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된 죄로부터 벗어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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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열왕기하 13:1-13(구약 583쪽)
설교제목 : 반복된 죄로부터 벗어나기
1 유다의 왕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의 제이십삼
년에 예후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칠 년간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가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였으므로
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노하사 늘 아람 왕
하사엘의 손과 그의 아들 벤하닷의 손에
넘기셨더니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6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7 아람 왕이 여호아하스의 백성을 멸절하여
타작 마당의 티끌 같이 되게 하고 마병 오십
명과 병거 열 대와 보병 만 명 외에는
여호아하스에게 남겨 두지 아니하였더라
8 여호아하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9 여호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요아스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10 유다의 왕 요아스의 제삼십칠 년에 여호아하스의
아들 요아스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십육 년간 다스리며
11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가운데 행하였더라
12 요아스의 남은 사적과 행한 모든 일과 유다 왕
아마샤와 싸운 그의 업적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13 요아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여로보암이
그 자리에 앉으니라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희 집에 거미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로 주방의 찬장에 터를 잡고 사는 탓에 찬장에 넣어뒀던 후라이팬에 거미의 똥 같은 것이 떨어지곤 합니다. 종종 이러한 광경을 마주하게 되면, 급하게 에프킬라를 들고서 뿌려대지만, 바쁘게 지내다보면, 또 어느 사이엔가 거미가 만행을 저지른 광경을 반복해서 보게 됩니다. 아마도 철저하게 거미를 박멸하지 않으면 언제고 이러한 피해는 계속 될 것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이야기도 비슷한 교훈을 줍니다. 뿌리 뽑지 못한 죄가 결국 되물림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는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아하스와 그의 아들 요아스의 죄에 관해 말해줍니다. 아버지 여호아하스의 죄는 아들 요아스에게까지 이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나라가 외부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북이스라엘이 아람의 지배를 받게 된 것입니다. 여호아하스 왕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회개하지만, 그의 죄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남은 죄의 불씨가 그의 아들 요아스 왕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지은 죄를 성경은 여로보암의 죄라고 말합니다. 이는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여로보암으로부터 비롯된 죄를 말합니다. 본래 하나의 나라였던 고대 이스라엘은 솔로몬 왕의 아들 르호보암 왕 때에 남쪽왕국과 북쪽왕국으로 갈라집니다. 남쪽왕국을 남유다라하고 북쪽왕국을 북이스라엘이라 합니다. 북이스라엘의 첫번째 왕인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남유다의 예루살렘을 예배하러 가는 것을 막고자 북이스라엘에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기게 합니다. 그것이 여로보암의 죄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배신하고 하나님이 아니 우상을 섬기는 여로보암의 죄를 오늘 성경 이야기는 여호아하스와 요아스가 범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북이스라엘의 역사에 19명의 왕이 있었는데 그 모두가 이 여로보암의 죄를 범합니다. 이처럼 죄라는 것이 강력하게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왜 죄의 문제가 이토록 반복되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때때로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여러차례 반복해서 실수를 하지는 않습니다. 그쯤되면 실수가 아니라 고의라는 의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학습능력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동작을 반복하면서 실수를 줄이고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 마련입니다. 생각해보면, 올림픽이나 운동경기를 하는 선수들이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서 매우 완벽하고 탁월한 경기력을 보여주곤 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한번도 놓친적 없는 양궁의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을 과녁에 활을 쏘는 동작을 얼마나 많이 반복하겠습니까? 그 과정이 쌓이고 쌓여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오늘 성경의 이야기 속에서 아버지 여호아하스에 이어서 아들 요아스에 이르기까지 죄가 반복되는 것은 다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좋아져야 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드니 말입니다. 더욱이 이것이 그들에서만이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역사 내내 반복되었다는 것은 더욱더 충격적입니다. 어떻게 이토록 발전이 없고 이토록 정체되고 한편으로 퇴보하는 느낌을 주고 있을까요? 이에 관한 해답을 이 구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13장 6절을 같이 읽습니다.
열왕기하 13:6(구약 583쪽)
6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여로보암 집의
죄에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 안에서 따라 행하며
또 사마리아에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더라
앞서 말씀드린데로 여호아하스 왕은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여호아하스의 회개가 반쪽자리 회개임을 방금 읽은 성경구절은 말해줍니다. 여호아하스가 다스리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는 여전히 ‘아세라 목상을 그냥 두었기’ 때문입니다. 죄의 뿌리를 완전히 뽑지 않음으로 죄의 싹은 계속해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설교의 시작에 제가 우리 집에 사는 거미 이야기를 했잖아요. 당장에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박멸하지 않는 이상 그것은 언제고 찬장을 장악하고 그곳에서 만행을 저지를 것입니다. 이처럼 죄의 문제를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열왕기하 13장 4~5절을 같이 읽습니다.
열왕기하 13:4-5(구약 583쪽)
4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학대하므로 여호아하스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셨으니
이는 그들이 학대받음을 보셨음이라
5 여호와께서 이에 구원자를 이스라엘에게 주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사람의 손에서 벗어나
전과 같이 자기 장막에 거하였으나
여호아하스가 죄를 범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더 정확히는 그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었고 그로부터 회개한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여호아하스의 간구를 들이시고 구원자를 보내주셔서 죄에 따른 문제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가 죄를 대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다시 말해 스스로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로부터 돌이키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로부터 용서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우리에게서 악을 제거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앞서 보았던 성경 구절에서 아세라 목상 곧 죄를 뿌리 뽑지 않음으로 문제가 발생했으니 말입니다.
저는 이것이 한편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습같아 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주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어떤 이들은 이렇게 간단한 구호로 만들었습니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 구호가 복음을 간략하게 설명해주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에 우리의 삶이 포함되지 않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는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습니다’라고 말하거나 그것을 동의하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전부인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이야기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예수님께 돌이키는 것으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지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언젠가 세계적인 신학자인 김세윤 교수님이 이러한 인터뷰를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참고로 이분은 미국의 풀러신학교의 신약성서학을 가르치는 원로교수님으로 사도 바울에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그는 ‘복음’이나 ‘칭의’ 등과 같이 사도 바울의 중요한 교리들을 연구해왔는데요. 이분이 복음에 관해서 이러한 인터뷰를 한 것을 최근에 들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는 복음을 반쪽만 가르쳐 왔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천국간다는 것만 가르치는 것은 반쪽만 가르치는 것인데, 예수 믿고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함을 얘기해야 완전한 복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비유하자면 복음은 생명력없는 조화가 아니고 살아있는 생화입니다. 조화는 특별히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생화는 계속해서 물을 주고 벌레를 잡는 등으로 가꾸지 않으면 그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마치 이와 같아서 계속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이를 더 잘 가꾸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칫 관심을 기울이지 않거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 안에 틈을 비집고 들어온 사탄에 의해서 희미하게 남아 있던 죄의 뿌리가 치솟고 그것에 다시 뒤덮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오늘 우리의 신앙을 잘 가꾸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를 방치하면 우리는 불행한 결말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죄의 뿌리를 뽑고 그것이 우리를 장악하지 않도록 오늘도 깨어서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