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병이어-주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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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8:1-10(신약 66쪽)
설교제목: 칠병이어-주께서 우리를 도우신다.
1 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구절은 이른바 ‘칠병이어’라고 불리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떡 7개와 물고기 두 어마리로 4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기적이지요.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는 오병이어 곧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 명이 넘는 사람을 먹이신 기적일텐데요.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로 칠병이어가 나옵니다. 오병이어와 달리 이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두 사건은 유사하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러한데요. 오병이어는 유대지역 또는 유대인들에게 일어난 기적의 사건이고요. 칠병이어는 이방지역 또는 이방인들에게 일어난 기적의 사건입니다. 두 사건에서 이와 같은 차이가 있지만, 또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사건 모두 예수님께서 같은 반응을 보셨다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2절 말씀에 나오는 ‘불쌍히 여기다’라는 것인데요. 이는 헬라어로 ‘스플링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라고 합니다. 내장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긍휼와 연민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이었고 1차적으로는 같은 동족인 유대인을 위해 사역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도 긍휼히 여기시는 분입니다. 그리하여 오병이어뿐만 아니라 칠병이어도 행하신 분이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모든 이들을 아끼고 위하시는 분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임을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 대부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기를 바랄 것입니다. ‘잘 산다’라는 것이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대략 이런 것이 아닐까 합니다. 내 삶이 스스로에게 또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삶 말입니다. 또한 이는 어떤 성공 또는 성취를 이뤄냄으로써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삶이기도 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에는 좋은 또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는 것인데요. 이는 탁월한 영적인 리더로 신앙생활에 모범을 보이고 제게 주어진 사역 곧 설교와 심방을 훌륭하게 수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삶을 잘 살아내고자 하는 바람은 종종 좌절과 어려움을 겪습니다. 생각보다 인정받고 탁월한 성취나 성공을 이루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 경쟁 속에서 그들을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는 성공을 이뤘다는 사람에게서도 나타남을 봅니다.
예를 들면, 미국의 16대 대통령인 링컨이 그러했습니다. 우리가 그를 자세히는 알지 못해도 그의 이름이 시대를 넘어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유명한 인물이고 성공한 인물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에게도 어울리지 않는 별명이 붙기도 하는데요. 그것은 ‘실패의 아이콘’입니다. 그가 훌륭한 미국의 대통령으로 평가 받기 전에 그는 삶에서 꽤 많은 실패를 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20대 초반에 시작한 사업은 실패를 거듭했고 의원선거에서 낙방을 거듭했으며 이로 인해 생긴 빚을 갚는 데만 17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인생을 성공했다고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인물에게서 조차 삶을 잘 살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님을 봅니다. 그러니 하물며 저 같은 평범한 사람에게는 더욱더 힘든 일이거나 어쩌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세상에는 나보다 잘 난 사람이 많고 탁월한 사람이 많음을 깨닫고 나면, 어린 시절에 가졌던 꿈과 비전들이 부서지는 경험을 합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는 훌륭하지 못해서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 말입니다. 그리고 방향을 전환해서 평범한 삶 또는 평균적인 삶으로 목표를 수정합니다.
그런데 어떴습니까? 평범한 삶이라고 쉽습니까? 이 또한 모호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무엇이 평범한 것인지 부터 생각해야할텐데요. 보통은 소득 기준을 놓고 중산층에 해당된다면 평범하고 평균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021년 기준으로 이와 같은 데요.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월 소득으로는 401만~1068만원 사이에 해당 됩니다. 월평균 소비지출은 358만원이고, 순자산 평균은 5억4천만원 정도’입니다. 2024년 현재에서는 소득이 더 증가한다고 하는데요. 이 기준에서는 저는 중산층은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에게는 현재 중산층으로써의 삶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또 저는 삶의 목표를 조정하는데요. 애초에 교회에서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겠다는 욕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제게 주어진 사역을 잘 할 수 있기를 늘 바래왔습니다. 특별히 제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설교에 관한 부분인데요. 제가 이해하기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담임목사로 일주일에 평균 8~10회 정도를 설교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략 새벽기도회 5~7회가 있고요. 수요일과 주일 오전 오후를 합해서 3회인데요. 실질적으로 중량감있는 설교는 수요일과 주일을 포함한 평균 3회 정도의 설교입니다. 이는 이틀에 1번 설교문를 완성해 내야하는 것인데요. 설교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담임목회자로 가장 기본적인 차원에서 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당연히 설교준비만 하고 있지도 못할 뿐더러 설령 시간만 주어진다고 설교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물론 제가 아직 경험치가 부족하기 때문에 제 기준에서 어려운 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실제로 제가 계산한 평균치를 웃돌아서 설교하시는 목사님들도 계시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런 얘기를 구구절절하게 하는 것은요. 제 경우를 들어서 생각할 수 있듯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결코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려는 겁니다. 저는 사실 다른 직업군에 속한 분들의 삶을 잘 모르지만요. 아마 그곳에서 평균치로만 살아내는 것만으로 벅차고 힘들지 않을까 합니다. 분명 어떤 일도 쉬운 일이 있다고 들은 적은 없으니 말입니다.
문제는 이것이 우리의 육체와 마음으로 견뎌지면, 그래도 어떻게 버티고 살아집니다. 그런데 그것에 이상이 발생하게 되면, 그로부터 삶을 버티기가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도무지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게 되면 우리는 그로부터 회복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회복불가능한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도울 장치들이 필요한 것인데요. 저는 오늘 성경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의 삶을 돕는 중요한 장치임을 생각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관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하여서 오병이어, 칠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리의 삶에 필요를 채우시고 우리의 삶을 응원하심을 봅니다. 나로써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에 예수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나의 한계로 인해서 내가 기대하는 만큼 또는 평균치로써의 삶을 살아내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필요한 것들을 공급받을 수 있고 예수님으로 도움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주어진 삶을 살아내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이 아무것도 하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더욱더 철지히 주님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삶의 한계를 넘어서 주안에서 복된 삶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이 말씀의 교훈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것이고 그 믿음을 가지고 우리의 삶을 주님께 맡겨드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의 삶을 도우시고 응원하실 것입니다. 이를 믿고 살아가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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