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을 넘어서기, 예수님의 뒤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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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성경본문: 마가복음 8:31-9:1(신약 68쪽)
설교제목: 사탄을 넘어서기, 예수님의 뒤를 따르라!
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9: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첫 번째로 예고하시는 장면입니다. 이른바 예수님의 첫번째 수난과 부활 예고입니다. 이 장면 가운데 제 눈길이 오래 머무르는 장면은 33절입니다. 앞서 유일하게 제자들과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라고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특정 사람에게 ‘사탄아’라는 말을 하신 적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 사탄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은 베드로가 유일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어쩌면 욕설보다 더 모욕적이고 가혹한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그와 같이 심한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사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 뜻 또는 하나님의 뜻을 베드로가 막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교훈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자가 사탄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탄이 될 수 없습니다. 후에 설명하겠지만, 사탄은 인간과 다른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물론 사탄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은 사탄의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이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가 사탄을 이해함을 통해 이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하는데요. 쉽게 생각해보면, 사탄의 뜻과 반대로 행한다면,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오늘 사탄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합니다. 이는 사탄을 이해함을 통해 하나님이 뜻을 따르는 길을 찾기 위해서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 하는 이야기는 전원희 목사님의 이야기를 주로 참고하여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흥미롭게 이분은 사탄이라는 주제로 논문을 쓰셨고 그 연구를 바탕으로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현재는 오후다섯시교회의 목회자이고,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유튜버이며, 앞서 말씀드린 책을 쓴 작가입니다.
이분이 사탄을 연구하게 된 배경을 간략하게 소개해드리면 이렇습니다. 고등학교 때, 기도회를 하던 중에 귀신들린 것 같은 자매를 가까이서 목격하기도 했고 이러한 경험으로 귀신과 같은 영적인 존재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요. 보다 직접적으로는 신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오래된 랍비문헌에서 ‘사탄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얘기를 접하면서 이에 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간 관계상 더 세세하게 말씀을 못드리지만 정리하자면, 어린 시절의 영적인 체험과 공부를 통해 접한 충격적인 내용이 사탄을 연구해 논문을 쓰는 지경에 이르게 했던 것입니다.
제가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분의 설교, 간증, 강의 등등의 영상을 찾아보았는데요. 이를 통해서 제가 정리하고 이해한 바는 이렇습니다. 우선 사탄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에서 온 말입니다. 이 히브리어를 헬라어로도 그대로 옮겨서 오늘 성경에 나오는 것처럼 ‘사타나스’라고도 하지만요. 보통 헬라어로는 ‘디아블로스’ 또는 ‘바알세불’로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를 우리말로는 ‘마귀’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탄, 디아블로, 바알세불, 마귀는 모두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이는 귀신과는 구별이 됩니다. 쉽게 말하면, 사탄이 우두머리고 명령하는 존재라면, 귀신은 명령을 따르는 수하입니다. 그래서 사탄 또는 마귀는 귀신의 왕입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탄이라는 말이 대적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성경은 이들의 활동과 이들의 존재를 사람과 구별되는 영적인 존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이 사탄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잘 알려진 이야기로는 본래 하나님의 천사였던 존재가 하나님을 대적하여 악마가 되었다는 것인데요. 실은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얘기는 아닙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있지만 성경 밖에서 사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한 여러 시도 중에 하나입니다. 그들의 존재의 기원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들은 인간과는 구별되는 영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가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영적인 세력이기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반기를 드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사탄의 활동 또는 유혹에 관하여 예수님 오신 후 2세기에 활동했던 이레나이우스라는 신학자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는 사탄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잊게한다는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따른 것입니다. 살아 숨쉬고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덕분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탄의 유혹이고 사탄의 꿰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탄은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드려야할 존재임에도 하나님께 마땅히 올라가야 할 영광을 우리가 취할 수 있습니다. 가령 어떤 좋은 일이나 성취를 이루었을 때 그것을 나의 힘으로 나의 노력으로 여기면서 하나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광을 우리가 빼앗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사탄의 유혹이 우리에게 강력한 것이고 사탄의 활동이 우리를 언제나 넘어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사탄의 권세와 영향력을 떨쳐버리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오죽하면 예수님의 곁에 있던 베드로도 그러한 영향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이러한 문제로 부터 우리를 구원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 이야기를 잘 읽어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를 향해서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고’, 제자들을 향해서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의 뒤를 따르는 것이 사탄의 영향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만이 사탄에게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서 우리는 사탄을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요구되는 삶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입니다.
저는 이를 통해 깨닫습니다. 세상에는 인간과 다른 영적인 존재가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같이 선한 분도 있지만 사탄과 같은 악한 영도 있습니다. 우리는 약해서 사탄의 유혹에 쉽게 흔드리고 그의 영향력에 휩쓰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뒤에 서게 되면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 우리는 사탄의 영향력을 벗어나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예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한편 우리의 신앙생활이 이런 것임을 깨닫습니다. 예수님 보다 앞서지 않는 것 말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것 말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삶이 예수님 뒤를 따르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고 사탄의 권세로부터 벗어나는 삶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삶에서 사탄의 영향력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