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믿음, 참된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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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복에 대하여 다윗이 말한 바
7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9 그런즉 이 복이 할례자에게냐 혹은 무할례자에게도냐 무릇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노라
10 그런즉 그것이 어떻게 여겨졌느냐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요 무할례시니라
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따르는 자들에게도 그러하니라
서론
오늘 새생명축제를 지내며 어떤 말씀을 준비해야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말씀 가운데 선포되어야 하는 것은 “복음”이다. 이것은 명확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생명을 전해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한지 얼마 되지 않은 분들 혹은 교회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복음이 무엇인지 교회를 통해서 들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그분들만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새생명축제를 맞아서 교회에 나온지 오래 되신 분들 또한 복음을 명확히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에 나온지 오래 되신 분들에게도 생명이 동일하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복된 소식입니다.
교회를 처음 나왔든지, 교회를 계속해서 나왔든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복음입니다.
오늘 로마서 본문은 이 본문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이 말하는 복음은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입니다.
본론
여러분은 “믿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에게 믿음은 무엇입니까?
오늘 저는 교회를 다닌지 얼마 안 되신 분들과 교회를 다닌지 오래 되신 분들 모두를 청중으로 전제하고 설교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왜 그러냐면 그분들 모두에게 참된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닌지 얼마 안 된 분들을 저는 새가족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교회를 다닌지 오래 되신 분들은 오래된 가족이라고 지칭하겠습니다.
새가족, 오래된 가족 모두에게 믿음이 왜 필요한지 지금부터 얘기해보려고 합니다.
1. 새가족들의 종교성
먼저 새가족들을 위한 관점에서 믿음에 대해서 얘기해보려 합니다.
현대에는 ‘신은 없다’라는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일명 ‘무신론’이라고 하는 사고 체계죠.
저는 지금부터 ‘무신론’이라고 하는 ‘신이 없다’라고 생각하는 이 사고체계가 일종의 ‘종교’라는 점을 얘기하려고 합니다.
‘신이 없다’라는 명제가 사실이라는 것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종교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이 무신론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간의 본성인 ‘종교성’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무신론은 ‘신이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모종의 이유로 신을 부정하거나, 혹은 신을 증명해내거나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모순적이게도, 이렇게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다들 나름의 신을 만들고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 자신이 만든 신에게 절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하나도 예외없이 하나 이상의 신을 섬기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신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신을 섬길 수 있을까요?
모든 인간은 신이 없다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의 목적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특히 신을 증명해내거나 경험할 수 없어서 신이 없다고 믿는다는 무신론자들 조차도 사실은 자신의 경험과 그에 따른 이성을 신으로 여기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과학적 증명과 이성의 능력을 신봉하는 태도는 사실상 일종의 신을 믿는 믿음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과학적 증명, 이성의 능력이 절대적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과학적 증명, 이성의 능력을 신으로 두고, 사실 이 세상에는 그것으로 다 알아낼 수 없는 영역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알 수 없는 부분을 “알지 못한다”가 아니라 “없다”라고 믿죠.
다 알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없다라고 하는 것은 믿음의 영역인 것이죠.
일종의 신을 섬기는 종교로 보이는 것입니다.
혹은 어떤 자들은 자신은 종교가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아실현을 삶의 목적으로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헌신과 투쟁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혹은 어떤 자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 가치에 대해 끝없이 헌신하기도 합니다.
특히 지금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세계 즉 그들의 모든 가치관이 옳다, 심지어 진리이다라고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런 세계에서 자신들의 이상적 가치관이 진리로, 즉 일종의 종교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신념체계, 사상 등을 설파하고 따르는 사람들 중에 그 정도에 따라 종교적 형태를 띄는 경우를 보기도 합니다.
제가 지금 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십니까?
저는 이것을 통해서 그 어떤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는 “종교성”이라는 인간 고유의 속성에 대해서 얘기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로마서의 1장에는 이 종교성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인류와 온 우주 가운데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그들 가운데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속성 일종의 “종교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나타나는 그 종교성은 도리어 “신이 없다”라는 명제가 아니라, “신이 존재한다”라는 명제가 진짜라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그리고 인간이 그 종교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종교성으로 하여금 모든 인간들이 일종의 “믿음”을 가지게 한다는 결론을 향하게 됩니다.
2. 오래된 가족의 종교성
그렇다면 이제는 교회를 다닌 기간이 꽤나 있으신 ‘오래된 가족들’의 믿음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속으로 ‘당연히 교회를 오래 다녔으면 믿음이 있는거 아니야?’라고 생각하실겁니다.
맞습니다. 어쩌면 교회를 오래 다녔다는 것은 어떠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교회를 나온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그냥 ‘믿음’이 아닌 ‘참된 믿음’을 얘기하기 위해서 오래된 가족들에게 생길 수 있는 ‘참된 믿음’이 아닌 ‘종교성’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이 오래된 가족들이 가질 수 있는 ‘종교성’은 무엇일까요?
제가 이것을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에 얘기하는거겠죠?
이 오래된 가족들에게 있는 종교성에 대해서 오늘 본문이 명확하게 얘기해주고 있습니다.
로마서 4:2 (NKRV)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만약에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면 쉽게 말해 구원을 받았다면, 그 구원에 있어서 아브라함은 자랑할 것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뭔가를 해서 구원을 얻었으니까요.
그런데 로마서의 저자는 아브라함이 ‘행위’로 구원받지 않았다고 얘기합니다.
‘행위’로 구원받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없다고 얘기합니다.
저는 바로 오래된 가족 분들이 가질 수 있는 참된 믿음이 아닌 ‘종교성’을 오늘 본문이 ‘행위’라는 단어로 잘 표현해주고 있다고 봅니다.
여러분 순종은 믿음이 아닙니다.
무언가에 순종해서 그 순종한대로 하는 것이 곧 믿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에 오래된 가족 여러분들이 순종한 분량을 믿음으로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바로 “종교성”에 매몰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한 상태는 교회를 나온지 얼마 안 된 혹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모든 자들이 가지고 있는 그들의 “종교성”과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결코 여러분의 믿음과는 일절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래된 가족 분들이 교회를 오래 다니면서 했던 모든 행위들 중 그 어떤 것도 참된 믿음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그것으로 인하여 내 믿음이 형성됐다고 생각하신다면, 여러분은 기독교가 아닌 일종의 종교를 믿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들에게도 있는 종교와 같습니다.
3. 그렇다면 참된 믿음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는 새가족, 오래된 가족 혹은 교회를 다니는 자, 교회를 다니지 않는 자를 막론하고 모든 자들이 ‘종교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종교성은 결국 어떤 대상에 대한 그것이 사상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든요, 하나님 이외에 어떤 것을 믿음의 대상으로 섬기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참된 믿음은 무엇일까요?
참된 믿음은 그 일종의 종교성으로 가지게 되는 믿음이 아닌 겁니다.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성에 의한 믿음도 아니고, 그러한 본성적인 종교성에 의해 자신의 본성적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는 믿음도 아닙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믿음은 “은혜로 말미암는 믿음”입니다.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믿음은 은혜에 의하여 수여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한대로 우리의 행위나 순종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을 수여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물을 주는 자는 받는 자에게 바라는 것이 없이 수여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은혜”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오래된 가족 분들과 새가족 분들 모두가 어떤 사람도 예외없이 종교성에 의한 믿음이 있어야 함을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그 잘못된 종교성에 의한 믿음은 인간을 허무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왜냐면 결국 인간이 이 종교성을 가지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인간은 왜 종교성을 가질까요? 종교성에 의한 믿음을 가지고 살고 그것에 헌신하는 삶을 통해 계속해서 무언가를 얻어내고 싶어하는 자연스러운 욕구 때문이겠쬬.
그리고 그 말은 곧 모든 인간에게는 무언가 계속해서 갈망하게 되는 본성이 있다는 것이고요.
그리고 기독교인들은 바로 그것을 죄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얘기하면서, 그리고 은혜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죄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으로써 이것으로 인하여 생긴 결핍을 채우기 위해 종교적 본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상태는 하나님이 떠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서 떠나심으로 생긴 인간의 빈 공간은 그 무한한 기쁨과 복락의 자리가 비워졌기 때문에 그 무한함을 채우기 위한 무언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종교성이라는 모습을 하고, 인간에게 어떤 대상에 대한 종교적 헌신과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종교성을 가진 인간들은 계속해서 그 공간을 채우기 위한 종교적 헌신을 감행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참된 믿음이라고 착각하게 되죠.
아까 이미 말했던 오래된 가족, 새가족들이 가진 그 모든 종교성이 바로 이러한 행동 패턴을 만들게 되는 원인입니다.
그렇다면 빈 공간이 무엇으로 채워져야할까요? 무엇으로 채워져야 우리는 아무리 지속해도 채워지지 않았던 종교적 헌신, 그 종교적행위라는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이 죄의 저주입니다. 종교적 헌신을, 종교적 행위를 지속해도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이 생기는 것이 바로 죄의 저주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빠진 자리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바로 그 하나님을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의 행위나 종교적 헌신으로 결코 채울 수 없었던 자리를 채우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셔야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이렇게 얘기합니다.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일(종교적 헌신)을 하지 않아도, 경건하지 않은 자를 의롭다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십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잘못된 믿음, 종교적 믿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 얻게 되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바로 참된 믿음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것이 과연 있습니까? 결코 없습니다.
로마서 기자는 우리가 만약에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한 것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것을 자랑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그래서 기독교가 말하는 구원을 얻는 참된 믿음은 바로 “은혜의 믿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다시 돌이켜서 종교적 믿음에서 참된 믿음으로 향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참된 구원을 가져다 줍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의 본래의 자리에 두고 죄의 저주를 깨고, 하나님으로 인해 참 자유를 얻게 되는 그 참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용)
저는 여러분에게 복음을 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이 구원을 준다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로 인한 믿음이 구원을 주느 ㄴ것입니다.
잘못된 믿음이 있습니다.
종교성에 의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믿음은 결코 종교성에 의한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행위나, 우리의 종교적 헌신이 구원을 가져다주느 ㄴ믿음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한 것 없이, 그것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하는 것이 하나도 없이 얻게 되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여러분이 교회 밖에서, 교회 안에서 무언가에 헌신하고, 무언가를 행해야만 구원을 얻는 것처럼 믿지 않았습니까?
잘못된 믿음에서 돌이키고, 은혜로 얻는 믿음을 얻길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여기에 모인 보ㄱ음을 듣고 결단하여 복음대로 살기 결단한 모든 자들 가운데 함께 있을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