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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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서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말 많이 들어봤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각상
본론
지난주 말씀 기억나나요?
두 인물이 나옴 빌립과 마술사 시몬
핍박으로인해 제자들이 흩어집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데, 거기에 마술사 시몬이 있었어요.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건,
지금 빌립이 있는 장소입니다.
빌립은 현재 사마리아에 있어요.
그때,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말씀하세요.
사도행전 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어디로 가라고 하시나요?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이 남쪽이라는 단어가 참 재미있어요.
이제 11월이에요.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는데, 겨울의 찬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냐? 북쪽 시베리아에서 불어와요.
우리에게 있어서 북쪽의 이미지는 차가운 곳이라는 인상이 강해요. 그래서 좋은 이미지는 아니죠.
그에 반해 남쪽은 어떤가요?
따듯하고 풍요로운 이미지가 있어요. 우리나라도 확실히 봄이 찾아오면 최남단에 있는 제주도에 먼저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에게 남쪽은 북쪽보다 따듯한 이미지가 있어요.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남쪽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특히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남쪽은 좋은 이미지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서 계속해서 남쪽으로 가게 되면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량한 사막 광야로 이어져요.
성경에서는 남쪽 사막광야를 ‘네겝’이라고 부르는데, 네겝이라는 뜻은 “메마른 땅”이라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쪽은 따듯하고 풍요로운 곳이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남쪽의 이미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메마른 땅, 사막, 광야를 의미해요.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빌립에게 어디로 가라고 하시나요?
남쪽으로,, 그리고 성경에서도 거기가 어디인지 대놓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 길은 광야라.(광야 사진첨부)
광야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사막이에요. 말 그대로 메마른 땅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광야와 같은 곳으로 보내실 때가 있어요.
참 그런 것 같아요.
사람은 누구나 힘든 시기를 보내요. 이건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누구나 좋은 시기가 있지만, 동시에 힘든 시기도 찾아와요. 또 힘든시기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분명 좋은 시기도 찾아와요.
그런데, 누군가는 힘든시기를 부를 때, 개고생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지만,
누군가는 광야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개고생으로 끝나지만,
누군가에게 힘들고 어려운 시기는 광야로 느껴져요.
또는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 좋은 시기는 내 노력과 성과로 이뤄낸 결과물로 끝나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시기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이며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다가온다는 것이죠.
그 차이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인생의 운전대를 누가 운전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 인생을 내가 운전한다면 그저 내 노력에 따른 결과물이며, 힘든 시기가 개고생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인생의 키를 하나님께서 잡으신다면, 내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께서 운전하신다면,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간다면
우리의 힘든시기는 개고생이 아니라, 광야가 될 것이며,
좋은 날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다가올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사도행전 8:26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지금 빌립은 사마리아에 있어요.
그렇다면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을 거쳐 가사까지 가야하는거에요.
거리로 환산하면 최소 120km에요.
120km를 간거에요.
여기서 120km면 충북 대학교에요.
얼마전에 충북대학교 축제때 qwer, 하하, 하이라이트, 기리보이가 왔다고 하던데,
충북대학교에 투바투가 온다고 하던데, 가면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어. 그러면 갈 건가요? 그러면 가죠!
그런데 지금 빌립은 충북대학교를 가는게 아니라, 광야를 향해 120km 걸어가는거에요.
충북대학교 맛집탐방 하듯이
광야 맛집 탐방을 하러가는게 아니라,
어떤 일도 주어지지 않았지만,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자신의 인생의 운전대를 하나님께 맡겼기 때문에 그곳이 광야라고 할지라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사람을 사용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따릅니다.
하나님께 운전대를 맡긴 사람은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세요.
때로는 광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빌립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인도하심을 경험하여,
특별한 사람을 만나요.
결론 (반주부탁)
바로, 에티오피아 사람 내시였어요.
이 사람은 에티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고해요. 아마 직급이 꽤 높았던 사람이었나봐요.
그런데 이 에티오피아 내시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길에서 성경을 보는데, 이해가 안되는거에요. 마치 하나님을 믿고 싶은데 믿어지지 않는 여러분처럼 내시는 성경을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가 안되는거에요.
그때 그 모습을 누가 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광야로 떠난 빌립이 본거에요.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가 처음 만난 것이죠.
그런데 사도행전 8장 39절을 보면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하나님께서 빌립을 왜 광야로 부르셨는지 추측을 할 수 있어요.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가 처음 만나고 빌립이 성경에 대해서 가르쳐 준 후, 내시가 성경을 깨닫고 세례를 받은 후 매우 기뻐해요.
그리고 이 일이 있자마자 하나님께서 빌립을 다른 곳으로 보내셨어요.
즉, 하나님께서 빌립을 최소 120km를 걸으면서까지 광야로 보내신 이유가 뭘까요?
에티오피아 내시를 한 사람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에요.
에티오피아 내시 한 사람이 뭐라고 그 사람 때문에 바쁜 사람을 불러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사마리아 성에 있는게 훨씬 좋아요.
사마리아 성에 사람이 훨씬 많고,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거든요.
하지만 광야에는 누가있을지 알아요. 아무것도 없는 광야에 불러서 갔더니 내시 한 사람만나고 다시 돌아가는게 말이 되나요?
이성적으로 합리적으로 선택하려면 사마리아 성에 있는게 훨씬 나았죠.
빌립 입장에서는 내시가 누구길래 그 한사람 때문에 그를 광야로 부르냐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에티오피아 내시는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먼저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에티오피아 내시를 보면서 저를 반성하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그가 에티오피아 사람이었거든요.
여러분 에티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구글 맵으로 찾아보니까, 약 4,300km에요.
그 거리는 사람이 걸어서 980시간을 걸어야하는 거리에요.
내시는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고 하지만, 어마어마한 거리를 예배드리기 위해 이동한거에요.
980km를 걷기 위해서는 매일 아침 8시에 걷기 시작해서 한번도 안쉬고 저녁 6시까지 총 10시간을 걸어야해요.
그리고 하루도 안쉬고 100일을 걸어야 예루살렘에 도착해요.
내시가 왜 980키로를 이동했다고요? 예배드리기 위해서요.
어쩌면 때로는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오늘날 참 예배 드리기 편한 시대를 사는 것 같아요.
아침에 앉아있으면 부모님이 교회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거나,
또는 조금만 걸으면 교회이거나,
물론 우리중에는 버스나 전철을 갈아타서 예배에 오는 친구들 선생님들 계시다는 거 압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중에 예배에 대해서 소홀하게 생각하며 가볍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오늘 에티오피아 내시가 예배를 대했던 마음과 태도가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꼬박 100일을 이동하던 내시가 성경을 이해하고 싶은데, 이해가 안되니까 얼마나 괴로울까요?
이제 내시가 다시 에티오피아로 돌아간다면, 그 주변에는 모두 이방신을 섬기기 때문에,
성경을 이해하는게 더 어려울거에요. 믿음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려울 거에요.
그렇게 괴로워하던 내시에게 오늘 빌립을 통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거에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그곳이 어디입니까? 네겝- 메마른 곳 광야입니다.
메말라보이는 곳, 내 눈으로 보기엔 만족하지 못하는 광야와 같은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성경에서 광야는 메마른 곳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구원이 시작되는 곳이에요.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중에
나는 왜 이러지? 하나님 잘 믿는데, 왜 나아지는 것은 없지?라고 광야처럼 느껴지는 곳에 계시는 친구들이 있나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면 그곳이 어디라고 할지라도 은혜의 시작이 되는 곳입니다.
오늘 이야기는 두명의 사람이 등장해요.
첫번째는 그곳이 어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빌립.
두번째는 980km라고 할지라도 기꺼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러 간 에티오피아 내시.
사실 이 두 인물에는 서로 공통점이 있어요.
아마 이러지 않았을까요?
사마리아 성에서 전도하고 있는 빌립이 광야로 간다고 하니까 주변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에? 바보야? 그런 멍청한 행동을 한다고? 지금 여기서 전도해야지 어디를 가는거야?” 온갖 조롱이 있었을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은 움직입니다.
내시가 980km나 되는 먼 거리로 예배를 드리러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이 멍청아! 거기가 어디라고 가는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시는 움직였어요.
그들은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종한 것이에요.
우리에게도 그런 소리가 들릴때가 있어요.
친구들이 물어봐요.
“이번주 주말에 놀러가자!”
“안돼! 나 예배 가야돼!”
그럼 친구들이 뭐라고 하나요?
“야 그거 하루 빠지면 어때!
그거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곳 아니야?”
맞아요. 차별금지법 반대하는 곳이에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는거에요.
그곳이 광야일지라도, 그곳이 예루살렘에 예배 하러 가는 곳이라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배우 유해진,,
이 사람이 처음 배우를 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해요.
“네가 무슨 배우냐”
늦은 나이에 배우를 시작해 주변에 반대와 놀림이 있었고,
오랜 무명의 시간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늘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을 되새겼다고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장을 기억하며 오늘날까지 왔다고 말하더군요.
오늘 하나님께서 찾으시고 사용하시는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인기 많고 잘나가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나님을 선택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믿음의 주인공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정리
말씀을 정리합니다.
첫번째, 오늘 빌립은 그곳이 광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광야와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면, 두려워 마십시오. 슬퍼하지 마세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만나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입니다.
두번째, 우리의 하나님께 얼마나 정성껏 예배 드리고 있나요?
오늘 에티오피아 내시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해 어마어마한 거리를 이동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예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순종하는 사랑하는 중등부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