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사랑으로 변화된 인생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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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요한복음 13:1(신약 170쪽)
설교제목: 주의 사랑으로 변화된 인생에 관하여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은 제가 설교준비를 하면서 감명깊게 들었던 어떤 목사님의 간증을 중심으로 얘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분의 간증이 제게 크게 울림을 주었는데요. 왜냐하면, 신앙생활에서 마주하는 고민을 진솔하게 얘기해 주셨고요. 신앙생활을 통해 이룩된 놀라운 변화를 감동적으로 얘기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구절과 직접적으로 연결은 되지 않지만요. 그 이야기가 결코 성경과 무관한 얘기는 아닙니다. 저는 결과적으로 주님의 사랑이 그분으로 하여금 놀라운 간증을 하게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해서 오늘 한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소개할 분은 현재 울산낮은담교회에서 사역하시는 김관성 목사님입니다. 이분은 스스로가 어린 시절 자신의 가정이 역기능 가정이었다고 말합니다. 아버지는 경제활동을 일절하지 않았고 노름에 빠져서 가산을 탕진하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폭력을 수차례 행사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린 자녀들을 노름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식모살이로 팔아버렸다는 거였습니다. 이런 형편에서 형누나들과 20살이 넘게 차이나는 막내였던 김관성 목사님이 교회를 가게된 상황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도무지 집에서 살 수 없다고 느낀 어린 시절 김관성 목사님이 가출을 하였는데요. 20살이 많은 형님에게 붙잡혀 와서는 심하게 욕설과 구타를 당했답니다. 그리고 형님이 명령조로 내뱉기로 교회를 안 가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답니다. 당시에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지만 형님은 일찍 집을 뛰쳐나가 깡패가 되어서 생활했는데, 동생이 똑같은 길로 빠져들까봐 자기 딴에는 동생을 훈육하고자 그렇게 했던 것 같다고 합니다. 어린 김관성 목사님은 형님의 폭력에 죽을까봐 겁이 나서 그날로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는데요. 그로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그의 삶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을 환영하던 교회가 어느 순간부터 직접 말은 하지 않지만 교회를 떠나주었으면 하는 분위기를 풍기더랍니다. 그럼에도 묵묵히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그 과정에서 교회는 다니지만 가정과 교회에서의 상처로 누군가를 잘 믿고 신뢰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열심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는 현실이 괴로웠습니다. 이랬던 그를 변화시켰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자신을 담당했던 교회학교 선생님이셨는데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분은 자신에 매우 따뜻하게 대해줬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음에 있었던 불신과 그동안 경험한 가정과 교회의 모습은 그 선생님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떤 꿍꿍이가 있다는 식으로 꼬아서 받아들이게 했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초지일관 자신에 관한 사랑을 멈추지 않았고 말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그에 관한 눈높이로 내려오는 사랑을 베풀어주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당시에 마음에 담아두었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얘기를 꺼내자 편지를 써오라고 해서는 그 편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고쳐주는 정성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모습이 점차 어린 시절 김관성 목사님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갔다고 합니다.
그 결과로 목사가 되었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나누고 베풀기에 힘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개척교회는 쉽지 않았고 아무리 기도해도 현실의 문제는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하실 단칸방에 화장실이 없어 요강으로 네 식구가 용변을 해결하고 장마철에는 물이 들이닥쳐 밤새 물을 퍼내야 했으며 자녀들은 기침과 폐렴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럴때 일수록 기도하라고 얘기하는데, 아무리 기도해도 변화하지 않는 현실에 낙담하고 좌절하기 일 수 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자신에게 동일한 신앙적 또는 삶의 고민을 가지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사실은 자신도 지금의 처지에서 어떻게 벗어날까를 몸부림 치고 있지만 도무지 아무런 변화도 개선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숨이 턱턱 막히더랍니다. 마치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면 큰 일이 날것 같은 두려움에 휩싸여 1년이고 반년이고 장단기 투숙객들이 없는 살림에 동거동락하기 시작했답니다. 참 신기한 것은 그 없는 형편에도 사람들이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며 함께 살아지더라는 겁니다. 물론 여러 모난 부분들이 같이 지내는 것을 힘들게 하기도 했지만, 또 그 힘든 시간을 함께 함으로 버텨내게 되었답니다.
그러던 중에 한 사람이 크게 변화됩니다. 그는 천하의 고아였는데 형제자매는 물론 아무런 친척도 없었다고 합니다. 어느 덧 고아원을 나와서 사회에 던져졌는데 아무런 의지할 사람도 의지할 곳도 없는 처지에 자신에게 찾아왔더랍니다. 그 청년의 삶의 이야기를 들은 김관성 목사님이 이 사람 그냥 보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여겨서 그날로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답니다. 물론 이전과 마찬가지로 상처 많은 이와 함께 지낸다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그가 직업을 갖게 되고 결혼하여 자식을 얻게되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그가 밥을 사겠다고 찾아와서는 울먹이며 말하더랍니다 자신에게 꿈이 생겼다면서 돈벌어서 목사님에게 집을 지어주는 것이 꿈이라고 했답니다. 서로 부둥켜 안고 울면서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가 생략한 내용들도 있고 한데, 이 김관성 목사님 얘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일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분 표현으로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삶의 반전이 없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 고민이 우리 신앙생활 가운데 생기곤 합니다. 옛날에 들었던 간증에는 신앙생활 열심해 했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아서 사업에서 성공하고 인생의 성공을 이루게 되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모든 신앙인 아니 당장 내가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없으니 정말로 신앙생활이 괴로울 지경입니다.
그런데 만약 신앙생활이 괴로운 것에서 끝이 난다면 우리로써는 너무 고통스럽고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애써 온 일들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더욱이 고통을 주는 일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신앙생활의 위대함을 그 김관성 목사님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합니다. 자신이 받은 사랑으로 말미암아 뒤틀려버린 한 인생을 변화시키고 구원하니 말입니다. 만약 김관성 목사님이 교회도 안나갔고 예수님도 모르고 그 교회에서 자신을 소중히 여겨준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의 인생은 어땠을까요? 어쩌면 그의 형님이 걱정한 것처럼 형님처럼 어둠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가 신앙 안에 들어옴을 통해 현재의 인생을 살아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가 받은 사랑으로 그의 삶이 변화되고 또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것이 다소 대단히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모양새는 아닐지라도 그의 삶은 어쩌면 신앙생활로 말미암아 기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하는 것의 가치가 여기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이른바 성공한 삶 부유한 삶을 누리지 못했도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것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삶의 가치를 경험하고 신앙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이 우리의 기대와 성에 차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땅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때로 고통을 나누고 때로는 더불어 살아가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관계 서로를 아끼는 사랑의 관계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힘과 용기를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
오늘 성경 구절에서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얘기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안타깝게도 제자들의 배신과 십자가의 고통으로 응답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입장에서 이와 같은 계산은 크게 손해보는 것입니다. 적어도 똑같이 사랑을 되돌려 받지는 못하더라도 배신과 고통은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한 미래를 모르시도 않는데, 제자들을 향한 사랑을 멈추지 않으십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예수님은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당장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배신하곘지만, 제자들은 다시 회복하고 예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에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우리는 손해를 무릅쓰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쫓아서 끝까지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때로 이것은 배신이라는 씁쓸한 응답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역사는 믿음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앞서 소개한 김관성 목사님의 간증과 예수님의 사역이 그러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 우리는 용기를 내어야 할 것입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용기내어서 신앙생활을 이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기대를 어긋나게 하는 삶의 모순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역사를 소망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을 통해 사랑의 열매가 꽃 피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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