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자의 자격과 그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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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시편 15:1-6(구약 811쪽)
설교제목 : 예배자의 자격과 그의 길
다윗의 시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반갑습니다.
오늘도 은혜의 자리에 나오신 분들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예배와 관련해서 사용하는 표현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예배본다, 예배드린다, 예배한다’ 그 중에서 우리는 대체로 ‘예배드린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사실 신학적으로 좀 더 올바른 표현은 예배한다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드린다라는 것은 사실 기독교신앙 전통과는 맞지 않습니다. 드리는 것은 본래는 무속종교 또는 일반종교에서 나타나는 신앙행위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신에 제물을 비롯한 이른바 치성을 드림으로써 신과 일종의 비즈니스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니깐 주는 만큼 또는 그 이상을 기대하며 받고자 하는 것이죠. 정성을 들여서 예물을 드림으로써 자신이 믿는 신으로부터 보답을 받기를 기대하는 것이죠. 이러한 방식이 이른바 기복신앙입니다. 이는 기독교의 신앙행위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예물을 드리고, 치성을 받친다고 해서, 우리에게 어떤 보답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것을 드리기 이전에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로써 예배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 봉헌과 기도와 찬양을 드리지만, 그것을 통해 어떤 보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사업적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이미 은혜 받은 빚진 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배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인데요. 제가 읽습니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러니 우리의 예배는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배를 합니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볼 것이 아마도 우리가 예배를 드린다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더 공손한 표현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오히려 불손한 것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실까요? 또 하나님이 우리가 어떤 것을 드리기 원하시는 분이라면, 그 분은 불안전한 분이 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린다는 표현을 씀으로 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낮추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무엇이 있기는 할까요? 이렇게 생각을 하다보면, 사실은 예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사실 우리로써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예배를 한다는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은 우리에게 그에 대한 깨달음을 일깨워줍니다. 오늘 시편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1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머무를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사는 자 누구오니이까
이렇게 상상해보면 좋겠습니다.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은 1년에 3차례 이상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그 예배자가 되는 상상을 해봅시다. 우리는 각자의 고향에서 예배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나아갑니다. 예루살렘에 다달았을 때, 성전 문 앞에서 나이가 지긋한 제사장이 묻습니다. ‘자네, 혹시 그런 생각 해봤나? 자네는 어떻게,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올 수 있었나’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사실 오늘 시편이 이처럼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겁니다. 당신은 어떤 자격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몸에 벤 습관처럼 너무 당연해서 생각조차 않았을 수 있는 것을요. 갑자기 묻는 바람에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듯 어질어질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게 될 수 있습니다. 정말로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예배하러 온 것이지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좀 더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왕이 있었잖아요.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 또는 백성이 왕을 만나는 것은 쉽게 꿈꿀 수 없는 일입니다. 설령 아주 드물게 왕을 만난다고 해도요. 아마 눈도 마주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자칫 실수가 있으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어려우리까요.
세상의 왕을 만나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은 일일진데요. 하물며 그보다 높은 신 곧 하나님을 만나는 일에 우리는 왜 아무렇지 않았던 것일까요? 우리는 어쩌면 그러한 감각을 잊은 것이 아닐까요? 예배가 너무 익숙해져서 또는 하나님을 만난 경험이 없어서 예배를 하나님과 무관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아닐까요? 관념적으로 예배를 문화활동 정도로 여기게 된 것은 아닐까요. 또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우리가 여러 차례 예배를 하면서도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왕은 두려워하면서도 만물의 신인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게 된 것은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향해 오늘 시편의 시인은 무서운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격이 당신에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격에 관하여 오늘 시편 2절부터 5절까지 답변을 내놓고 있습니다. 같이 읽어봅시다.
2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실천하며
그의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3 그의 혀로 남을 허물하지 아니하고
그의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웃을 비방하지 아니하며
4 그의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들을 존대하며
그의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하지 아니하며
5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 주지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하지 아니하는
자이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리이다
크게 보면 이런 거예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격을 갖춘자로써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아야 될 일이 있는데요. 해야 될 일은 정직, 공의, 진실, 존중, 신의이고요. 하지 말아야 될 일은 헐뜯기, 악행, 조롱, 고리대금, 뇌물수수에요.
그러니깐 하나님을 예배하기 합당한 사람은, 정직, 공의, 진실, 존중, 신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이 나타나는 모습은 이웃과의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느냐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 점을 주목해서 보아야 해요.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합당한 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요. 쉽게 말해서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러니깐 단지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는 차원을 넘어서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경우에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러한 관계를 우리는 신앙생활의 모양을 통해서 보곤해요. 가령, 예배에 얼마나 잘 참석하고, 교회에 봉사를 얼마나 잘 하는지 등으로 말이죠. 그러니깐 눈에 보이는 모습이면서, 교회와 관련된 어떤 일에 얼마나 열심을 내느냐를 놓고 그의 신앙생활에 대해서 판단하곤 하죠.
그러나, 오늘 성경이 우리에 교훈하는 것은 그와 달라요. 오히려 우리의 신앙생활은 교회와 관련된 일에 열심이냐 아니냐를 통해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가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지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신앙생활 또는 하나님께 예배할 자격을 갖춘 이들의 신앙생활을 이른바 이웃사랑을 통해 나타나는 거에요.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이웃사랑의 실천이 없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 달리 나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말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라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우리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되고, 우리를 넘어서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지경으로 넓혀져 가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바라건데,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예배를 행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함을 통해,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를 놓고 함께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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