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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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9:30-37(신약 70쪽)
설교제목: 신앙생활의 역설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는 두 가지의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는 이른바 예수님의 두 번째 수난과 부활에 관한 예고입니다. 이는 일찍이 마가복음 8장 27절 이하에서 첫 번째로 나온바 있습니다. 동일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두 번째로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 사이에서 지위에 관한 논쟁입니다. 제자들 중에 누가 더 서열이 높은 사람이냐는 논쟁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역설로 하나로 묶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서로 다른 두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역설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 내용을 살피기 전에 역설이라는 말의 뜻을 한번 짚고 가겠습니다. 사전적으로 역설이라는 말은 ‘어떤 주장에 반대가 되는 말’을 뜻합니다. 또는 ‘논리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지만 진리를 담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운데요. “길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님은 죽었지만 죽지 아니하였습니다.”, “살고자 하면 필히 죽을 것이고, 또한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니!” 어떤 느낌인지 아시겠지요. 앞뒤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지만, 그 말이 꼭 틀린 것이 아닌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 예수님은 어떤 역설을 말씀하셨을까요? 첫 번째로 31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삼일만에 살아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얘기를 하십니다. 우리가 부활을 생각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 때문에 이 말이 전혀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수 있는데요. 제자들은 아직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도 부활에 관한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부활은 어떤 개인에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모두에게 일어나는 종말적 사건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오늘날처럼 부활을 믿지 않는 이들도 있었고요. 지금도 동일하겠지만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결코 이해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32절을 보면 예수님의 이러한 말씀에 제자들은 ‘깨닫지도 못했고 묻지도 못했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고요. 예수님의 사역을 이해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앞서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죽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던 이스라엘을 그 옛날 다윗과 같이 전쟁을 통해 구원해 주고 그의 백성들을 통치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에게 있어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은 앞으로 예수님이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통치할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러한 기대로 말미암아 오늘 성경 이야기의 두 번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제자들 중에 서열에 관한 다툼이 벌어진 것입니다. 조만간 예수님이 왕이 되면,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오르냐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35절에서 두 번째 역설적 가르침을 주십니다. ‘첫째가 되려면 끝이 되어야 하고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가장 높은 사람이 되려면 가장 낮은 종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또한 제자들에게 쉽게 이해가 되어지지 않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말입니다. 왜? 1등이 되려면 꼴지를 해야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주신 것인데요.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셔서 실천해 보이신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내막을 알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역설적인 가르침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법입니다.
한편 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왜 이렇게 어려운 말씀을 하셨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좀더 제자들의 눈 높이에서 제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가르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역설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생각해보니 예수님의 접근법이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역설은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보다 분명하게 나타내주기 때문입니다.
이런 거예요. 제가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는데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 제가 틀렸네요!’하고 바로 인정할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보통은 ‘내가 뭐가 틀렸는지 증명해보라’고 하거나 계속해서 자신이 옳다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틀렸다는 것을 말해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것은 스스로가 깨닫게 해야합니다. 무턱대고 틀렸다고 말하면,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테니 스스로가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검증해보도록 해야하는 것이지요. 역설이라는 방법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논리적으로 모순되는 말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역설적인 가르침을 주신 것도 그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제자들이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스스로 깨닫기를 바랬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가 왕이 될 것이라는 당시의 생각과 그의 곁에 있던 제자들에게 어떤 보상이 내려질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세상의 길과는 다르고 세상의 방식과는 역설적이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은 역설적이라는 것이 오늘 성경이 교훈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역설은 오늘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제자들처럼 예수 믿고 세상에서 출세할 것을 바라거나 나중에 어마어마한 보상이 뒤 따른 것을 기대하고 계시진 않습니까? 오랫 동안 교회는 예수 믿으면 복받는다고 가르쳐 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복은 이 세상에서 또는 저 세상에서 얻게 될 보상과는 다릅니다.
저는 그것이 오늘 우리 신앙생활의 역설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논리로는 열심히 또는 능력이 많으면 성공하고 복을 누리게 된다고 믿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는 좋은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오랫동안 공부하고 또 성공하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갑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와 같은 생각을 신앙생활에도 적용하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내 기대와 생각으로는 이렇게 열심히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이 나를 어여삐 여겨주셔서 더 많은 부와 영화를 주셔야 마땅한데요. 오히려 신앙생활로 인해 삶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고요. 내 기대와 열심만큼 보상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사실은 그와 같은 생각이 신앙생활과 맞지 않는 것인데 말입니다.
기본적으로 신앙생활은 내 생각과 내 뜻을 쫓는 일이 아닙니다. 내 열심과 내 능력에 의지하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고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방식을 추구하면 그건 신앙생활은 아닌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릅니다. 그러니 내가 기대하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우리에게 신앙생활이 필요한 것은 거기에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내 생각과 내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에게 하나님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우리가 병이 들면 의사를 찾아가잖아요. 내가 그 병을 치유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그리고 내 생각대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의 말을 따라 병을 치료하지요. 그래야만 병에서 낫게 되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지만 구원에 이르는 것이니까요.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지요. 이는 내 생각을 내려놓는 일로부터 시작됩니다.
제가 그것을 경험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저는 올해 2월에 결혼을 했습니다. 올해 저의 나이는 40세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 결혼문제로 고민하면서 이런저런 노력을 해보았습니다. 여러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깨달았습니다. 내 능력으로 아무것도 내 뜻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렇게 내 생각과 내 방식을 포기했을 때, 결혼이 갑자기 이뤄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제 아내는 저보다 3살이 많습니다. 결혼 후에 자녀에 관한 얘기를 나눴는데 아내는 자녀의 욕심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계산기로는 40대가 넘은 우리 부부에게 자녀를 얻는 일은 어려워보였습니다. 인간적인 노력도 있었지만, 오히려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을 때, 아이가 기적처럼 찾아와 내년에 초에 출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약 제 생각과 제 방법만을 의지하고자 했다면, 어땠을까요? 저는 지금과 같은 가정을 이룰 수 없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계획에 내 삶을 내어 맡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린 아이마져도 차별하지 않는 분이시기에 우리 모두를 존귀하게 대해주시고 구원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바라건대, 오늘도 내 생각과 내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살아가는 우리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