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가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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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우리가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5:11–2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우리가 다시 너희에게 자천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우리로 말미암아 자랑할 기회를 너희에게 주어 마음으로 하지 않고 외모로 자랑하는 자들에게 대답하게 하려 하는 것이라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전에 한 책에서 남녀가 5분안에 사랑에 빠지는 대화법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함께 산책을 하고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90프로의 높은 확률로 서로 호감을 가지게 된다는 글이였어요. 많은 부분 공감이 되었어요.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길을 걸어가고, 그리고 서로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에 있어서 핵심이 되는 내용들이거든요, 이런 관점으로 보면 하나님과 사람은 본래 화목한 관계로 만들어 졌고, 화목할 수 밖에 없는 관계 였어요. 화목한 관계라는 것은 서로의 뜻이 맞고 정겨운 관계를 의미 한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하나님과 동산을 거닐며 이야기하는 정겨운 관계 였다.  서로 같은 길을 걷고, 갇은 것을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화목하지 않을 수 없는 관계 였을 거에요.  그런데 죄가 틈타며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이 화목한 관계가 깨어 졌어요. 우리 인간은 더이상 하나님과 같이 동산에 있지 않았고요,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것을 보며 이야기 나누지 못하게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그래서 구약성경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에게 다시 화목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배신의 역사의 반복으로 볼 수 있어요.  계속 화목의 손길을 내미시던 하나님은 그래서 결국 어떻게 하셨냐면, 당신이 스스로 직접 우리에게 찾아 오셨어요. 우리의 몸을 입고 우리 사이에 들어 오셨어요. 우리가 하나님과 소통을 거절하고 자꾸 등 돌리니, 당신이 직접 오신거죠.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와 직접 화목을 이루셨어요. 우리 안에 오셔서 함께 이야기 나누시고, 함께 삶을 살고, 교통하셨어요.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열려있는 화목의 기회를 주셨어요.  그래서 이 사랑으로 우리를 어떻게 하셨는가? 새롭게 하셨어요. 그동안 살아오던 삶, 화목을 버리는 삶, 배신의 삶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안에 거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삶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신거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하는가? 오늘 말씀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해요. 여기에 있는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새롭게 되었다고 해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죠. 믿으세요? 아멘!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어요.그런데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본성이 바뀌었다는 것을 말해요, 우리의 삶이 바뀐 것이죠, 우리의 생각 언어, 행동이 바뀌는 거에요. 즉 이전과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된 것이죠. 왜 이렇게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어요? 17절에 조건절이 하나 있엇는데, 그게 뭐냐면, 누구든지 누구 안에?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됨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어요.  그리스도 안 이라는 말은 엔 크리스투스 라는 표현인데, 신약성경 특별히 바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중요한 표현 가운데 하나에요. 어떤 신학자는 바울의 모든 교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말에 기초한다라고 말할 정도에요. 정말로 사도 바울이 쓴 모든 편지를 살펴 보면 그리스도 안(en christus) 이라는 말이 48회 그리스도 예수 안 이라는 표현이 34회, 주 안 (엔 퀴리오스)이라는 표현이  50번이나 나와요. 이 이야기는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거에요. 왜 바울은 중요하게 여기고 강조하며 자꾸 표현할까?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에 가기전 이미 구별된 자들이 있었어요. 사도행전 16장 13-14절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사도 바울이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빌립보에 도착했는데 거기에서 루디아와 그와 함께 있던 여자들을 만났어요. 이 사람들은 이미 구별된 자들이었어요. 하나님을 섬기며 모여 함께 나와 기도하고 있던 구별된 인생이었죠. 그런데!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된 인생은 아니었어요! 무슨 이야기냐? 우리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정체성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예수 그리스도’에요.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된 인생!! 그리스도 때문에 구별된 인생,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기준인 인생이라는 거에요!!  즉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이에요. 우리들이죠. 요한복음 15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포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하시며 이것을 분명하게 이야기 하세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고 영접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나 사이에 신비한 연합이 일어나요. 주님의 생명이 내 안에 내가 주 안에 거하게 되는 신비가 일어나요. 그분의 생명과 능력이 내 안에 흘러들어오게 되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전 12:27에서 교회(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 고백하죠. 즉 그리스도안에 있다는 것은 영원한 생명의 나무 되신 그분과 연합해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그리스도와 완전하게 연합함으로 죄의 권세에서 해방되고, 새 생명을 얻는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거에요.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다시 어떻게 되요? 화목케 되는 거에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다시 하나님과 연결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오직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구요, 그리스도 안에 있을때 새로운 삶을 살아갈수 있어요. 저는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이야기 하고 끝나지 않아요. 그리고는 새로운 피조물인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 인지도 고린도 교인들에게 이야기 해 주어요. 그럼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화목의 직분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합니다. 18절 말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안에서 새롭게 되었다! 라고 선포하고나서 뭐라고 말하는가?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었고, 동시에 화목케 하는 직분을 주었다고 이야기 해요. 맞죠!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시작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누구랑?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대요.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와 화목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갈등의 관계에서 다시 협력의 관계가 되었다는 거에요. 같은 편이 되었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요? 다시 하나님과 소통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뜻을 알며 그 분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되었어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아 갈 수 있게 된거에요.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연합함으로 가능하게 된거에요.  그런데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으로 끝이 아니라고해요. 그 다음이 있대요. 그것이 뭐에요? 우리에게 또! 화목의 직분도 주였다고 말해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으로 끝이 아니라 화목하게 하는 직분도 우리에게 주셨다는 거죠.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직분을 주셨다 라고 말한 단어는 ‘디아코니안'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직분이라는 말로도, 동시에 섬김의 역할 로도 번역할 수 있는 말로, 주로 직업 자체 보다는, 해야 하는 역할을 강조할 때 사용되어지는 말이에요. 목사의 역할, 장로의 역할, 남편의 역할, 아내의 역할과 같은 표현인 거죠.  즉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면 우리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뭐라는 거에요. 화목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 가운데 하나라는 거에요. 여기있는 우리는 화목을 이루어 가면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라는 거에요. 그럼 생기는 질문이 뭐에요? 화목의 직분을 가진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는 것이 질문 아니에요? 화목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바울은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이 있다고 말하고는 이어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19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뭐라고 하세요? 우리에게 무엇을 부탁하셨대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 하셨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주셨어요. 뭐 하려고 주셨어요. 19절을 새번역으로 한번더 읽어 볼까요?  곧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죄과를 따지지 않으시고,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심으로써,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와 화해하게 하신 것입니다. 좀더 명확하죠, 화해의 말씀을 주셔서 세상을 그리스도 안에서 누구와? 하나님과 화해하게 하신거래요. 즉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을 주신 것은 뭐하기 위해? 세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20절에 더 자세히 이렇게 이야기하죠! 새번역으로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켜서 여러분에게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간청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화해하십시오. 정말 자세하게 화목의 역할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어요. 우리의 역할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절이다! 그래서 우리를 시켜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간청합니다!! 하나님과 뭐 하기를? 화해하기를!! 우리에게 화목의 직분이 있다는 것은, 뭐를 해야 하는 역할이 우리 안에 있다는 거냐면, 하나님과 화해 시키는 역할이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바울은 뭐라고 하냐면, 하나님과 화해할 것을 간청한다고 말해요! 즉 화목케 하는 우리의 역할은 하나님과 화해 할 것을 간청하는거에요! 권하는 거에요!! 즉 우리가 그 역활을 한다고 우리가 화해 시킬 수있어요 없어요? 없어요1!! 저는 이것이 얼마나 큰 위로인지 몰라요. 여러분 중에 그런 분들 계시죠? 여러분 가족 중에 동료 중에 남편을 아내를 하나님과 다시 화해 하게 하려고 정말 수없이 기도하고 애쓰시는 분들.. 그런데 잘 안되죠. 그래서 아 내가 뭘 잘못했나/ 자책하게 되는데.. 우리의 역활은 뭐래요? 간청하는것! 권면하는 거! 화해는 누가 하는 거에요? 하나님과 그가 하는 거에요!! 그것이 뭐에요? 우리이 역할이에요!  동시에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잊고 살아서는 안되요. 우리는 하나님과 화해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뭐 해야 하는 사람들이냐? 간청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대충 설렁 설렁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가 그리스도 대신 그것을 전해야 하는 사람들 인 거에요!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내시길 원하시는 사람들을, 영혼들을  바라보고 찾으며 살아야 해요!  저는 저와 여러분이 늘 깨어 있어서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가진 자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길 소망합니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 어떻게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14절 15절 볼까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화목케 하는 자로 살아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그가 모든 고난과 어려움과 모함을 겪으면서도 그가 고린도 교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엇던 것, 그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하나님과 화해할 것을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시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여기서 강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쉬네코'는 사로잡다, 압박하다 라는 의미에요.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아 고린도 교회를 위해 열정을 드릴 수 있게 했다는 거죠.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신 것은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리고 그들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누구를 위해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해 살게 하려 함이라는 거에요!!!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 사랑이 우리 삶에 방향을 주어요! 우리 삶의 방향에 이유가 되는 거에요. 우리 행동의 동기가 되는 거죠! 우리가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에요!!! 저와 여러분을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세요. 이 강권하다라는 말은 우리 표현으로 하면 ‘다그치신다는 거에요'  이 말은 다른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화목케 하는 자로 화목케 하는 역활을 감당하지 않으면 그 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치신다는 거에요! 정신차리도록 해 주신다는 거에요! 방향을 잃지 않도록,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이끌어 가세요! 그래서 바울이 강조하는 것이 뭐에요? 그리스도의 그 사랑 ‘안’에 있어야 한다는 거에요. 하나님의 사랑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하는 거에요.  사도 바울이 살아온 삶을 생각해 보세요. 바울은 어떤 삶을 살았어요? 그는 화평케 하는 직무를 행했어요. 물론 그가 가는 곳에 다툼도 있었고 소요도 있었어요. 그러나 바울의 삶을 보면 언제나 한결같은 것이 있어요.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기를 간청했어요! 예수 그리스도라는 복음을 전했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요? 바울은 로마서 8장 35절-39절에 이렇게 말해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뭐래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삶을 강권하셨다는 거에요!! 그 사랑 때문에 그는 그 의 삶에 한결같이 화목케 하는 직무를 감당할 수 있었다고 말해요.  사랑하는 여러분 속지 마세요. 화목케 하는 직무는 싸우지 않는 것이 아니에요. 다툼이 소요가 고난이 없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과 내 사랑하는 가족, 이웃을 화목케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그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거에요.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어야 합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 삶을 강권하게 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바울의 고백처럼 새로운 인생으로, 화목케 하는 직분을 가진 자로, 하나님과 화목한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땅을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편지로 살아가게 됩니다.  저는 그런 삶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새로운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님과 화목케 된 인생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동시에 화목의 직분을 감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들을 화목케 하는 복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늘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셔서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어떤 삶의 상황 가운데서도 화목케 하는 인생으로 살아갈 수 있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는 복된 인생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
전도사님이 질문하나 할께요.
여기 한 가족이 있어요.
부모님, 그리고 형제, 자매가 있지요~
형제, 자매는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좋아할까요? 아님 서로 미워하면서 지내는 것을 좋아할까요?
이제 한 영상을 보려고해요.
이 가족이 무언가 특별해서 보여주는 건 아니에요
일상속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는 한 가족인데, 화목하게 사는 것이 어떻게 사는 것인지 너무 잘 보여주고 있어서 함께 보려고 해요.
같이 영상 볼까요?
어때요? 화목해보여요?
화목하게 사는 건 바로 이런거에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하는 거에요.
또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어도 내가 하는 거에요.
화목하지 않는다의 반대는 싸우는 것이 아니에요. 화목 안에 마음의 고난과 갈등도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과 내 사랑하는 가족, 이웃을 화목케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그것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거에요.
싸우지 않는것을 넘어서 그 상대방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는것은 그냥 할 수 있는게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해야 할 수 있는거에요.
Everyday 신학 사전 (화해)
화해
RECONCILIATION
정의
화해는 치유이며, 이전에 서로를 향하여 적개심을 품었던 사람들이 관계 안에서 다시 연합하는 것이다. 성경은 화해를 인간들 사이에 일어나는 것(수평적 화해)과 죄 많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일어나는 것(수직적 화해), 두 가지로 설명한다.
화해는 아래의 세 가지 면을 포함한다.
1. 화해는 둘 사이에 존재하는 원한, 적개심, 무관심 혹은 증오로 특징되는 관계 안에서 발생한다. 한쪽 또는 양쪽 모두 어떤 일 때문에 상대를 나쁘게 보게 되고, 그 결과로 그들 사이에는 관계의 틈이 존재한다.
2. 증오의 원인을 타개하기 위한 중재는 적개심과 관계의 틈을 제거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증오의 제거는 단지 사면이나 일시적 중지의 형태, 혹은 싸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화해는 평화와 수용을 특징으로 하는 관계의 긍정적인 갱신이다. 양쪽은 이제 참된 기쁨과 상호 간의 우정을 경험한다.
몇몇 신약 성경의 구절은 죄인들이 그리스도와 그들을 위한 그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가질 수 있는 화해를 강조한다. 사도 바울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화해의 표현 중 하나를 제공했다(고후 5:16–21).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라는 중요한 확언 뒤에는 즉각적으로 이 선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신”(고후 5:18)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변화는 그리스도가 행하신 일을 통해 우리의 존재가 다시 하나님과 연합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선포할 때, 그 뒤에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라고 호소해야 한다. 물론 죄인인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과 어떻게 화목할 수 있는가는 해묵은 질문이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죄인과 하나님 사이에 이전에 존재했던 증오를 제거하기 위해 일어난 중재자다. 바울은 놀랍게도 하나님 아버지가 죄를 전혀 알지 못했던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1)라고 기록했다. 이는 종종 “대단한 교환”으로 불린다.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에게 지워졌고, 그 대신 그의 의는 우리에게 있다고 여겨졌다. 오직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처리되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화해가 가능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며, 우리에게 이른 화해는 “그리스도를 통해서”(고후 5:18)이다. 이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권리를 회복시키며, 즐거운 평안과 수용을 제공한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엡 2:11–18) 속에서, 바울은 더욱 깊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우리의 화해의 진리를 설명했다. 이런 수직적 화해뿐만 아니라, 바울은 진정한 구원의 화해를 수반하는 수평적 화해(죄인들이 다른 죄인들과 하는)에 대해서도 말했던 것이다. 바울은 이 구절들에서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존재했던 증오에 대해 이야기했다. 여러 방식으로 그들은 서로 경멸했는데, 유대인들은 확실히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받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율법 곁에 있지도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에서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2:11–12).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은 모두 하나님과 화해되었다. 이는 그 자체로 놀라운 것이었다. 왜냐하면 어떤 유대인도 할례 받지 않은 채의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화해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유대인과의 화해와 이방인과의 화해가 오직 유대인과 이방인들 스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한 몸 안에서 화해하고, 한 몸과 한 성령 안에서 화목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때 일어난다는 것이다(2:14–18).
또한 바울은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롬 5:10)에 하나님과 화해가 일어났다고 기록했다. 바울의 이런 지적은 화해를 가져온 원인이 우리가 아님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 일을 행하셨다(우리가 하나님과 그분의 길을 멸시했을 때조차 하나님은 이미 그렇게 행하셨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우리를 위한 사랑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의 우리를 위한 죽음을 통해,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화해를 선물로 받는다.
적용
화해를 다루는 성경 구절의 핵심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다음의 중요한 측면들을 제시한다.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화해가 의미하는 것의 헤아릴 수 없는 위대함 속에 빠져 흥청대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과 영원한 분노를 받을 죄인들이 그 대신에 모든 기쁨과 영원한 희락의 하나님과 인자한 관계 속에 다시 연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진리는 놀라운 것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분리라는 “나쁜 소식”은 그처럼 매우 나쁘기 때문에, 화해의 좋은 소식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놀라운 것이다.
● 화해는 오직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와 죄인을 위한 대속적인 죽음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복음의 좋은 소식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 다른 이들에게 선포되어야 한다(고후 5장). 하나님은 자신의 소유된 백성들을 대사로 임명하셨다. 우리는 화해의 자비로운 선물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통하여 이 화해의 좋은 소식을 다른 이들과 함께 펼칠 은혜로운 책임도 부여 받았다.
● 오직 믿는 자들은 이전에 존재했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화해를 경험하고 증거하는 만큼 진실로 복음을 실현할 것이며, 그리하여 다른 이들은 확실히 십자가의 능력을 볼 수 있다. 어떤 이유에서건 모든 참된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공동의 몸으로 연합될 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우월감이나 편견의 태도는 결코 자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죄인들 사이에서 수평적 화해를 실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 된 우리가 가진 수직적 화해의 실재를 증거한다.
● 우리의 구원의 모든 측면과 더불어 하나님은 모든 영광을 받아야 한다. 화해의 사역은 오직 그분의 것이며, 그러므로 찬양과 감사는 오직 하나님께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가 우리로 하여금 짓게 한 죄와 반역에 대하여 책임은 있으나,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서 기뻐하는 화해된 관계에 대하여는 아무 일도 한 것이 없음을 깨달아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이 이 위대한 일을 행하셨으며, 우리의 영원한 찬양이 오직 하나님 한 분께만 주어져야 한다.
담임목사님 주일설교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창세기 - 하나남의 속성대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모든것을 다 맡겼다. 그런데 우리에게 죄가 틈탔어요. 그리고 그 틈에 단절이 생겼어요. 그 관계에 낯을 피하기 시작했어요.
우리 인간은 스스로으빛을 비출수 없다. 달이 태양에 비쳐서 빛이 있는것처럼,
우리의 빛은 하나남으로 부터 와야하는 것이었어요.
하나님으로 부터 생명이 공급될 때 아름다운 모습이던 우리는 그 생명이 끝어지면 우리는 부패된 자이다.
우리가 죄를 지어 떠났는데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기시기에 우리에게 다시 기회를 주고 기다리셨다.
5:17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기본적인 우리의 본성이 바뀐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본성이 바뀌게 된 것이다.
5:17 우리는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기본적인 우리의 본성이 바뀐것이다. 성령님이 우리안에 계시기에 본성이 바뀌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한 자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이다.
고전 5:5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으로 살아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
새로운 피조물 -> 우리에게하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직분 = 역할 이라는 것 세상과 하나님과의 화목. 어떻게 할 수 있을까? 20절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로 살아가야한다.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알 수 있으며, 우리를 보며 세상과 하나님이 화목하게 지날 수 있다.
화목하다는 것은 다툼이 없다는 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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