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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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시편 76:6-9(구약 857쪽)
설교제목: 온유한 자가 되십시오.
6 야곱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꾸짖으시매
병거와 말이 다 깊이 잠들었나이다
7 주께서는 경외 받을 이시니 주께서 한 번 노하실
때에 누가 주의 목전에 서리이까
8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9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심판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에서 하나님은 전쟁의 신으로 묘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전쟁의 신이라는 이미지는 부정적으로 다가올 수 있지만 시인이 살았던 고대에 이는 강력한 신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 전쟁의 승패는 신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대를 살기에 전쟁의 신으로써의 하나님이 다르게 이해되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하나님이 전쟁을 일으키신 이유를 생각하면 오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래전 시인이 생각했던 하나님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76편 9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전쟁을 일으키신 까닭 보다 정확히는 심판을 일으키신 까닭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전쟁을 또는 심판을 행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심판을 행하시는 하나님에 관해 생각해 볼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하나님이 심판을 행하실만큼 특별한 온유한 자가 누구이고 하나님은 왜 그를 구원하신다고 얘기하고 있는 것일까요? 달리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가 구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함을 뜻하는 것입니다. 해서 오늘은 구원받는 온유한 자에 관해 짧게 얘기하려 합니다.
< 1. 온유한 자는 겸손한 자입니다. >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구절에 나타나는 ‘온유한’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아나브’라고 합니다. 이는 구약성경 민수기 12장 3절에서 우리에게 익숙한 인물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나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다시 말해 모세는 온유한 자임을 말해줍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에 관하여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모세는 젊은 시절 혈기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자가 되어 살아갑니다. 그러던 그가 노년에 하나님께 순종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는 것에 크게 쓰임 받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모세의 모습이 오늘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본래 온유함은 야생 매가 길들여진 상태를 말합니다. 강인한 맹수가 길들여져서 주인의 말에 철저히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혈기왕성하던 모세가 하나님께 사로잡힌 바 된 상태가 바로 오늘 성경이 말하는 온유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이라는 말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좀 다를 수 있는데요. 보통 우리는 성격이 차분하고 조용한 것을 가리켜서 온유하다고 말하지만요.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함은 달리 말하면 겸손함입니다. 이전까지 자신을 세상에 중심에 놓고 살아왔던 내가 이제는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온유하다는 것은 자신의 성질과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겸손히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 2. 온유한 자는 주의 말씀을 따르는 자입니다. >
결국 온유한 자는 주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입니다. 성경에서 모세가 온유하다고 평가 받는 것은 자신의 성질을 죽였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따랐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가 겸손한 모습을 보였어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았다면 성경은 그를 온유하다고 일컫지 않을 것입니다. 성경이 모세를 온유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에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온유한 자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함을 말해줍니다. 아무리 성격이 온순하고 겸손하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지 못한다면 그는 성경이 말하는 온유한 사람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온유하다는 것이 겸손한 것이라면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겸손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할 줄 아는 자세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진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겸손하다고 또 온유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앙 안에서 참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라는 것입니다.
온유한 삶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우리에게 중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따르면 그것이 구원의 문제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말하자면 하나님은 온유하지 않은 자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온유한 자의 모습은 신앙생활의 모습을 닮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철저히 순복하여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생활이고 그것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 온유한 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 3. 온유한 자에게 구원이 필요합니다. >
달리보자면 하나님이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는 것은 온유한 자에게 구원하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온유한 자로 살아가는 삶이 신앙생활이라면요. 온유한 자는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갑니다. 혹시 바람을 마주하고 걷거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본적이 있으십니까? 그것을 직접하지 않았더라도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고 바람의 세기와 물살의 크기에 따라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신앙생활을 통해 세상 살이 가운데 혹은 세상의 기준에서 손해를 보아야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먹고 살기도 만만찮은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고 혹은 그것을 기꺼이 포기해야 합니다. 지금 이시간 우리가 이곳에 모여 있는 것도 그 증거일 것입니다. 게다가 때로는 물질로 때로는 시간을 내어 봉사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편리함보다는 불편하고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신앙생활 속에서 우리는 구원의 필요성을 또한 느낍니다. 그것은 세상의 풍조를 거스르는 것에 따른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일컬을 수 있고 신앙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보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그 구원이라는 것은 뭘까요? 우리 그간 주님을 위해 또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을 다해 봉사했으니 마지막 날에 최고급 저택에 머물며 안락한 생활하는 것일까요? 과거 천국을 다녀왔다는 어떤 분들의 간증처럼 금은보화로 치장된 아름다운 곳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일까요?
저는 우리의 구원이 그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보았던 미국의 오래된 유명한 영화 또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었는데요. ‘스타트렉’이라는 영화 입니다. 이는 우주를 배경으로 상상하여 만들어진 이야기인데요. 외계인도 나오고 그 가운데 전쟁도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설정이 등장합니다. 지구는 더 이상 돈을 필요로 하지 세상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돈이 없어도 사는 것에 아무런 지장이 없고 돈 대신에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삶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돈과 비슷한 힘을 가진 어떤 수단들이 나오기 하지만 돈이 없다는 설정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설정이 흥미로왔습니다.
저는 우리에게 임할 구원이 마치 그와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지금 이 세계의 방식과는 다른 삶의 방식이 우리에게 가능함을 깨닫고 세상의 가치와 방식을 쫓지 않고도 더 좋고 나은 삶을 살아가는 길을 발견하게 되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신앙생활을 통해 우리가 경험하는 구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참으로 이 세상의 질서와는 다른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으로 구약성경 이사야 11장에 나오는 사자와 어린양이 뛰놀고 어린 아이가 독사굴에 손 넣어도 상하지 않고 해함이 없는 세상과 같은 새로운 세계에 관한 비전이 우리가 맞이할 구원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잔치로 비유되는 풍성함과 즐거움이 넘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이 이 세상과 다른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의 모습입니다.
바라건데 저는 오늘 우리가 온유한 자 곧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성도 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기쁨과 평안을 맛보고 누리는 구원에 이를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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