견하고 질문하고 생각도 했지만 아직 주님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은 상태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렀습니다. 성경의 물음에 의도적으로 대답하지도 않고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언제까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문 밖에 서 계시려고 합니까? 롬13:11-12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그렇습니다. 이제는 자다가 깰 때가 되었습니다.
구원이 칭의를 가리킨다면, 우리가 충족시켜야 할 한가지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됩니다. 또 구원이 장차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의 정죄에서 건짐 받아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성경은 우리가 ‘믿어야” 할 뿐 아니라 이 믿음이 순종의 열매를 맺을 만큼 실제적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약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따라서 구원은 거듭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믿음과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도록 돕는 하나님의 일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심의 온전한 의미입니다. 성경 말씀에서 구원의 조건을 어떻게 말씀 하는지 잠시 찾아 보겠습니다. 막8:34-35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 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은 자기 부인을 구원의 조건이라고 합니다. 마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눅14: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결론적으로 구원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죄에서 돌이켜 그분께 순종하고, 우리 자신을 낮추어 어린아이처럼 되고 ,가족이나 자신의 소유나 심지어 자기 목숨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이제 이 초대에 대하여 저와 여러분이 대답을 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왜 하나님은 자신을 갈망하고 기뻐하라고 할까요? 그리고 복음을 발견한 그리스도인의 첫번째 반응이 왜 기쁨일까요? 미국의 기독교 희락주의 존 파이퍼 목사는 그의 저서 ‘하나님을 갈망하라’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이 드러날 때 뿐 아니라 우리가 그 영광을 기뻐할 때 영광을 받으신다”고 정의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찬양을 받으시기를 추구하는 것과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기를 추구하는 것은 같다고 합니다. 즉 영광을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추구와 만족을 얻으려는 우리의 추구는 하나의 경험, 즉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에서 모두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소망하는 이들의 마음을 기꺼이 만족시킵니다. 렘32:40-41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그리스도께로 회심했다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이것은 기쁨과 평안의 모조품인 재미와 편익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세상에서 추구하는 성공이나 명예나 부로 인해 얻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충족되는 기쁨, 그분을 소유함으로 오는 충만함, 영원하고 불변한 힘에 의한 안정감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기뻐해야 할까요? 이유는 많지만 구원의 목적을 알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기뻐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기에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뻐하면 우리에게 능력이 임합니다. 느헤미아 선지자는 8:10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가 그 어떤 좋은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제일 앞세우고 기뻐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갈보리 십자가에 오르셨습니다. 히12:1-2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서 부끄러운 저의 삶을 간증하였습니다. 저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질문 “태형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라는 피할 수 없는 질문에 대답하는데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예수님에게 붙잡힌 자들은 예수님이 책임지십니다.많은 집사님들과 권사님들이 집에 있는 청년들의 신앙문제를 가지고 제게 묻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주님 안에 있는 자녀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고 세상 가운데 눈이 어두워져 신앙이 전혀 없어 보인다고 해도 우리 주님은 때를 따라 그들을 불러 내시고 자기 자녀를 결코 잃지 않으십니다. 저의 대답은 한결 같습니다. 집사님 권사님!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저는 우리 청년들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을 오랫동안 기다려 주었듯이 성도님들 집에 같이 사는 청년들이, 우리 교회공동체의 청년들이 예수님에게 붙잡히고 세상의 것보다 복음의 가치를 더 귀하게 생각하며 자기에게 들려지는 주님의 음성에 스스로 대답을 하기까지 옆에게 믿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기다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30년까지 걸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성령님이 여러분에게 물으시고 대답을 요구하신다면 더 이상 지체하지 마시고 깨어 대답하시는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간절히 축복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