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산 사건-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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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가복음 9:1-13(신약 68쪽)
설교제목: 변화산 사건-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이야기는 이른바 변화산 사건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빛나는 모습으로 변화된 이야기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34장에서 모세의 얼굴이 빛나게 된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과 모세를 연결짓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모세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듯이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말입니다. 더욱이 엘리야의 등장은 이것을 더 확증해 줍니다. 11절에서 제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얘기를 합니다. 이는 말라기 4장 5절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는데요. 구원의 때가 이르면 엘리야가 먼저 올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에 따른 것입니다. 그러니깐 변화산 사건은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심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가 되신다는 말이 오늘 우리에게는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나 익숙하고 사실은 그래서 식상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예수님을 구원자로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저는 얼마 전에 ‘최복순 성도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소개하면 이분의 존재감을 잘 모를 것입니다. 그는 코미디언 조혜련 집사님의 어머니입니다. 아시는 분도 있을텐데요. 본래 조혜련 집사님이 기독교인이 아니었고 ‘남묘호렌게교’라는 일본에서 들어온 종교에 속해 있었습니다. 제가 잘은 모르는데, 이러한 이야기를 듣긴 했습니다. ‘남묘효렌교’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우면 원하는 일이 이뤄진는 식으로 가르친다고 말입니다. 이런 얘기를 접하고서는 정말 이게 종교가 맞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어째든 최복순 성도님은 오랫동안 이 종교에 속해서 정말 열정적으로 이 종교의 규율을 따라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독교에 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합니다. 딸 조혜련 집사님이 결혼 전에 남편을 집에 데리고 왔는데요.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다시는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에게 해코지를 당한 적도 없는데 그냥 새벽에 울리는 교회 종소리가 싫었고 기독교인들이 싫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혜련 집사님이 결혼 후에 기독교인이 되면서 간증을 하고 다니게 되었는데요. 한번은 미국으로 간증하러 간다는 얘기를 듣고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했답니다.
사실 간증이 뭔지도 모르고 미국을 따라갔는데, 딸이 교회에서 간증하는 모습에 처음에는 너무 싫었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머물다가 어느 날 밤에 자고 일어났더니 신기하게도 예수를 믿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러면서 그 길로 예수를 믿기 시작했답니다. 올해 6년째가 된답니다. 그러면서 참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답니다. 그분이 아들 낳으려고 8남매를 낳았다는데요 그 바람에 다리가 매우 상하게 되었답니다. 물론 몸을 잘 돌보지 못한탓에 더 그랬지만요. 그래서 걷는 것이 힘들고 심지어 소변줄을 차고 다녀야 했답니다.
그런데 예수 믿고 약 두 달 쯤 되었을 때였는데요. 새벽 5시에 형체도 알 수 없는 누가 깨우더랍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걸어보랍니다. 그래서 거실로 나와서 슬슬 걸어보는데 이상하게 뛰어다닐 만큼 다리에 힘이 생겼답니다. 그 당시에 곁에 있던 딸이 그 장면을 보고 울면서 카메라로 기록을 남겨 놓은 장면도 있는데요. 전혀 걷는 것이 힘들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거실을 활보하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물론 지금은 그때처럼 걷지는 못하는 것 같은데요. 당시에도 그렇게 걷지 못했으니까 정말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이죠.
또 2018년부터 소변줄을 끼게 됐는데요. 병원에서는 남은 날 동안 계속 소변줄을 끼고 살아야 하고 또 그 때문에 염증이 많이 생기고 하니깐 불편하기도 하고 챙피스럽기도 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외부강사 분이 중보기도팀과 함께 왔는데요. 아마 부흥회를 말하는 것 같아요. 그때 중보기도팀이 기도를 해줬답니다. 또 그 목사님은 안수를 해줬다고 하고요. 그리고 그 다음날부터 소변줄을 착용하지 않고도 때가 되면 화장실을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요.
제가 최복순 성도님 간증을 들으면서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분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정말로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여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변화와 기적을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이분이 받은 은혜를 바탕으로 참 놀라운 일을 하는데요. 성경을 한 달에 1번씩 통독을 한답니다. 그러니깐 1년이면 12번을 읽는 셈이지요. 올해 7월쯤 간증하면서 현재까지 62번 읽었다고 했으니까요. 지금 10월이니 한 65번 읽었겠네요. 목표는 87세에 100번 읽는 것이라고 해요. 그분이 성경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너무 좋아서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성경을 많이 읽는 것이 물론 좋은데요. 많이 읽는다고 신앙심이 더 좋다거나 성경을 더 많이 안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성경을 잘 읽어내는 것은 성경을 읽는 것 외에도 다른 것이 필요하니까요. 가령, 신학교에서는 성경 외에도 성경을 잘 읽기 위한 여러 책들을 통해 신학을 공부하고요. 우리가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 또한 성경을 잘 읽는 방법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지식을 쌓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 위함이니까요. 그래서 야고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잖아요.
다만, 성경을 많이 읽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관한 우리의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왜 최복순 성도님은 성경을 읽는 일이 즐거운 일이 됐을까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이 구원자가 되심을 경험했기 때문이지요. 그 이전에도 다른 종교에 속해서 나름대로 열심히 종교활동을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이전에 다른 종교를 통해 경험하지 못했던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성도님들은 어떤 하나님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오늘 성경이 증언하는데로 하나님을 구원자로써 경험하고 있습니까? 꼭 앞선 간증의 경우처럼 어떤 기적이 일어나야 하나님을 경험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서 충분이 그분을 의지할 만한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어디입니까? 그곳이 하나님이이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경험들이 우리 삶에 가득해지길 소망합니다.
사실은 이러한 소망이 저를 향한 설교이기도 합니다. 저는 참 겁도 많고 미래에 관한 어리석고 부정적인 전망을 할 때가 많은데요. 그것이 신앙인의 삶의 태도와 모습이 아님을 어느 순간부터 깨닫게 돼요.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기는 것이고 하나님이 선한 분이서 그 분이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 것이니까요. 우리의 미래가 결코 어둡거나 불행해질 것을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모습은 아닌 것이죠. 물론 예수 믿으면 복받고 늘 만사형통하고 출세하고 이런 식의 이야기는 아닌데요. 분명한 것은 어떤 고난과 시련 앞에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것이 믿음인 것이지요.
그런데 소망이 없는 현실이 있잖아요. 특별히 저의 경우를 놓고 보면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고 이른바 가족을 이루게 되었는데요. 앞으로 먹고 사는 일이 또 자녀를 교육하는 일이 내 형편에서 괜찮은지 고민하게 돼요. 아마도 현재의 세상적인 기준에서는 별로 소망이 없어보여요. 적어도 제 능력으로는 더 나은 전망이 보이지 않거든요. 하지만 제가 믿는 것은 이런 거예요. 제 계산기로는 앞으로의 삶에 관해 소망없음이라고 나오는데요. 하나님의 믿음을 더하면 소망있음으로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주어진 삶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가려고요. 물론 어느 정도의 시련이 예상되지만, 분명 저를 구원으로 인도하실 하나님이심을 믿기에 재고 따지지 않고 나아가 보려고 해요. 그리고 제가 기대하기로는요.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 경험을 쌓아가는 것이지요. 바라건대, 오늘 구원의 경험을 이뤄가는 우리 귀한 성도님들 다 되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