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위엄을 경험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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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29:1-11(구약 821쪽)
설교제목 : 여호와의 위엄을 경험하는 삶
다윗의 시
1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2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3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4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5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6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7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8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9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
10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시편에서 시인은 여호와의 위엄을 찬양합니다. 그것은 폭풍과 화산폭발과 지진으로 묘사되는 ‘여호와의 소리’를 통해서인데요. 다시 말해 시인 이른바 자연재해 또는 창조세계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임재를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경고로 하나님을 무겁게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로 영광은 ‘카보드’라고 하는데요. 이는 ‘무겁다’라는 뜻에서 온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의 성경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무겁게 또는 중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결국 시인이 이와 같은 얘기를 하는 까닭에 대해서 거꾸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그와 같이 여기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을 향한 경고의 말도 될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약속한 땅인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로 그들의 신앙에 영향을 주었던 바알이라는 남자 신과 아세라라는 여자 신인데요. 이들은 일찍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들이 섬겼던 풍요의 신입니다. 가나안 땅은 농사를 통해 먹고 살았기에 날씨가 그들의 삶에서 주는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그러니깐 날씨가 좋아서 풍년이 들면 아주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었겠지만, 반면 날씨가 나빠서 흉년이 들면 삶이 곤궁해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문화 속에서 나타난 우상이 바로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본래 바알은 폭풍의 신이었고요. 농사에서 중요한 비를 관장하는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세라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신이었는데요. 가나안 땅의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통해 한 해의 농사가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바알과 아세라의 성적인 결합이 가나안 땅에 풍요를 가져다 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러한 신들을 위한 제사나 의식들은 상당히 성적으로 문란한 형태를 띄었는데요. 하나님은 이와 같은 우상숭배의 행태에 대해서 금하셨지만,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에 영향을 받았던 것이지요. 그러다보니, 하나님 외에 다른 신 곧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신을 섬기는 일들이 있다거나,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바알와 아세라를 섬기는 것처럼 한다거나 하는 등의 문제들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이 결국은 이스라엘을 멸망케 한 것으로 구약성경 열왕기서는 보고 있는데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시대의 풍습을 쫓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해서, 오늘 시편의 시인은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 듯합니다. ‘여호와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이지요. 그것을 달리 말하자면, 여호와의 임재를 경험하고 그 분의 무게감을 느끼라는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무게감 있게 경험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생각해 봅니다.
아마 많이 들어보셨을 겁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라는 말이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요. 이는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프리드리 니체의 말이라고 합니다. 언젠가 그것이 옳은 말임을 어떤 이야기를 통해서 깨닫게 됐는데요. 흔히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원주민들은 여러 부족으로 살아가면서 그들 나름의 문화들을 만들었는데요. 그 중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 중에 하나가 성인식입니다. 그 성인식 중에는 오늘 우리의 눈에는 다소 야만스러워 보이는 것도 있는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인디언의 어떤 성인식에는 어깨나 가슴살을 한껏 잡아당겨서 칼로 그 살을 뚫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비명을 지르면, 그는 아직 성인으로써 인정받기 못하고, 이 과정을 오롯이 견디며 참아낸 이들에게 비로소 성인으로써 대우를 해줬다고 합니다. 어찌보면, 야만스러운 이 성인식은 사실 상당히 놀라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그와 같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것을 말함과 동시에 그와 같은 고통을 다른 이에게 주지 않아야 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아픔과 고통을 견딤을 통해서 사람은 그 고통의 무게를 실감하고 그 고통을 다른 이에게 주면 안 된다는 것을 몸에 새기는 의식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을 때까지 그 상처를 몸에 지님으로 그 상처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긴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인디언이 몸에 상처를 통해 중요한 삶의 교훈을 새기듯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마음에 아로새기며, 철저하게 그 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바알과 아세라가 틈탈 자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따르며 살기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몇 번 사고를 낸 적이 있는데요. 어떤 사고는 저의 부주의로 일어난 사고였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이런 것입니다. 차에 보면, 사이드 브레이크라는 것이 있습니다. 차가 멈췄을 때 이것을 잘 당겨둬야지 차량이 꼼짝 않고 있는데요. 제가 이전에 있던 교회에서 교회차를 운전할 때였는데 교회에서 아파트 전도를 마치고 교회로 가다가요. 잠깐 정차를 하고 그 인근에서 또 전도지를 나눠주었는데요. 제가 실수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잘 당겨두지 않아서, 밑에 주차된 차량에 살짝 부딛히는 사고 있었습니다. 평지 같았으면 괜찮았을 텐데 내리막길에 있던 상황이라 차가 내리막길로 미끄러져서 다른 차에 부딛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내리막 경사가 심하지도 않았고 주차되었던 차에 살짝 부딛쳐서 큰 사고는 없었는데요. 부딛힌 차량의 주인은 이때가 기회라 생각했는지 별별의 명목으로 사고비용을 청구해왔습니다. 물론 보험사를 통해서 일은 잘 마무리 되었지만요. 그 사고 있고서 자주 저는 차에서 오르고 내릴 때마다 집착적으로 사이드 브레이크를 확인하곤 합니다.
어떤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는 것은요. 그것을 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잘 당겨둬야 하는 것 운전을 하시는 분들은 다들 잘 압니다. 그런데 막상 그 일로 사고가 나거나 그와 같은 경험들이 생기기 전까지 그것은 그저 운전에 관한 한 지식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서 저와 같은 사고를 경험한 분들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것은 그저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것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엄을 경험하고 그 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써 그것은 잘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참으로 우리 삶에 무게가 있게 다가온다면 우리의 삶을 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오늘 시편의 마지막 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11절을 다시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방금 읽은 구절에서 평강이라는 말은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어 ‘샬롬’입니다. 이 샬롬이라는 말의 본래 뜻은 ‘제자리로 돌아오다’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또는 하나님을 무겁게 경험하는 이들은 삶의 회복을 이루는 곧 평강의 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은혜가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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