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모습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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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장 1-11절
예수님과 제자들은 자주 모였던 장소, 기드론 골짜기 건너편, “감람(동)산”
유다는 그 장소를 알았지만,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쳐올 일을 모두 아셨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사람 예수요.” “내가 그 사람이다.”
뒤로 물러나서 땅에 쓰러지는 무리들
다시 물으신다. “너희는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사람 예수요.” “내가 그 사람이다.”
그리고 제자들의 안위를 돌보신다. “(사랑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무리는 로마 군인들과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이 보낸 성전 경비병으로 구성 되어있었다.
여기서 “군대(스페이라)”는 600명으로 구성된 로마 보병대를 일컫는 단어이다.
거기다 이들은 간단한 순찰을 나왔거나 비번인 군인들도 아니었다.
등불과 횃불과 무기(큰 무리가 칼과 몽치를 가지고:마태복음)를 들고 있는
완전 무장의 “로마”군인들이었다.
그들 앞에 베드로가 칼을 빼들었다. 그냥 겁만 주려고 빼든 것이 아니라 그 칼을 휘둘렀다.
허공에 휘두른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다.
그 칼은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의 목적은 승리가 아니었다.
자기가 사랑하는 예수님을 지켜보겠다는, 그 사랑을 증명해보이겠다는 마음뿐이었다.
베드로의 사랑고백은 예수님께 제대로 까였다. 마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로 반석의 칭호를 얻었다가, 예수님의 죽으심을 막아서서 사탄이라 불리웠던 때와 같이, 자신의 열정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막아선 그는 예수님의 책망을 받게 된다. 예수님은 이 잔을 마시기로 결정하셨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이다. 이 잔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 잔은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 채워진 잔이었다. 인류를 향한 진노로 가득 채워진 잔을 순전한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마시게 되었다. 이로 의기소침해져서였을까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부인한다.
그러나 이후에 나오는 베드로의 모습은 실망스럽다. 연속된 세 번의 부인...
15-18절, 25-27절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을 요한으로 본다. 그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고 소개되며
베드로는 집 안뜰까지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때 문지기 하녀가 베드로를 알아본다.
“당신도 이 사람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밤중에 날이 쌀쌀했기에 이들은 숯불을 피워놓고, 불을 쬐고 있었다.
함께 불을 쬐고 있던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다시 묻는다.
“당신도 그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베드로는 부인하며 “나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이때 베드로에 의해 귀가 잘렸었던 말고의 친척이 등장한다.
“당신이 동산에서 그와 함께 있는 것을 내가 보았는데 그러시오?”
베드로가 다시 부인하였을 때 닭이 울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베드로가 얼마나 적진 깊숙이 침투 해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적진 한가운데 있었던 것은 베드로만이 아니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두 인물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있다.
21장 1-14절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목격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면, 그들은 사람들 중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다시 디베랴라 부르는 갈릴리로 돌아와있다.
요한이 기록한 제자의 명단을 보니 11명의 제자들 중 7명이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낚고 있다.
시작을 보면 그 역시도 베드로로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소,” “우리도 함께 가겠소.”
밤새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한 이들 앞에 동이 트기 시작했다.
무시무시한 노동을 해도 결과물이 보인다면 견디면서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하지만 7인의 어부들은 밤샘 노동으로 인해 지신 육신뿐만 아니라
아무 성과도 없는 허탈함까지 감당해야했다.
그때 뭍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게 되었다. 그물을 왼쪽으로 던지고, 오른쪽으로 던지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 나아만이 요단에 몸을 담궜을 때의 심정으로 그물을 던졌을 것이다.
그물을 들어올릴 수가 없을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히자 요한이 예수님을 알아본다.
“저분은 주님이시다.” 그말이 끝나자마자 베드로는 겉옷을 챙겨입고, 바다로 뛰어내린다.
50M, 100M는 수영에서 단거리 종목이다. 베드로는 90M정도를 수영해서 예수님 앞에 섰다.
8절에 보면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요한은 심지어 이렇게 기록한다. “백자 남짓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다시 돌아가보자. 베드로는 밤새 육신이 노곤하고, 정신은 피폐해져있다.
그런 그가 정신이 바짝 들었던 말은 “주님이시다.”라는 외침이었다.
인식하기도 전에 바다로 뛰어들었을 것이고, 나름 벗은 몸으로 갈 수 없어 외투를 챙겼다.
오히려 이 선택이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밤새 땀에 쩌든 몸을 덮은 겉옷은 물에 흠뻑 젖었고, 머리와 옷에서는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그를 더 비참하게 만든 것은 예수님께서 피워놓으신 숯불이었다.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을 때, 추위를 피하기 위해 피워져있던 숯불,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조반을 하기 위해 피워놓은 숯불.
그 의도는 너무 다른 이 단어를 요한은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꼬라지로... 누구 앞에도 서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몰골을 보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아니 사랑하는, 내가 부인했던 그 분이 계시다.
15-19절
식사 중에 베드로는 한마디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만...
누구도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에 온전히 동참한 사람이 없었으니 말이다.
얼마나 그 자리가 불편했겠는가...
아침 식사 후, 그분이 물으신다. 질문에 조금의 변화가 주어진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의 질문에서 베드로의 목소리가 떨린다.
숯불에 이어 예수님께서 물으신 세 번의 같은 질문은
세 번의 같은 질문에 베드로 했던 세 번의 같은 부인이었다.
그런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자신의 양떼를 의탁하신다.
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 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마 10:32-33)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그것도 세 번이나 반복하여 부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심지어 스스로 말씀하셨던 공의보다도) 크셨다. 끝까지 사랑하시는 그분은 우리의 "끝까지 심판을" 유예하신다. 계속해서 우리에게 기회를 부여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용서에도 끝의 순간이 온다. 곧 닭이 울지 모른다는 것을 기억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