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
Notes
Transcript
성경본문: 마가복음 8:29(신약 67쪽)
설교제목: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
1. 찬송가: 545장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뵈어도
📷
2. 성경봉독: 마가복음 8:29(신약 67쪽)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 말씀나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구절이 나오기 전까지 마가복음에서 어느 사람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는 마가복음 1장 1절에 기록된 그리스도라는 말을 제외하고요. 마가복음의 절반인 8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이가 없습니다. 이러한 당시 사람들 또는 제자들의 영적 상태는 앞서 시각장애인을 치유한 사건을 통해 상징적으로 드러납니다.
마가복음 8장 22~26절에서 예수님은 이전의 치유 사역과 달리 유일하게 두 번 안수하여 시각장애인을 치유하시는데요. 예수님의 첫 번째 안수에 시각장애인은 보기는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두 번째 안수에 시각장애인은 밝히 보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시각장애인의 모습은 당시 예수님을 보았던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가까이서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이 그분이 그리스도이심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를 바르게 보도록 교훈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성경의 교훈이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런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이 무엇인지 생각합니다.
저는 종종 CBS방송의 “새롭게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을 즐겨봅니다. 이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곧 신앙간증 프로그램입니다. 저는 최근 박정호 교도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습니다. 그는 중학교 시절 하나님을 만났던 이야기를 하면서요. 중학교 때 거리의 쓰레기를 줍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중학교 첫 시험에서 거의 반 꼴등을 했습니다. 부모님께 이를 말하기가 두려워서 기도했는데, 수련회 때처럼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평안을 얻었다고 합니다.
평안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데, 이전에 눈에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더랍니다. 쓰레기였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이 그 쓰레기를 주우라는 마음을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쓰레기를 지나치면 마음이 답답했고 그 보이는 쓰레기를 줍고서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쓰레기 중에는 담배꽁초 같은 손대기 싫은 쓰레기도 있었답니다. 그냥 지나칠 수도 없어서 하나님 주시는 마음에 따라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모두 줍고 집으로 갔답니다. 집에 도착하니 기도할 때 보더 더 큰 마음의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결국, 그렇게 중학교 시절 내내 등하굣길에 쓰레기를 줍고 다녔는데요.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중학교를 전교 1등으로 마치게 되었답니다.
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고요.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삶의 모습 말입니다. 제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내 생각을 양보하지 못하며 사는 것을 반성해 보았습니다.
최근에 아내는 임신 5개월 차가 넘어갑니다. 이제 태동이 느껴지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일전 선물받은 성경 동화를 읽어달라는 것입니다. 이 무렵에 아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일이 쑥스럽기도 하고 최근 목과 어깨에 담이 와서 힘들다는 핑계로 미뤄왔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간에 어떤 권사님과 태동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또 책을 읽어주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됐습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도 듣지 않으면서 어떻게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제 생각도 내려놓지 못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앞선 이야기를 통해 생각합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의 모습은 이렇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하고서 저는 며칠 전부터 성경 동화를 읽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을 살아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내 생각을 앞세우지 말고 주님의 뜻에 귀 기울이며 살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