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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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8:22-30(신약 67쪽)
설교제목: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27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을 성경 말씀은 두 가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는 맹인이 눈을 뜨는 이야기이고요. 나중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이야기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이야기이지만 연결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연결점이 있고 이 성경 이야기가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를 같이 나누고자 합니다.
맹인이 눈을 뜬 이야기는 오늘 성경 22~26절까지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눈여겨볼 것이 있는데요. 예수님은 이전과 달리 맹인 환자를 두 번 안수하여 치료하십니다. 첫 번째 안수를 통해 맹인은 보이긴 하였으나 완전히 보지 못했고 두 번째 안수를 통해 비로소 맹인은 완전히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 가운데 유일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대부분의 치유를 한 번에 끝내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이 이야기는 예수님의 치유 사역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또는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이야기가 27~30절에 나오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입니다. 놀랍게도 마가복음의 절반에 해당되는 8장에 이르기까지요. 사람들은 심지어 제자들까지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한 사람은 8장까지 베드로가 유일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또는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서 보기는 했지만 마치 앞선 이야기에 나왔던 맹인처럼 그분이 누군지 완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를 바탕으로 어떤 인물에 관한 이야기가 떠올랐는데요. 그는 박정호 교도관입니다. 제가 이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된 것은 CBS방송의 “새롭게 하소서”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였습니다. 방송을 통해 본 박정호 교도관의 첫 모습은 이랬습니다. 키가 크고 근육질인데, 마치 마동석 배우의 몸을 보는 듯했고 얼굴은 마동석 배우와는 달리 이른바 교회 오빠처럼 선량해 보였습니다. 이분의 체격 때문인지 넥플릭스“피지컬100”이라는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방송을 통해 이분의 몸매에 눈이 갔던 것처럼, 이분의 얘기를 듣고 감명 깊었던 부분이 있었는데요. 이분이 중학교 때 하나님의 만났던 얘기를 했어요.
중학교 입학하고 첫 시험을 쳤는데요. 반에서 거의 꼴찌를 했다고 합니다. 뒤에 몇 명이 있긴 했지만, 운동부였고 사실상 꼴찌에 가까웠습니다. 어린 마음에 이를 부모님께 얘기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다고 해요. 그래서 이를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데요. 수련회 때처럼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평안함이 찾아왔다고 해요. 이제 집에 갈 용기가 생겨서 학교를 나서는데요. 전에 보이지 않던 것이 눈에 들어오더래요. 길에 버려진 쓰레기였지요. 이상하게도 그냥 지나치려고 하면 마음이 답답해서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데요.
여러 종류의 쓰레기 중에는 별로 줍고 싶지 않은 쓰레기도 있었습니다. 가령 누가 코 푼 휴지나 담배꽁초 같은 거요. 하지만 쓰레기를 지나치면 마음이 답답했고요. 눈에 보이는 쓰레기를 가리지 않고 다 줍고 집으로 돌아갔데요. 참 신기하게도 그랬더니 기도할 때보다 더 마음이 평안하더래요.
그리고 다음 날에 학교에 갔는데요. 교실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라는 마음을 하나님이 주시더래요. 한창 예민할 청소년 시기라 민망함에 고민됐는데요. 쓰레기를 주울 때처럼 하나님 주신 마음에 순종하기로 했는데요. 그로부터 매일 학교를 오가는 길에는 쓰레기 줍고 학교 와서는 무릎 꿇고 기도하는 생활을 반복했데요. 그리고 그해 중간고사를 보는데 반에서 2등하고 전교에서 14등을 했답니다. 또 다음 해에는 반에서 1등하고 전교에서 2등을 했어요. 그러면서 중학교를 결국 전교 1등으로 졸업했다고 해요.
당연히 잘 아시겠지만, 통학하면서 쓰레기 줍고 교실에서 무릎 꿇고 기도한다고 전교 1등이 된다는 말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이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또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 하고 말이지요. 자주 들으셨을 텐데요. 하나님이 원하시는 순종은 100%이지 99%가 아니지요. 이것은 내 생각과 내 판단을 내려놓고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것인데요. 앞서 이야기에서 쓰레기를 줍더라도 좀 깨끗한 쓰레기랑 그렇지 않은 쓰레기를 구분해서 줍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다 줍는 것과 같아요.
저는 이것이 결국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삶이라고 여겨집니다. 헬라어 ‘그리스도’라는 말이 원래는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어 ‘메시아’에서 온 말인데요. 본래의 뜻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에요. 여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크게 세 종류의 사람인데요. 첫째는 왕, 둘째는 제사장, 셋째는 예언자예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살아가야 하고 그 말씀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여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또 이 말씀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기에 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이가 곧 구원자이기도 했어요. 결국, 그리스도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으로 구원을 가져다주는 분을 말하는데요.
생각해보면, 왜?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구원자가 되시는가 하면요.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이에요. 달리 말하면,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름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죠.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함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그분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면 우리가 구원받는다는 믿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저는 우리가 신앙생활 가운데 이 점을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분명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떨까요? 그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부끄럽지만 제 얘기를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얼마 전부터 아내가 선물로 받은 태교용 성경 동화를 읽어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내는 이제 임신 약 5개월을 넘어서고 있는데요. 이제 태동이 느껴지고 아빠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것이 좋다는 조언을 받았어요. 그래서 몇 주 전부터 제게 성경 동화를 읽어달라고 했어요. 저는 요사이 몸이 좀 안 좋기도 했고 교회 일이 바쁘기도 해서 좀 핑계를 대면서 그 요청을 미뤄왔습니다.
그러다 주중에 어떤 권사님과 아내에 근황에 관해서 얘기하다가요. 태동 얘기를 했는데요. 이 무렵에 보통 같이 태동도 느끼고 책도 읽어주고 한다는 얘기를 하셨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렇게 하냐고 물으셨어요? 이 대화를 하면서 제가 깨닫게 되었어요. 하나님이 자꾸 내가 아내의 요청을 피하고 있으니까 이 권사님을 통해 말씀하시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사실 교회 행사가 계속되기도 해서 바쁜 것도 맞았지만요. 잠깐 책을 읽어줄 여유가 없었던 것은 아닌데요. 왜 그렇게 그 일이 쑥스럽고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계속 피해왔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앞서 말씀드린 박정호 교도관님의 이야기도 떠오르고 하면서요.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예수를 그리스로 고백하는 사람으로 뭔가 잘못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할 사람이 내 뜻대로 살고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제가 반성하고 엊그제부터 아내와 그 권사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따르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해야 한다고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아요. 진짜 하나님의 뜻인지도 사실 모르고요. 그런데 제가 제 생각으로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고 있지 않다는 것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얘기도 못 듣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얘기는 듣겠냐는 생각이 든 것이죠.
저는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통해 우리 성도님들께서 교훈 얻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그와 같이 고백하며 사는 삶은 말씀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이는 내 생각과 내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내 생각은 좀 다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100%의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우리가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주신 말씀을 따라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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